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대담·솔직…‘3차 남북 정상회담’ 2박 3일 평양의 기록

입력 2018.09.22 (08:07) 수정 2018.09.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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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1년 만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두 정상은 이번에도 파격적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줬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등장과 솔직, 담백한 화법은 이번에도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평양 시민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2박 3일간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들어낸 화제의 순간들 하준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하늘과 맞닿은 백두산 천지. 천지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장군봉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발을 내딛었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중 김정은 위원장의 긴급 제안으로 이루어진 백두산 방문.

남과 북 두 정상이 한반도의 지붕에 함께 오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 "나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 반드시 우리 땅으로 백두산을 오르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습니다."]

지난 4월,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바람이 평양정상회담 마지막 날 이뤄졌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앞으로는 이 길로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 와서 백두산을 봐야지요. 분단 이후에는 남쪽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으니까."]

[리설주/여사 : "99명의 선녀가 여기서 목욕하고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고. 그런데 오늘 두 분께서 오셔가지고 또 위대한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장군봉만으로는 민족의 명산을 자랑하기에 모자랐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내친 김에 천지까지 가 볼 것을 문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한 번 담가보고 싶습니다."]

맑은 날씨에 투명하게 비치는 천지의 물.

그곳에서 남북 두 정상은 다시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회담 첫날부터 사상 ‘최초’란 수식어가 이어졌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대한민국 공군 1호기가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들어서자 군악대 연주와 함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등장한 두 사람.

김정은 위원장 부부였다.

파격적인 행보의 시작이었다.

["조선인민군 명예 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의장대장인 북한군 대좌는 문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2000년과 2007년, 우리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사용하지 않던 호칭이다.

의장대를 사열하는 도중에는 21발의 예포도 발사됐다.

이 역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기본적으로 국빈방문인데 국빈방문이라고 하는 의미는 최고의 예우라는 의미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국가 관계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될지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번 판문점 정상회담 때 약속했던 최고의 예우로 대우하겠다. 여기에 걸맞는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치 우리 국민을 대하듯 평양 시민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소통행보를 이어갔다.

평양 주민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거나, 직접 다가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나눴다.

이런 문대통령을 향해북한 주민들도 한반도기를 흔들며 화답했다.

["조국 통일! 조국 통일!"]

두 정상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 역시 화제가 됐다.

줄곧 창문을 닫은 채 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가로질렀던 2000년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혼자 카퍼레이드를 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의 동반 카퍼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특유의 직설화법은 평양에서도 이어졌다.

첫날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머문 백화원 영빈관까지 동행한 김정은 위원장 부부.

김정은 위원장은 재치있는 화법으로 환담을 마무리하며 문 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우리 영철 부장이랑 다 나가자, 왜 여기까지 들어와."]

이러한 북한 지도자의 거침없는 화법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도 화제가 됐다.

'은둔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 비밀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김 위원장이 베일을 벗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나는 과거에 중국도 갔었고 인도네시아도 갔었고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좀 더 진솔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간다는 평가다.

지난 5월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열렸던 2차 정상회담 때 손님맞이가 미흡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지난 5월 달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판문점 우리 지역에 오실 때 장소와 환경이 그래서 제대로 된 영접을 해드리지 못하고, 식사 한끼도 대접을 해 드리지 못해서 그게 마음에 늘 걸리고..."]

북한 최고급 시설인 백화원 영빈관도 낮추며 성의를 표시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대통령께서는 세상 많은 나라 돌아보시는데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라는 게 초라하죠. 오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비록 수준은 좀 낮을 수 있어도 최대 성의를 다해서 성의와 마음을 보인 숙소고 일정이니까, 우리 마음으로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화가 남북 두 정상의 잦은 만남 때문에 가능해 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이번 정상회담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 세 번째 만남이잖아요. 그만큼 상대방을 많이 알게 되고 또 친밀해졌고, 그러면서 아주 명확하게 상대방을 예우도 하고 깍듯하게 대우도 하면서도 인정하고 이런 장면들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첫 모두 발언에서부터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드러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올해만 벌써 세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님을 만났는데, 제가 받아들이는 감정에 대해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지긴 가까워졌구나...'"]

북한 정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노동당 본부청사를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공개 한 것 역시 또 하나의 파격으로 꼽힌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위한 건물인 노동당 본부청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장으로 선정되며 우리나라 대통령에겐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앞서 두 차례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는 모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우리 측 정상이 묵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와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3월 우리 측 특사단을 이곳에서 처음 만난 데 이어, 첫 정상회담도 바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 행보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측 수행원, 그리고 특사단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평양 대동강 수산물 식당.

문 대통령은 예정보다 일찍 식당에 도착해 평양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 "식사하러 오셔서 자리 나기를 기다리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음식이 맛있습니까? (맛있습니다.) 우리도 여기 맛 한 번 보러 왔습니다."]

