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잡는 전속거래②] 전속 아닌 ‘종속’…“거래 다각화 도와야”

입력 2018.11.0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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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 논란 등 '한국GM사태'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적 악화까지 겹쳐 부품 협력업체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단순히 차가 안 팔려서 어려운 게 아니라, 거래구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특정 완성차 업체와만 거래하는 '전속거래'다. 전속거래로 '을'이 된 협력업체들이 '갑'인 완성차 업체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다.
전속거래로 어려움에 빠진 자동차 산업을 협력업체 사례와 구조적 문제로 나눠 짚어본다.


자동차 조립에는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부품은 완성차 업체의 하청을 받은 1차 협력사와 1차 협력사의 하청을 받은 2차 협력사가 만든다. 1차 협력사, 2차 협력사는 완성차 업체 소속이 아니라 독립된 회사이기 때문에 여러 완성차 업체와 거래를 해도 상관없다.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러나 협력업체들이 다른 업체하고는 거래하지 않고, 1개의 완성체 업체하고만 거래하는 게 굳어져 있다는 게 하청업체 대표들의 증언이다. 이를 '전속거래'라고 하는데, 1차 협력사가 완성차 업체와 전속거래를 하고, 2차 협력사는 1차 협력사와 전속거래를 한다. 완성차 업체를 정점으로 '완성차→1차 협력사→2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딴짓 하지 말고 이것만 해” 전속거래 강요

손정우 자동차산업 중소하청업체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자동차 부품이 아닌 다른 제품을 만들었다가 1차 협력사의 제지로 그만뒀다. 손 대표는 "(1차 협력사에서) '야 너 다른 거 하니까 자동차 (부품) 불량 나잖아. 왜 딴짓해. 이것만 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전속거래 강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전속거래를 더 심화시키는 생산방식을 쓰고 있다. '직서열 생산방식(JIS)'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협력업체와 완성차 업체가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협력업체가 생산한 부품을 완성차 라인에 정확한 시간과 조립순서에 맞춰 투입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현대차와 협력업체 모두 부품 재고를 보유할 필요없이 필요할 때마다 부품을 주고 받으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 장점이 발휘되지 않는다. 협력업체들은 제품 불량이나 기계 고장에 대비해 1~2일치 이상의 재고를 보유해야 한다.

직서열 생산방식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부품 조달이 되지 않으면, 현대차 생산라인이 멈추기 때문에 현대차는 1차 협력사를,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를 밀착 관리할 수밖에 없다. 2차 협력사들은 현대차가 직접 2차 협력사를 관리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손정우 대표는 "현대차에서 1년에 3~4번씩 방문을 한다"며 " 2차 업체 자료를 (현대차가) 다 받기 때문에 2차 업체의 인건비가 얼마인지, 이번 달에는 얼마 매출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종속’이 된 전속…2배 이상 차이 나는 영업이익률

'강한 관리'는 '전속이 종속이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 업체에만 목을 매라고 하다 보니, 거래가 끝나는 건 곧 폐업을 의미하게 됐다. 종속관계 속에서 불합리한 부담이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면서, 불합리한 부담은 거래의 맨 아래에 있는 회사에서 대부분 떠안고 있다.

인건비나 물가가 오르는데도 무조건 단가를 깎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 2차 협력사 '엠케이 정공'의 주민국 대표는 "우리는 언제나 최저임금보다도 더 낮은 단가를 강요받았다"며 "'단가가 싸지만 (납품을) 많이 하다 보면 좋은 날 올 거야', 이런 식으로 우리를 달래가면서 끌고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현대차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8.2%, 현대차 계열사는 8.3%였는데, 전속거래를 하는 현대차 협력사 350여 곳은 3.6%에 불과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의 협력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통계에 잡히는 회사들은 대부분 1차 협력사라,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영세한 2차 협력사들은 영업이익률이 진작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현대차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2%에 불과할 정도로 실적이 악회되는 등 자동차 산업이 부진에 빠지자, 협력사들은 부도가 눈앞에 왔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호황일 때는 박리다매로 버텼던 협력사들이 현대차자 조금 흔들리자 제일 먼저 쓰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속거래가 자동차 산업 망쳐”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전속거래가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전속거래 문제점을 지적한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전속거래라는 독특한 생태계가 중소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을 좀처럼 키우지 못하면서 관련 산업이 어려워질 경우 단번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로 효율적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업체 간) 양극화를 초래하고 기업 간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완성차 업체들이) 장기적인 구조개편 펀드를 만드는 데 동참을 해서 정부와 같이 협력사의 사업 전환이나 사업 다각화, 해외진출을 공동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불공정거래를 적극적으로 잡아내고 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달 안에 내놓을 자동차 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부는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속거래 관련 자료와 문제점도 검토하고 있다.

