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브로커’ 문우람, 억울한 희생자인가

입력 2018.10.0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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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프로에 입단한 넥센의 문우람은 이미 청소년 시절 국가대표에도 선발됐을 정도로 촉망받는 야구선수였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꾸준히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았던 그의 야구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운 건 2016년 NC 투수 이태양의 승부조작 사건에서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혐의가 제기되면서부터다. 선수가 먼저 승부조작을 제의한 초유의 사건에 여론은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로 드높았고, 지난해 4월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1심에서 그에게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다. 이후 올해 6월에 열린 2심에서 법원이 그의 항소를 기각했고 이후 대법원도 심리 불속행으로 사건을 종결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문우람은 처음 혐의가 제기됐을 때부터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지금까지 줄곧 ‘승부조작 브로커’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취재진은 문우람의 1,2심 판결문과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 내용, 당사자들 간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 문우람은 처음 혐의가 제기되고 그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기사가 쏟아질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터라 제대로 된 반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 번쯤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승부조작을 직접 실행에 옮긴 이태양조차 법정 최후진술에서 “우람이는 죄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문우람은 어떻게 ‘승부조작 브로커’가 됐을까?

넥센 시절의 문우람넥센 시절의 문우람

먼저 판결문에 나온 문우람의 범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이태양과 함께 브로커 조 모 씨에게 전화해 ‘이태양이 경기 조작을 하려고 하는데 조작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라는 취지로 물어보았고, 다음날 셋이 만나 경기를 조작하고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해 수익을 얻기로 공모함”

“승부조작에 성공한 뒤 조 씨로부터 대가 명목으로 손목시계 등 6백여만 원 상당의 물품을 교부받음. 이후 조 씨로부터 이태양에게 줄 돈 2천만 원이 담겨 있는 가방을 건네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이태양에게 전달”

다시 말해 먼저 브로커에게 먼저 승부조작을 제의해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하도록 한 다음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브로커 조 씨 “문우람이 먼저 제안”, 신빙성 있나?

문우람과 이태양을 비롯해 다수의 야구 선수들과 친분이 있던 브로커 조 씨는 2016년 7월 4일 검찰에 처음 출석해 자신이 먼저 이태양에게 서울의 한 클럽 복도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했고 문우람은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최초 진술했다. 그런데 조 씨의 진술은 열흘 뒤에 이뤄진 2차 조사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위 혐의 사실대로 문우람이 먼저 승부조작을 제안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 씨의 진술은 이후에도 계속 바뀐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해 왔다는 내용은 변함이 없지만, 최초에 문우람으로부터 연락이 왔을 당시 승부조작에 관한 말을 ‘전화로 한 적은 없다’거나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계속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승부조작 당사자인 이태양의 진술은 좀 더 명확하다. 이태양은 최초 수사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조 씨가 클럽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해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태양의 진술은 7월 18일 조 씨와의 대질조사 때 바뀐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먼저 문의해왔다는 조 씨의 진술이 맞느냐’는 검찰 수사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나타낸 것이다(이 부분은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태양은 이때도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했다’거나 ‘승부조작에 대해 알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관련 기록에는 검찰 측 질문에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라고만 나와 있다). 이태양은 이후에도 계속 본인의 재판과 문우람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조 씨가 클럽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했고 문우람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승부조작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고 설명한다.

정리하자면 브로커 조 씨는 2회 조사 때부터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먼저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이태양은 한 차례 대질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맞느냐고 묻는 검찰 측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 전과 후로는 모두 일관되게 문우람은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원 측은 조 씨 측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다.