이 때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갑자기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 : "오늘 내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는 것 아닙니까? 먼저 와서 둘러봤습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방문.

두 정상을 본 평양 시민들은 환호했고, 김 위원장은 깍듯한 목례로 화답했다.

두 정상 부부도 처음으로 넷이서만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모습은 북한 주민과의 접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평양에서 역시 파격적 모습을 보인 문재인 대통령 못지않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 북한 주민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다 친근감 있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2000년, 2007년도의 딱딱한 분위기하고는 전혀 다른. 문재인 대통령을 배려하면서 남북 지도자가 함께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능라도 5.1경기장. 관중이 가득 찬 이곳에 한반도기가 게양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경기장 하늘에는 드론이 빛나는 조국이라는 제목을 만들어내고, 남북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동시 입장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정상회담 이틀째 밤.

두 정상이 북한의 새로운 대집단체조인‘빛나는 조국’을 함께 관람했다.

남북정상 부부가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는 모습.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찾았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아리랑 공연을 관람할 때 함께 한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이 아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었다.

빛나는 조국 내용 역시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 등이 빠지고 문 대통령을 환영하고 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오늘의 이 귀중한 또 한걸음의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줍시다."]

공연이 끝난 뒤 두 정상은 또다시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개 연설이 이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 "평양 시민 여러분, 북녘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평화와 통일, 화합의 메시지가 담긴 대한민국 대통령의 육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문재인 대통령 :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자리를 채운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도 12번의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화답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한반도 역사, 분단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 평화로 가야 될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모든 메시지가 담겨있다. 연설을 소개하는 김정은 위원장 또한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핵위협이 없는 평화를 만들겠다. 이것은 비록 남북정상간 회담에서 약속된 사항이 지만도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던진 메시지. 이것은 상당부분 의미가 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2007년, 남북 정상의 마지막 만남.

자주 만나자던 그 약속이 11년이 지나서야 지켜 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남북 두 정상은 새로운 약속, 새로운 시작.

그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 천지 물에다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의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가 계속 써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봄과 함께 시작된 평화의 바람이 판문점을 거쳐 가을, 평양에 도착했다.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두 정상의 약속대로 올겨울, 따뜻한 평화의 온기가 서울에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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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격·대담·솔직…‘3차 남북 정상회담’ 2박 3일 평양의 기록
    • 입력 2018-09-22 08:23:23
    • 수정2018-09-22 11:17:33
    남북의 창
[앵커]

11년 만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두 정상은 이번에도 파격적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줬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등장과 솔직, 담백한 화법은 이번에도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평양 시민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2박 3일간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들어낸 화제의 순간들 하준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하늘과 맞닿은 백두산 천지. 천지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장군봉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발을 내딛었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중 김정은 위원장의 긴급 제안으로 이루어진 백두산 방문.

남과 북 두 정상이 한반도의 지붕에 함께 오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 "나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 반드시 우리 땅으로 백두산을 오르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습니다."]

지난 4월,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바람이 평양정상회담 마지막 날 이뤄졌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앞으로는 이 길로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 와서 백두산을 봐야지요. 분단 이후에는 남쪽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으니까."]

[리설주/여사 : "99명의 선녀가 여기서 목욕하고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고. 그런데 오늘 두 분께서 오셔가지고 또 위대한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장군봉만으로는 민족의 명산을 자랑하기에 모자랐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내친 김에 천지까지 가 볼 것을 문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한 번 담가보고 싶습니다."]

맑은 날씨에 투명하게 비치는 천지의 물.

그곳에서 남북 두 정상은 다시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회담 첫날부터 사상 ‘최초’란 수식어가 이어졌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대한민국 공군 1호기가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들어서자 군악대 연주와 함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등장한 두 사람.

김정은 위원장 부부였다.

파격적인 행보의 시작이었다.

["조선인민군 명예 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의장대장인 북한군 대좌는 문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2000년과 2007년, 우리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사용하지 않던 호칭이다.

의장대를 사열하는 도중에는 21발의 예포도 발사됐다.

이 역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기본적으로 국빈방문인데 국빈방문이라고 하는 의미는 최고의 예우라는 의미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국가 관계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될지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번 판문점 정상회담 때 약속했던 최고의 예우로 대우하겠다. 여기에 걸맞는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치 우리 국민을 대하듯 평양 시민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소통행보를 이어갔다.

평양 주민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거나, 직접 다가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나눴다.

이런 문대통령을 향해북한 주민들도 한반도기를 흔들며 화답했다.

["조국 통일! 조국 통일!"]

두 정상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 역시 화제가 됐다.

