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트럼프는 과연 패배한 것인가?

입력 2018.11.0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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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靑波)는 일었다, 그러나 그리 거대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가 막 시작된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날 밤, 첫번째 트윗으로 "어머어마한 성공(Tremendous Success)"이란 말을 올렸다. 분명, 미 의회의 상하원 양원과 주지사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이 하원을 민주당에 뺏기고 주지사 자리도 민주당에 7개나 넘겨준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판정승을 선언할 만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심판론'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 대해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승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 그리고 전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이렇게 진단했다. "청파(靑波:푸른 물결, Blue Wave, 미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따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 바람을 지칭)는 일었다, 그러나 그리 거대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원하는 만큼의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민주당의 물결이 그저 '푸른 잔물결(Blue Ripple)'에 그쳤다며 민주당에 다소 치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 박하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한 건 3차례 뿐일 정도다. 따라서 우리가 중간선거의 승리와 패배와 논하고자 한다면, '야당이 이기고 여당이 졌다'는 한마디 만으론 어렵다. 중요한 건 누가 "어떻게" 이기거나 졌느냐다. 특히 중간선거란 말 그대로 대선과 대선 중간에 치러지는,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결코 수치로서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그 최종적 질문은 이렇게 귀결된다, "과연 트럼프는 '어떻게' 졌는가" 낯두껍게 '승리'를 선언할 정도는 아니라도, '패배'를 거부할 정도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민주당에 기적은 없었다…트럼프 “내가 막았다”?

일찌감치 불어닥친 민주당 바람 속에, 선거 기간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곳들은, '현재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고, 민주당 후보들이 트럼프 비판론의 주역들이어서, 바로 이 곳에서 이겨야 민주당 바람이 제대로 불었다고 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그 상징적 중요성을 알기에 공화당 후보들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을 나갔고, 민주당에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소환해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 상징적 격전지 대부분에서 '공화당'이 이겼다.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VS 브라이언 켐프스테이시 에이브람스 VS 브라이언 켐프

첫 흑인 여성 주지사 선출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 민주당의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까지 나섰지만, 결국 공화당 후보 브라이언 켐프가 이겼다.

앤드루 길럼 VS 론 드샌티스앤드루 길럼 VS 론 드샌티스

대선 때마다 최대의 격전지로 불리는 플로리다주의 주지사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모두 공화당이 이겼다. 플로리다는 무려 29명의 대선 선거인단(총 538명)이 걸려있어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경합주(swing state:민주당으로도 공화당으로도 기울어있지 않은 주)다. 흑인 민주당 후보 앤드루 길럼과 공화당 론 드센티스가 40대의 대결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승리는 드센티스의 몫이었다. 상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소속인 현 넬슨 상원의원을 도전자인 공화당 스콧 후보가 간발의 차로 꺾었다.

베토 오루어크 VS 테드 크루즈베토 오루어크 VS 테드 크루즈

지난 대선 때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떠오르는 정치스타 베토 오루어크의 도전도 관심거리였다. 24년만에 텍사스주 민주당 상원의원 탄생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중간선거 역사상 최대 모금액이란 미 전역의 역대급 지원은 받은 오루어크는 그러나 크루즈를 꺾지 못했다. 크루즈는 선거 막판 세가 밀리자 지난 대선 때 자신이 격하게 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에 나섰다.

CNN 등이 발표한 출구조사에서, 투표자들의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55%, '지지한다'는 응답은 44%에 그쳤을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심판론은 거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완전히 민주당의 승리로 비쳐지지 않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얼마간 성공한 듯 보인다.

■ 수치 아래 숨겨진 민주당의 '패배'와 트럼프의 ‘승리’?

선거 결과를 먼저 숫자로 정리해보자.
민주당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10여개를 제외하고도 435석이 전석인 하원의 과반인 218석 이상을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상원에서는 51-49(공화-민주)로 2석 차이였던 양당의 의석 격차가 더 벌어졌다. 민주당이 46석에, 공화당은 이미 51석을 확보했고 최대 54석까지 가능하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7개주를 공화당에서 빼앗았다.

