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취재후] AG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은 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통터트렸나?
입력 2018.09.19 (20:29) 수정 2018.09.21 (07:17) 취재후
[취재후] AG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은 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통터트렸나?
축구 경기로 표현하자면 태클도 이런 태클이 없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새 감독 영입 효과인지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은 2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고 오랜만에 한국 축구가 모처럼 싱글벙글했다.프로축구 K리그에도 관중들의 발길이 이어질 기세였다. 그런데 호사다마일까.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는 걸까. 9월 14일 오후. K리그 전체가 혼란에 빠질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축구단, 아산무궁화FC의 선수 선발 중단이 결정됐다.

난데없이 벼락 맞은 K리그

이럴 땐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 걸까? 황당하고 느닷없고 갑작스럽게 이뤄진 일, 그리고 일방적 통보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이를테면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그저 가만히 그대로 꼼짝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입으로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만 반복한 채.

물론, 경찰청 축구단이 폐지된다는 것은 연맹도 구단도 선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의무경찰 감축, 폐지 법안에 따라 2022년을 끝으로 팀이 사라질 것이고 그 시기에 맞춰 단계적 인원 감축을 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갑작스런 중단은 아니었다. 경찰청 측에선 한 번도 '올해부터 선수 선발 중단'이라고 언급한 적이 없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금메달리스트

가장 답답하고 황당한 건 선수들이다. 갑작스러운 소식, 그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광주와의 리그경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15일 아산 홈경기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안쓰러웠다. 속상함을 감추고 홈팬들 앞에서 씩씩해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조기 전역하게 된 황인범과의 인터뷰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황인범은 이번 상황에 대해 슬픔을 넘어 분통을 토로했다.

아시안게임 인기 실감과 팀 복귀 소감, 리그 출전 등의 질문 때엔 10초 안팎의 짧은 대답을 하던 그가 선수 선발 중단 소식에 대한 생각을 묻자 목소리가 높아지고 격정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무려 30초 넘게 막힘없이 술술 자기 생각을 말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던지 (선수들 인터뷰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과한 동작까지 보이며) 머리를 긁적긁적 이더니 급기야 머리카락을 쥐어뜯기까지 했다.

아... 내가 잘 알지. 그 느낌.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너무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정말 내가 이러다 미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때 마구마구 머리카락을 못살게 굴고 쥐어뜯곤 하는데 그런 나와 꼭 같은 행동을 했다.

기자 : 인기 실감해요?

황인범 :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고 경기장에서 제 이름 불러주시고,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기자 : 본인에겐 경사스런 일로 전역하게 됐는데 남은 선수들은 추가 인원을 안 뽑는다고 해서 고민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황인범 : 하아…. 그 부분이 제가 상당히 속상하고 아쉬운데... 물론 저는 관계가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머리 긁적긁적) 저랑 함께했던 형들, 14명 동료, 그 선수들은 뭐 9개월 10개월만 하면 된다고 쳐도 한국 축구 유망주들과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수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인데 팀이 폐지된다면 한국 축구의 손실인데 조금은 더 신중하게 긍정적으로 해결됐으면 좋겠고 정말 진심으로 저희 팀은 정말 K리그 발전을 위해서 구단 분들도 선수도 정말 노력을 하고 있고 리그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팀인데 이런 팀이 없어진다면 한국 축구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고요.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리자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아산 구단은 단계적 감축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경찰청 측이 일방적으로 선발 중단을 결정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귀띔도 없었다. 공문도 없었다. 관련 당사자들도 모르게 결정됐다는 것이다.

9월 전역자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을 제외하면 아산 구단에 남게 되는 선수는 단 14명.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인 20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뛸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아산이 현재 2부리그 1위 성남과 승점이 동률인데 다득점에서 한 골 차로 밀려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리그 1위가 돼 1부 리그 승격을 하게 되면 내년 1부 리그 파행은 피할 수 없다. 아산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리그 파행도 문제인데 그렇다면 경기에 뛰지 못하는 남은 14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경찰청 측은 제시하지 못했다.