줄곧 창문을 닫은 채 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가로질렀던 2000년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혼자 카퍼레이드를 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의 동반 카퍼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특유의 직설화법은 평양에서도 이어졌다.

첫날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머문 백화원 영빈관까지 동행한 김정은 위원장 부부.

김정은 위원장은 재치있는 화법으로 환담을 마무리하며 문 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우리 영철 부장이랑 다 나가자, 왜 여기까지 들어와."]

이러한 북한 지도자의 거침없는 화법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도 화제가 됐다.

'은둔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 비밀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김 위원장이 베일을 벗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나는 과거에 중국도 갔었고 인도네시아도 갔었고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좀 더 진솔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간다는 평가다.

지난 5월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열렸던 2차 정상회담 때 손님맞이가 미흡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지난 5월 달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판문점 우리 지역에 오실 때 장소와 환경이 그래서 제대로 된 영접을 해드리지 못하고, 식사 한끼도 대접을 해 드리지 못해서 그게 마음에 늘 걸리고..."]

북한 최고급 시설인 백화원 영빈관도 낮추며 성의를 표시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대통령께서는 세상 많은 나라 돌아보시는데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라는 게 초라하죠. 오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비록 수준은 좀 낮을 수 있어도 최대 성의를 다해서 성의와 마음을 보인 숙소고 일정이니까, 우리 마음으로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화가 남북 두 정상의 잦은 만남 때문에 가능해 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이번 정상회담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 세 번째 만남이잖아요. 그만큼 상대방을 많이 알게 되고 또 친밀해졌고, 그러면서 아주 명확하게 상대방을 예우도 하고 깍듯하게 대우도 하면서도 인정하고 이런 장면들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첫 모두 발언에서부터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드러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올해만 벌써 세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님을 만났는데, 제가 받아들이는 감정에 대해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말 가까워지긴 가까워졌구나...'"]

북한 정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노동당 본부청사를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공개 한 것 역시 또 하나의 파격으로 꼽힌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위한 건물인 노동당 본부청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장으로 선정되며 우리나라 대통령에겐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앞서 두 차례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는 모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우리 측 정상이 묵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와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3월 우리 측 특사단을 이곳에서 처음 만난 데 이어, 첫 정상회담도 바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 행보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측 수행원, 그리고 특사단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평양 대동강 수산물 식당.

문 대통령은 예정보다 일찍 식당에 도착해 평양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 "식사하러 오셔서 자리 나기를 기다리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음식이 맛있습니까? (맛있습니다.) 우리도 여기 맛 한 번 보러 왔습니다."]

이 때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갑자기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 : "오늘 내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는 것 아닙니까? 먼저 와서 둘러봤습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방문.

두 정상을 본 평양 시민들은 환호했고, 김 위원장은 깍듯한 목례로 화답했다.

두 정상 부부도 처음으로 넷이서만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모습은 북한 주민과의 접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평양에서 역시 파격적 모습을 보인 문재인 대통령 못지않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 북한 주민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다 친근감 있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2000년, 2007년도의 딱딱한 분위기하고는 전혀 다른. 문재인 대통령을 배려하면서 남북 지도자가 함께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능라도 5.1경기장. 관중이 가득 찬 이곳에 한반도기가 게양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경기장 하늘에는 드론이 빛나는 조국이라는 제목을 만들어내고, 남북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동시 입장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정상회담 이틀째 밤.

두 정상이 북한의 새로운 대집단체조인‘빛나는 조국’을 함께 관람했다.

남북정상 부부가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는 모습.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찾았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아리랑 공연을 관람할 때 함께 한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이 아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었다.

빛나는 조국 내용 역시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 등이 빠지고 문 대통령을 환영하고 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오늘의 이 귀중한 또 한걸음의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줍시다."]

공연이 끝난 뒤 두 정상은 또다시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개 연설이 이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 "평양 시민 여러분, 북녘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평화와 통일, 화합의 메시지가 담긴 대한민국 대통령의 육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문재인 대통령 :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자리를 채운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도 12번의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화답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한반도 역사, 분단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 평화로 가야 될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모든 메시지가 담겨있다. 연설을 소개하는 김정은 위원장 또한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핵위협이 없는 평화를 만들겠다. 이것은 비록 남북정상간 회담에서 약속된 사항이 지만도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던진 메시지. 이것은 상당부분 의미가 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2007년, 남북 정상의 마지막 만남.

자주 만나자던 그 약속이 11년이 지나서야 지켜 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남북 두 정상은 새로운 약속, 새로운 시작.

그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 천지 물에다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의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가 계속 써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봄과 함께 시작된 평화의 바람이 판문점을 거쳐 가을, 평양에 도착했다.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두 정상의 약속대로 올겨울, 따뜻한 평화의 온기가 서울에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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