하원 선거부터 뜯어보자, 민주당이 하원에서 의석을 늘린 지역구는 대개 도시와 도시 주변이다. 즉 민주당이 원래 강하던 곳에서 더욱 큰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주다. 27지역구 가운데 21개를 이겼는데, 3곳은 공화당에서 빼앗은 지역구다.

그런데 뉴욕은 원래 민주당이 강하던 곳이다. 만약 이 결과를 득표수가 아니라 주별 선거인단 승자 독식제도(주에서 1표라도 이기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다 획득하는 제도)로 치러지는 대선에 연결시킨다면, 뉴욕주에서 51%로 이기든 99%로 이기든 획득하는 선거인단 수는 같다는 얘기가 된다. 뉴욕주에서 몇 석을 더 얻는 게 대선에는 별 영향이 없다.

주별로 2명씩 50개주 100석으로 구성되는 상원을 살펴보자. 상원에서 원래 공화당이었던 곳을 민주당이 빼앗은 의석은 네바다주 1곳 뿐이다. 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결집을 시도한, 백인 중장년 시골 인구가 많은 주들에서, 민주당은 오히려 공화당에 의석을 3개나 뺏겼다. 인디애나, 미주리, 노스다코타주다.

주지사 선거로 넘어가보자, 원래 공화당이 강한 주나 원래 민주당이 강한 주보다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경합주(Swing State)가 중요할 것이다. 펜실베니아(20:괄호 안은 대선 선거인단 수), 미시간(16), 위스콘신(10), 일리노이(20) 등에서 거둔 민주당의 승리는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대선 승리의 척도로 일컬어지는 플로리다(29)와 오하이오주(18)에서, 민주당이 화력을 집중하고도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부분은 뼈아프다. 왜냐면 이번 선거를 치르고도 주지사 수에서 민주당(23개)은 공화당(26개)에 여전히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사 선거는 대선과 관련해 특히 중요하다. 대선후보는 자당의 주지사가 있는 주에서 그 조직망을 활용해 훨씬 더 효율적인 선거전을 펼칠 수 있다. 민주당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 원인이 201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주지사를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또 이번에 당선된 주지사들이 2021년, 10년 단위 하원 선거구 재획정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중요하다.


■ “트럼프 지지세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

이번 중간선거의 투표자 수는 1억천3백만명, 중간선거 투표자 수가 1억명을 넘은 건 처음인 데다 투표율도 약 49%로 거의 100년만의 기록이다.

미 언론들은, 이 역대급의 투표율이 먼저 민주당에서 분 열풍 즉 젊은층과 유색인종 등 민주당 지지층의 높은 투표율에 기반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과 동원 능력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경제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우세로 선거가 점점 굳어지자, '이민' 때리기에 열중했다. 국경으로 행진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을 "미국을 침공하는 불법 이민자들"이라고 부르고 국경에 군 병력 배치를 선언했으며, 헌법에 보장된 '출생 시민권'을 불법이민자 자녀들에게는 보장하지 않겠다는 예민한 공약까지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반이민'이야말로 '시골의 백인 중장년 복음주의자들'로 상징되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 가장 호소력이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에 근거해 '불법이민을 차단해 미국을 미국인의 나라로 지켜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민주주의 파괴, 정책결정권자로서의 무능, 통합보다는 분열, 고립주의 외교 등등...' 넘쳐나는 반트럼프 구호 속에서 어쩌면 그냥 집에 있었을지도 모를 그들이 결국엔 트럼프의 부름에 응했다. 공화당의 경합주 상원, 주지사 선거에서의 선전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결집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미 유에스에이투데이(USATODAY)지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민주당 지지세와 공화당의 지지세가, 지역과 계층별로 더욱 굳어진 분열 선거로 해석했다. '도시, 도심 주변, 흑인, 대졸 이상,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시골, 작은 마을, 기독교 복음주의자, 고졸 이하, 남성'은 공화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런 분열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결정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 지지세는 분열을 기반으로 자라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저항세력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게도 만들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신의 지지층이 행동하게도 만든다'고 분석했다.