“문우람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베팅업자’

조 씨는 직접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을 하지 않았다. 조 씨의 뒤에는 직접 돈을 투자한 최 모 씨가 있었고, 조 씨는 이태양과의 승부조작 공모 내용을 최 씨에게 알려준 대가로 7천만 원을 받아 챙겼다. 그런데 최 씨가 지난해 3월 군 검찰에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한 내용을 보면 최 씨는 조 씨로부터 승부조작과 관련해 문우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최 씨의 진술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문 : 조 씨가 이태양과의 승부조작을 위해서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언질을 준 바는 없는가요?
답 :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 : ‘이태양을 작업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건가요?
답 : 네

문 : 증인이 창원지검에서 처음 조사 시 수사관이 증인에게 ‘문우람을 통해 이태양이 조작 경기를 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어떤가요?’라고 질문한 바 있지요?
답 : 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얘기했습니다.

문 : 본인은 문우람이 중간 브로커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부분인지요?
답 : ***만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승부조작 관련해서는 문우람과 한다는 그런 얘기는 저한테 한 적은 없습니다.


최 씨의 이 같은 증언을 토대로 하면 승부조작을 문우람이 먼저 제안했다는 조 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했다면 조 씨가 수억 원의 돈을 직접 투자하는 최 씨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적다. 최 씨의 진술대로라면 조 씨는 이미 이태양을 목표로 사전에 치밀하게 작업을 했다는 점도 드러난다.

승부조작 관련 재판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는 이태양승부조작 관련 재판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는 이태양

'시계’는 승부조작의 대가?

문우람은 승부조작을 알선한 대가로 시계 등을 포함해 시가 6백여만 원 상당의 물품을 조 씨로부터 받았다고 나온다. 문우람은 이에 대해 “시계와 옷을 받은 것은 맞지만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승부조작의 대가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수백만 원 대의 선물을 선뜻 주고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문우람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조 씨는 평소에도 야구선수들의 술자리에 자주 나타나 늘 계산을 해줬다. 한 번에 천만 원이 넘는 술값을 계산한 적도 있다. 큰 금액이긴 하지만 그냥 돈이 많은 친한 형이 선물을 줬다고만 생각했다.”

문우람은 또 평소에도 팬들로부터 백만 원이 넘는 선물 등은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돈이 많은 친한 형이 선물을 해줬다고 당시에는 고맙게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문우람은 당시 본인은 착용하고 있던 시계가 있었고 조 씨가 사준 시계는 중고시계였다고 설명하며 자기가 만약 금전을 목적으로 브로커 일을 했다면 왜 돈이 아닌 시계를 받았겠느냐고 항변한다.

“시계를 사고 싶었더라도 돈으로 달라고 했겠죠. 거기에 만약 제가 브로커였다면 태양이는 2천만 원을 받고 저는 겨우 중고시계 하나만 받았다면 이를 납득했을까요? 당연히 제가 기획한 게 맞다면 제 몫을 더 요구했지 않을까요?”

여기에 관련 기록을 보면 조 씨는 다른 야구선수에게도 여러 차례 비슷한 금액의 선물을 해줬고, 또 다른 야구선수의 경우 6백만 원이 넘는 세금을 대납해 준 사실이 나온다. 비슷한 금액의 선물을 다른 선수들에게도 해주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선물을 해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또 있다. 문우람이 금전을 목표로 브로커 역할을 했다면 왜 단 1회에 그쳤느냐는 것이다. 이태양은 조 씨와 모두 4차례 승부조작을 시도해 이 중 2차례는 성공하고 나머지 2차례는 실패했다. 문우람의 제안으로 승부조작을 하게 됐는데 정작 문우람은 이후로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고 이태양은 조 씨와 승부조작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2015년 9월, 창원에서의 3자 대면

