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흑인들에게 투표 공포 조장” 불붙은 미국의 투표권 전쟁

입력 2018.10.16 (08:01) 수정 2018.10.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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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일반적으로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다. 한국은 주민등록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강제로 국가에 등록되고 '등록된 주민' 가운데 만 19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투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 국가 중 하나라는 미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헌법상의 투표권은 만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에게 주어져있지만, 실제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한다.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연방 정부에 등록돼있겠지만, 그게 선거 시스템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선거전은 '유권자 등록'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후보나 정당이 투표율이 낮은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유권자 등록부터 어렵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만약 후보나 정당이 투표율이 높은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일단 지지자들이 유권자로 등록부터 많이 하게 해야 한다. '모두가 투표를 잘 하게 만들기보다, 정치권이 유불리에 따라 유권자 등록과 투표를 쉽거나 또는 어렵게 만든다?' 이 말도 안되는 전쟁이,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 미 조지아주 시민단체 '흑인 투표권 억압" 소송

미 조지아주 시민단체연합이 조지아주 국무장관인 브라이언 켐프를, 5만3천여명의 투표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하려고 시도한 혐의로 고소했다. 선거를 관장하는 조지아주의 국무부가, 유권자로 등록한 5만3천여명의 투표 권리를 유예시켰는데, 브라이언 켐프가 도입한 '정확한 일치'법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일치(exact match)'법이란 유권자의 이름 등 정보가 다양한 곳에서 정확하게 일치해야 유권자의 투표 권리를 인정한다는 법인데, 만약 여러 주의 기관에 등록돼있는 유권자의 이름 등 정보에서 세부 철자나 하이픈(-), 띄어쓰기 같은 것의 불일치가 발견되면 유권자 정보 부정확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의 이름을 예로 들어보자. '김미선'이란 이름을 가진 유권자가 운전면허증에는 Mee Sun Kim으로 등록을 했는데, 보험회사와는 Mee-Sun Kim으로 계약을 하고, 회사 사원 정보에는 Meesun Kim으로 기록을 했다면, 그는 '정보 불일치'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유권자 등록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그는 투표소의 감독관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명해서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받아야 하고 그게 안되면 결국 투표소에 갔다가 투표를 못하게 된다.

시민단체 측은 이 '정확한 일치법'이 공화당이 주지사가 되고 특히 브라이언 켐프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조지아주에서 도입된, 많은 '소수 인종을 겨냥한 투표권 억압 조치'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AP는 켐프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2012년 이후 다양한 투표 관련 조치로 140만명 이상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했는데, 2017년에만 거의 67만여명의 투표권을 박탈했다고 보도했다. 2016년 대선 뒤에는 민주당이 켐프를 이 문제로 고소하기도 했는데, 연방법원은 켐프가 3만3천여 유권자의 투표권을 부당하게 박탈했다고 판결했다.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조지아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스테이시 에이브람스 (조지아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

■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 "흑인들에게 투표에 대한 공포 조장"

문제는, 엄격한 '유권자 등록'과 '투표권' 제도 도입으로 지난 몇 년간 수백만명의 투표권을 박탈해온 그 브라이언 켐프가, 바로 오는 11월 6일 중간 선거의 공화당 조지아주 주지사 후보라는 것이다.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가 유권자 등록을 총괄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권자 등록과 투표 제도를 바꿔왔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켐프의 상대인 민주당 주지사 후보는, 만약 당선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란 역사를 쓸 수 있는 스테이시 에이브람스다. 에이브람스는 CNN에 출연해 "켐프가 유색인종과 여성들의 투표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투표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켐프의 조지아주 국무장관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정확한 일치법'에 따른 정보 불일치로 투표권 유예를 통보받은 5만 3천여명 유권자 중 80%가 소수인종이고, 70%가 흑인이었다.

에이브람스는 "자신의 유권자 등록에 문제가 있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투표하러 가겠냐"면서 "이런 게 바로 공포 분위기 조성이고, 투표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해 그들의 권리를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이브람스는 '켐프의 일부 유권자 박탈이 잘못됐다'는 위 연방법원 판결을 상기하면서, "당시 '정확한 일치'제도로 피해를 본 사람들 중 유색인종과 여성이 특히 많았다, 이처럼 제도가 인종차별, 성차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법화한 게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켐프는 그에 대해 "에이브람스가 부끄러움도 없이 불법 이민자들에게 기대 선거에서 이기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공화당 주지사 후보)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공화당 주지사 후보)

■ 미 유권자 등록은 정말 선거에서 문제가 될까?

