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무슨 잘못이 있어도 내편이니까!”…일본판 책임정치

입력 2018.10.0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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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연임 총리, 최장수 총리라는 전인미답에 이르는 길을 연 뒤 아베 총리는 다음 내각의 성격에 대해 입을 열었다.

"충실한 토대 위에, 가능한 한 폭넓은 인재를 등용하고 싶다"

이 말의 결과물이 지난 2일 제4차 아베 내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국민을 위한 '책임 정치'가 아닌 파벌을 위한 '책임 정치'에 가깝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 나를 지지한 파벌..."내가 책임진다"


지난달 28일 주요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은 동시에 '아소 부총리를 계속해서 부총리와 재무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사설을 내보냈다.

총리 부인이 명예 교장을 맡았던 사학재단에 국유지를 90% 가까이 싼 헐값에 넘긴 '모리토모 사학 비리 의혹'과 관련해, 올해 초, 재무성이 그를 은폐하기 위해 국회에 서류를 조작해 제출했다는 전대미문의 스캔들이 터졌다. 당시 실무 국장으로 국회 답변을 주도하고 이후 국세청장으로 영전한 고위급 인사가 사임하고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대규모 징계가 이뤄지는 등 일본 정부 핵심 부처인 재무성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이었지만, 정작 부처 책임자인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은 '자진 급료 삭감'이라는 셀프 징계를 내세우며 버텼다.

[관련 기사] [특파원리포트] 일본에 '책임정치'는 없다

□언론의 비판도 '파벌 정치' 고집엔 안 통해

'이런 토대로 괜찮은가'라는 아시히 신문 사설의 제목에 모든 비판이 요약된다. '아베 총리의 마지막 임기. 이제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새로운 3년을 시작하는 첫 인사에서 장기 정권의 폐해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 데 과연 '아소'라는 인물이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식이, 일본식 '파벌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조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소속 의원 59명의 2대 파벌인 '아소'파 수장으로서 아소 부총리는 일찌감치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주며 지지를 표명했다. 아베총리가 그런 아소 부총리를 내칠 수 없었던 터.

국민에 대한 '책임 정치'보다는 파벌을 위한 '책임 정치'냐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 파벌 내 '대기조'에 골고루 나눠 먹기

이번에 아베 내각에 새롭게 입각한 각료는 모두 12명. 하지만 이 숫자만을 두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 면모를 일신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그보다는 '이른바 파벌을 위해 배분을 하다 보니...'란 표현이 더 들어맞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달 28일 '대기조 70명, 처우는?' 이란 기사를 실었다.

'대기조'라는 말도 일본 정치의 특징, 특히 자민당식 파벌정치의 특징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다. 선수가 어느 정도 쌓여서 입각 대상이 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을 일컫는 말인데, 대체로 각 파벌 내에 각료로서 배려해줘야 하는 인원을 나타내는 기사의 흐름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각파는 이러한 의원들을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적재적소'의 인선을 강조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 9월 28일 자)

하지만 뚜껑이 열린 조각 결과는 결국 적절한 나눠 먹기였다.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해 아베 총리를 도운 아소파는 4명의 각료를 배출해(전 내각에서 +1) 가장 많은 몫을 차지했다. 또 의원 수로는 5번째 파벌이지만 당내 간사장으로 아베 총리를 든든히 지원한 니카이 파도 전 내각보다 2명이 늘어난 3명의 각료를 배출했다.

마지막까지 총재선 출마를 저울질하다 주저앉은 기시다 전 외상의 기시다 파는 4명에서 3명으로 줄었고, 무파벌에서는 2명만 입각했다.

"'대기조' 차례차례 입각" 이라는 아사히 신문의 3일 자 해설기사 제목은 이번 조각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 나눠 먹기 인사에 문제 각료 다수

나눠 먹기 인사에 인사청문회와 같은 공식적 검증 과정이 없다 보니 새 내각의 인물들은, 공개와 더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려를 자아냈다.

사쿠라다 올림픽담당상은“위안부는 직업 매춘부”라는 망언을 거듭한 인물이다. 유일한 여성 각료인 가타야마 지방창생상 또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었다. 또 하라다 환경상은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며 정부 견해를 재검토하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 등, 역사 인식을 의심하게 하는 인물이 다수 내각에 포진했다.

여기에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첫날 기자회견에서 "교육칙어를 현대적으로 다시 정리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그건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 큰 반발을 샀다.

일본 야권에서는 "교육칙어는 중대사가 발생할 경우 일왕을 위해 목숨을 던지라는 것이 핵심"이라며 "과거라면 물러나야 할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참고로 사쿠라다 올림픽담당상과 가타야마 지방창생상은 니카이 파, 하라다 환경상은 아소 파,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 파다. 각각 파벌 '대기조'에서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의 조사 결과 내각 지지율은 지난번 조사보다 5%p 하락한 50%로 나타났다. 새롭게 내각이 출범할 경우 지지율이 오르는 게 보통, 새 내각에 대해 일본 국민의 판단이 어떤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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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무슨 잘못이 있어도 내편이니까!”…일본판 책임정치
    • 입력 2018-10-04 18:42:39
    특파원 리포트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연임 총리, 최장수 총리라는 전인미답에 이르는 길을 연 뒤 아베 총리는 다음 내각의 성격에 대해 입을 열었다.

