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스페셜] 태국 남자들의 승려되기

입력 2018.10.20 (22:08) 수정 2018.10.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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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태국에서는 남자라면 일생에 최소 한 번은 승려가 됩니다.

태국 남자들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이 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유석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국의 한 지방 도시에 있는 중고등학교.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이 학교 남학생 지원자들이 승려가 되는 날입니다. 올해 지원자는 60명. 전체 남학생의 5분의 1 규모입니다.

닷새 동안의 단기 출가지만 머리를 깎고 승려로서 법명도 받습니다.

[분르안 시릿/학생 출가자 할머니 : "손자가 승려가 되는 날이라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 승려 생활 마치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머리와 눈썹을 미는 삭발 의식.

이들이 들어갈 사찰의 승려와 가족들에 이어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이 차례로 학생의 머리를 잘라 줍니다.

학생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연잎에 소중히 받아 둡니다.

보통 태국 남자들은 스무 살이 넘으면 출가해 일정 기간 승려가 되지만 학생들도 단기 출가를 통해 '넨'이라는 초심자 단계에 오릅니다.

[붓사린 커니아우끌랑/ 학생 승려 어머니 : "아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승려가 될 수 있어서 우리 가족 모두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승불교'라고 알려져 있는 '상좌부 불교'를 믿는 태국 사람들은 개인이 공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출가해 승려가 되는 것이 공덕을 쌓는 최고의 행위라고 믿습니다.

공덕은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돌아가는 만큼 출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이자 효도로 받아들여집니다.

[시리촉 끄녹/학생 승려 : "어머니날을 맞아 제가 승려가 돼서 부모님에게 공덕이 돌아가고 저도 공덕을 쌓고 싶어요."]

출가의식은 개인이나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출가 의식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공덕을 쌓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사원으로 갈 때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예비 승려들을 축복하며 마을 축제를 벌입니다.

전통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지역 경찰의 호위 속에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퍼레이드를 펼칩니다.

행렬이 사원에 도착해서도 축제는 계속됩니다.

학교 밴드부와 춤 동아리가 앞장서고 춤을 추며 사원을 세 바퀴 돕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경의를 표하고 행운을 비는 의미입니다.

[파와나 소마나쿤위/부아야이 사원 주지 : "아이들은 스님 교사 밑에서 가르침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명상을 강조합니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25살 타나 깃 씨.

오늘은 동료 간호사들과 잠시 작별의 시간을 갖는 날입니다.

3주 동안 휴직하고 내일부터 승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태국 성인 남자들의 출가 기간은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석 달 정도. 이 기간 동안 직장에서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타나깃/일반인 출가자 : "태국에서는 20대 중반이 인생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승려가 되고 싶어요."]

승려가 되면 새벽 일찍 일어나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마을 전체를 다니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사원 앞에 신도들이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승려가 되면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생활이 계율에 따라 이뤄집니다. 특히 식사는 아침과 점심 두 끼만 허용됩니다.

정오 이후에는 씹는 음식은 일절 먹을 수 없습니다.

이밖에 태국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만 227개.

학생 때는 승려 체험에 가깝지만 성인 남자가 되어 출가할 때는 엄격한 승려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쑨턴 탐마윳/카오솜폿 사원 주지 : "승려가 되면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규율이 따릅니다. 그것은 매우 큰 변화이지만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키우고 부지런하게 만드는 변화입니다."]

출가의식과 예불에 사용되는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도 틈틈이 익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평생 승려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와신/단기 출가에서 평생 승려로 헌신 : "전에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항상 뭔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승려가 된 다음에 진정한 행복은 찾기 쉽고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태국에서 승려 생활을 거친 남자들은 공덕을 쌓은 것 외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태국에서 남자들이 승려생활을 거쳤다는 것은 단순히 불교 신자로서의 종교적 행위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비로소 성숙한 성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는 남자들이 군대는 가지 않아도 승려는 꼭 되어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결혼 상대자로서 중요한 요건이기도 합니다.

[수파랏 낀깜넛/출가자 여자친구 : "남자친구가 승려 생활을 하고 돌아오게 되면 성격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매우 급한 성격인데 차분해졌으면 좋겠어요."]

왕정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도 승려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만큼 승려는 태국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와 존경을 받습니다.

이런 지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승려나 가짜 승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서 승려가 돼보지 않은 사람은 마을의 지도자나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할 정도로 승려 경험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유석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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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스페셜] 태국 남자들의 승려되기
    • 입력 2018-10-20 22:23:47
    • 수정2018-10-20 22:37:01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태국에서는 남자라면 일생에 최소 한 번은 승려가 됩니다.

