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관장 실습’, 인권과 교육 그 사이의 논란…“꼭 필요한가요?”

입력 2018.09.29 (13:14) 수정 2018.09.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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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관장 실습'

지난 명절,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군 '관장 실습'. 한 대학 간호학과에서는 학생이 서로를 대상으로 관장 실습을 진행한다는 내용입니다.


인권 문제라고 지적하자 해당 학교를 비난하는 댓글부터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교육 목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까지 순식간에 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들도 겪었다는 고백이 이어지면서 한 현직 간호사는 '인권을 유린하는 실습은 없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논란의 출발은 한 대학 커뮤니티였습니다. 잇따라 올라온 '관장 후기를 들려달라'는 게시글. 그 속에는 어느 정도 노출이 되는 건지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의 '금방 끝난다'는 위로에는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수치심이 깔려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부끄러운 실습을 피하기 위해 '생리 공결'을 이야기했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는 조언이 달릴 뿐입니다. 실습을 안 할 수 없느냐는 물음에는 거부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눈치 주셔서' 다 했다는 답변만 달릴 뿐입니다.

현재 '관장 실습'으로 논란이 된 대학은 전국 7곳이 거론됩니다. 해당 대학들에서는 직접 실습을 해봐야 환자의 고통을 알 수 있다며 교육적인 차원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중에서는 관장 실습을 할 수 있는 모형이 있음에도 활용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실습 가운데 하필 '관장'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는 겁니다.

'관장 실습'을 경험한 한 간호사의 이야기


"친하지 않은 학과 동기와 차례로 짜인 조에서 항문 관장을 하기란 너무도 창피한 일이었어요."

대학 시절 '관장 실습'에 참여했던 한 간호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업 전 수차례 결석을 생각해봤지만 쉽게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말로는 관장 실습이 '선택'이라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게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매우 강압적이었습니다. 생리 중에는 휴지를 대고, 치질이 있어도 개인 사정일 뿐 실습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남은 학교생활과 취업을 위한 추천서를 위해서는 교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참을 선택했던 동기들은 다음 수업에서 '어디가 얼마나 아팠냐'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에 몇 번 관장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관장이라는 간호 '술기'가 직접 수치심을 느껴가면서 배울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 선배 간호사의 이야기


"저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건 안 하면서 관장은 물리적으로는 해볼 수 있으니깐 해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간호대 학생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감히 이런 걸 학생들한테 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최원영 간호사

8년째 현직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최원영 간호사는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관장 경험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이를 굳이 실습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용이 쉽도록 '키트' 형태로 제공되는 데다가 관장이 그렇게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 행위 중에서는 실제로 실습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고 이를 배우기 위해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이 보통 일대일로 도제식 교육을 받습니다.

또, 환자의 감정을 느끼는 데 직접 실습이 필요하다는 발상 역시 기본적인 인간의 공감 능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말이라고 반박합니다. 관장을 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그 과정에서 드는 창피함과 우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느낄 수치심이 환자의 안전과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면 이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교육 방식이라는 겁니다.

'관장 실습' 논란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간호사들 인권이 바닥인 것이 학생 때부터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런 비인간적인 처우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최원영 간호사

논란이 된 것은 '관장 실습'뿐이지만, 간호학과 수업 중에서는 모형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서툰 대학생이 실습 한 번으로 얻게 되는 지식은 제한적입니다. 병원에 나와서도 충분히 가르쳐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모든 의료 행위를 간호사가 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과별로 활용하는 기술 역시 다릅니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위생 교육 등에 더욱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습시간에는 정말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궁극적으로 환자들도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겁니다.

올해 초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신입 간호사의 죽음은 '태움'으로 대표되는 간호사 인권 문제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불거진 '관장 실습' 논란은 그동안 '태움'을 견뎌내야 했던 간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희생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장 실습'의 자극적인 내용 이면에는 결국 또다시 간호사들의 인권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문제 제기 속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연관기사] 간호학과 ‘관장 실습 제비뽑기’…인권침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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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9 13:14:45
    • 수정2018-09-29 13:32:32
    취재후·사건후
논란이 된 '관장 실습'

지난 명절,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군 '관장 실습'. 한 대학 간호학과에서는 학생이 서로를 대상으로 관장 실습을 진행한다는 내용입니다.