미국의 유권자 등록에는 이름, 집주소, 우편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 신분증, 정당 선택, 인종 등의 정보가 필요하다. 통상, 이름을 바꾸거나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뀌거나 지지 정당이 바뀌거나 4년간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경우 새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 등록을 어떻게 하느냐는 주별로 다 다르다.

50개주 가운데 14개주만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자동으로 유권자로 등록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신분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주들은, 시민권을 증명하는 서류를 반드시 제출하거나, 25명 이상 등 집단이 함께 등록할 때만 등록이 가능하게 하거나, 주소에서 거리명만 분명하지 않아도 등록을 못하게 한다거나, 우편, 온라인 등록제도는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조지아주처럼 등록된 정보가 불일치하면 투표를 못하게 하는 등의 까다로운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방식이, 특정한 집단에게 더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유권자 등록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증명이 일상적인 사람에 비해, 자신에 대한 증명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유권자 등록이 더 어렵기 마련이다. 운전면허증, 여권, (대개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 등록제로 운영되는) 해당 주 주민증 같은 것들이 유효한 신분증인데, 이 신분증을 발급받는게 한국처럼 쉽지가 않다. 운전면허증만 따려 해도, 사회보장번호, 여권, 집계약서, 신용카드 같은 신용 정보들의 점수를 어느 정도 채워야 자격이 주어진다. 주별 신분증 제도를 운영하는 곳도 많지 않다.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자주 옮겨다녀야 하고, 해외여행을 갈 일도 없는 사람들은, 공인된 신분증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일까? 가난한 사람들, 미국시민권을 딴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 좋은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들, 정확한 주소가 없는 사람들 등등, 그래서 백인보다 유색인종, 소수집단의 사람들의 유권자 등록이 더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 "소수인종을 겨냥한 투표 억압?"

캐롤 앤더슨은 지난달 출간한 <1인 무표(One Person, No vote):유권자 억압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책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흑인과 유색인종의 투표권이 왜 더 억압됐는지'를 주제로 한 분석을 내놓는다.

앤더슨은 "미국인들이 1965년 '투표권리법' 제정 이후 투표권에 대한 전쟁은 다 끝났다고 생각해왔지만 투표에 대한 권리는 오히려 더 약화돼왔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의, 흑인의 투표권을 억제하는 전쟁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미국 인구 구성에서 백인 대비 유색인종 비율은 계속 늘고 있다. 1992년 13%이던 전체 투표자 중 유색인종 비율이 2012년에는 28%로 늘었다. 이런 변화로 지난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백인의 지지를 받는 미국 공화당에는 '소수 인종이 점점 더 늘어나는 인구 구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고민이 깊어졌고, 그 결과 '새로운 유권자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자'는 전략이 '유권자 등록과 투표를 더 어렵게 만들자'는 전략으로 바뀌었다고 앤더슨은 분석한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부터 다양한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과 선거제도'가 노골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플로리다는 중범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유권자에서 제외했는데, 흑인의 5분의 1이 투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텍사스는 유권자 등록에 사용되는 신분증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했는데 60만명이 적법한 신분증이 없어 등록을 못하게 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몇몇 주는 투표일 당일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게 했던 과거의 제도를 없앴다. 인디애나주는 등록 유권자가 32만5천명이 넘는 카운티의 경우 조기 투표소를 1곳만 운영하도록 했는데, 해당 카운티들은 대부분 흑인 지역이었고, 흑인 투표율이 26%나 떨어졌다.

앤더슨은 이런 제도들로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 투표율이 2012년 66%에서 2016년 60% 아래로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유권자 등록과 투표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이유가, 불법이민자들의 부정 투표 등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부정 투표가 입증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앤더슨은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수백만명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투표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8개월간의 조사 뒤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 민주당 '투표 독려에서 "공화당이 투표 억압" 공세 전환