거짓말과 절차 무시, 계약 위반까지?

취재 당시 경찰청 축구단의 담당 부서인 경찰대학 의장대 측은 "올해부터 선수 선발이 중단된다는 계획은 지난해 말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연맹과 구단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단, 이 말을 덧붙였다. "암암리에 알고 있었을 겁니다."

연맹과 구단, 아산시에 확인해보니 그런 내용의 공문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공문을 보낸 적도 없고 구두로 설명한 적도 없다. '암암리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 추상적인 추정은 도대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더욱 심각한 건 경찰청 홈페이지에선 불과 8월 30일까지만 해도 경찰 축구단 모집 공고가 버젓하게 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 모집 동결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선수 선발 중단 계획이 있었다면 8월 30일에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발 공고문은 뭐였을까?

8월 30일 캡처한 경찰청 홈페이지와 선발 모집 공고 안내문8월 30일 캡처한 경찰청 홈페이지와 선발 모집 공고 안내문

9월 초 변경된 선발 모집 안내 캡처 사진9월 초 변경된 선발 모집 안내 캡처 사진

잔여 선수 14명의 활용 방안도 고민해야 하고 당장 다음 시즌 리그 파행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도 해내야 하는 프로축구연맹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경찰대학과 아산 무궁화 FC 팀 창단 당시 계약했던 내용에는 분명 팀의 존폐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경찰대학-한국프로축구연맹-아산시 3자 간에 관련 내용이 논의되고 3자 합의를 거쳐 정책 변경과 해결책 등이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 기재되어있음에도 이 같은 절차가 무시되고 일방적 통보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아산 경찰청, 갑작스러운 충원 중단…혼란의 K리그 / 9월 17일 보도)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책이 있다. 처음 만나 서로 잘 해보자고 다짐했던 그 마음처럼 헤어질 때에도 각자의 행복을 바라며 예의를 갖춰 서로를 떠나보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건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릇 국가 기관의 신뢰가 걸린 문제가 아닌가?
  • [취재후] AG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은 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통터트렸나?
    • 입력 2018.09.19 (20:29)
    • 수정 2018.09.21 (07:17)
    취재후
[취재후] AG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은 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통터트렸나?
축구 경기로 표현하자면 태클도 이런 태클이 없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새 감독 영입 효과인지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은 2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고 오랜만에 한국 축구가 모처럼 싱글벙글했다.프로축구 K리그에도 관중들의 발길이 이어질 기세였다. 그런데 호사다마일까.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는 걸까. 9월 14일 오후. K리그 전체가 혼란에 빠질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축구단, 아산무궁화FC의 선수 선발 중단이 결정됐다.

난데없이 벼락 맞은 K리그

이럴 땐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 걸까? 황당하고 느닷없고 갑작스럽게 이뤄진 일, 그리고 일방적 통보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이를테면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그저 가만히 그대로 꼼짝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입으로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만 반복한 채.

물론, 경찰청 축구단이 폐지된다는 것은 연맹도 구단도 선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의무경찰 감축, 폐지 법안에 따라 2022년을 끝으로 팀이 사라질 것이고 그 시기에 맞춰 단계적 인원 감축을 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갑작스런 중단은 아니었다. 경찰청 측에선 한 번도 '올해부터 선수 선발 중단'이라고 언급한 적이 없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금메달리스트

가장 답답하고 황당한 건 선수들이다. 갑작스러운 소식, 그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광주와의 리그경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15일 아산 홈경기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안쓰러웠다. 속상함을 감추고 홈팬들 앞에서 씩씩해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조기 전역하게 된 황인범과의 인터뷰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황인범은 이번 상황에 대해 슬픔을 넘어 분통을 토로했다.

아시안게임 인기 실감과 팀 복귀 소감, 리그 출전 등의 질문 때엔 10초 안팎의 짧은 대답을 하던 그가 선수 선발 중단 소식에 대한 생각을 묻자 목소리가 높아지고 격정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무려 30초 넘게 막힘없이 술술 자기 생각을 말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던지 (선수들 인터뷰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과한 동작까지 보이며) 머리를 긁적긁적 이더니 급기야 머리카락을 쥐어뜯기까지 했다.

