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해경 왜 이래요?”…‘갈팡질팡’ 속 유족 2번 울려

입력 2018.10.19 (19:37) 수정 2018.10.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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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 전원 실종...38년째 바닷속 '72정'

1980년 1월 23일 새벽 5시 20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앞바다에서 해양경찰 60톤급 경비정 '72정'이 다른 경비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사고 당시 72정 선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 9명과 전경 8명 등 승조원 17명이 전원 실종돼, 순직했다.

신군부 시절이라 유족들은 의혹 제기는 커녕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술력이 부족해 인양하지 못한다는 말에 유족들은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을 38년 넘게 가슴에 묻어야 했다.


"해경에 정말 감사하죠. 어머니도 너무 좋아하세요."

2018년 6월 27일 해양경찰청 회의실.

조현배 해경 청장과 류춘열 차장 등 지휘부 8명이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 해경은 유가족과 협의해 침몰한 '72정'을 찾기 위한 탐색장비 등을 지원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실제 해경은 올해 2월 취역한 140억 원짜리 잠수 지원함(D-01) 등 전문 수색구조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D-01은 수심 100미터까지 탐색 가능한 무인 원격조종로봇과 잠수요원을 위한 감압 챔버, 심해 수색장비 등을 갖추고 있다.
해경은 탐색 후 72정을 발견하면 선체 상태 등을 고려해 인양을 검토할 방침이었다.
꾸준하게 72정 선체 탐색과 인양을 요구했던 유족들은 그야말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38년 넘게 바닷속에 방치된 가족의 유골이라도 수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왜 2번 죽여요?"

2018년 7월 6일 해양경찰청 회의실.

조현배 청장과 류춘열 차장 등 지휘부가 다시 모였다.
이 회의에서 해경은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애초 지원하려던 72정 탐색 계획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침몰한 '72정'의 사고 조사와 순직자 예우가 완료된 상태에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였다. 관공선과 민간어선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탐색 불가 이유로 제시했다.

유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애초 말을 말지, 해경의 입장 번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정부가 비무장지대 내 순직자 유해 발굴까지 추진하는 상황에서, 왜 우리 바다에 묻힌 순직자는 찾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조병주 72정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 예우를 강조해서 일이 정말 잘 되는 줄 알았다."며 실망이 크다고 했다. 또 "72정 순직 대원들은 민간 선박도 아니고 해상 경비 중 순직한 국가유공자인데, 왜 우리 바다 순직자는 발굴 안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반발했다.


"저희도 꺼내고 싶은데..." 여론 중요하다면서 여론 미수렴

해양경찰은 해경 조직 차원에서 침몰한 72정의 실종자를 찾고 싶다고 했다. 선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순직자 17명은 해경 선배들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해경은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인양은 물론 단순 탐색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탐색 이후 인양을 하더라도, 선체 내 시신 유무 등이 불확실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해경 함정만 인양한다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8일 열린 해양경찰청에 대한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조현배 청장은 "국민적 여론이 있고 예산이 확보돼야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 공감대가 중요하다면서 "국민 여론 수렴 절차는 전혀 없었"고, 관련 예산도 신청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예산을 확보하냐며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바다를 지키다 순직한 해경은 그 숫자가 얼마든 모두 인양해 유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순직하면 뭐합니까?"…'자비 들여 탐색' 추진

72정 유족들은 다시 기다리겠다고 했다. 38년 넘게 기다렸는데, 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와 해경에 대한 실망은 크다. 조병주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순직하고 국가유공자면 뭐합니까. 정부도 외면했고, 해경도 72정을 버린거죠 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민간업체에 탐색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 애초 지난 6월 민간업체를 섭외하고 구난작업신고서도 냈었다. 하지만, 해경이 직접 탐색하겠다고 해서 한차례 무산된 일이다.