지난 2016년 선거에서 대통령직은 물론 의회의 상하원에 주지사 다수까지 모두 공화당에 빼앗겼던 민주당에게 이번 선거는 매우 절박하다. 지난 14일 WP와 ABC 공동여론조사 결과(등록 유권자 1144명 대상) 응답자의 53%가 민주당, 42%가 공화당에 투표하겠다고 답하는 등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지속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게 가장 결정적인 건 투표율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 유색인종의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은 과거 여론조사를 이기고도 투표율이 낮아 막상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적지 않다. 이번만큼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한 반감에 기초한 지지자들의 열기를 반드시 투표로 연결시키겠다는 게 민주당의 다짐이다. 단순히 투표 독려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지난 2008년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 당선 뒤 공화당이 "새로운 유권자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자"에 "투표를 어렵게 하자"는 전략을 추가했듯,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절실한 처지가 된 민주당 역시 단순히 "투표를 많이 합시다"에 그치지 않고 "공화당은 투표 억압을 멈춰라" 라며 투표권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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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흑인들에게 투표 공포 조장” 불붙은 미국의 투표권 전쟁
    • 입력 2018-10-16 08:01:14
    • 수정2018-10-16 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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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일반적으로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다. 한국은 주민등록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강제로 국가에 등록되고 '등록된 주민' 가운데 만 19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투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 국가 중 하나라는 미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헌법상의 투표권은 만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에게 주어져있지만, 실제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한다.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연방 정부에 등록돼있겠지만, 그게 선거 시스템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선거전은 '유권자 등록'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후보나 정당이 투표율이 낮은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유권자 등록부터 어렵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만약 후보나 정당이 투표율이 높은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일단 지지자들이 유권자로 등록부터 많이 하게 해야 한다. '모두가 투표를 잘 하게 만들기보다, 정치권이 유불리에 따라 유권자 등록과 투표를 쉽거나 또는 어렵게 만든다?' 이 말도 안되는 전쟁이,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 미 조지아주 시민단체 '흑인 투표권 억압" 소송

미 조지아주 시민단체연합이 조지아주 국무장관인 브라이언 켐프를, 5만3천여명의 투표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하려고 시도한 혐의로 고소했다. 선거를 관장하는 조지아주의 국무부가, 유권자로 등록한 5만3천여명의 투표 권리를 유예시켰는데, 브라이언 켐프가 도입한 '정확한 일치'법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일치(exact match)'법이란 유권자의 이름 등 정보가 다양한 곳에서 정확하게 일치해야 유권자의 투표 권리를 인정한다는 법인데, 만약 여러 주의 기관에 등록돼있는 유권자의 이름 등 정보에서 세부 철자나 하이픈(-), 띄어쓰기 같은 것의 불일치가 발견되면 유권자 정보 부정확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의 이름을 예로 들어보자. '김미선'이란 이름을 가진 유권자가 운전면허증에는 Mee Sun Kim으로 등록을 했는데, 보험회사와는 Mee-Sun Kim으로 계약을 하고, 회사 사원 정보에는 Meesun Kim으로 기록을 했다면, 그는 '정보 불일치'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유권자 등록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그는 투표소의 감독관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명해서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받아야 하고 그게 안되면 결국 투표소에 갔다가 투표를 못하게 된다.

시민단체 측은 이 '정확한 일치법'이 공화당이 주지사가 되고 특히 브라이언 켐프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조지아주에서 도입된, 많은 '소수 인종을 겨냥한 투표권 억압 조치'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AP는 켐프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2012년 이후 다양한 투표 관련 조치로 140만명 이상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했는데, 2017년에만 거의 67만여명의 투표권을 박탈했다고 보도했다. 2016년 대선 뒤에는 민주당이 켐프를 이 문제로 고소하기도 했는데, 연방법원은 켐프가 3만3천여 유권자의 투표권을 부당하게 박탈했다고 판결했다.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조지아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
■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 "흑인들에게 투표에 대한 공포 조장"

문제는, 엄격한 '유권자 등록'과 '투표권' 제도 도입으로 지난 몇 년간 수백만명의 투표권을 박탈해온 그 브라이언 켐프가, 바로 오는 11월 6일 중간 선거의 공화당 조지아주 주지사 후보라는 것이다.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가 유권자 등록을 총괄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권자 등록과 투표 제도를 바꿔왔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켐프의 상대인 민주당 주지사 후보는, 만약 당선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란 역사를 쓸 수 있는 스테이시 에이브람스다. 에이브람스는 CNN에 출연해 "켐프가 유색인종과 여성들의 투표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투표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켐프의 조지아주 국무장관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정확한 일치법'에 따른 정보 불일치로 투표권 유예를 통보받은 5만 3천여명 유권자 중 80%가 소수인종이고, 70%가 흑인이었다.

에이브람스는 "자신의 유권자 등록에 문제가 있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투표하러 가겠냐"면서 "이런 게 바로 공포 분위기 조성이고, 투표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해 그들의 권리를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이브람스는 '켐프의 일부 유권자 박탈이 잘못됐다'는 위 연방법원 판결을 상기하면서, "당시 '정확한 일치'제도로 피해를 본 사람들 중 유색인종과 여성이 특히 많았다, 이처럼 제도가 인종차별, 성차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법화한 게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켐프는 그에 대해 "에이브람스가 부끄러움도 없이 불법 이민자들에게 기대 선거에서 이기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공화당 주지사 후보)
■ 미 유권자 등록은 정말 선거에서 문제가 될까?

미국의 유권자 등록에는 이름, 집주소, 우편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 신분증, 정당 선택, 인종 등의 정보가 필요하다. 통상, 이름을 바꾸거나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뀌거나 지지 정당이 바뀌거나 4년간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경우 새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 등록을 어떻게 하느냐는 주별로 다 다르다.

