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내 아이 맞아? 너도 밉고” 양육비 안 주는 핑계도 가지가지

입력 2018.11.07 (07:05) 수정 2018.11.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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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빠를 찾습니다”

“기자님, 저 오늘 전단지 뿌리러 강원도 가요.”
“네? 무슨 전단지요?”
“아이 아빠 얼굴 대문짝만하게 박힌 전단지 4천 장 주문했거든요. 강원도 가서 다 뿌리고 오려고요.”

지난 토요일 새벽, 결의에 찬 정하얀 씨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23살에 이혼을 한 뒤 양육비를 받아내려고 싸워온 시간만 5년. 하얀 씨는 급기야 손수 전단지까지 제작했습니다.

전 남편 A 씨가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을 찾아 식당과 가게, 터미널을 누볐다고 합니다. 전봇대나 나무가 보일 때마다 닥치는 대로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 게 하얀 씨의 목표였습니다.

주민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맞을 각오’까지 하고 찾아간 건데, 다들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아이고, 참 못됐네, 못됐어. 고생이 많네.”
“그놈 보면 내가 꼭 전해줄게. 울지 말고 기운 내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전남편의 어머니와 외숙모도 만났습니다. 외숙모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어머니는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얀 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지만, 함께 간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나서서 싸워줬습니다. 뭐가 그렇게 떳떳하냐고, 한 달에 50만 원 양육비도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일요일 저녁, 서울로 돌아온 하얀 씨를 만났습니다. 혼자 갔다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같이 간 언니들이 도와줘서 다행이라며, 하얀 씨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 이번 주 토요일에도 또 내려갈 거예요. 그땐 양구에 5일장이 열리는데 거기서 전단지도 나눠주고 서명도 받으려고요. 동네 사람들 다 알게 해야죠. 고소요? 제발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하얀 씨가 이렇게 전단지를 들고 ‘원정’까지 떠나게 된 이유, 바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이 아빠 때문입니다. 대체 아빠들은 왜 양육비를 안 주는 걸까요?

◆흔한 핑계 1: “내 애가 아니라서 못 줘”

“하다하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네요. 친자 검사라도 해서 제 아이 명예 찾아줘야겠습니다. 어디 당당히 나와서 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얼마 전 양육비 해결모임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이렇게 ‘내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혼을 하고 양육비 지급 판결까지 내려졌는데도, 끝까지 친자확인부터 해야 한다고 우기는 거죠. 백번 양보해서 병원에 같이 가서 확인하자고 하면 또 대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엄마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아빠들의 전형적인 핑계일 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또 네가 미우니 돈을 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들은 양육비 문제를 ‘헤어진 남녀 사이의 문제’ 또는 ‘개인 간의 채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부 사이에 남은 앙금이 아이에 대한 미움이나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양육비 미지급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특히 재혼해서 가정을 꾸린 경우, 새 배우자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는 건 결국 아이들입니다.

“저한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린다 해도 괜찮아요. 근데 우리 애 밥 먹을 돈은 줘야죠.”
“저랑 아이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대체 왜 저에 대한 감정이 아이한테까지 옮겨가는지 모르겠어요.”

◆흔한 핑계 2: “돈이 없어서 못 줘”

월요일 새벽, 하얀 씨가 문자 하나를 더 보내왔습니다.

“기자님, 저 찾았어요.”
“이번엔... 뭔가요?”
“통장 잔고... 엄청나요...”

 
'로또에 당첨돼 통장 잔고가 160억 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아이 아빠가 직접 온라인 카페에 캡처한 사진과 함께 자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진짜인지 허풍인지 확인은 되지않습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하얀 씨는 정말로 이렇게 큰돈을 갖고 있으면서 양육비를 한 푼 주지 않았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설사 이 잔고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소득과 재산정보를 조회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는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살지 않고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는데, 정보 공개에 순순히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겠죠. 실제로 지난 9월 기준으로 양육비 채무자가 주소소득, 재산 조사에 동의한 경우는 단 5%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지난 9월 28일부터 한시적 양육비 긴급 지원자의 경우 동의가 없어도 상대방 재산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한시적 양육비 긴급 지원자’로 인정받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정한 소득과 재산 기준을 맞춰야 하고, 수업료나 급식비를 내지 못했거나 공과금이 두 달 이상 밀리는 등 가계가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을 받은 건 3년간 208가구에 불과합니다. 총 15,958건이 접수된 걸 생각하면 극히 일부죠.

