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유해 반환 요구’ 없었다며 한국 탓…외교부 나서야

입력 2018.11.04 (18:03) 수정 2018.11.04 (22:3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해외에서 숨진 뒤 돌아오지 못한 우리 징병·징용 희생자들은 얼마나 될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명부를 통해 인정한 수는 2만 2천 명 정도 된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숨졌다고 확인된 경우이고, 실종자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는 공식 사망자의 몇 배를 넘길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 열사의 남국에서,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북구에서 숨져간 우리 할아버지들이지만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오기는 험난하기만 하다. 일본은 손을 빼고, 한국은 적극적이지 못한 탓이다.

일본인만 수습…한국인은 알고도 방치

2015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유가족 단체 등의 질의에 보낸 답변을 보면 전후 유해 수습에서의 일본의 태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 제공한 억류 중 사망자 자료에는 매장지별로 매장 연도와 매장자의 이름 등이 기재되어 있어, 그 가운데에는 한반도 출신자라고 여겨지는 자료도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은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DNA 검사대상물도 채취하지 않았음"

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구소련의 극동 지역에서 전투를 치르던 상당수의 일본군이 소련에 억류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들이 현지에서 숨졌을 경우 개인 기록과 함께 매장했는데, 이를 이후 일본 정부가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유골은 배제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일본군으로 끌려가 희생됐지만, 현재 수습 대상은 '일본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내버려뒀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본은 해외에서 자국민이 아닌 타국민(한국이 대부분)의 유해를 파악할 경우, 발굴 현장이 있는 현지국에만 통보하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에게 유해 정보를 통보한 사실이 없다.

[연관기사] [단독] 日, 한국인 유해 ‘의도적 방치’…우리 정부는 ‘나 몰라라’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며 빠져나가는 일본

희생된 한국인 유해를 수습하지도 않고, 또 이후 오키나와나 해외에서 수습한 유해의 DNA 조사에서 한국인 유족을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후생노동성은 2016년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명답(?)을 내놓는다.


명답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후 일본이 이와 관련된 각종 비판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유가족 질의에 대한 후생노동성의 답변

"지난해 12월 한국 행정안전부 직원이 후생노동성을 방문해... DNA 감정 실시 상황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한국 측으로부터는 한국 내에서 DNA 감정을 위한 준비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또 한국 측으로부터 한일 양국이 협력해 유골 수습을 추진해나가고 싶은 만큼, 이후 유골 수습에 관련된 기본 계획에 변경이 있을 경우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한국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나서라는 일본

위 내용만 봐서는 한일 정부가 충실히 관련 협의를 진행해 나가는 모양새인 듯한데, 정작 문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장래 전몰자 유골 수습 등에 있어서 한국과 어느 정도 협력해 나갈 것인가는 외교 문제에 관련된 것인 만큼, 먼저 한국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후에 일본 정부로서...."

즉 실무 협의는 했지만 이를 국가 간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공식화할 수는 없고 이를 위해서는 외교 채널을 통한 명확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이 말하는 외교 채널은 한국 외교부가 나서서 이를 협의하고 양국 간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할지를 '협정'을 통해 못 박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한국인 유가족을 도와 이 문제를 놓고 계속 일본 정부를 압박해온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에 연락회' 우에다 씨의 말도 외교부 책임론에 이른다.

"한국의 외교부, 또는 대통령이 일본에 유골 반환 문제를 제안하고 협정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일본에게 우리는 하고 싶은데 한국이 하지 않는다는 구실만 주게 될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 자세를 촉구하는 우에다 씨(우)한국 정부의 적극적 자세를 촉구하는 우에다 씨(우)

일, 미국과는 협정 맺고 상호 유해 반환

일본은 2016년 아베 총리의 하와이 진주만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는 상호 간에 유해 반환에 대한 협정을 맺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최초로 오키나와에서 수습된 미군 유해 2구가 미국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미국은 또 반대로 남태평양 등 태평양 전쟁 격전지에서 수습된 유해가 아시아계일 경우 이를 일본으로 보내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그 속에는 한국인 유해가 같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관기사]
[단독] 강제징용자 발굴 유해, 한국 아닌 일본에 넘어간다
[단독] 한국인 유해, 日에 인계되면 ‘무명 묘역 매장 처리’

일본 후생노동성에는 모두 1만 8천구에 달하는 해외 수습 유해가 보관돼 있다. 모두 DNA 감정을 위해 보관되고 있는 유골들이다. 기본은 유족과의 대조 감정이지만, 최근에는 감정 기술의 발달로 유족 대조 없이도 유골 자체에 대한 DNA 감정만으로 출신 지역이나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DNA 감정을 통해 한반도 출신 유해를 가려낼 수 있다는 의미다.

