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공무원의 도전, 충주시 병맛 홍보 탄생기

입력 2018.09.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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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여 만 명의 작은 도시. 충청북도 충주시.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정 홍보 SNS의 강자는 어디일까요? 서울시도 아니고 부산시도 아닌 충주시입니다. 그 어렵다는 시정 홍보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충주시 페이스북 보신 적 있나요?

지난 4일에 게시한 고구마 축제 이벤트 홍보 포스터는 댓글만 4천 개가 넘게 달렸고 공유된 횟수는 3천7백여 회가 넘습니다. 국내 어지간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 회자됐다는 얘기입니다.

해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실루엣에 고구마 사진을 합성한 홍보물해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실루엣에 고구마 사진을 합성한 홍보물

그런데 얼핏 보면, 이게 공공기관 홍보물이 맞나 싶습니다. 윈도우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틀에 박힌 듯 심심한 여느 홍보물과 다른 B급 퀄리티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했습니다.

이런 게시물을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요?

시작은 201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년 차 공무원이었던 조남식 주무관(당시 8급)은 홍보 담당자가 되면서 어떻게 하면 시정 홍보를 제대로 할까 고민하다 이런 B급 감성을 콘셉트로 잡습니다.

조남식 주무관은 "사람들이 공공기관 SNS를 잘 안 보니까 일단은 좀 눈에 띄어야겠다 싶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낯익으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원형을 살짝 비트는 패러디 방식을 사용합니다.


제일 먼저 한 작업이 충주시 페이스북 페이지 간판을 눈에 띄게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시꺼먼 바탕에 익숙한 문구(믿음 소망 사랑)를 살짝 뒤틀어 놓은 후 충주시의 대표 생산품 사과를 애드립처럼 첨가했습니다.

2016년 충주 호수 축제를 홍보하면서 조 주무관이 만든 홍보물2016년 충주 호수 축제를 홍보하면서 조 주무관이 만든 홍보물

그러고서 만든 호수 축제 포스터가 조회 수 10만 건을 넘기며 주목을 받습니다. 충주시 정보통신과장님의 얼굴을 합성하면서 이른바 '병맛'(비정상적인 것에서 나오는 재미)을 제대로 살린 것이죠.


지역 특산물을 내세운 살미 옥수수 포스터에도 네티즌이 열광했습니다. 젊은 층에 익숙한 코드를 삽입한 '패러디'가 통한 겁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콘셉트를 선보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조남식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올리기 전에 게시물을 직접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우선 SNS에 올린 후 반응을 보고 좋다 싶으면 그제야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일을 저지르고 본 겁니다.

"이게 공공기관에 나올만한 퀄리티냐"는 타박도 들었지만 "네가 젊은데 어련히 잘 하겠느냐. 잘 해보라"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조 주무관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SNS 홍보를 일임하셨던 분이 홍보담당 과장님이었는데 최근 국장으로 영전했다고 합니다.

충주시의 B급 홍보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지역 홍보에도 도움이 되자 조 주무관도 유명세를 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강연에 초청을 받아 작년 2월에는 44개 중앙정부 온라인 홍보담당자를 상대로 홍보 노하우를 전수해줬다고 합니다.

조남식 주무관이 전국 44개 중앙부처 공무원 대상으로 SNS홍보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충주시 제공조남식 주무관이 전국 44개 중앙부처 공무원 대상으로 SNS홍보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충주시 제공

파격적인 홍보로 충주를 네티즌들에게 각인시킨 조남식 주무관은 지난 7월부로 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겨서 다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대신 동갑내기인 8급 김선태 주무관이 이 업무를 이어받았습니다.(공교롭게도 둘은 고교동창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이후 김 주무관이 만든 고구마 축제 홍보물이 또 한 번 화제가 되면서 충주시 SNS 홍보의 특색을 잘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B급 감성이지만 1세대인 조 주무관이 '패러디' 방식을 주로 차용했다면, 후임자는 '아무말 대잔치'를 부각하는 등 포인트가 약간 다르다고 조 주무관은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선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없던 자리를 만들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젊은 감각'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조남식 주무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조직에서 젊은이를 불러다 놓고 막상 뭘 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퇴짜를 놓는다. 한 번 맡겨줬으면 일정 기간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도록 지켜봐 줬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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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단 공무원의 도전, 충주시 병맛 홍보 탄생기
    • 입력 2018-09-26 13:28:32
    취재K
인구 20여 만 명의 작은 도시. 충청북도 충주시.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정 홍보 SNS의 강자는 어디일까요? 서울시도 아니고 부산시도 아닌 충주시입니다. 그 어렵다는 시정 홍보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충주시 페이스북 보신 적 있나요?

