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미국도 협조 ‘난색’, 타라와의 징용자 유해는 누가 찾아오나?

입력 2018.10.31 (17:00) 수정 2018.10.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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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와 전투(Battle of Tarawa) 들어보셨어요?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 일본군 수천 명이 숨졌는데,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도 엄청나게 끌려가 총알받이로 숨졌대요.”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진주현(미국명 제니 진) 박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한미 안보 포럼' 한국 측 언론 대표단을 만난 진 박사가 '타라와 전투'와 관련된 미국 정부의 유해발굴 사업을 설명하면서 갑자기 그곳에 함께 묻혀있는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 문제를 꺼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일본의 NGO 단체도 타라와에서 유골을 수습하는 대로 화장 처리를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귀띔이었다.

해외에 묻혀있는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가 자칫 고국에 돌아올 기회를 얻기도 전에 아예 소실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최근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미국 DPAA에 공동 발굴 참여 등 협조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일단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타라와 전투 당시 미군 모습(1943년 11월, 출처:미국 AP통신/미 해병대)타라와 전투 당시 미군 모습(1943년 11월, 출처:미국 AP통신/미 해병대)

■최악의 격전지 '타라와 전투'..."한국인 징용자도 천여 명 숨져"

친가, 외가 조부모가 모두 실향민인 진주현 박사는 지난 7월 말 북한 원산에서 직접 미군 유해를 송환하고 돌아와 화제가 됐던 인물로, 현재 DPAA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한 미군 유해의 신원확인 작업(K-208 프로젝트)을 이끌고 있다.

이런 진 박사가 타라와 섬에 끌려가 숨진 우리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

지금은 키리바시 공화국의 수도가 된 타라와는 태평양 중서부의 작은 산호초 섬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피해가 가장 컸던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다.

1943년 11월 20일, 미군은 타라와 섬 점령을 위해 해병대 만8천 명 등 5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는 초대형 상륙작전을 벌였지만,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최악의 피해를 보고 만다.

병력 규모로만 보면 불과 몇 시간이면 끝났어야 할 전투인데도 양측의 교전은 나흘간이나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무려 미군 1,696명이 전사하고 2,296명이 부상했다. 미군 측 자료를 보면 일본군 역시 3천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양측의 피해가 커진 데는 조수 간만의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덤벼든 미군의 작전 실패도 한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 일본군이 섬 전역을 콘크리트 요새로 만들어 결사항전으로 맞선 게 결정적이었다.

타라와 섬으로 끌려가 부상당한 한국인 강제징용자 모습(행정안전부 제공)타라와 섬으로 끌려가 부상당한 한국인 강제징용자 모습(행정안전부 제공)

특히 일본군은 미군 상륙에 앞서 한국인 징용자 천2백여 명을 타라와 섬으로 끌고 와 요새를 구축하는 한편, 전투 과정에서는 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몬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전투가 끝난 뒤 미군에 포로로 붙잡힌 한국인이 겨우 169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대부분 강제징용자는 전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DPAA 측은 타라와 전투 과정에서 "대략 천 명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숨졌다"면서, 상당수의 유해가 폭탄 투하 지역이나 요새에 묻혀있으며 때때로 미군 유해와 뒤섞여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DPAA(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3층 복도에 걸린 타라와 전투 미군 실종자 사진DPAA(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3층 복도에 걸린 타라와 전투 미군 실종자 사진

■끝나지 않은 '타라와 전투'의 비극..미국·일본, 유해 발굴에 박차

진주현 박사의 연구실이 있는 DPAA 건물 3층에는 타라와 전투와 관련해 미군 실종자들의 사진이 벽면 양쪽에 걸려있다.