게다가 이마저도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산을 숨긴다면 제대로 조사할 수 없습니다. 아빠들이 양육비 지급 의무를 피해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셈입니다.

 
◆흔한 핑계 3: “뚜- 뚜- 뚜-”

이 모든 걸 다 뛰어넘는 상상 이상의 아빠들이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도록 꼭꼭 숨어버린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소해주면 차라리 고맙죠. 제발 어디서 나타나 줬으면 좋겠어요.”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사는 아빠는 굉장히 친절한 거예요. 배려심이 넘치네요.”

연락할 방법도, 찾아낼 방법도 없으니 양육비를 받아낼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법원이 사건 진행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도 모조리 송달이 안 되는 거죠. 주소지를 다시 확인하는 ‘주소보정’ 과정을 거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니, 사건 진행이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워낙 이런 아빠들이 많아서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를 최대 30일 동안 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감치제도'가 있는데 유명무실합니다.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이행명령'을 3개월 동안 어길 경우 법원을 통해 감치 명령을 받아낼 수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시도조차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현장기동반’을 꾸려 직접 탐문조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옆집 주민한테도 물어보고, 거주지 주변에서 잠복도 해가며 정말 여기 살지 않는 게 맞는지 꼼꼼히 확인해보는 겁니다.

꽤 그럴듯한데, 이 현장기동반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놀랍게도 단 2명입니다. 그마저도 늘 현장에 나가 있는 직원들이 아니니,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듭니다. 실제로 현장기동반의 감치 성공 사례는 3년간 24건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한 명도 못 잡아낸 거죠.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현장 감치에 성공하기 위해선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현장기동반은 지역 경찰서의 형사들과 함께 현장을 찾게 되는데, 강제로 감치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경찰만 갖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각종 강력 사건들을 다루는 경찰 입장에선 양육비 분쟁을 ‘소꿉장난’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 출동을 재차 요구해도 미루고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죠.

감치 집행 유효기간은 딱 3개월인데, 그 안에 잡아내지 못하면 또 2~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심지어 감치에 성공하더라도, 아이 아빠가 30일을 묵묵히 버티면 그만입니다. 돈을 내는 것까지 강제하진 못한다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죠. 마음이 급한 엄마들 입장에선 속이 터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근데, 양육비 안 주는 엄마들도 있잖아”

맞습니다. 양육비 문제를 다룰 때마다 이런 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엄마들’도 분명 있을 텐데, 왜 자꾸 남성만의 문제로 몰아 가냐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 알아봤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조사한 결과, 2018년 9월 기준으로 접수된 양육비 사건 15,958건 중 여성이 접수한 게 13,711건(85.9%), 남성이 접수한 게 2247건(14.1%)이라고 합니다.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사람 중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피해자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 파더스(Bad Fathers)'에도 11월 6일 기준으로 아빠 168명, 엄마 13명이 올라와 있습니다. 전체의 7% 정도는 나쁜 엄마인 거죠. 양육비이행관리원 관계자는 “실제로 엄마들 중에도 악질 채무자가 정말 많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아이를 그대로 버려두는 무책임한 태도이지, 성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일하며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사건 진행 중 아이가 만 19세를 넘어 양육비 지급 의무가 사라졌을 때’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과거에 못 받은 양육비를 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지금 당장’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커가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5년 뒤, 10년 뒤에 법이 바뀌는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온 게 ‘양육비 대(代)지급제’입니다.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해주고 나중에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부모로부터 돈을 환수하는 제도죠.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이번 달 안에 양육비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고, 양육비 이행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건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취소나 정지, 여권 발급 제한 등입니다. 이번에는 엄마들이 정부의 발표를 보고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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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내 아이 맞아? 너도 밉고” 양육비 안 주는 핑계도 가지가지
    • 입력 2018-11-07 07:05:08
    • 수정2018-11-07 13:50:10
    취재후·사건후
◆“나쁜 아빠를 찾습니다”

“기자님, 저 오늘 전단지 뿌리러 강원도 가요.”
“네? 무슨 전단지요?”
“아이 아빠 얼굴 대문짝만하게 박힌 전단지 4천 장 주문했거든요. 강원도 가서 다 뿌리고 오려고요.”