"충실한 토대 위에, 가능한 한 폭넓은 인재를 등용하고 싶다"

이 말의 결과물이 지난 2일 제4차 아베 내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국민을 위한 '책임 정치'가 아닌 파벌을 위한 '책임 정치'에 가깝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 나를 지지한 파벌..."내가 책임진다"


지난달 28일 주요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은 동시에 '아소 부총리를 계속해서 부총리와 재무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사설을 내보냈다.

총리 부인이 명예 교장을 맡았던 사학재단에 국유지를 90% 가까이 싼 헐값에 넘긴 '모리토모 사학 비리 의혹'과 관련해, 올해 초, 재무성이 그를 은폐하기 위해 국회에 서류를 조작해 제출했다는 전대미문의 스캔들이 터졌다. 당시 실무 국장으로 국회 답변을 주도하고 이후 국세청장으로 영전한 고위급 인사가 사임하고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대규모 징계가 이뤄지는 등 일본 정부 핵심 부처인 재무성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이었지만, 정작 부처 책임자인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은 '자진 급료 삭감'이라는 셀프 징계를 내세우며 버텼다.

[관련 기사] [특파원리포트] 일본에 '책임정치'는 없다

□언론의 비판도 '파벌 정치' 고집엔 안 통해

'이런 토대로 괜찮은가'라는 아시히 신문 사설의 제목에 모든 비판이 요약된다. '아베 총리의 마지막 임기. 이제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새로운 3년을 시작하는 첫 인사에서 장기 정권의 폐해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 데 과연 '아소'라는 인물이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식이, 일본식 '파벌 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조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소속 의원 59명의 2대 파벌인 '아소'파 수장으로서 아소 부총리는 일찌감치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주며 지지를 표명했다. 아베총리가 그런 아소 부총리를 내칠 수 없었던 터.

국민에 대한 '책임 정치'보다는 파벌을 위한 '책임 정치'냐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 파벌 내 '대기조'에 골고루 나눠 먹기

이번에 아베 내각에 새롭게 입각한 각료는 모두 12명. 하지만 이 숫자만을 두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 면모를 일신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그보다는 '이른바 파벌을 위해 배분을 하다 보니...'란 표현이 더 들어맞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달 28일 '대기조 70명, 처우는?' 이란 기사를 실었다.

'대기조'라는 말도 일본 정치의 특징, 특히 자민당식 파벌정치의 특징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다. 선수가 어느 정도 쌓여서 입각 대상이 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을 일컫는 말인데, 대체로 각 파벌 내에 각료로서 배려해줘야 하는 인원을 나타내는 기사의 흐름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각파는 이러한 의원들을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적재적소'의 인선을 강조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 9월 28일 자)

하지만 뚜껑이 열린 조각 결과는 결국 적절한 나눠 먹기였다.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해 아베 총리를 도운 아소파는 4명의 각료를 배출해(전 내각에서 +1) 가장 많은 몫을 차지했다. 또 의원 수로는 5번째 파벌이지만 당내 간사장으로 아베 총리를 든든히 지원한 니카이 파도 전 내각보다 2명이 늘어난 3명의 각료를 배출했다.

마지막까지 총재선 출마를 저울질하다 주저앉은 기시다 전 외상의 기시다 파는 4명에서 3명으로 줄었고, 무파벌에서는 2명만 입각했다.

"'대기조' 차례차례 입각" 이라는 아사히 신문의 3일 자 해설기사 제목은 이번 조각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 나눠 먹기 인사에 문제 각료 다수

나눠 먹기 인사에 인사청문회와 같은 공식적 검증 과정이 없다 보니 새 내각의 인물들은, 공개와 더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려를 자아냈다.

사쿠라다 올림픽담당상은“위안부는 직업 매춘부”라는 망언을 거듭한 인물이다. 유일한 여성 각료인 가타야마 지방창생상 또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었다. 또 하라다 환경상은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며 정부 견해를 재검토하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 등, 역사 인식을 의심하게 하는 인물이 다수 내각에 포진했다.

여기에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첫날 기자회견에서 "교육칙어를 현대적으로 다시 정리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그건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 큰 반발을 샀다.

일본 야권에서는 "교육칙어는 중대사가 발생할 경우 일왕을 위해 목숨을 던지라는 것이 핵심"이라며 "과거라면 물러나야 할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참고로 사쿠라다 올림픽담당상과 가타야마 지방창생상은 니카이 파, 하라다 환경상은 아소 파,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 파다. 각각 파벌 '대기조'에서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의 조사 결과 내각 지지율은 지난번 조사보다 5%p 하락한 50%로 나타났다. 새롭게 내각이 출범할 경우 지지율이 오르는 게 보통, 새 내각에 대해 일본 국민의 판단이 어떤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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