이런 가운데 또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관련 기록에 나온다. 2015년 9월 창원에서 문우람과 이태양, 브로커 조 씨가 모인 날에 관한 기록이다. 이태양은 이날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만나려고 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때 제가 폭행당하고 협박당한 후(이태양은 승부조작에 실패해 베팅업자인 최 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승부조작을 했다는 것을 문우람에게 처음 말해줬는데 문우람이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지금 말을 하면 어떡하냐’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제가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니까 문우람이 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조 씨에게 뭐라고 하면서 만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승부조작에 실패해 최 씨로부터 시달리던 이태양이 원정경기를 위해 창원을 찾은 문우람과 만나 승부조작 사실을 처음 털어놨고,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한 조 씨에게 화가 나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게 맞다면 이는 거짓말이고 조 씨는 당연히 이날 만남의 이유를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조 씨는 이날 만남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문 : 문우람이 그날 이태양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말라는 취지로 화를 내거나 한 적이 있나요?
답 : (우람이가) 형 왜 그랬냐고 저한테 얘기해서 형도 앞으로는 (승부조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습니다. (우람이랑)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승부조작이 있었던 건 2015년 5월. 넉 달이 지난 9월에 문우람이 이태양의 승부조작에 대해 처음 알았다는 것을 조 씨가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우람이는 관계없는데 죄송하게 됐다”는 조 씨

결정적으로 취재진은 올해 6월 문우람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던 직후 조 씨와 문우람의 아버지 간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 통화에서 ‘왜 검찰 조사에서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했다고 진술했느냐. 진실을 알고 싶다’는 문우람 아버지의 질문에 조 씨는 “우람이는 관계없다. 그건 제가 아버님께도 조사받기 전부터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시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태양은 왜 진술을 번복했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태양은 조 씨와의 대질 조사에서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이 맞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울면서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바 있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태양은 왜 고개를 끄덕인 것일까?

이에 대해 이태양은 취재진과 직접 만나 “변호사도 수사관도 계속 야구를 시켜줄 수 있다고 얘기해서 너무 야구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구단 관계자가 모두 그냥 ‘예’라고만 하라고 했습니다. ‘너 자꾸 다른 소리하면 야구 못할 수도 있다’고 하고 조 씨가 수갑을 차고 있는 걸 보니 두렵기도 했습니다”

“제가 우람이는 승부조작 내용을 모른다고 계속 말하니 검찰 수사관이 ‘너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다 때려치워라. 우리는 책임 못 진다. 야구 안 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와 구단 관계자들이 ‘예 라고만 말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다그쳐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겁니다.”

이태양은 그때 이후로는 계속 문우람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시로 변호인과 감독님께 말했지만 아무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씨는 왜 문우람이 브로커라고 증언했을까?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조 씨는 왜 그와 같이 진술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정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조 씨는 이전에도 관련 혐의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여기에 관련 재판 기록에는 여러 명의 프로야구 선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온다. 모두 조 씨와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야구선수들인데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동종전과가 있는 조 씨는 최대한 감형을 받는 동시에 승부조작 사건의 파장이 최소화하도록 자신의 혐의를 감추는 ‘희생양’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분명 있었다. 조 씨에게는 이태양과 함께 자주 어울렸던 문우람이 ‘희생양’으로 가장 적합했을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베팅업자 최 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문우람 측 변호인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 수사기관에 협조를 하면 양형에 고려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 씨의 진술에 맞게 진술한 것 아닌가요?
답 : 솔직히 그런 마음도 적지 않아 있습니다.

문 : 여러 가지 *** 사건도 있는데 수사협조를 하지 않으면 본인도 추가 입건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양형을 고려해서 조 씨의 진술대로 했다는 것이지요?
답 : 예

문 : ***의 승부조작에 베팅했다고 앞서 진술한 바 있는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지요? 조 씨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 승부조작에 배팅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조사받지 않았지요?
답 : 예


