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북 제재 때문에 남측이 뭘 할 수 있습니까?”

입력 2018.11.06 (07:01) 수정 2018.11.0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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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온 10년...짧지만 짙은 만남

지난 3일, 10년 만에 남북 민화협 회원들이 만났습니다. 장소는 금강산이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아닌, 대규모 민간 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린 것도 10년 만입니다.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김홍걸) 회원 250여 명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회장 김영대) 회원 100여 명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달라진 남북 관계를 반영하듯, 1박2일의 상봉 행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북측 회원들은 남측 인사들에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 새벽 일찍 출발해 오느라 힘들지 않은지 등을 물어가며 정성껏 대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첫번째 순서인 남북 민화협 전체 상봉에서 양측은 "판문점선언, 평양정상선언 정신에 맞게 민간 영역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축하 공연을 위해 평양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는 '통일음악단'은 1시간 가량 신명나는 음악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공연장의 열기는 10년의 공백기를 단숨에 뛰어 넘을 기세였습니다.


"대북 제재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나?"

하지만, 부문별 분과 회의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종교, 노동, 여성, 농업, 청년학생, 교육 등 6개 분야로 남북 대표단이 만나 향후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남측 인사들이 구체적인 교류 사업을 제안했지만, 북측 인사들은 대부분 "대북 제재 때문에 남측이 뭘 할 수 있느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노동 분과에서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자주 만나면 통일이 성큼 다가온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주 만나 통일의 염원을 만들어가길 바란다"며 행사 취지에 맞춰 모두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북측 조선 경공업 및 화학 직업동맹의 한국철 통일부위원장은 "제재는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외세가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뤄 강대해 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라며 "남북이 마주 앉아 민족, 집안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농업 분과의 북측 대표단은 "남북이 철도 도로, 산림 협력을 약속했지만, 어느 하나 전진 못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정상 선언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제재를 뚫을 계획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여성 분과에서는 남측이 남북 여성들이 함께하는 김치 페스티벌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에서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며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대규모 민간 행사가 재개됐다는 자체로는 의미가 큰 행사였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대북제재 벽에 또다시 막히다...접점 찾을까?

이튿날인 4일 오전, 남북은 함께 해금강의 삼일포 일대를 걸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남북 회원들이 한데 뒤섞여 서로 스스럼 없이 말을 섞었습니다. 남북의 카운터파트들끼리 진지하게 앞으로의 교류 협력 방안을 의논하기도 했고, 평소에 주로 어떤 운동을 하는지 소소한 잡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속에서 누가 남인지 누가 북인지 구분조차 어려웠습니다.

정부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기대에 부풀었던 남측 민간 단체들. 북측의 환대와 싸늘한 반응이 공존했던 1박2일 동안 휴전선보다 높은 대북제재의 벽을 또다시 실감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성과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만나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입니다. 대북제재라는 현실 속에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틀 방법을 찾는 일도 이제 비로소 진짜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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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6 07:01:32
    • 수정2018-11-06 07:09:54
    취재후·사건후
돌고 돌아온 10년...짧지만 짙은 만남

지난 3일, 10년 만에 남북 민화협 회원들이 만났습니다. 장소는 금강산이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아닌, 대규모 민간 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린 것도 10년 만입니다.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김홍걸) 회원 250여 명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회장 김영대) 회원 100여 명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달라진 남북 관계를 반영하듯, 1박2일의 상봉 행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북측 회원들은 남측 인사들에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 새벽 일찍 출발해 오느라 힘들지 않은지 등을 물어가며 정성껏 대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첫번째 순서인 남북 민화협 전체 상봉에서 양측은 "판문점선언, 평양정상선언 정신에 맞게 민간 영역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축하 공연을 위해 평양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는 '통일음악단'은 1시간 가량 신명나는 음악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공연장의 열기는 10년의 공백기를 단숨에 뛰어 넘을 기세였습니다.


"대북 제재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나?"

하지만, 부문별 분과 회의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종교, 노동, 여성, 농업, 청년학생, 교육 등 6개 분야로 남북 대표단이 만나 향후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남측 인사들이 구체적인 교류 사업을 제안했지만, 북측 인사들은 대부분 "대북 제재 때문에 남측이 뭘 할 수 있느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노동 분과에서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자주 만나면 통일이 성큼 다가온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주 만나 통일의 염원을 만들어가길 바란다"며 행사 취지에 맞춰 모두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북측 조선 경공업 및 화학 직업동맹의 한국철 통일부위원장은 "제재는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외세가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뤄 강대해 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라며 "남북이 마주 앉아 민족, 집안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농업 분과의 북측 대표단은 "남북이 철도 도로, 산림 협력을 약속했지만, 어느 하나 전진 못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정상 선언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제재를 뚫을 계획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여성 분과에서는 남측이 남북 여성들이 함께하는 김치 페스티벌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에서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며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대규모 민간 행사가 재개됐다는 자체로는 의미가 큰 행사였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대북제재 벽에 또다시 막히다...접점 찾을까?

이튿날인 4일 오전, 남북은 함께 해금강의 삼일포 일대를 걸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남북 회원들이 한데 뒤섞여 서로 스스럼 없이 말을 섞었습니다. 남북의 카운터파트들끼리 진지하게 앞으로의 교류 협력 방안을 의논하기도 했고, 평소에 주로 어떤 운동을 하는지 소소한 잡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속에서 누가 남인지 누가 북인지 구분조차 어려웠습니다.

정부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기대에 부풀었던 남측 민간 단체들. 북측의 환대와 싸늘한 반응이 공존했던 1박2일 동안 휴전선보다 높은 대북제재의 벽을 또다시 실감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성과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만나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입니다. 대북제재라는 현실 속에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틀 방법을 찾는 일도 이제 비로소 진짜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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