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북한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베를린서 쏟아진 통일 논의

입력 2018.10.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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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우리의 개천절인 이 날은 독일로선 통일 기념일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년이 채 안 된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45년 만에 다시 통일을 이룩했다. 항상 우리의 통일 모델로 언급되는 독일의 통일 기념일이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일과 겹치는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독일 통일 28주년 기념 축제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독일 통일 28주년 기념 축제

■통독 28주년 '오직 여러분과 함께'

10월 3일, 독일 통일 28주년을 맞아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과 연방하원의회 앞에서는 통일 기념 축제가 열렸다. 올해 기념행사의 모토는 '오직 여러분과 함께(Nur mit Euch)'였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메시지로, 진보와 발전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뜻에서 정해졌다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념행사에서 "독일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독일 통일은 서로 접근하고 귀 기울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아직도 과제가 남았음을 상기시켰다.

‘제1차 KF-DGAP 스피커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제1차 KF-DGAP 스피커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한반도 전문가들 총집합…쟁점은 '신뢰 구축'

통독 기념일을 전후해 수도 베를린에선 한국과 독일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참여한 학술 포럼이 집중 개최되고 있다. 먼저 1일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독일외교정책협회(DGAP)가 공동 주최한 '제1차 KF-DGAP 스피커스 포럼'이 열렸다. 기조연설자는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2003.2~2004.1)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연설의 키워드는 '신뢰 구축'이었다.

윤 전 장관은 왜 북한이 그동안 반복해서 합의를 어기고 상대를 속였는지 들여다볼 것을 주문했다. "두 차례의 북핵 위기를 거치는 동안 상황은 악화됐고, 북한은 실질적 핵 보유 국가가 됐는데, 이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윤 전 장관은 진단했다. 북한 지도자로 하여금 핵무기 없이도 존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지금이 북한에 확신을 심어줘야 할 때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긍정적인 대북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것을 제언했다. 평양과 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 북한 공연단과 스포츠팀 미국 초청 등을 예로 들었다. 이 같은 교류와 정치적 대화를 통한 상호 신뢰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핵화 달성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윤 전 장관은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한·독 전문가들포럼에 참석한 한·독 전문가들

독일 측 패널은 비판적 관점에서 토론을 이어갔다. 크리스토프 할리어 독일 외교부 군비통제·군축과장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지만, 국제사회는 북핵 폐기 조치를 직접 확인하기 원한다"고 지적했다. 비핵화는 매우 오래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분명한 로드맵이 필요하고, 특히 초기 단계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릭 발바흐 독일 SWP 연구원은 정치적 대화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적 확인 없이는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 비핵화는 다단계 과정을 상정하는데 단계적 과정은 다루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2018 한반도 국제포럼’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2018 한반도 국제포럼’

■"비핵화-평화정착 선순환시켜야" vs. "북한의 진짜 모습은 뭐냐"

2일엔 통일부가 주최하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2018 한반도 국제포럼'이 베를린자유대에서 개최됐다. 이관세 극동문제연구소장은 "평화가 전제되지 않은 통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선순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접근방법은 70년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신뢰를 구축하고, 관계 개선 후 비핵화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의심하는데, 김 위원장이 직접 인민 앞에서 자신의 육성으로 비핵화하겠단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며, 이는 과거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입장 설명도 있었다.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얘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중요한 점은 북한의 현재 태도가 올바른 방향이라면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태도가 정부로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원, 지지, 협력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질문하는 한스 모드로프 전 동독 총리질문하는 한스 모드로프 전 동독 총리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는 평화와 비핵화가 연계돼 있다는 건 확실하다며 북한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협정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비핵화 완성 후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는 독일 언론의 시각을 전했다. 독일 언론의 기본 논조에는 "지금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믿을 수 있느냐, 언제까지 제스처만 보일 거냐, 진짜 모습은 뭐냐"는 의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의심할 것인가, 믿어볼 것인가, 북한과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회의적 시각을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지 정부의 계획을 물었다.

청중 질문 중에는 "한반도 상황에 많은 발전이 있지만 구체적 정책이라기보다 형식적이란 생각이 든다. 비핵화, 핵시설 폐기는 빈 약속일 뿐 구체적 결과물이 안 보인다. 평화협정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다소 도전적인 질문도 나왔다.

