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브렉시트 협상’ 왜 타결 안 되나?…최대 걸림돌은 ‘아일랜드 국경’

입력 2018.10.16 (10:17) 수정 2018.10.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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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브렉시트(Brexit) 협상이 좀처럼 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될 듯 될 듯 하다가도 막판에 틀어지기 일쑤다. 그때마다 협상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일랜드 국경' 문제다.

아일랜드 섬에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쪽의 영국령 북아일랜드다. 영국이 EU에서 빠지면 북아일랜드도 당연히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져야 한다.

이럴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국경이 만들어져 이제껏 없었던 여권 확인이나 통관 절차 등 각종 통제가 생긴다.

트럭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트럭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는 하나의 공동체였다. 하지만 영국이 1차 세계대전 후 아일랜드를 독립시킬 때 북아일랜드 지역을 뺀 채로 분리·독립시켰다.

그 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가톨릭 세력과 영국의 잔류를 원하는 개신교 세력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두 세력 간의 무력 충돌로 3천6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은 1998년 4월 벨파스트 협정을 맺고 나서야 평화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200여 개의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엔 검문소가 따로 없다. 도로에는 매일 3만여 명의 사람과 60만여 대의 차량들이 드나들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이다.

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북아일랜드 주민의 56%가 '브렉시트'가 아닌 'EU 잔류'에 찬성했다.

그런데 앞으로 브렉시트가 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제적 환경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는 EU 시장, 북아일랜드는 영국 시장으로 서로 다른 법규와 관세를 적용받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EU와 영국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9월 30일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있던 표지판9월 30일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있던 표지판

당초 EU와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문제에 대해, 영국이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만 EU 관세동맹 안에 두는 '안전장치' (backstop) 방안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영국은 그 뒤, 이 방안이 시행되면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사실상 국경이 생기게 돼 영국 영토의 통합성이 저해된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상품 분야에서만 '공통의 규정집' (Common rulebook)을 만들어 자유무역지대로 하자는 이른바 '체커스(Chequers) 계획'을 내놓았다. EU측은 EU 단일시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 문제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메이 영국 총리는 대안으로 브렉시트 전환기간이 끝나더라도 당분간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에 남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안전장치' 방안을 북아일랜드 뿐 아니라 영국 전체로 확대한 것으로 '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2020년 말까지로 정한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연장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이 알려지자 영국 내 비판 여론이 일었다. 내각에서는 몇몇 장관들이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 (DUP)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EU측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있다. 영국에 이은 다른 회원국의 추가 EU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영국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 앞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 앞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EU와 영국은 지난해 12월 '분담금 정산' 등 영국의 EU 탈퇴 조건을 합의한 뒤 지금은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무역 관계를 비롯한 미래 관계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해 지금껏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이 영국 의사당 근처에서 깃발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이 영국 의사당 근처에서 깃발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영국은 EU의 헌법격인 리스본조약 제50조에 따라 탈퇴 통보일로부터 2년이 되는 내년 3월 29일 밤 11시가 되면 무조건 EU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복잡한 비준 절차를 고려하면 늦어도 임시 EU정상회의가 예정된 11월 중순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EU와 영국은 다급하다.

외신들에 따르면 협상이 상당부분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이 심해 내년 3월 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도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과 EU는 '노 딜'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 계획' (Contingency plan) 준비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식량, 필수 의약품 등을 비축하고 새로운 통관 절차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약 '합의 없는 브렉시트' (No Deal Brexit)가 된다면 영국은 물론 EU 경제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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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6 10:17:40
    • 수정2018-10-16 10:18:08
    특파원 리포트
영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브렉시트(Brexit) 협상이 좀처럼 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될 듯 될 듯 하다가도 막판에 틀어지기 일쑤다. 그때마다 협상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일랜드 국경' 문제다.

아일랜드 섬에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 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쪽의 영국령 북아일랜드다. 영국이 EU에서 빠지면 북아일랜드도 당연히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져야 한다.

이럴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국경이 만들어져 이제껏 없었던 여권 확인이나 통관 절차 등 각종 통제가 생긴다.

트럭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는 하나의 공동체였다. 하지만 영국이 1차 세계대전 후 아일랜드를 독립시킬 때 북아일랜드 지역을 뺀 채로 분리·독립시켰다.

그 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가톨릭 세력과 영국의 잔류를 원하는 개신교 세력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두 세력 간의 무력 충돌로 3천6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은 1998년 4월 벨파스트 협정을 맺고 나서야 평화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200여 개의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엔 검문소가 따로 없다. 도로에는 매일 3만여 명의 사람과 60만여 대의 차량들이 드나들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이다.

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북아일랜드 주민의 56%가 '브렉시트'가 아닌 'EU 잔류'에 찬성했다.

그런데 앞으로 브렉시트가 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제적 환경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는 EU 시장, 북아일랜드는 영국 시장으로 서로 다른 법규와 관세를 적용받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EU와 영국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9월 30일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있던 표지판
당초 EU와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문제에 대해, 영국이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만 EU 관세동맹 안에 두는 '안전장치' (backstop) 방안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영국은 그 뒤, 이 방안이 시행되면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사실상 국경이 생기게 돼 영국 영토의 통합성이 저해된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상품 분야에서만 '공통의 규정집' (Common rulebook)을 만들어 자유무역지대로 하자는 이른바 '체커스(Chequers) 계획'을 내놓았다. EU측은 EU 단일시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 문제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메이 영국 총리는 대안으로 브렉시트 전환기간이 끝나더라도 당분간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에 남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안전장치' 방안을 북아일랜드 뿐 아니라 영국 전체로 확대한 것으로 '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2020년 말까지로 정한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연장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이 알려지자 영국 내 비판 여론이 일었다. 내각에서는 몇몇 장관들이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 (DUP)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EU측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있다. 영국에 이은 다른 회원국의 추가 EU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영국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 앞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EU와 영국은 지난해 12월 '분담금 정산' 등 영국의 EU 탈퇴 조건을 합의한 뒤 지금은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무역 관계를 비롯한 미래 관계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해 지금껏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이 영국 의사당 근처에서 깃발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영국은 EU의 헌법격인 리스본조약 제50조에 따라 탈퇴 통보일로부터 2년이 되는 내년 3월 29일 밤 11시가 되면 무조건 EU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복잡한 비준 절차를 고려하면 늦어도 임시 EU정상회의가 예정된 11월 중순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EU와 영국은 다급하다.

외신들에 따르면 협상이 상당부분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이 심해 내년 3월 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도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과 EU는 '노 딜'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 계획' (Contingency plan) 준비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식량, 필수 의약품 등을 비축하고 새로운 통관 절차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약 '합의 없는 브렉시트' (No Deal Brexit)가 된다면 영국은 물론 EU 경제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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