50개주 가운데 14개주만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자동으로 유권자로 등록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신분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주들은, 시민권을 증명하는 서류를 반드시 제출하거나, 25명 이상 등 집단이 함께 등록할 때만 등록이 가능하게 하거나, 주소에서 거리명만 분명하지 않아도 등록을 못하게 한다거나, 우편, 온라인 등록제도는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조지아주처럼 등록된 정보가 불일치하면 투표를 못하게 하는 등의 까다로운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방식이, 특정한 집단에게 더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유권자 등록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증명이 일상적인 사람에 비해, 자신에 대한 증명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유권자 등록이 더 어렵기 마련이다. 운전면허증, 여권, (대개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 등록제로 운영되는) 해당 주 주민증 같은 것들이 유효한 신분증인데, 이 신분증을 발급받는게 한국처럼 쉽지가 않다. 운전면허증만 따려 해도, 사회보장번호, 여권, 집계약서, 신용카드 같은 신용 정보들의 점수를 어느 정도 채워야 자격이 주어진다. 주별 신분증 제도를 운영하는 곳도 많지 않다.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자주 옮겨다녀야 하고, 해외여행을 갈 일도 없는 사람들은, 공인된 신분증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일까? 가난한 사람들, 미국시민권을 딴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 좋은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들, 정확한 주소가 없는 사람들 등등, 그래서 백인보다 유색인종, 소수집단의 사람들의 유권자 등록이 더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 "소수인종을 겨냥한 투표 억압?"

캐롤 앤더슨은 지난달 출간한 <1인 무표(One Person, No vote):유권자 억압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책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흑인과 유색인종의 투표권이 왜 더 억압됐는지'를 주제로 한 분석을 내놓는다.

앤더슨은 "미국인들이 1965년 '투표권리법' 제정 이후 투표권에 대한 전쟁은 다 끝났다고 생각해왔지만 투표에 대한 권리는 오히려 더 약화돼왔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의, 흑인의 투표권을 억제하는 전쟁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미국 인구 구성에서 백인 대비 유색인종 비율은 계속 늘고 있다. 1992년 13%이던 전체 투표자 중 유색인종 비율이 2012년에는 28%로 늘었다. 이런 변화로 지난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백인의 지지를 받는 미국 공화당에는 '소수 인종이 점점 더 늘어나는 인구 구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고민이 깊어졌고, 그 결과 '새로운 유권자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자'는 전략이 '유권자 등록과 투표를 더 어렵게 만들자'는 전략으로 바뀌었다고 앤더슨은 분석한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부터 다양한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과 선거제도'가 노골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플로리다는 중범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유권자에서 제외했는데, 흑인의 5분의 1이 투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텍사스는 유권자 등록에 사용되는 신분증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했는데 60만명이 적법한 신분증이 없어 등록을 못하게 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몇몇 주는 투표일 당일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게 했던 과거의 제도를 없앴다. 인디애나주는 등록 유권자가 32만5천명이 넘는 카운티의 경우 조기 투표소를 1곳만 운영하도록 했는데, 해당 카운티들은 대부분 흑인 지역이었고, 흑인 투표율이 26%나 떨어졌다.

앤더슨은 이런 제도들로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 투표율이 2012년 66%에서 2016년 60% 아래로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유권자 등록과 투표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이유가, 불법이민자들의 부정 투표 등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부정 투표가 입증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앤더슨은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수백만명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투표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8개월간의 조사 뒤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 민주당 '투표 독려에서 "공화당이 투표 억압" 공세 전환

지난 2016년 선거에서 대통령직은 물론 의회의 상하원에 주지사 다수까지 모두 공화당에 빼앗겼던 민주당에게 이번 선거는 매우 절박하다. 지난 14일 WP와 ABC 공동여론조사 결과(등록 유권자 1144명 대상) 응답자의 53%가 민주당, 42%가 공화당에 투표하겠다고 답하는 등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지속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게 가장 결정적인 건 투표율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 유색인종의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은 과거 여론조사를 이기고도 투표율이 낮아 막상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적지 않다. 이번만큼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한 반감에 기초한 지지자들의 열기를 반드시 투표로 연결시키겠다는 게 민주당의 다짐이다. 단순히 투표 독려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지난 2008년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 당선 뒤 공화당이 "새로운 유권자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자"에 "투표를 어렵게 하자"는 전략을 추가했듯,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절실한 처지가 된 민주당 역시 단순히 "투표를 많이 합시다"에 그치지 않고 "공화당은 투표 억압을 멈춰라" 라며 투표권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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