지난 토요일 새벽, 결의에 찬 정하얀 씨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23살에 이혼을 한 뒤 양육비를 받아내려고 싸워온 시간만 5년. 하얀 씨는 급기야 손수 전단지까지 제작했습니다.

전 남편 A 씨가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을 찾아 식당과 가게, 터미널을 누볐다고 합니다. 전봇대나 나무가 보일 때마다 닥치는 대로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 게 하얀 씨의 목표였습니다.

주민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맞을 각오’까지 하고 찾아간 건데, 다들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아이고, 참 못됐네, 못됐어. 고생이 많네.”
“그놈 보면 내가 꼭 전해줄게. 울지 말고 기운 내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전남편의 어머니와 외숙모도 만났습니다. 외숙모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어머니는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얀 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지만, 함께 간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나서서 싸워줬습니다. 뭐가 그렇게 떳떳하냐고, 한 달에 50만 원 양육비도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일요일 저녁, 서울로 돌아온 하얀 씨를 만났습니다. 혼자 갔다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같이 간 언니들이 도와줘서 다행이라며, 하얀 씨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 이번 주 토요일에도 또 내려갈 거예요. 그땐 양구에 5일장이 열리는데 거기서 전단지도 나눠주고 서명도 받으려고요. 동네 사람들 다 알게 해야죠. 고소요? 제발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하얀 씨가 이렇게 전단지를 들고 ‘원정’까지 떠나게 된 이유, 바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이 아빠 때문입니다. 대체 아빠들은 왜 양육비를 안 주는 걸까요?

◆흔한 핑계 1: “내 애가 아니라서 못 줘”

“하다하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네요. 친자 검사라도 해서 제 아이 명예 찾아줘야겠습니다. 어디 당당히 나와서 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얼마 전 양육비 해결모임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이렇게 ‘내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혼을 하고 양육비 지급 판결까지 내려졌는데도, 끝까지 친자확인부터 해야 한다고 우기는 거죠. 백번 양보해서 병원에 같이 가서 확인하자고 하면 또 대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엄마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아빠들의 전형적인 핑계일 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또 네가 미우니 돈을 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들은 양육비 문제를 ‘헤어진 남녀 사이의 문제’ 또는 ‘개인 간의 채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부 사이에 남은 앙금이 아이에 대한 미움이나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양육비 미지급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특히 재혼해서 가정을 꾸린 경우, 새 배우자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는 건 결국 아이들입니다.

“저한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린다 해도 괜찮아요. 근데 우리 애 밥 먹을 돈은 줘야죠.”
“저랑 아이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대체 왜 저에 대한 감정이 아이한테까지 옮겨가는지 모르겠어요.”

◆흔한 핑계 2: “돈이 없어서 못 줘”

월요일 새벽, 하얀 씨가 문자 하나를 더 보내왔습니다.

“기자님, 저 찾았어요.”
“이번엔... 뭔가요?”
“통장 잔고... 엄청나요...”

 
'로또에 당첨돼 통장 잔고가 160억 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아이 아빠가 직접 온라인 카페에 캡처한 사진과 함께 자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진짜인지 허풍인지 확인은 되지않습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하얀 씨는 정말로 이렇게 큰돈을 갖고 있으면서 양육비를 한 푼 주지 않았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설사 이 잔고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소득과 재산정보를 조회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무자는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살지 않고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는데, 정보 공개에 순순히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겠죠. 실제로 지난 9월 기준으로 양육비 채무자가 주소소득, 재산 조사에 동의한 경우는 단 5%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지난 9월 28일부터 한시적 양육비 긴급 지원자의 경우 동의가 없어도 상대방 재산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한시적 양육비 긴급 지원자’로 인정받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정한 소득과 재산 기준을 맞춰야 하고, 수업료나 급식비를 내지 못했거나 공과금이 두 달 이상 밀리는 등 가계가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을 받은 건 3년간 208가구에 불과합니다. 총 15,958건이 접수된 걸 생각하면 극히 일부죠.