지난 4일에 게시한 고구마 축제 이벤트 홍보 포스터는 댓글만 4천 개가 넘게 달렸고 공유된 횟수는 3천7백여 회가 넘습니다. 국내 어지간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 회자됐다는 얘기입니다.

해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실루엣에 고구마 사진을 합성한 홍보물
그런데 얼핏 보면, 이게 공공기관 홍보물이 맞나 싶습니다. 윈도우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틀에 박힌 듯 심심한 여느 홍보물과 다른 B급 퀄리티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했습니다.

이런 게시물을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요?

시작은 201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년 차 공무원이었던 조남식 주무관(당시 8급)은 홍보 담당자가 되면서 어떻게 하면 시정 홍보를 제대로 할까 고민하다 이런 B급 감성을 콘셉트로 잡습니다.

조남식 주무관은 "사람들이 공공기관 SNS를 잘 안 보니까 일단은 좀 눈에 띄어야겠다 싶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낯익으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원형을 살짝 비트는 패러디 방식을 사용합니다.


제일 먼저 한 작업이 충주시 페이스북 페이지 간판을 눈에 띄게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시꺼먼 바탕에 익숙한 문구(믿음 소망 사랑)를 살짝 뒤틀어 놓은 후 충주시의 대표 생산품 사과를 애드립처럼 첨가했습니다.

2016년 충주 호수 축제를 홍보하면서 조 주무관이 만든 홍보물
그러고서 만든 호수 축제 포스터가 조회 수 10만 건을 넘기며 주목을 받습니다. 충주시 정보통신과장님의 얼굴을 합성하면서 이른바 '병맛'(비정상적인 것에서 나오는 재미)을 제대로 살린 것이죠.


지역 특산물을 내세운 살미 옥수수 포스터에도 네티즌이 열광했습니다. 젊은 층에 익숙한 코드를 삽입한 '패러디'가 통한 겁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콘셉트를 선보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조남식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올리기 전에 게시물을 직접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우선 SNS에 올린 후 반응을 보고 좋다 싶으면 그제야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일을 저지르고 본 겁니다.

"이게 공공기관에 나올만한 퀄리티냐"는 타박도 들었지만 "네가 젊은데 어련히 잘 하겠느냐. 잘 해보라"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조 주무관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SNS 홍보를 일임하셨던 분이 홍보담당 과장님이었는데 최근 국장으로 영전했다고 합니다.

충주시의 B급 홍보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지역 홍보에도 도움이 되자 조 주무관도 유명세를 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강연에 초청을 받아 작년 2월에는 44개 중앙정부 온라인 홍보담당자를 상대로 홍보 노하우를 전수해줬다고 합니다.

조남식 주무관이 전국 44개 중앙부처 공무원 대상으로 SNS홍보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충주시 제공
파격적인 홍보로 충주를 네티즌들에게 각인시킨 조남식 주무관은 지난 7월부로 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겨서 다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대신 동갑내기인 8급 김선태 주무관이 이 업무를 이어받았습니다.(공교롭게도 둘은 고교동창이자 친구라고 합니다.) 이후 김 주무관이 만든 고구마 축제 홍보물이 또 한 번 화제가 되면서 충주시 SNS 홍보의 특색을 잘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B급 감성이지만 1세대인 조 주무관이 '패러디' 방식을 주로 차용했다면, 후임자는 '아무말 대잔치'를 부각하는 등 포인트가 약간 다르다고 조 주무관은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선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없던 자리를 만들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젊은 감각'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조남식 주무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조직에서 젊은이를 불러다 놓고 막상 뭘 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퇴짜를 놓는다. 한 번 맡겨줬으면 일정 기간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도록 지켜봐 줬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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