한쪽에는 유해가 수습돼 신원이 확인된 미군들, 맞은 편에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미군 실종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미확인 실종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전과 관련된 미군 유해 발굴만큼이나 최근 DPAA가 가장 공을 들이는 지역 중 한 곳이 타라와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도록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타라와 현지에 대한 조사와 발굴 작업을 지금도 병행하고 있고, 기존에 발굴한 유해에 대해서도 최첨단 DNA 감식 기법을 동원해 추가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DPAA는 2015년 미국의 자선단체와 함께 타라와 베티오 지역에서 36구의 해병대 유해를 추가 수습했고, 2016년 10월부터는 하와이 '펀치볼'(태평양 국립묘지)에 무명용사로 묻혀있던 타라와 전투 관련 미군 유해 94구를 다시 발굴해 추가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2016년 '전몰자 유골수습법'으로 불리는 특별법을 만들어 해외에 묻혀있는 일본군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사단법인 일본 군몰자 유골수집 추진협회'라는 특수법인을 내세워 팔라우를 비롯해 마리아나 뉴기니아 등 태평양 섬에서 대거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데 상당수 지역이 우리 강제징용자들이 희생된 곳과 겹친다.

진주현 박사는 "일본 단체는 유해를 수습하는 대로 화장 처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징용자들의 유해가 그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통상적으로 치아만 남긴 채 유골을 화장한 뒤 합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데, 이럴 경우 자칫 우리는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를 찾을 기회가 아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진주현 박사 "DPAA 역할은 미군 실종자 찾는 것으로 끝나"...한국 협조 요청에 '난색'

이런 상황은 지난달 한국군 유해 64위를 봉환하기 위해 하와이에 들른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우리 정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미국 DPAA와 일본, 키리바시 공화국에 각각 공문을 발송해 '타라와 전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과 관련한 협조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 정부에는 유해 발굴 과정에서 아시아계 유해가 나올 경우 모두 일본에 인계하는 행위를 재고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필요할 경우 타라와 유해 발굴 현장에 동행할 의향이 있다는 제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미국 DPAA는 이 같은 우리 정부의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하며 '수용 불가'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주현 박사는 KBS와 가진 이메일 접촉에서 "요즘 한국 정부에서도 계속해서 저희(DPAA)를 통해서 태평양 섬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건 곤란하다는 게 저희의 공식 입장"이라면서 "DPAA 업무는 미군 실종자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 아시아계 유해 중에 한국인 강제징용자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 측에 전달하는 것에서 끝난다"고 밝혔다.

미국 DPAA의 기본 임무는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이고, 설령 한국인들의 유해가 함께 발견되더라도 이를 넘겨주는 것은 미국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군 유해와 섞여 발굴되는 한국군 유해와 달리 당시 강제 징용자들의 신분이 민간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거라는 추정이다.

진 박사는 특히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문제는 "타라와 뿐만 아니라 태평양 섬 각지에서 활동 중인 일본 NGO를 한국 측이 직접 접촉해서 그쪽과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미군이 아닌 유해는 현지에서 일본인이나 현지인에게 넘기는 만큼 그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유해는 그쪽과 접촉해 해결하는 게 맞다"고 선을 그었다.

현실적으로 미국 정부가 나서서 타라와 등 태평양 섬에서의 한국인 징용자 유골 발굴 문제에 협조할 가능성이 적은 만큼, 이후 해법은 한국 정부가 찾아 나서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강제 징용자 유해 발굴, 한국 정부 역할은 어디에?

문제는 한일관계 경색으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마저 공동 발굴 등에 난색을 보일 경우 강제 징용자의 유해 발굴 문제는 현실적으로 뾰족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반환 문제는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며 실제로 423위가 봉환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2010년 이후엔 사실상 반환이 중단된 상태다.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군인과 군속 피해자 유해는 돌려주면서도 노무자들은 책임을 회피해 반환을 거부했고, 이후엔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사실상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총리실 산하에 설치됐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마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31일 해체돼 해당 업무가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면서 그 역할이 많이 축소됐다.