게다가 이마저도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산을 숨긴다면 제대로 조사할 수 없습니다. 아빠들이 양육비 지급 의무를 피해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셈입니다.

 
◆흔한 핑계 3: “뚜- 뚜- 뚜-”

이 모든 걸 다 뛰어넘는 상상 이상의 아빠들이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도록 꼭꼭 숨어버린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소해주면 차라리 고맙죠. 제발 어디서 나타나 줬으면 좋겠어요.”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사는 아빠는 굉장히 친절한 거예요. 배려심이 넘치네요.”

연락할 방법도, 찾아낼 방법도 없으니 양육비를 받아낼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법원이 사건 진행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도 모조리 송달이 안 되는 거죠. 주소지를 다시 확인하는 ‘주소보정’ 과정을 거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니, 사건 진행이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워낙 이런 아빠들이 많아서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를 최대 30일 동안 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감치제도'가 있는데 유명무실합니다.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이행명령'을 3개월 동안 어길 경우 법원을 통해 감치 명령을 받아낼 수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시도조차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현장기동반’을 꾸려 직접 탐문조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옆집 주민한테도 물어보고, 거주지 주변에서 잠복도 해가며 정말 여기 살지 않는 게 맞는지 꼼꼼히 확인해보는 겁니다.

꽤 그럴듯한데, 이 현장기동반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놀랍게도 단 2명입니다. 그마저도 늘 현장에 나가 있는 직원들이 아니니,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듭니다. 실제로 현장기동반의 감치 성공 사례는 3년간 24건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한 명도 못 잡아낸 거죠.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현장 감치에 성공하기 위해선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현장기동반은 지역 경찰서의 형사들과 함께 현장을 찾게 되는데, 강제로 감치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경찰만 갖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각종 강력 사건들을 다루는 경찰 입장에선 양육비 분쟁을 ‘소꿉장난’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 출동을 재차 요구해도 미루고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죠.

감치 집행 유효기간은 딱 3개월인데, 그 안에 잡아내지 못하면 또 2~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심지어 감치에 성공하더라도, 아이 아빠가 30일을 묵묵히 버티면 그만입니다. 돈을 내는 것까지 강제하진 못한다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죠. 마음이 급한 엄마들 입장에선 속이 터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근데, 양육비 안 주는 엄마들도 있잖아”

맞습니다. 양육비 문제를 다룰 때마다 이런 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엄마들’도 분명 있을 텐데, 왜 자꾸 남성만의 문제로 몰아 가냐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 알아봤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조사한 결과, 2018년 9월 기준으로 접수된 양육비 사건 15,958건 중 여성이 접수한 게 13,711건(85.9%), 남성이 접수한 게 2247건(14.1%)이라고 합니다.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사람 중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피해자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 파더스(Bad Fathers)'에도 11월 6일 기준으로 아빠 168명, 엄마 13명이 올라와 있습니다. 전체의 7% 정도는 나쁜 엄마인 거죠. 양육비이행관리원 관계자는 “실제로 엄마들 중에도 악질 채무자가 정말 많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아이를 그대로 버려두는 무책임한 태도이지, 성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일하며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사건 진행 중 아이가 만 19세를 넘어 양육비 지급 의무가 사라졌을 때’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과거에 못 받은 양육비를 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지금 당장’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커가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5년 뒤, 10년 뒤에 법이 바뀌는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온 게 ‘양육비 대(代)지급제’입니다.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해주고 나중에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부모로부터 돈을 환수하는 제도죠.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이번 달 안에 양육비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고, 양육비 이행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건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취소나 정지, 여권 발급 제한 등입니다. 이번에는 엄마들이 정부의 발표를 보고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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