■ 아직은 승리도 패배도 선언하기에 이르다

이번 세기에 치러진 5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4차례 총 유권자 득표 수에서 승리했지만, 그 중 2차례는 대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총 득표 수에서 이기고도, 주별 선거인단 수 대결에서 졌기 때문이다.

주별 승자독식제도가 기본인 미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주에서 얼마나 많이 이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경합주 몇 개를 이겨서 얼마나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2000년 부시(공화) 대 고어(민주) 대결에서 민주당은 한 차례 '총 득표수 승리, 선거인단 수 패배'로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데도, 2016년 또 같은 일을 당했다. 미국 대선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세계 최고의 선거 전략가들이 활동하는 나라 미국에서, 민주당이 효율적으로 선거 전략을 펼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불리하다고 전제된 선거에서, 그 불리함을 최소화하고 스스로는 '이겼다'고 우길 수 있을 정도의, 일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무엇보다 자신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선은 결코 이번 중간선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분명 자신이 재선에 도전할 2020년 대선에 꽂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수치 너머로 주목해야 할 '민주당의 승리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플로리다주에서 이번 중간선거에 통과된 '중범죄자들에 대한 투표권 회복'을 들 수 있다. 가장 뜨거운 경합주인 플로리다에서 주로 유색인종들인 중범죄자 140만명이 투표권을 회복하게 됐다. 민주당에 결정적 변수다. 아직 민주당 후보가 패배를 승복하지 않은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서는,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였던 스테이시 에이브람스를 중심으로 유색인종 유권자 결집력을 확인했으며,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오루어크의 도전은 텍사스주가 결코 공화당의 아성으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란 걸 증명하기도 했다. 그동안 낮은 투표율에 머물렀던 밀레니얼 세대와 여성의 저력도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승리했지만 결코 큰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기지 못했지만 결코 지지도 않았다.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이번 중간선거에서, 2020년 대선까지의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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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9 06: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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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靑波)는 일었다, 그러나 그리 거대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가 막 시작된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날 밤, 첫번째 트윗으로 "어머어마한 성공(Tremendous Success)"이란 말을 올렸다. 분명, 미 의회의 상하원 양원과 주지사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이 하원을 민주당에 뺏기고 주지사 자리도 민주당에 7개나 넘겨준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판정승을 선언할 만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심판론'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 대해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승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 그리고 전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이렇게 진단했다. "청파(靑波:푸른 물결, Blue Wave, 미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따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 바람을 지칭)는 일었다, 그러나 그리 거대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원하는 만큼의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민주당의 물결이 그저 '푸른 잔물결(Blue Ripple)'에 그쳤다며 민주당에 다소 치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 박하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한 건 3차례 뿐일 정도다. 따라서 우리가 중간선거의 승리와 패배와 논하고자 한다면, '야당이 이기고 여당이 졌다'는 한마디 만으론 어렵다. 중요한 건 누가 "어떻게" 이기거나 졌느냐다. 특히 중간선거란 말 그대로 대선과 대선 중간에 치러지는,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결코 수치로서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그 최종적 질문은 이렇게 귀결된다, "과연 트럼프는 '어떻게' 졌는가" 낯두껍게 '승리'를 선언할 정도는 아니라도, '패배'를 거부할 정도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민주당에 기적은 없었다…트럼프 “내가 막았다”?

일찌감치 불어닥친 민주당 바람 속에, 선거 기간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곳들은, '현재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고, 민주당 후보들이 트럼프 비판론의 주역들이어서, 바로 이 곳에서 이겨야 민주당 바람이 제대로 불었다고 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그 상징적 중요성을 알기에 공화당 후보들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을 나갔고, 민주당에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소환해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 상징적 격전지 대부분에서 '공화당'이 이겼다.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VS 브라이언 켐프
첫 흑인 여성 주지사 선출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 민주당의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까지 나섰지만, 결국 공화당 후보 브라이언 켐프가 이겼다.

