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백호 공격에 사육사 참변…동물원의 비극

입력 2018.10.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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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물원에서 기르던 백호가 사육사를 공격했다. 사육사는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안전 관리에 허점에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동물원의 필요성과 존재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은 원래 넓은 지역을 활보하는 영역동물이다. 제한된 공간에 가둬 두는 것이 적절한가, '보호'가 불가피하다면 어떤 수준의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가 등등 해묵은 숙제가 되살아났다.

백호, 사육사를 습격하다

지난 8일 오후 일본 남서쪽 규슈지방 가고시마 시의 소방당국으로 긴급 신고가 접수됐다. '히라카와 동물공원의 남성 사육사가 백호의 습격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백호 전시용 우리에서 40대 사육사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미 목 부위 상처에서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약 2시간 뒤 사망했다. 경찰은 사육사가 백호에게 습격당한 뒤 출혈 과다로 쇼크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백호는 사고 직후, 수의사의 마취 총을 맞고 무력화된 상태였다. 몸길이 약 1.8미터, 체중 170kg으로 5살짜리 수컷으로 평소 사육사 혼자 담당해왔다.

사고 이튿날, 동물공원은 평소처럼 문을 열었지만, 백호 우리 일대는 출입을 통제했다. 관람객들은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렸다.

뒤늦은 안전 대책 “두 명이 관리하도록…”

동물공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백호 관리 체계 등을 설명했다. 동물원은 백호 4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3마리는 실내 사육실에 머물렀고, 1마리만 전시용 우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통상적으로 일반인 대상 전시가 끝나면 백호 혼자서 전용통로를 통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 이후 전담 사육사가 전시용 우리를 청소하고 정리했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사육사가 맹수와 동일 공간에 있거나 직접 접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일에는 백호가 다른 우리로 완전히 이동하기 전에 사육사가 전시용 우리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됐다.

동물원 측은 앞으로 맹수를 이동시킬 때는 두 사람이 담당하도록 하는 등의 후속 조지를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했던 다른 동물원의 안전대책도 참고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방점은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전시를 재개한다는 것에 찍혔다.

전시 중단 내용을 포함한 사과문이 인터넷에 올랐다.

"10월 8일 저녁 히라카와 동물공원 직원이 백호에 물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돌아가신 직원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히라카와 동물공원은 앞으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 대책을 철저히 해 나가겠습니다. 이와 함께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 친화적인 동물공원’으로서 여러분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시설 관리와 운영에 노력해 가겠습니다.”

동물원의 비극… 갇힌 동물의 비극

1972년 개원한 히라카와 동물공원은 여느 동물원에 비해 비교적 시설이 양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홈페이지 공개 자료를 보면, 총면적 31만 4천㎡의 공간에 풍부한 녹지를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 초원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흡사한 분위기의 넓은 공간에 기린과 얼룩말 등이 방목되고 있다. 인기동물인 코알라, 인도코끼리, 북극곰, 레서판다 등 인기 동물을 포함해 140여 종, 약 천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


2015년도 관람객 57만 명, 누적 관람객은 2천3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지역의 인기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부상당한 야생 동물 구조와 동물 보호 교육 활동을 병행하는 등 생태 친화적 동물원을 지향해왔다. 2015년까지 '사람에게 동물에게 친화적인 동물공원'을 표방하며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동물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동물을 통해 사람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방침도 표명해왔다.


종 보존과 생태계 보호·연구, 교육을 위한 동물원과 오락용 전시를 위한 동물원은 근본 이념이 다르지만, 사실 동물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자연 생태계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지 않는 한, 갇혀 지내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식육목 고양이과의 맹수처럼 넓은 영역이 필요한 동물의 경우, 공간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사육 관리 상의 작은 허점이라도 있으면, 언제나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1월 일본 지바 현 나리타 시의 동물 전문 사육시설인 '쇼난 동물 프로덕션'에서도 사육사 2명이 사자에 물리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사자가 자신을 돌보던 사육사를 공격했다. 맹수는 아무리 길들여져도 맹수이다. 생태 습성을 아무리 깊이 연구해도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항상 존재한다. 야생동물을 가둬 기른다는 것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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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日 백호 공격에 사육사 참변…동물원의 비극
    • 입력 2018-10-13 09:25:37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동물원에서 기르던 백호가 사육사를 공격했다. 사육사는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안전 관리에 허점에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동물원의 필요성과 존재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은 원래 넓은 지역을 활보하는 영역동물이다. 제한된 공간에 가둬 두는 것이 적절한가, '보호'가 불가피하다면 어떤 수준의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가 등등 해묵은 숙제가 되살아났다.