[연관기사][하청 잡는 전속거래①] 현대차 2차 협력사는 왜 문을 닫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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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청 잡는 전속거래②] 전속 아닌 ‘종속’…“거래 다각화 도와야”
    • 입력 2018-11-07 07:05:08
    취재K
자동차 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 논란 등 '한국GM사태'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적 악화까지 겹쳐 부품 협력업체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단순히 차가 안 팔려서 어려운 게 아니라, 거래구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특정 완성차 업체와만 거래하는 '전속거래'다. 전속거래로 '을'이 된 협력업체들이 '갑'인 완성차 업체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다.
전속거래로 어려움에 빠진 자동차 산업을 협력업체 사례와 구조적 문제로 나눠 짚어본다.


자동차 조립에는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부품은 완성차 업체의 하청을 받은 1차 협력사와 1차 협력사의 하청을 받은 2차 협력사가 만든다. 1차 협력사, 2차 협력사는 완성차 업체 소속이 아니라 독립된 회사이기 때문에 여러 완성차 업체와 거래를 해도 상관없다.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러나 협력업체들이 다른 업체하고는 거래하지 않고, 1개의 완성체 업체하고만 거래하는 게 굳어져 있다는 게 하청업체 대표들의 증언이다. 이를 '전속거래'라고 하는데, 1차 협력사가 완성차 업체와 전속거래를 하고, 2차 협력사는 1차 협력사와 전속거래를 한다. 완성차 업체를 정점으로 '완성차→1차 협력사→2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딴짓 하지 말고 이것만 해” 전속거래 강요

손정우 자동차산업 중소하청업체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자동차 부품이 아닌 다른 제품을 만들었다가 1차 협력사의 제지로 그만뒀다. 손 대표는 "(1차 협력사에서) '야 너 다른 거 하니까 자동차 (부품) 불량 나잖아. 왜 딴짓해. 이것만 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전속거래 강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전속거래를 더 심화시키는 생산방식을 쓰고 있다. '직서열 생산방식(JIS)'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협력업체와 완성차 업체가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협력업체가 생산한 부품을 완성차 라인에 정확한 시간과 조립순서에 맞춰 투입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현대차와 협력업체 모두 부품 재고를 보유할 필요없이 필요할 때마다 부품을 주고 받으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 장점이 발휘되지 않는다. 협력업체들은 제품 불량이나 기계 고장에 대비해 1~2일치 이상의 재고를 보유해야 한다.

직서열 생산방식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부품 조달이 되지 않으면, 현대차 생산라인이 멈추기 때문에 현대차는 1차 협력사를,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를 밀착 관리할 수밖에 없다. 2차 협력사들은 현대차가 직접 2차 협력사를 관리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손정우 대표는 "현대차에서 1년에 3~4번씩 방문을 한다"며 " 2차 업체 자료를 (현대차가) 다 받기 때문에 2차 업체의 인건비가 얼마인지, 이번 달에는 얼마 매출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종속’이 된 전속…2배 이상 차이 나는 영업이익률

'강한 관리'는 '전속이 종속이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 업체에만 목을 매라고 하다 보니, 거래가 끝나는 건 곧 폐업을 의미하게 됐다. 종속관계 속에서 불합리한 부담이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면서, 불합리한 부담은 거래의 맨 아래에 있는 회사에서 대부분 떠안고 있다.

인건비나 물가가 오르는데도 무조건 단가를 깎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 2차 협력사 '엠케이 정공'의 주민국 대표는 "우리는 언제나 최저임금보다도 더 낮은 단가를 강요받았다"며 "'단가가 싸지만 (납품을) 많이 하다 보면 좋은 날 올 거야', 이런 식으로 우리를 달래가면서 끌고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현대차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8.2%, 현대차 계열사는 8.3%였는데, 전속거래를 하는 현대차 협력사 350여 곳은 3.6%에 불과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의 협력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통계에 잡히는 회사들은 대부분 1차 협력사라,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영세한 2차 협력사들은 영업이익률이 진작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현대차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2%에 불과할 정도로 실적이 악회되는 등 자동차 산업이 부진에 빠지자, 협력사들은 부도가 눈앞에 왔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호황일 때는 박리다매로 버텼던 협력사들이 현대차자 조금 흔들리자 제일 먼저 쓰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속거래가 자동차 산업 망쳐”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전속거래가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전속거래 문제점을 지적한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전속거래라는 독특한 생태계가 중소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을 좀처럼 키우지 못하면서 관련 산업이 어려워질 경우 단번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로 효율적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업체 간) 양극화를 초래하고 기업 간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완성차 업체들이) 장기적인 구조개편 펀드를 만드는 데 동참을 해서 정부와 같이 협력사의 사업 전환이나 사업 다각화, 해외진출을 공동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불공정거래를 적극적으로 잡아내고 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달 안에 내놓을 자동차 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부는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속거래 관련 자료와 문제점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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