앤드루 길럼 VS 론 드샌티스
대선 때마다 최대의 격전지로 불리는 플로리다주의 주지사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모두 공화당이 이겼다. 플로리다는 무려 29명의 대선 선거인단(총 538명)이 걸려있어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경합주(swing state:민주당으로도 공화당으로도 기울어있지 않은 주)다. 흑인 민주당 후보 앤드루 길럼과 공화당 론 드센티스가 40대의 대결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승리는 드센티스의 몫이었다. 상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소속인 현 넬슨 상원의원을 도전자인 공화당 스콧 후보가 간발의 차로 꺾었다.

베토 오루어크 VS 테드 크루즈
지난 대선 때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떠오르는 정치스타 베토 오루어크의 도전도 관심거리였다. 24년만에 텍사스주 민주당 상원의원 탄생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중간선거 역사상 최대 모금액이란 미 전역의 역대급 지원은 받은 오루어크는 그러나 크루즈를 꺾지 못했다. 크루즈는 선거 막판 세가 밀리자 지난 대선 때 자신이 격하게 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에 나섰다.

CNN 등이 발표한 출구조사에서, 투표자들의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55%, '지지한다'는 응답은 44%에 그쳤을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심판론은 거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완전히 민주당의 승리로 비쳐지지 않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얼마간 성공한 듯 보인다.

■ 수치 아래 숨겨진 민주당의 '패배'와 트럼프의 ‘승리’?

선거 결과를 먼저 숫자로 정리해보자.
민주당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10여개를 제외하고도 435석이 전석인 하원의 과반인 218석 이상을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상원에서는 51-49(공화-민주)로 2석 차이였던 양당의 의석 격차가 더 벌어졌다. 민주당이 46석에, 공화당은 이미 51석을 확보했고 최대 54석까지 가능하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7개주를 공화당에서 빼앗았다.

하원 선거부터 뜯어보자, 민주당이 하원에서 의석을 늘린 지역구는 대개 도시와 도시 주변이다. 즉 민주당이 원래 강하던 곳에서 더욱 큰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주다. 27지역구 가운데 21개를 이겼는데, 3곳은 공화당에서 빼앗은 지역구다.

그런데 뉴욕은 원래 민주당이 강하던 곳이다. 만약 이 결과를 득표수가 아니라 주별 선거인단 승자 독식제도(주에서 1표라도 이기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다 획득하는 제도)로 치러지는 대선에 연결시킨다면, 뉴욕주에서 51%로 이기든 99%로 이기든 획득하는 선거인단 수는 같다는 얘기가 된다. 뉴욕주에서 몇 석을 더 얻는 게 대선에는 별 영향이 없다.

주별로 2명씩 50개주 100석으로 구성되는 상원을 살펴보자. 상원에서 원래 공화당이었던 곳을 민주당이 빼앗은 의석은 네바다주 1곳 뿐이다. 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결집을 시도한, 백인 중장년 시골 인구가 많은 주들에서, 민주당은 오히려 공화당에 의석을 3개나 뺏겼다. 인디애나, 미주리, 노스다코타주다.

주지사 선거로 넘어가보자, 원래 공화당이 강한 주나 원래 민주당이 강한 주보다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경합주(Swing State)가 중요할 것이다. 펜실베니아(20:괄호 안은 대선 선거인단 수), 미시간(16), 위스콘신(10), 일리노이(20) 등에서 거둔 민주당의 승리는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대선 승리의 척도로 일컬어지는 플로리다(29)와 오하이오주(18)에서, 민주당이 화력을 집중하고도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부분은 뼈아프다. 왜냐면 이번 선거를 치르고도 주지사 수에서 민주당(23개)은 공화당(26개)에 여전히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사 선거는 대선과 관련해 특히 중요하다. 대선후보는 자당의 주지사가 있는 주에서 그 조직망을 활용해 훨씬 더 효율적인 선거전을 펼칠 수 있다. 민주당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 원인이 201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주지사를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또 이번에 당선된 주지사들이 2021년, 10년 단위 하원 선거구 재획정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도 중요하다.