백호, 사육사를 습격하다

지난 8일 오후 일본 남서쪽 규슈지방 가고시마 시의 소방당국으로 긴급 신고가 접수됐다. '히라카와 동물공원의 남성 사육사가 백호의 습격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백호 전시용 우리에서 40대 사육사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미 목 부위 상처에서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약 2시간 뒤 사망했다. 경찰은 사육사가 백호에게 습격당한 뒤 출혈 과다로 쇼크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백호는 사고 직후, 수의사의 마취 총을 맞고 무력화된 상태였다. 몸길이 약 1.8미터, 체중 170kg으로 5살짜리 수컷으로 평소 사육사 혼자 담당해왔다.

사고 이튿날, 동물공원은 평소처럼 문을 열었지만, 백호 우리 일대는 출입을 통제했다. 관람객들은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렸다.

뒤늦은 안전 대책 “두 명이 관리하도록…”

동물공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백호 관리 체계 등을 설명했다. 동물원은 백호 4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3마리는 실내 사육실에 머물렀고, 1마리만 전시용 우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통상적으로 일반인 대상 전시가 끝나면 백호 혼자서 전용통로를 통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 이후 전담 사육사가 전시용 우리를 청소하고 정리했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사육사가 맹수와 동일 공간에 있거나 직접 접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일에는 백호가 다른 우리로 완전히 이동하기 전에 사육사가 전시용 우리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됐다.

동물원 측은 앞으로 맹수를 이동시킬 때는 두 사람이 담당하도록 하는 등의 후속 조지를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했던 다른 동물원의 안전대책도 참고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방점은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전시를 재개한다는 것에 찍혔다.

전시 중단 내용을 포함한 사과문이 인터넷에 올랐다.

"10월 8일 저녁 히라카와 동물공원 직원이 백호에 물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돌아가신 직원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히라카와 동물공원은 앞으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 대책을 철저히 해 나가겠습니다. 이와 함께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 친화적인 동물공원’으로서 여러분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시설 관리와 운영에 노력해 가겠습니다.”

동물원의 비극… 갇힌 동물의 비극

1972년 개원한 히라카와 동물공원은 여느 동물원에 비해 비교적 시설이 양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홈페이지 공개 자료를 보면, 총면적 31만 4천㎡의 공간에 풍부한 녹지를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 초원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흡사한 분위기의 넓은 공간에 기린과 얼룩말 등이 방목되고 있다. 인기동물인 코알라, 인도코끼리, 북극곰, 레서판다 등 인기 동물을 포함해 140여 종, 약 천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


2015년도 관람객 57만 명, 누적 관람객은 2천3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지역의 인기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부상당한 야생 동물 구조와 동물 보호 교육 활동을 병행하는 등 생태 친화적 동물원을 지향해왔다. 2015년까지 '사람에게 동물에게 친화적인 동물공원'을 표방하며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동물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동물을 통해 사람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방침도 표명해왔다.


종 보존과 생태계 보호·연구, 교육을 위한 동물원과 오락용 전시를 위한 동물원은 근본 이념이 다르지만, 사실 동물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자연 생태계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지 않는 한, 갇혀 지내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식육목 고양이과의 맹수처럼 넓은 영역이 필요한 동물의 경우, 공간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사육 관리 상의 작은 허점이라도 있으면, 언제나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1월 일본 지바 현 나리타 시의 동물 전문 사육시설인 '쇼난 동물 프로덕션'에서도 사육사 2명이 사자에 물리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사자가 자신을 돌보던 사육사를 공격했다. 맹수는 아무리 길들여져도 맹수이다. 생태 습성을 아무리 깊이 연구해도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항상 존재한다. 야생동물을 가둬 기른다는 것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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