일제 강점기 오키나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등에 끌려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강제징용 희생자는 군인·군속 2만2천 명, 노무자 만5천 명 등 최소 8만여 명에 이를 거라는 게 학계의 추정이다.

태평양 전쟁 지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유해 발굴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송환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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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10-31 21: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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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와 전투(Battle of Tarawa) 들어보셨어요?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 일본군 수천 명이 숨졌는데,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도 엄청나게 끌려가 총알받이로 숨졌대요.”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진주현(미국명 제니 진) 박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한미 안보 포럼' 한국 측 언론 대표단을 만난 진 박사가 '타라와 전투'와 관련된 미국 정부의 유해발굴 사업을 설명하면서 갑자기 그곳에 함께 묻혀있는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 문제를 꺼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일본의 NGO 단체도 타라와에서 유골을 수습하는 대로 화장 처리를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귀띔이었다.

해외에 묻혀있는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가 자칫 고국에 돌아올 기회를 얻기도 전에 아예 소실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최근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미국 DPAA에 공동 발굴 참여 등 협조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일단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타라와 전투 당시 미군 모습(1943년 11월, 출처:미국 AP통신/미 해병대)
■최악의 격전지 '타라와 전투'..."한국인 징용자도 천여 명 숨져"

친가, 외가 조부모가 모두 실향민인 진주현 박사는 지난 7월 말 북한 원산에서 직접 미군 유해를 송환하고 돌아와 화제가 됐던 인물로, 현재 DPAA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한 미군 유해의 신원확인 작업(K-208 프로젝트)을 이끌고 있다.

이런 진 박사가 타라와 섬에 끌려가 숨진 우리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

지금은 키리바시 공화국의 수도가 된 타라와는 태평양 중서부의 작은 산호초 섬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피해가 가장 컸던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다.

1943년 11월 20일, 미군은 타라와 섬 점령을 위해 해병대 만8천 명 등 5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는 초대형 상륙작전을 벌였지만,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최악의 피해를 보고 만다.

병력 규모로만 보면 불과 몇 시간이면 끝났어야 할 전투인데도 양측의 교전은 나흘간이나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무려 미군 1,696명이 전사하고 2,296명이 부상했다. 미군 측 자료를 보면 일본군 역시 3천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양측의 피해가 커진 데는 조수 간만의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덤벼든 미군의 작전 실패도 한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 일본군이 섬 전역을 콘크리트 요새로 만들어 결사항전으로 맞선 게 결정적이었다.

타라와 섬으로 끌려가 부상당한 한국인 강제징용자 모습(행정안전부 제공)
특히 일본군은 미군 상륙에 앞서 한국인 징용자 천2백여 명을 타라와 섬으로 끌고 와 요새를 구축하는 한편, 전투 과정에서는 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몬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전투가 끝난 뒤 미군에 포로로 붙잡힌 한국인이 겨우 169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대부분 강제징용자는 전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DPAA 측은 타라와 전투 과정에서 "대략 천 명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숨졌다"면서, 상당수의 유해가 폭탄 투하 지역이나 요새에 묻혀있으며 때때로 미군 유해와 뒤섞여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DPAA(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3층 복도에 걸린 타라와 전투 미군 실종자 사진
■끝나지 않은 '타라와 전투'의 비극..미국·일본, 유해 발굴에 박차

진주현 박사의 연구실이 있는 DPAA 건물 3층에는 타라와 전투와 관련해 미군 실종자들의 사진이 벽면 양쪽에 걸려있다.

