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SR 채용비리 그 후…피해자 구제 왜 안했나 봤더니

입력 2018.09.30 (07:22) 수정 2018.10.0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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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였습니다. 넉 달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었습니다. 최근 '채용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른 수서고속철도 운영사, SR 얘기입니다.

올해 5월 발표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SR은 2015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진행된 신입·경력직원 공개채용에서 자사 임직원의 지인, 친인척 채용 청탁을 받고 24명을 부정 채용했습니다. 채용 합격선에 들지 못한 지원자들의 서류·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는 방식이었는데요. 서류전형 110등이었던 지원자가 2등으로 순위가 올라 최종 합격하거나, 아예 면접에 불참하고도 합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임원은 자신의 조카 면접에 심사위원으로 직접 참여해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런 부정 채용 행위 탓에 억울하게 탈락한 지원자가 105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SR ‘채용 비리’ 수사 결과 발표 소식을 다룬 2018년 5월 15일 KBS 뉴스9 방송 화면.SR ‘채용 비리’ 수사 결과 발표 소식을 다룬 2018년 5월 15일 KBS 뉴스9 방송 화면.

SR은 당일 곧바로 사과와 함께 후속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채용비리 연루 직원이 재판에 넘겨지면 즉시 퇴출하고, 부정합격자의 경우 본인이 기소되지 않더라도 본인 채용과 관련된 임직원이나 청탁자가 기소되면 재조사와 함께 징계위원회를 거쳐 퇴출하겠다는 겁니다. 피해자에 대해선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제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서류 단계 피해자에게는 필기시험 기회를, 필기시험 단계 피해자에게는 면접시험 기회를, 최종면접 단계 피해자에게는 즉시 채용의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KBS 취재진은 지난해 SR 채용 비리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김경협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수사 결과 발표 넉 달째에 맞춰 SR의 후속조치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SR은 경찰이 공식 발표한 부정 채용 합격자 24명이 아닌 한 명 적은 23명을 통보 받았다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채용비리 연루 직원이 기소된 상황에서도 그 23명 가운데 '퇴출'된 사람은 1명도 없고, 피해자 구제도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부정합격자 10명에 대해선 이미 6월에 직위해제를 하고도 석 달째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은 채, 꼬박 꼬박 월급을 지급해왔습니다.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채용 비리’ SRT, 부정합격자 퇴출·피해자 구제한다더니 (2018.9.14)

 SR이 9월 14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부정합격자 23명에게 5월부터 8월까지 넉 달 동안 지급된 임금 총액이 정리돼 있다. SR이 9월 14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부정합격자 23명에게 5월부터 8월까지 넉 달 동안 지급된 임금 총액이 정리돼 있다.

KBS 보도 직전까지 해명을 내놓지 않던 SR 측. 뒤늦게 듣게 된 설명은 이랬습니다.

"부정합격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을 놓고 법무법인에 자문을 구했었는데, 그쪽에선 재판이 금방 끝날 줄 알았나보다. 잘못했다가는 회사가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9월 전에 채용비리 연루자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 이후에 처리하라고 법무법인에서 방침을 받아놨더라. 그래서 계속 미뤄진 것 같다. 거기에 관련자 기소 시점을 그때 그때 통보받지 못하고, 열차 운행에 필요 최소한의 인원에 대해선 대체인력이 확보된 이후에야 조치가 떨어져 절차가 조금씩 늦어진 것도 있다. 그러다 8월 초에 새 사장이 취임한 뒤에야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사장은 왜 지금까지 이 문제를 처리 안하고 있었냐며 인사부서 간부들을 문책성으로 타부서로 발령냈고, 징계위원회 개최가 9월 초 결정됐다."

SR은 9월 14일과 20일 두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어, 21일자로 부정합격자 23명 중 13명을 직권면직했습니다. 당초 16명을 직권면직 처리하려 했지만, 징계위원회 외부위원들이 16명 중 3명에 대해선 자료를 좀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회사가 불리한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국 부정합격자 10명은 지금도 회사에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피해자 구제를 시작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SR의 대답, "자료가 없다"였습니다.

"경찰에서 최종 통보 받은 피해자 수가 (경찰이 발표한 105명이 아닌) 106명인데, 이중 경찰이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준 사람은 46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60명은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다. 당사자가 정확히 누군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 경찰, 검찰이 채용 비리 수사 과정에서 인사 관련 서류를 압수해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다. 사본도 없다. 법원에 관련 자료를 복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SR은 먼저 신원이 확인된 46명에 대해 조만간 구제 절차를 시작해 전형 과정을 거쳐 퇴출된 인원 만큼만 채용하고, 나머지 60명에 대해선 추후 검찰에서 자료를 받는대로 신원을 확인해 구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근에 SR 신입사원 채용이 있었어요. 적게 뽑을 예정이었는데 취업난이랑 국민 정서를 의식해서 채용 인원을 늘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던데…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해자들한테 먼저 구제를 해줘야 하는 타이밍이 아닌가.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내 피해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만약 하염없이 기다려서 1~2년 후에 구제받게 되더라도, 나는 지금 이 시점(2018년 신입 채용)에 들어간 사람들한테 '선배'라고 불러야 하고, 내 경력들은 모조리 인정들이 안 된 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주임으로 다시 입사하게 되겠구나… 그게 너무 말이 안되고 화가 나더라고요." (SR 채용비리 피해자 A씨)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채용 비리' 문제는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은 지금도 힘겨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삶이 걸린 문제입니다. 공공기관 SR이 '채용 비리'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할지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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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SR 채용비리 그 후…피해자 구제 왜 안했나 봤더니
    • 입력 2018-09-30 07:22:38
    • 수정2018-10-02 22:26:21
    취재후·사건후
그대로였습니다. 넉 달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었습니다. 최근 '채용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른 수서고속철도 운영사, SR 얘기입니다.