아... 내가 잘 알지. 그 느낌.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너무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정말 내가 이러다 미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때 마구마구 머리카락을 못살게 굴고 쥐어뜯곤 하는데 그런 나와 꼭 같은 행동을 했다.

기자 : 인기 실감해요?

황인범 :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고 경기장에서 제 이름 불러주시고,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기자 : 본인에겐 경사스런 일로 전역하게 됐는데 남은 선수들은 추가 인원을 안 뽑는다고 해서 고민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황인범 : 하아…. 그 부분이 제가 상당히 속상하고 아쉬운데... 물론 저는 관계가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머리 긁적긁적) 저랑 함께했던 형들, 14명 동료, 그 선수들은 뭐 9개월 10개월만 하면 된다고 쳐도 한국 축구 유망주들과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수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인데 팀이 폐지된다면 한국 축구의 손실인데 조금은 더 신중하게 긍정적으로 해결됐으면 좋겠고 정말 진심으로 저희 팀은 정말 K리그 발전을 위해서 구단 분들도 선수도 정말 노력을 하고 있고 리그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팀인데 이런 팀이 없어진다면 한국 축구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고요.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리자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아산 구단은 단계적 감축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경찰청 측이 일방적으로 선발 중단을 결정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귀띔도 없었다. 공문도 없었다. 관련 당사자들도 모르게 결정됐다는 것이다.

9월 전역자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황인범을 제외하면 아산 구단에 남게 되는 선수는 단 14명.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인 20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뛸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아산이 현재 2부리그 1위 성남과 승점이 동률인데 다득점에서 한 골 차로 밀려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리그 1위가 돼 1부 리그 승격을 하게 되면 내년 1부 리그 파행은 피할 수 없다. 아산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리그 파행도 문제인데 그렇다면 경기에 뛰지 못하는 남은 14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경찰청 측은 제시하지 못했다.

거짓말과 절차 무시, 계약 위반까지?

취재 당시 경찰청 축구단의 담당 부서인 경찰대학 의장대 측은 "올해부터 선수 선발이 중단된다는 계획은 지난해 말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연맹과 구단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단, 이 말을 덧붙였다. "암암리에 알고 있었을 겁니다."

연맹과 구단, 아산시에 확인해보니 그런 내용의 공문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공문을 보낸 적도 없고 구두로 설명한 적도 없다. '암암리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 추상적인 추정은 도대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더욱 심각한 건 경찰청 홈페이지에선 불과 8월 30일까지만 해도 경찰 축구단 모집 공고가 버젓하게 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 모집 동결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선수 선발 중단 계획이 있었다면 8월 30일에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발 공고문은 뭐였을까?

8월 30일 캡처한 경찰청 홈페이지와 선발 모집 공고 안내문8월 30일 캡처한 경찰청 홈페이지와 선발 모집 공고 안내문

9월 초 변경된 선발 모집 안내 캡처 사진9월 초 변경된 선발 모집 안내 캡처 사진

잔여 선수 14명의 활용 방안도 고민해야 하고 당장 다음 시즌 리그 파행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도 해내야 하는 프로축구연맹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경찰대학과 아산 무궁화 FC 팀 창단 당시 계약했던 내용에는 분명 팀의 존폐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경찰대학-한국프로축구연맹-아산시 3자 간에 관련 내용이 논의되고 3자 합의를 거쳐 정책 변경과 해결책 등이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 기재되어있음에도 이 같은 절차가 무시되고 일방적 통보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아산 경찰청, 갑작스러운 충원 중단…혼란의 K리그 / 9월 17일 보도)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책이 있다. 처음 만나 서로 잘 해보자고 다짐했던 그 마음처럼 헤어질 때에도 각자의 행복을 바라며 예의를 갖춰 서로를 떠나보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건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릇 국가 기관의 신뢰가 걸린 문제가 아닌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