이에 대해 취재진은 브로커 조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조 씨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문우람과 이태양, 조 씨 만이 분명히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우람의 무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아무런 실익이 없는 데도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앞서 말했듯이 제대로 된 반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우람은 지금도 KBO에 계속해서 본인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들을 제출하고 있다. 나아가 현재는 청와대 청원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문우람은 자신이 야구선수로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린 점에 대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한다. 문우람은 스스로 프로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은 승부조작을 제안한 적이 없다며 본인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부조작 브로커가 아닙니다. 저는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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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부조작 브로커’ 문우람, 억울한 희생자인가
    • 입력 2018-10-06 07:08:36
    취재K
2011년 프로에 입단한 넥센의 문우람은 이미 청소년 시절 국가대표에도 선발됐을 정도로 촉망받는 야구선수였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꾸준히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았던 그의 야구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운 건 2016년 NC 투수 이태양의 승부조작 사건에서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혐의가 제기되면서부터다. 선수가 먼저 승부조작을 제의한 초유의 사건에 여론은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로 드높았고, 지난해 4월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1심에서 그에게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다. 이후 올해 6월에 열린 2심에서 법원이 그의 항소를 기각했고 이후 대법원도 심리 불속행으로 사건을 종결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문우람은 처음 혐의가 제기됐을 때부터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지금까지 줄곧 ‘승부조작 브로커’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취재진은 문우람의 1,2심 판결문과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 내용, 당사자들 간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 문우람은 처음 혐의가 제기되고 그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기사가 쏟아질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터라 제대로 된 반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 번쯤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승부조작을 직접 실행에 옮긴 이태양조차 법정 최후진술에서 “우람이는 죄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문우람은 어떻게 ‘승부조작 브로커’가 됐을까?

넥센 시절의 문우람
먼저 판결문에 나온 문우람의 범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이태양과 함께 브로커 조 모 씨에게 전화해 ‘이태양이 경기 조작을 하려고 하는데 조작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라는 취지로 물어보았고, 다음날 셋이 만나 경기를 조작하고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해 수익을 얻기로 공모함”

“승부조작에 성공한 뒤 조 씨로부터 대가 명목으로 손목시계 등 6백여만 원 상당의 물품을 교부받음. 이후 조 씨로부터 이태양에게 줄 돈 2천만 원이 담겨 있는 가방을 건네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이태양에게 전달”

다시 말해 먼저 브로커에게 먼저 승부조작을 제의해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하도록 한 다음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브로커 조 씨 “문우람이 먼저 제안”, 신빙성 있나?

문우람과 이태양을 비롯해 다수의 야구 선수들과 친분이 있던 브로커 조 씨는 2016년 7월 4일 검찰에 처음 출석해 자신이 먼저 이태양에게 서울의 한 클럽 복도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했고 문우람은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최초 진술했다. 그런데 조 씨의 진술은 열흘 뒤에 이뤄진 2차 조사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위 혐의 사실대로 문우람이 먼저 승부조작을 제안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 씨의 진술은 이후에도 계속 바뀐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해 왔다는 내용은 변함이 없지만, 최초에 문우람으로부터 연락이 왔을 당시 승부조작에 관한 말을 ‘전화로 한 적은 없다’거나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계속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승부조작 당사자인 이태양의 진술은 좀 더 명확하다. 이태양은 최초 수사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조 씨가 클럽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해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태양의 진술은 7월 18일 조 씨와의 대질조사 때 바뀐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먼저 문의해왔다는 조 씨의 진술이 맞느냐’는 검찰 수사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나타낸 것이다(이 부분은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태양은 이때도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했다’거나 ‘승부조작에 대해 알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관련 기록에는 검찰 측 질문에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라고만 나와 있다). 이태양은 이후에도 계속 본인의 재판과 문우람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조 씨가 클럽에서 승부조작을 제의했고 문우람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승부조작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고 설명한다.

정리하자면 브로커 조 씨는 2회 조사 때부터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먼저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이태양은 한 차례 대질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맞느냐고 묻는 검찰 측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 전과 후로는 모두 일관되게 문우람은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원 측은 조 씨 측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다.