인권 문제라고 지적하자 해당 학교를 비난하는 댓글부터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교육 목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까지 순식간에 천여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들도 겪었다는 고백이 이어지면서 한 현직 간호사는 '인권을 유린하는 실습은 없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논란의 출발은 한 대학 커뮤니티였습니다. 잇따라 올라온 '관장 후기를 들려달라'는 게시글. 그 속에는 어느 정도 노출이 되는 건지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의 '금방 끝난다'는 위로에는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수치심이 깔려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부끄러운 실습을 피하기 위해 '생리 공결'을 이야기했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는 조언이 달릴 뿐입니다. 실습을 안 할 수 없느냐는 물음에는 거부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눈치 주셔서' 다 했다는 답변만 달릴 뿐입니다.

현재 '관장 실습'으로 논란이 된 대학은 전국 7곳이 거론됩니다. 해당 대학들에서는 직접 실습을 해봐야 환자의 고통을 알 수 있다며 교육적인 차원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중에서는 관장 실습을 할 수 있는 모형이 있음에도 활용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실습 가운데 하필 '관장'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는 겁니다.

'관장 실습'을 경험한 한 간호사의 이야기


"친하지 않은 학과 동기와 차례로 짜인 조에서 항문 관장을 하기란 너무도 창피한 일이었어요."

대학 시절 '관장 실습'에 참여했던 한 간호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업 전 수차례 결석을 생각해봤지만 쉽게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말로는 관장 실습이 '선택'이라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게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매우 강압적이었습니다. 생리 중에는 휴지를 대고, 치질이 있어도 개인 사정일 뿐 실습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남은 학교생활과 취업을 위한 추천서를 위해서는 교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참을 선택했던 동기들은 다음 수업에서 '어디가 얼마나 아팠냐'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에 몇 번 관장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관장이라는 간호 '술기'가 직접 수치심을 느껴가면서 배울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 선배 간호사의 이야기


"저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건 안 하면서 관장은 물리적으로는 해볼 수 있으니깐 해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간호대 학생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감히 이런 걸 학생들한테 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최원영 간호사

8년째 현직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최원영 간호사는 이를 '인권 유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관장 경험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이를 굳이 실습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용이 쉽도록 '키트' 형태로 제공되는 데다가 관장이 그렇게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 행위 중에서는 실제로 실습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고 이를 배우기 위해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이 보통 일대일로 도제식 교육을 받습니다.

또, 환자의 감정을 느끼는 데 직접 실습이 필요하다는 발상 역시 기본적인 인간의 공감 능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말이라고 반박합니다. 관장을 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그 과정에서 드는 창피함과 우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느낄 수치심이 환자의 안전과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면 이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교육 방식이라는 겁니다.

'관장 실습' 논란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간호사들 인권이 바닥인 것이 학생 때부터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런 비인간적인 처우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최원영 간호사

논란이 된 것은 '관장 실습'뿐이지만, 간호학과 수업 중에서는 모형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서툰 대학생이 실습 한 번으로 얻게 되는 지식은 제한적입니다. 병원에 나와서도 충분히 가르쳐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모든 의료 행위를 간호사가 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과별로 활용하는 기술 역시 다릅니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위생 교육 등에 더욱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습시간에는 정말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궁극적으로 환자들도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겁니다.

올해 초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신입 간호사의 죽음은 '태움'으로 대표되는 간호사 인권 문제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불거진 '관장 실습' 논란은 그동안 '태움'을 견뎌내야 했던 간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희생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장 실습'의 자극적인 내용 이면에는 결국 또다시 간호사들의 인권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문제 제기 속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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