올해 5월 발표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SR은 2015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진행된 신입·경력직원 공개채용에서 자사 임직원의 지인, 친인척 채용 청탁을 받고 24명을 부정 채용했습니다. 채용 합격선에 들지 못한 지원자들의 서류·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는 방식이었는데요. 서류전형 110등이었던 지원자가 2등으로 순위가 올라 최종 합격하거나, 아예 면접에 불참하고도 합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임원은 자신의 조카 면접에 심사위원으로 직접 참여해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런 부정 채용 행위 탓에 억울하게 탈락한 지원자가 105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SR ‘채용 비리’ 수사 결과 발표 소식을 다룬 2018년 5월 15일 KBS 뉴스9 방송 화면.
SR은 당일 곧바로 사과와 함께 후속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채용비리 연루 직원이 재판에 넘겨지면 즉시 퇴출하고, 부정합격자의 경우 본인이 기소되지 않더라도 본인 채용과 관련된 임직원이나 청탁자가 기소되면 재조사와 함께 징계위원회를 거쳐 퇴출하겠다는 겁니다. 피해자에 대해선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제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서류 단계 피해자에게는 필기시험 기회를, 필기시험 단계 피해자에게는 면접시험 기회를, 최종면접 단계 피해자에게는 즉시 채용의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KBS 취재진은 지난해 SR 채용 비리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김경협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수사 결과 발표 넉 달째에 맞춰 SR의 후속조치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SR은 경찰이 공식 발표한 부정 채용 합격자 24명이 아닌 한 명 적은 23명을 통보 받았다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채용비리 연루 직원이 기소된 상황에서도 그 23명 가운데 '퇴출'된 사람은 1명도 없고, 피해자 구제도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부정합격자 10명에 대해선 이미 6월에 직위해제를 하고도 석 달째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은 채, 꼬박 꼬박 월급을 지급해왔습니다.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채용 비리’ SRT, 부정합격자 퇴출·피해자 구제한다더니 (2018.9.14)

 SR이 9월 14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부정합격자 23명에게 5월부터 8월까지 넉 달 동안 지급된 임금 총액이 정리돼 있다.
KBS 보도 직전까지 해명을 내놓지 않던 SR 측. 뒤늦게 듣게 된 설명은 이랬습니다.

"부정합격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을 놓고 법무법인에 자문을 구했었는데, 그쪽에선 재판이 금방 끝날 줄 알았나보다. 잘못했다가는 회사가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9월 전에 채용비리 연루자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 이후에 처리하라고 법무법인에서 방침을 받아놨더라. 그래서 계속 미뤄진 것 같다. 거기에 관련자 기소 시점을 그때 그때 통보받지 못하고, 열차 운행에 필요 최소한의 인원에 대해선 대체인력이 확보된 이후에야 조치가 떨어져 절차가 조금씩 늦어진 것도 있다. 그러다 8월 초에 새 사장이 취임한 뒤에야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사장은 왜 지금까지 이 문제를 처리 안하고 있었냐며 인사부서 간부들을 문책성으로 타부서로 발령냈고, 징계위원회 개최가 9월 초 결정됐다."

SR은 9월 14일과 20일 두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어, 21일자로 부정합격자 23명 중 13명을 직권면직했습니다. 당초 16명을 직권면직 처리하려 했지만, 징계위원회 외부위원들이 16명 중 3명에 대해선 자료를 좀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회사가 불리한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국 부정합격자 10명은 지금도 회사에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피해자 구제를 시작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SR의 대답, "자료가 없다"였습니다.

"경찰에서 최종 통보 받은 피해자 수가 (경찰이 발표한 105명이 아닌) 106명인데, 이중 경찰이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준 사람은 46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60명은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다. 당사자가 정확히 누군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 경찰, 검찰이 채용 비리 수사 과정에서 인사 관련 서류를 압수해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다. 사본도 없다. 법원에 관련 자료를 복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SR은 먼저 신원이 확인된 46명에 대해 조만간 구제 절차를 시작해 전형 과정을 거쳐 퇴출된 인원 만큼만 채용하고, 나머지 60명에 대해선 추후 검찰에서 자료를 받는대로 신원을 확인해 구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근에 SR 신입사원 채용이 있었어요. 적게 뽑을 예정이었는데 취업난이랑 국민 정서를 의식해서 채용 인원을 늘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던데…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해자들한테 먼저 구제를 해줘야 하는 타이밍이 아닌가.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내 피해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만약 하염없이 기다려서 1~2년 후에 구제받게 되더라도, 나는 지금 이 시점(2018년 신입 채용)에 들어간 사람들한테 '선배'라고 불러야 하고, 내 경력들은 모조리 인정들이 안 된 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주임으로 다시 입사하게 되겠구나… 그게 너무 말이 안되고 화가 나더라고요." (SR 채용비리 피해자 A씨)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채용 비리' 문제는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은 지금도 힘겨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삶이 걸린 문제입니다. 공공기관 SR이 '채용 비리'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할지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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