“문우람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베팅업자’

조 씨는 직접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을 하지 않았다. 조 씨의 뒤에는 직접 돈을 투자한 최 모 씨가 있었고, 조 씨는 이태양과의 승부조작 공모 내용을 최 씨에게 알려준 대가로 7천만 원을 받아 챙겼다. 그런데 최 씨가 지난해 3월 군 검찰에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한 내용을 보면 최 씨는 조 씨로부터 승부조작과 관련해 문우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최 씨의 진술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문 : 조 씨가 이태양과의 승부조작을 위해서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언질을 준 바는 없는가요?
답 :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 : ‘이태양을 작업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건가요?
답 : 네

문 : 증인이 창원지검에서 처음 조사 시 수사관이 증인에게 ‘문우람을 통해 이태양이 조작 경기를 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어떤가요?’라고 질문한 바 있지요?
답 : 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얘기했습니다.

문 : 본인은 문우람이 중간 브로커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부분인지요?
답 : ***만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승부조작 관련해서는 문우람과 한다는 그런 얘기는 저한테 한 적은 없습니다.


최 씨의 이 같은 증언을 토대로 하면 승부조작을 문우람이 먼저 제안했다는 조 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했다면 조 씨가 수억 원의 돈을 직접 투자하는 최 씨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적다. 최 씨의 진술대로라면 조 씨는 이미 이태양을 목표로 사전에 치밀하게 작업을 했다는 점도 드러난다.

승부조작 관련 재판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는 이태양
'시계’는 승부조작의 대가?

문우람은 승부조작을 알선한 대가로 시계 등을 포함해 시가 6백여만 원 상당의 물품을 조 씨로부터 받았다고 나온다. 문우람은 이에 대해 “시계와 옷을 받은 것은 맞지만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승부조작의 대가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수백만 원 대의 선물을 선뜻 주고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문우람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조 씨는 평소에도 야구선수들의 술자리에 자주 나타나 늘 계산을 해줬다. 한 번에 천만 원이 넘는 술값을 계산한 적도 있다. 큰 금액이긴 하지만 그냥 돈이 많은 친한 형이 선물을 줬다고만 생각했다.”

문우람은 또 평소에도 팬들로부터 백만 원이 넘는 선물 등은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돈이 많은 친한 형이 선물을 해줬다고 당시에는 고맙게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문우람은 당시 본인은 착용하고 있던 시계가 있었고 조 씨가 사준 시계는 중고시계였다고 설명하며 자기가 만약 금전을 목적으로 브로커 일을 했다면 왜 돈이 아닌 시계를 받았겠느냐고 항변한다.

“시계를 사고 싶었더라도 돈으로 달라고 했겠죠. 거기에 만약 제가 브로커였다면 태양이는 2천만 원을 받고 저는 겨우 중고시계 하나만 받았다면 이를 납득했을까요? 당연히 제가 기획한 게 맞다면 제 몫을 더 요구했지 않을까요?”

여기에 관련 기록을 보면 조 씨는 다른 야구선수에게도 여러 차례 비슷한 금액의 선물을 해줬고, 또 다른 야구선수의 경우 6백만 원이 넘는 세금을 대납해 준 사실이 나온다. 비슷한 금액의 선물을 다른 선수들에게도 해주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선물을 해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또 있다. 문우람이 금전을 목표로 브로커 역할을 했다면 왜 단 1회에 그쳤느냐는 것이다. 이태양은 조 씨와 모두 4차례 승부조작을 시도해 이 중 2차례는 성공하고 나머지 2차례는 실패했다. 문우람의 제안으로 승부조작을 하게 됐는데 정작 문우람은 이후로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고 이태양은 조 씨와 승부조작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2015년 9월, 창원에서의 3자 대면