■'Trust but Verify' 'Trust and Verify'

전쟁의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올해 한반도 상황은 급반전을 경험하고 있다. 북한 체제보장,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정부의 구상과 노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동시에 "북한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왜 끊임없이 제기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해 보인다. 북한의 핵시설 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 과연 어느 쪽이 먼저 패를 보여야 할까?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에 서명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에 서명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1987년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역사적인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INF)'에 서명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Trust but Verify(신뢰하지만 검증하라)'는 러시아 속담을 꺼내 들었다. 치밀한 검증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윤영관 전 장관은 지금 단계에서는 'Trust and Verify(신뢰하고 검증한다)'가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제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와 경제발전이 목표라고 공언한 만큼, 그의 약속을 믿고 이행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신뢰'와 함께 '검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필수이자 핵심 요소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보다 북한 자신이 국제사회의 이런 기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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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4 17:23:22
    특파원 리포트
10월 3일, 우리의 개천절인 이 날은 독일로선 통일 기념일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년이 채 안 된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45년 만에 다시 통일을 이룩했다. 항상 우리의 통일 모델로 언급되는 독일의 통일 기념일이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일과 겹치는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독일 통일 28주년 기념 축제
■통독 28주년 '오직 여러분과 함께'

10월 3일, 독일 통일 28주년을 맞아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과 연방하원의회 앞에서는 통일 기념 축제가 열렸다. 올해 기념행사의 모토는 '오직 여러분과 함께(Nur mit Euch)'였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메시지로, 진보와 발전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뜻에서 정해졌다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념행사에서 "독일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독일 통일은 서로 접근하고 귀 기울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아직도 과제가 남았음을 상기시켰다.

‘제1차 KF-DGAP 스피커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한반도 전문가들 총집합…쟁점은 '신뢰 구축'

통독 기념일을 전후해 수도 베를린에선 한국과 독일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참여한 학술 포럼이 집중 개최되고 있다. 먼저 1일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독일외교정책협회(DGAP)가 공동 주최한 '제1차 KF-DGAP 스피커스 포럼'이 열렸다. 기조연설자는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2003.2~2004.1)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연설의 키워드는 '신뢰 구축'이었다.

윤 전 장관은 왜 북한이 그동안 반복해서 합의를 어기고 상대를 속였는지 들여다볼 것을 주문했다. "두 차례의 북핵 위기를 거치는 동안 상황은 악화됐고, 북한은 실질적 핵 보유 국가가 됐는데, 이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윤 전 장관은 진단했다. 북한 지도자로 하여금 핵무기 없이도 존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지금이 북한에 확신을 심어줘야 할 때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긍정적인 대북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것을 제언했다. 평양과 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 북한 공연단과 스포츠팀 미국 초청 등을 예로 들었다. 이 같은 교류와 정치적 대화를 통한 상호 신뢰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핵화 달성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윤 전 장관은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한·독 전문가들
독일 측 패널은 비판적 관점에서 토론을 이어갔다. 크리스토프 할리어 독일 외교부 군비통제·군축과장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지만, 국제사회는 북핵 폐기 조치를 직접 확인하기 원한다"고 지적했다. 비핵화는 매우 오래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분명한 로드맵이 필요하고, 특히 초기 단계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릭 발바흐 독일 SWP 연구원은 정치적 대화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적 확인 없이는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 비핵화는 다단계 과정을 상정하는데 단계적 과정은 다루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2018 한반도 국제포럼’
■"비핵화-평화정착 선순환시켜야" vs. "북한의 진짜 모습은 뭐냐"

2일엔 통일부가 주최하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2018 한반도 국제포럼'이 베를린자유대에서 개최됐다. 이관세 극동문제연구소장은 "평화가 전제되지 않은 통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선순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접근방법은 70년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신뢰를 구축하고, 관계 개선 후 비핵화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의심하는데, 김 위원장이 직접 인민 앞에서 자신의 육성으로 비핵화하겠단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며, 이는 과거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입장 설명도 있었다.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얘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중요한 점은 북한의 현재 태도가 올바른 방향이라면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태도가 정부로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원, 지지, 협력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질문하는 한스 모드로프 전 동독 총리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는 평화와 비핵화가 연계돼 있다는 건 확실하다며 북한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협정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비핵화 완성 후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는 독일 언론의 시각을 전했다. 독일 언론의 기본 논조에는 "지금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믿을 수 있느냐, 언제까지 제스처만 보일 거냐, 진짜 모습은 뭐냐"는 의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의심할 것인가, 믿어볼 것인가, 북한과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회의적 시각을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지 정부의 계획을 물었다.

청중 질문 중에는 "한반도 상황에 많은 발전이 있지만 구체적 정책이라기보다 형식적이란 생각이 든다. 비핵화, 핵시설 폐기는 빈 약속일 뿐 구체적 결과물이 안 보인다. 평화협정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다소 도전적인 질문도 나왔다.

■'Trust but Verify' 'Trust and Verify'

전쟁의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올해 한반도 상황은 급반전을 경험하고 있다. 북한 체제보장,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정부의 구상과 노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동시에 "북한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왜 끊임없이 제기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해 보인다. 북한의 핵시설 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 과연 어느 쪽이 먼저 패를 보여야 할까?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에 서명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1987년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역사적인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INF)'에 서명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Trust but Verify(신뢰하지만 검증하라)'는 러시아 속담을 꺼내 들었다. 치밀한 검증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윤영관 전 장관은 지금 단계에서는 'Trust and Verify(신뢰하고 검증한다)'가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제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와 경제발전이 목표라고 공언한 만큼, 그의 약속을 믿고 이행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신뢰'와 함께 '검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필수이자 핵심 요소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보다 북한 자신이 국제사회의 이런 기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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