유족이 끝까지 판명되지 않을 경우 이 유골들은 일본의 국립묘지인 '무명 전몰자 묘역'에 모셔지게 된다. 이미 37만 명의 유골이 있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한반도 출신의 유해가 옮겨졌을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다.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군과 함께 잠들어야 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역사 문제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한일 양국 간의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본은 '피해자 입장'에서 풀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누구도 반론하지 못할 듯하다. 징병·징용자유해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부분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日, ‘유해 반환 요구’ 없었다며 한국 탓…외교부 나서야
    • 입력 2018-11-04 18:03:05
    • 수정2018-11-04 22:35:04
    특파원 리포트
2차 세계 대전 중 해외에서 숨진 뒤 돌아오지 못한 우리 징병·징용 희생자들은 얼마나 될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명부를 통해 인정한 수는 2만 2천 명 정도 된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숨졌다고 확인된 경우이고, 실종자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는 공식 사망자의 몇 배를 넘길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 열사의 남국에서,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북구에서 숨져간 우리 할아버지들이지만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오기는 험난하기만 하다. 일본은 손을 빼고, 한국은 적극적이지 못한 탓이다.

일본인만 수습…한국인은 알고도 방치

2015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유가족 단체 등의 질의에 보낸 답변을 보면 전후 유해 수습에서의 일본의 태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 제공한 억류 중 사망자 자료에는 매장지별로 매장 연도와 매장자의 이름 등이 기재되어 있어, 그 가운데에는 한반도 출신자라고 여겨지는 자료도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은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DNA 검사대상물도 채취하지 않았음"

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구소련의 극동 지역에서 전투를 치르던 상당수의 일본군이 소련에 억류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들이 현지에서 숨졌을 경우 개인 기록과 함께 매장했는데, 이를 이후 일본 정부가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유골은 배제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일본군으로 끌려가 희생됐지만, 현재 수습 대상은 '일본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내버려뒀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본은 해외에서 자국민이 아닌 타국민(한국이 대부분)의 유해를 파악할 경우, 발굴 현장이 있는 현지국에만 통보하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에게 유해 정보를 통보한 사실이 없다.

[연관기사] [단독] 日, 한국인 유해 ‘의도적 방치’…우리 정부는 ‘나 몰라라’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며 빠져나가는 일본

희생된 한국인 유해를 수습하지도 않고, 또 이후 오키나와나 해외에서 수습한 유해의 DNA 조사에서 한국인 유족을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후생노동성은 2016년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명답(?)을 내놓는다.


명답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후 일본이 이와 관련된 각종 비판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유가족 질의에 대한 후생노동성의 답변

"지난해 12월 한국 행정안전부 직원이 후생노동성을 방문해... DNA 감정 실시 상황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한국 측으로부터는 한국 내에서 DNA 감정을 위한 준비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또 한국 측으로부터 한일 양국이 협력해 유골 수습을 추진해나가고 싶은 만큼, 이후 유골 수습에 관련된 기본 계획에 변경이 있을 경우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한국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나서라는 일본

위 내용만 봐서는 한일 정부가 충실히 관련 협의를 진행해 나가는 모양새인 듯한데, 정작 문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장래 전몰자 유골 수습 등에 있어서 한국과 어느 정도 협력해 나갈 것인가는 외교 문제에 관련된 것인 만큼, 먼저 한국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후에 일본 정부로서...."

즉 실무 협의는 했지만 이를 국가 간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공식화할 수는 없고 이를 위해서는 외교 채널을 통한 명확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이 말하는 외교 채널은 한국 외교부가 나서서 이를 협의하고 양국 간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할지를 '협정'을 통해 못 박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한국인 유가족을 도와 이 문제를 놓고 계속 일본 정부를 압박해온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에 연락회' 우에다 씨의 말도 외교부 책임론에 이른다.

"한국의 외교부, 또는 대통령이 일본에 유골 반환 문제를 제안하고 협정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일본에게 우리는 하고 싶은데 한국이 하지 않는다는 구실만 주게 될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 자세를 촉구하는 우에다 씨(우)
일, 미국과는 협정 맺고 상호 유해 반환

일본은 2016년 아베 총리의 하와이 진주만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는 상호 간에 유해 반환에 대한 협정을 맺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최초로 오키나와에서 수습된 미군 유해 2구가 미국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미국은 또 반대로 남태평양 등 태평양 전쟁 격전지에서 수습된 유해가 아시아계일 경우 이를 일본으로 보내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그 속에는 한국인 유해가 같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관기사]
[단독] 강제징용자 발굴 유해, 한국 아닌 일본에 넘어간다
[단독] 한국인 유해, 日에 인계되면 ‘무명 묘역 매장 처리’

일본 후생노동성에는 모두 1만 8천구에 달하는 해외 수습 유해가 보관돼 있다. 모두 DNA 감정을 위해 보관되고 있는 유골들이다. 기본은 유족과의 대조 감정이지만, 최근에는 감정 기술의 발달로 유족 대조 없이도 유골 자체에 대한 DNA 감정만으로 출신 지역이나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DNA 감정을 통해 한반도 출신 유해를 가려낼 수 있다는 의미다.

유족이 끝까지 판명되지 않을 경우 이 유골들은 일본의 국립묘지인 '무명 전몰자 묘역'에 모셔지게 된다. 이미 37만 명의 유골이 있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한반도 출신의 유해가 옮겨졌을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다.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군과 함께 잠들어야 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역사 문제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한일 양국 간의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본은 '피해자 입장'에서 풀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누구도 반론하지 못할 듯하다. 징병·징용자유해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부분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