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기어서 완주한 女마라토너…골절중상이 ‘투혼’인가

입력 2018.10.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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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선 열린 역전경주에서 부상투혼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상을 입고도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목표 지점까지 완주한 여성 선수가 화제이다. 부상투혼의 전형으로 무서우리만큼 강한 근성을 보여줬다. 인간정신의 위대한 승리라는 칭송도 있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그 정도 상황이었다면 선수 보호를 위해 경기를 중단시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발을 다쳤지만,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지난 21일 후쿠오카에서 전일본 실업단체 대항 여자 역전경주 예선전이 열렸다. 역전경주는 여러 명이 일정 구간을 나눠 맡아 이어 달리는 육상 경기로, 통상 역전마라톤이라고도 한다. 참가 선수들은 개인 기량 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과의 팀워크, 그리고 강한 책임감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후쿠오카 대회에는 27개 팀이 참가했다. 전체 길이는 마라톤 거리에 해당하는 42.195 km. 6개 구간으로 나눠 이어달리는 방식이었다.

불의의 사고는 2번 째 구간과 3번 째 구간의 교대 장소 200 m 가량 앞에서 발생했다. 다른 선수들과 섞여서 달리던 '이이다 레에' 선수(이와타니 산업 소속)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발에 부상을 입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이다 선수는 두 손과 맨 무릎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고통을 참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나갔다. 두 무릎은 금새 피투성이가 됐다. 교대 지점에서 기다리는 동료 선수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눈물을 닦는 모습이 중계 영상에 포착됐다.


이이다 선수는 바통 역할을 하는 어깨띠를 넘겨 준 뒤,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됐다. 진단 결과 오른쪽 발은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전치 3∼4개월의 중상이었다.

큰 부상, 그러나 경기는 계속됐다

이이다 선수의 몸 상태는 상식을 초월한 정신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가, 선수 보호가 먼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감시차량으로 심판이 동행하고 있었지만,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주최 측이 부상선수의 경기를 중단시키고 즉시 의료진을 투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경기 당시 현장에서도 '힘내라'고 응원하는 목소리와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혼재했다고 한다. 대회를 주관한 후쿠오카 육상경기협회 측에 따라면 심판이 부상 선수에게 말을 걸자, '앞으로 몇 미터 남았나'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소속팀인 이와타니 산업 측은 "상황을 알고 곧바로 기권 의사를 밝혔지만, (경기가) 중단되지 않았다. 우리로서도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실업단 육상경기연합에 따르면, 이와타니 산업의 히로세 감독이 기권 의사를 대회 주최 측에 전달해지만, 현장에서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소속팀 의사가 전달됐을 때는 이이다 선수가 교대 지점 20 m 앞까지 접근해 있었고, 본인이 레이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 중단시킬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상투혼'을 권하는 사회?...한계는 있어야

피를 흘리고 붕대를 칭칭 감고 고통을 참으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미덕으로 여겨진다.

일단 경기에 임한 선수는 웬만한 부상에도 경기를 포기할 수 없다. 고된 훈련의 기억, 자신과의 약속, 동료에 대한 책임감, 사회의 기대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부상투혼에도 한계는 있어야 한다. 본인이 제어 혹은 결단할 상황이 아니면, 소속 팀과 대회 주최 측이 책임감을 갖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부상투혼보다는 선수보호가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부상투혼'파문은 일본 스포츠계에도 적지 않은 과제를 던졌다. 육상경기연합 측은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원할하게 연락이 이뤄지도록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대응 매뉴얼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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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3 18:37:51
    특파원 리포트
최근 일본에선 열린 역전경주에서 부상투혼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상을 입고도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목표 지점까지 완주한 여성 선수가 화제이다. 부상투혼의 전형으로 무서우리만큼 강한 근성을 보여줬다. 인간정신의 위대한 승리라는 칭송도 있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그 정도 상황이었다면 선수 보호를 위해 경기를 중단시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발을 다쳤지만,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지난 21일 후쿠오카에서 전일본 실업단체 대항 여자 역전경주 예선전이 열렸다. 역전경주는 여러 명이 일정 구간을 나눠 맡아 이어 달리는 육상 경기로, 통상 역전마라톤이라고도 한다. 참가 선수들은 개인 기량 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과의 팀워크, 그리고 강한 책임감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후쿠오카 대회에는 27개 팀이 참가했다. 전체 길이는 마라톤 거리에 해당하는 42.195 km. 6개 구간으로 나눠 이어달리는 방식이었다.

불의의 사고는 2번 째 구간과 3번 째 구간의 교대 장소 200 m 가량 앞에서 발생했다. 다른 선수들과 섞여서 달리던 '이이다 레에' 선수(이와타니 산업 소속)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발에 부상을 입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이다 선수는 두 손과 맨 무릎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고통을 참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나갔다. 두 무릎은 금새 피투성이가 됐다. 교대 지점에서 기다리는 동료 선수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눈물을 닦는 모습이 중계 영상에 포착됐다.


이이다 선수는 바통 역할을 하는 어깨띠를 넘겨 준 뒤,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됐다. 진단 결과 오른쪽 발은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전치 3∼4개월의 중상이었다.

큰 부상, 그러나 경기는 계속됐다

이이다 선수의 몸 상태는 상식을 초월한 정신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가, 선수 보호가 먼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감시차량으로 심판이 동행하고 있었지만,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주최 측이 부상선수의 경기를 중단시키고 즉시 의료진을 투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경기 당시 현장에서도 '힘내라'고 응원하는 목소리와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혼재했다고 한다. 대회를 주관한 후쿠오카 육상경기협회 측에 따라면 심판이 부상 선수에게 말을 걸자, '앞으로 몇 미터 남았나'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소속팀인 이와타니 산업 측은 "상황을 알고 곧바로 기권 의사를 밝혔지만, (경기가) 중단되지 않았다. 우리로서도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실업단 육상경기연합에 따르면, 이와타니 산업의 히로세 감독이 기권 의사를 대회 주최 측에 전달해지만, 현장에서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소속팀 의사가 전달됐을 때는 이이다 선수가 교대 지점 20 m 앞까지 접근해 있었고, 본인이 레이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 중단시킬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상투혼'을 권하는 사회?...한계는 있어야

피를 흘리고 붕대를 칭칭 감고 고통을 참으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미덕으로 여겨진다.

일단 경기에 임한 선수는 웬만한 부상에도 경기를 포기할 수 없다. 고된 훈련의 기억, 자신과의 약속, 동료에 대한 책임감, 사회의 기대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부상투혼에도 한계는 있어야 한다. 본인이 제어 혹은 결단할 상황이 아니면, 소속 팀과 대회 주최 측이 책임감을 갖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부상투혼보다는 선수보호가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부상투혼'파문은 일본 스포츠계에도 적지 않은 과제를 던졌다. 육상경기연합 측은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원할하게 연락이 이뤄지도록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대응 매뉴얼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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