이런 가운데 또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관련 기록에 나온다. 2015년 9월 창원에서 문우람과 이태양, 브로커 조 씨가 모인 날에 관한 기록이다. 이태양은 이날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만나려고 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때 제가 폭행당하고 협박당한 후(이태양은 승부조작에 실패해 베팅업자인 최 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승부조작을 했다는 것을 문우람에게 처음 말해줬는데 문우람이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지금 말을 하면 어떡하냐’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제가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니까 문우람이 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조 씨에게 뭐라고 하면서 만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승부조작에 실패해 최 씨로부터 시달리던 이태양이 원정경기를 위해 창원을 찾은 문우람과 만나 승부조작 사실을 처음 털어놨고,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한 조 씨에게 화가 나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게 맞다면 이는 거짓말이고 조 씨는 당연히 이날 만남의 이유를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조 씨는 이날 만남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문 : 문우람이 그날 이태양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말라는 취지로 화를 내거나 한 적이 있나요?
답 : (우람이가) 형 왜 그랬냐고 저한테 얘기해서 형도 앞으로는 (승부조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습니다. (우람이랑)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승부조작이 있었던 건 2015년 5월. 넉 달이 지난 9월에 문우람이 이태양의 승부조작에 대해 처음 알았다는 것을 조 씨가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우람이는 관계없는데 죄송하게 됐다”는 조 씨

결정적으로 취재진은 올해 6월 문우람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던 직후 조 씨와 문우람의 아버지 간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 통화에서 ‘왜 검찰 조사에서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했다고 진술했느냐. 진실을 알고 싶다’는 문우람 아버지의 질문에 조 씨는 “우람이는 관계없다. 그건 제가 아버님께도 조사받기 전부터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시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태양은 왜 진술을 번복했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태양은 조 씨와의 대질 조사에서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이 맞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울면서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바 있다.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태양은 왜 고개를 끄덕인 것일까?

이에 대해 이태양은 취재진과 직접 만나 “변호사도 수사관도 계속 야구를 시켜줄 수 있다고 얘기해서 너무 야구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구단 관계자가 모두 그냥 ‘예’라고만 하라고 했습니다. ‘너 자꾸 다른 소리하면 야구 못할 수도 있다’고 하고 조 씨가 수갑을 차고 있는 걸 보니 두렵기도 했습니다”

“제가 우람이는 승부조작 내용을 모른다고 계속 말하니 검찰 수사관이 ‘너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다 때려치워라. 우리는 책임 못 진다. 야구 안 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와 구단 관계자들이 ‘예 라고만 말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다그쳐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겁니다.”

이태양은 그때 이후로는 계속 문우람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시로 변호인과 감독님께 말했지만 아무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씨는 왜 문우람이 브로커라고 증언했을까?

만약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조 씨는 왜 그와 같이 진술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정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조 씨는 이전에도 관련 혐의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여기에 관련 재판 기록에는 여러 명의 프로야구 선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온다. 모두 조 씨와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야구선수들인데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동종전과가 있는 조 씨는 최대한 감형을 받는 동시에 승부조작 사건의 파장이 최소화하도록 자신의 혐의를 감추는 ‘희생양’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분명 있었다. 조 씨에게는 이태양과 함께 자주 어울렸던 문우람이 ‘희생양’으로 가장 적합했을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베팅업자 최 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문우람 측 변호인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 수사기관에 협조를 하면 양형에 고려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 씨의 진술에 맞게 진술한 것 아닌가요?
답 : 솔직히 그런 마음도 적지 않아 있습니다.

문 : 여러 가지 *** 사건도 있는데 수사협조를 하지 않으면 본인도 추가 입건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양형을 고려해서 조 씨의 진술대로 했다는 것이지요?
답 : 예

문 : ***의 승부조작에 베팅했다고 앞서 진술한 바 있는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지요? 조 씨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 승부조작에 배팅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조사받지 않았지요?
답 : 예


이에 대해 취재진은 브로커 조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조 씨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문우람과 이태양, 조 씨 만이 분명히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우람의 무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가 아무런 실익이 없는 데도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앞서 말했듯이 제대로 된 반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우람은 지금도 KBO에 계속해서 본인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들을 제출하고 있다. 나아가 현재는 청와대 청원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문우람은 자신이 야구선수로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린 점에 대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한다. 문우람은 스스로 프로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은 승부조작을 제안한 적이 없다며 본인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부조작 브로커가 아닙니다. 저는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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