■ “트럼프 지지세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

이번 중간선거의 투표자 수는 1억천3백만명, 중간선거 투표자 수가 1억명을 넘은 건 처음인 데다 투표율도 약 49%로 거의 100년만의 기록이다.

미 언론들은, 이 역대급의 투표율이 먼저 민주당에서 분 열풍 즉 젊은층과 유색인종 등 민주당 지지층의 높은 투표율에 기반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과 동원 능력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경제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우세로 선거가 점점 굳어지자, '이민' 때리기에 열중했다. 국경으로 행진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을 "미국을 침공하는 불법 이민자들"이라고 부르고 국경에 군 병력 배치를 선언했으며, 헌법에 보장된 '출생 시민권'을 불법이민자 자녀들에게는 보장하지 않겠다는 예민한 공약까지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반이민'이야말로 '시골의 백인 중장년 복음주의자들'로 상징되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 가장 호소력이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에 근거해 '불법이민을 차단해 미국을 미국인의 나라로 지켜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민주주의 파괴, 정책결정권자로서의 무능, 통합보다는 분열, 고립주의 외교 등등...' 넘쳐나는 반트럼프 구호 속에서 어쩌면 그냥 집에 있었을지도 모를 그들이 결국엔 트럼프의 부름에 응했다. 공화당의 경합주 상원, 주지사 선거에서의 선전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결집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미 유에스에이투데이(USATODAY)지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민주당 지지세와 공화당의 지지세가, 지역과 계층별로 더욱 굳어진 분열 선거로 해석했다. '도시, 도심 주변, 흑인, 대졸 이상,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시골, 작은 마을, 기독교 복음주의자, 고졸 이하, 남성'은 공화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런 분열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결정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 지지세는 분열을 기반으로 자라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저항세력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게도 만들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신의 지지층이 행동하게도 만든다'고 분석했다.


■ 아직은 승리도 패배도 선언하기에 이르다

이번 세기에 치러진 5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4차례 총 유권자 득표 수에서 승리했지만, 그 중 2차례는 대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총 득표 수에서 이기고도, 주별 선거인단 수 대결에서 졌기 때문이다.

주별 승자독식제도가 기본인 미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주에서 얼마나 많이 이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경합주 몇 개를 이겨서 얼마나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2000년 부시(공화) 대 고어(민주) 대결에서 민주당은 한 차례 '총 득표수 승리, 선거인단 수 패배'로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데도, 2016년 또 같은 일을 당했다. 미국 대선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세계 최고의 선거 전략가들이 활동하는 나라 미국에서, 민주당이 효율적으로 선거 전략을 펼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불리하다고 전제된 선거에서, 그 불리함을 최소화하고 스스로는 '이겼다'고 우길 수 있을 정도의, 일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무엇보다 자신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선은 결코 이번 중간선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분명 자신이 재선에 도전할 2020년 대선에 꽂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수치 너머로 주목해야 할 '민주당의 승리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플로리다주에서 이번 중간선거에 통과된 '중범죄자들에 대한 투표권 회복'을 들 수 있다. 가장 뜨거운 경합주인 플로리다에서 주로 유색인종들인 중범죄자 140만명이 투표권을 회복하게 됐다. 민주당에 결정적 변수다. 아직 민주당 후보가 패배를 승복하지 않은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서는,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였던 스테이시 에이브람스를 중심으로 유색인종 유권자 결집력을 확인했으며,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오루어크의 도전은 텍사스주가 결코 공화당의 아성으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란 걸 증명하기도 했다. 그동안 낮은 투표율에 머물렀던 밀레니얼 세대와 여성의 저력도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승리했지만 결코 큰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기지 못했지만 결코 지지도 않았다.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이번 중간선거에서, 2020년 대선까지의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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