유족들은 돈도 많이 들고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 잠든 바닷속 72정을 꼭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순직한 국가유공자가 잠든 '72정'을 찾는 이 일.
이거 정말 유족들이 할 일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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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해경 왜 이래요?”…‘갈팡질팡’ 속 유족 2번 울려
    • 입력 2018-10-19 19:37:40
    • 수정2018-10-20 14:38:34
    취재후·사건후
17명 전원 실종...38년째 바닷속 '72정'

1980년 1월 23일 새벽 5시 20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앞바다에서 해양경찰 60톤급 경비정 '72정'이 다른 경비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사고 당시 72정 선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 9명과 전경 8명 등 승조원 17명이 전원 실종돼, 순직했다.

신군부 시절이라 유족들은 의혹 제기는 커녕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술력이 부족해 인양하지 못한다는 말에 유족들은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을 38년 넘게 가슴에 묻어야 했다.


"해경에 정말 감사하죠. 어머니도 너무 좋아하세요."

2018년 6월 27일 해양경찰청 회의실.

조현배 해경 청장과 류춘열 차장 등 지휘부 8명이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 해경은 유가족과 협의해 침몰한 '72정'을 찾기 위한 탐색장비 등을 지원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실제 해경은 올해 2월 취역한 140억 원짜리 잠수 지원함(D-01) 등 전문 수색구조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D-01은 수심 100미터까지 탐색 가능한 무인 원격조종로봇과 잠수요원을 위한 감압 챔버, 심해 수색장비 등을 갖추고 있다.
해경은 탐색 후 72정을 발견하면 선체 상태 등을 고려해 인양을 검토할 방침이었다.
꾸준하게 72정 선체 탐색과 인양을 요구했던 유족들은 그야말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38년 넘게 바닷속에 방치된 가족의 유골이라도 수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왜 2번 죽여요?"

2018년 7월 6일 해양경찰청 회의실.

조현배 청장과 류춘열 차장 등 지휘부가 다시 모였다.
이 회의에서 해경은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애초 지원하려던 72정 탐색 계획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침몰한 '72정'의 사고 조사와 순직자 예우가 완료된 상태에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였다. 관공선과 민간어선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탐색 불가 이유로 제시했다.

유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애초 말을 말지, 해경의 입장 번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정부가 비무장지대 내 순직자 유해 발굴까지 추진하는 상황에서, 왜 우리 바다에 묻힌 순직자는 찾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조병주 72정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 예우를 강조해서 일이 정말 잘 되는 줄 알았다."며 실망이 크다고 했다. 또 "72정 순직 대원들은 민간 선박도 아니고 해상 경비 중 순직한 국가유공자인데, 왜 우리 바다 순직자는 발굴 안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반발했다.


"저희도 꺼내고 싶은데..." 여론 중요하다면서 여론 미수렴

해양경찰은 해경 조직 차원에서 침몰한 72정의 실종자를 찾고 싶다고 했다. 선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순직자 17명은 해경 선배들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해경은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인양은 물론 단순 탐색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탐색 이후 인양을 하더라도, 선체 내 시신 유무 등이 불확실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해경 함정만 인양한다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8일 열린 해양경찰청에 대한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조현배 청장은 "국민적 여론이 있고 예산이 확보돼야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 공감대가 중요하다면서 "국민 여론 수렴 절차는 전혀 없었"고, 관련 예산도 신청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예산을 확보하냐며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바다를 지키다 순직한 해경은 그 숫자가 얼마든 모두 인양해 유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순직하면 뭐합니까?"…'자비 들여 탐색' 추진

72정 유족들은 다시 기다리겠다고 했다. 38년 넘게 기다렸는데, 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와 해경에 대한 실망은 크다. 조병주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순직하고 국가유공자면 뭐합니까. 정부도 외면했고, 해경도 72정을 버린거죠 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민간업체에 탐색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 애초 지난 6월 민간업체를 섭외하고 구난작업신고서도 냈었다. 하지만, 해경이 직접 탐색하겠다고 해서 한차례 무산된 일이다.

유족들은 돈도 많이 들고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 잠든 바닷속 72정을 꼭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순직한 국가유공자가 잠든 '72정'을 찾는 이 일.
이거 정말 유족들이 할 일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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