한쪽에는 유해가 수습돼 신원이 확인된 미군들, 맞은 편에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미군 실종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미확인 실종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전과 관련된 미군 유해 발굴만큼이나 최근 DPAA가 가장 공을 들이는 지역 중 한 곳이 타라와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도록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타라와 현지에 대한 조사와 발굴 작업을 지금도 병행하고 있고, 기존에 발굴한 유해에 대해서도 최첨단 DNA 감식 기법을 동원해 추가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DPAA는 2015년 미국의 자선단체와 함께 타라와 베티오 지역에서 36구의 해병대 유해를 추가 수습했고, 2016년 10월부터는 하와이 '펀치볼'(태평양 국립묘지)에 무명용사로 묻혀있던 타라와 전투 관련 미군 유해 94구를 다시 발굴해 추가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2016년 '전몰자 유골수습법'으로 불리는 특별법을 만들어 해외에 묻혀있는 일본군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사단법인 일본 군몰자 유골수집 추진협회'라는 특수법인을 내세워 팔라우를 비롯해 마리아나 뉴기니아 등 태평양 섬에서 대거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데 상당수 지역이 우리 강제징용자들이 희생된 곳과 겹친다.

진주현 박사는 "일본 단체는 유해를 수습하는 대로 화장 처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징용자들의 유해가 그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통상적으로 치아만 남긴 채 유골을 화장한 뒤 합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데, 이럴 경우 자칫 우리는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를 찾을 기회가 아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진주현 박사 "DPAA 역할은 미군 실종자 찾는 것으로 끝나"...한국 협조 요청에 '난색'

이런 상황은 지난달 한국군 유해 64위를 봉환하기 위해 하와이에 들른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우리 정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미국 DPAA와 일본, 키리바시 공화국에 각각 공문을 발송해 '타라와 전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과 관련한 협조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 정부에는 유해 발굴 과정에서 아시아계 유해가 나올 경우 모두 일본에 인계하는 행위를 재고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필요할 경우 타라와 유해 발굴 현장에 동행할 의향이 있다는 제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미국 DPAA는 이 같은 우리 정부의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하며 '수용 불가'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주현 박사는 KBS와 가진 이메일 접촉에서 "요즘 한국 정부에서도 계속해서 저희(DPAA)를 통해서 태평양 섬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건 곤란하다는 게 저희의 공식 입장"이라면서 "DPAA 업무는 미군 실종자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 아시아계 유해 중에 한국인 강제징용자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 측에 전달하는 것에서 끝난다"고 밝혔다.

미국 DPAA의 기본 임무는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이고, 설령 한국인들의 유해가 함께 발견되더라도 이를 넘겨주는 것은 미국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군 유해와 섞여 발굴되는 한국군 유해와 달리 당시 강제 징용자들의 신분이 민간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거라는 추정이다.

진 박사는 특히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문제는 "타라와 뿐만 아니라 태평양 섬 각지에서 활동 중인 일본 NGO를 한국 측이 직접 접촉해서 그쪽과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미군이 아닌 유해는 현지에서 일본인이나 현지인에게 넘기는 만큼 그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유해는 그쪽과 접촉해 해결하는 게 맞다"고 선을 그었다.

현실적으로 미국 정부가 나서서 타라와 등 태평양 섬에서의 한국인 징용자 유골 발굴 문제에 협조할 가능성이 적은 만큼, 이후 해법은 한국 정부가 찾아 나서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강제 징용자 유해 발굴, 한국 정부 역할은 어디에?

문제는 한일관계 경색으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마저 공동 발굴 등에 난색을 보일 경우 강제 징용자의 유해 발굴 문제는 현실적으로 뾰족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반환 문제는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며 실제로 423위가 봉환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2010년 이후엔 사실상 반환이 중단된 상태다.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군인과 군속 피해자 유해는 돌려주면서도 노무자들은 책임을 회피해 반환을 거부했고, 이후엔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사실상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총리실 산하에 설치됐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마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31일 해체돼 해당 업무가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면서 그 역할이 많이 축소됐다.

일제 강점기 오키나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등에 끌려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강제징용 희생자는 군인·군속 2만2천 명, 노무자 만5천 명 등 최소 8만여 명에 이를 거라는 게 학계의 추정이다.

태평양 전쟁 지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유해 발굴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 발굴·송환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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