태국 남자들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이 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유석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태국의 한 지방 도시에 있는 중고등학교.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이 학교 남학생 지원자들이 승려가 되는 날입니다. 올해 지원자는 60명. 전체 남학생의 5분의 1 규모입니다.

닷새 동안의 단기 출가지만 머리를 깎고 승려로서 법명도 받습니다.

[분르안 시릿/학생 출가자 할머니 : "손자가 승려가 되는 날이라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 승려 생활 마치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머리와 눈썹을 미는 삭발 의식.

이들이 들어갈 사찰의 승려와 가족들에 이어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이 차례로 학생의 머리를 잘라 줍니다.

학생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연잎에 소중히 받아 둡니다.

보통 태국 남자들은 스무 살이 넘으면 출가해 일정 기간 승려가 되지만 학생들도 단기 출가를 통해 '넨'이라는 초심자 단계에 오릅니다.

[붓사린 커니아우끌랑/ 학생 승려 어머니 : "아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승려가 될 수 있어서 우리 가족 모두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승불교'라고 알려져 있는 '상좌부 불교'를 믿는 태국 사람들은 개인이 공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출가해 승려가 되는 것이 공덕을 쌓는 최고의 행위라고 믿습니다.

공덕은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돌아가는 만큼 출가는 부모에 대한 보은이자 효도로 받아들여집니다.

[시리촉 끄녹/학생 승려 : "어머니날을 맞아 제가 승려가 돼서 부모님에게 공덕이 돌아가고 저도 공덕을 쌓고 싶어요."]

출가의식은 개인이나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출가 의식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공덕을 쌓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사원으로 갈 때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예비 승려들을 축복하며 마을 축제를 벌입니다.

전통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지역 경찰의 호위 속에 차를 타고 마을을 돌며 퍼레이드를 펼칩니다.

행렬이 사원에 도착해서도 축제는 계속됩니다.

학교 밴드부와 춤 동아리가 앞장서고 춤을 추며 사원을 세 바퀴 돕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경의를 표하고 행운을 비는 의미입니다.

[파와나 소마나쿤위/부아야이 사원 주지 : "아이들은 스님 교사 밑에서 가르침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명상을 강조합니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25살 타나 깃 씨.

오늘은 동료 간호사들과 잠시 작별의 시간을 갖는 날입니다.

3주 동안 휴직하고 내일부터 승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태국 성인 남자들의 출가 기간은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석 달 정도. 이 기간 동안 직장에서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타나깃/일반인 출가자 : "태국에서는 20대 중반이 인생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승려가 되고 싶어요."]

승려가 되면 새벽 일찍 일어나 탁발을 나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마을 전체를 다니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사원 앞에 신도들이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승려가 되면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생활이 계율에 따라 이뤄집니다. 특히 식사는 아침과 점심 두 끼만 허용됩니다.

정오 이후에는 씹는 음식은 일절 먹을 수 없습니다.

이밖에 태국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만 227개.

학생 때는 승려 체험에 가깝지만 성인 남자가 되어 출가할 때는 엄격한 승려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쑨턴 탐마윳/카오솜폿 사원 주지 : "승려가 되면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규율이 따릅니다. 그것은 매우 큰 변화이지만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키우고 부지런하게 만드는 변화입니다."]

출가의식과 예불에 사용되는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도 틈틈이 익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평생 승려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와신/단기 출가에서 평생 승려로 헌신 : "전에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항상 뭔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승려가 된 다음에 진정한 행복은 찾기 쉽고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태국에서 승려 생활을 거친 남자들은 공덕을 쌓은 것 외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태국에서 남자들이 승려생활을 거쳤다는 것은 단순히 불교 신자로서의 종교적 행위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비로소 성숙한 성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는 남자들이 군대는 가지 않아도 승려는 꼭 되어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결혼 상대자로서 중요한 요건이기도 합니다.

[수파랏 낀깜넛/출가자 여자친구 : "남자친구가 승려 생활을 하고 돌아오게 되면 성격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매우 급한 성격인데 차분해졌으면 좋겠어요."]

왕정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도 승려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만큼 승려는 태국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와 존경을 받습니다.

이런 지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승려나 가짜 승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서 승려가 돼보지 않은 사람은 마을의 지도자나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할 정도로 승려 경험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유석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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