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구급차 기사도 분노”…프랑스 ‘유류세 인상’ 후폭풍

입력 2018.11.1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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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너무 많이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프랑스 사람들의 분노를 봤습니까?"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기념한 추모 행사를 위해 지방도시를 돌고 있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발길을 한 은퇴자가 불러세웠다. 대통령과 분노에 찬 은퇴자 사이 양보 없는 설전이 5분 넘게 오갔고, 이는 TV 생중계로 고스란히 방송됐다. 불씨를 당긴 것은 최근 뛰어오른 연료비, 그중에서도 연초 인상된 유류세를 놓고 확산되는 불만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연료비 문제를 항의하는 은퇴자 (현지시각 6일, 프랑스 BFM TV 캡처)마크롱 대통령에게 연료비 문제를 항의하는 은퇴자 (현지시각 6일, 프랑스 BFM TV 캡처)

<마크롱 가는 곳마다 "연료비에 분노"…프 '유류세 인상' 후폭풍>

"연료비 증가는, 제 탓이 아닙니다. 세금 영향이 있는 건 인정합니다. 연료비가 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전체 인상 원인의 80%, 4분의 3은 무연 휘발유나 경유 가격 때문이고, 이건 전 세계 석유 시장 상황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마크롱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원칙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고, 백발의 은퇴자 역시 정부가 세금 인상 등으로 프랑스 중산층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고 성토하며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1월 자로 유류세 인상을 단행했는데, 경유의 경우 리터당 6.33상팀(0.063유로, 약 81원)을, 무연 휘발유는 리터당 3.9상팀(약 38원)을 올렸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20%가 적용됐고, 전체 연료비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실제 비율은 20~26%에 불과하다는 게 마크롱 대통령의 항변이었다.

프랑스 석유산업연합에 따르면 최근 1년동안 프랑스에서 경유 가격은 35%, 휘발유 가격은 2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원유값 상승과 더불어 운송비 증가 등으로 인한 정유사와 유통업자 배분 마진이 40% 증가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반면 유류세는 경유와 휘발유에 각각 14%, 7.5% 인상 부과된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만 보자면 마크롱 대통령의 항변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다. 은퇴자가 쏟아낸 분노는 단지 유류세 인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높은 실업률과 치솟는 물가, 소득세 원천징수 등 세제 개편에 대한 불만, 연금개혁 이후 은퇴자들의 실질 수령액 축소, 이로 인한 구매력 약화 등 축적된 불만이 연쇄적으로 얽혀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 이튿날 마크롱 대통령은 또다른 은퇴자와 연금수령액을 놓고 다시금 방송 카메라 앞에서 입씨름을 벌였다.) 민심의 이탈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역대 최저 지지율로도 드러난다.

<"정부는 우리를 학살할 셈인가!"…구급차 기사들도 '분노'>

치솟은 연료비 문제는 프랑스 서민들의 삶을 각박하게 몰아가고 있다. 단지 분노를 대통령 앞에서 성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는 정부에 우리의 뜻을 알리자' 며 연료비 항의 집회를 열자는 자발적인 주장이 몇주 전부터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전국적 집회에는 자영업자들을 비롯해 트럭과 택시 운전사를 포함해 사설 구급차 기사들까지 가세했고 벌써 50만 명이 온라인 청원에 동참했다. 이들은 항의의 표시로 '노란 조끼'를 입고 집회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은 내리고, 프랑스는 올리고"…유류세 대응 '제각각'>

불만이 커지자 마크롱 정부는 사흘 전(현지시각 6일) 다급하게 '일을 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에너지 수표를 개선하고 프랑스 전역에 대한 교통비 지원책을 수주 내로 마련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마뜩치 않은 분위기다. 의회에선 지원 방식과 실효성을 놓고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고 언론에선 유류세 인상과 연료비 증가에 따른 구매력 약화 논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가파르게 솟구치는 국제유가와 물가 상승, 소비 위축은 현 글로벌 경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지만, 대응책은 제각각이다. 세제 개편을 통한 재정 전건화와 친환경 차량 보급 확대를 기치로 유류세 점진 인상을 택한 프랑스,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 서민·자영업자 지원 강화를 내걸고 유류세 일시 인하를 택한 한국, 어느 정부의 해법이 '솔로몬의 선택' 이 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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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구급차 기사도 분노”…프랑스 ‘유류세 인상’ 후폭풍
    • 입력 2018-11-10 07:28:59
    특파원 리포트
"세금을 너무 많이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프랑스 사람들의 분노를 봤습니까?"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기념한 추모 행사를 위해 지방도시를 돌고 있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발길을 한 은퇴자가 불러세웠다. 대통령과 분노에 찬 은퇴자 사이 양보 없는 설전이 5분 넘게 오갔고, 이는 TV 생중계로 고스란히 방송됐다. 불씨를 당긴 것은 최근 뛰어오른 연료비, 그중에서도 연초 인상된 유류세를 놓고 확산되는 불만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연료비 문제를 항의하는 은퇴자 (현지시각 6일, 프랑스 BFM TV 캡처)
<마크롱 가는 곳마다 "연료비에 분노"…프 '유류세 인상' 후폭풍>

"연료비 증가는, 제 탓이 아닙니다. 세금 영향이 있는 건 인정합니다. 연료비가 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전체 인상 원인의 80%, 4분의 3은 무연 휘발유나 경유 가격 때문이고, 이건 전 세계 석유 시장 상황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마크롱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원칙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고, 백발의 은퇴자 역시 정부가 세금 인상 등으로 프랑스 중산층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고 성토하며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1월 자로 유류세 인상을 단행했는데, 경유의 경우 리터당 6.33상팀(0.063유로, 약 81원)을, 무연 휘발유는 리터당 3.9상팀(약 38원)을 올렸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20%가 적용됐고, 전체 연료비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실제 비율은 20~26%에 불과하다는 게 마크롱 대통령의 항변이었다.

프랑스 석유산업연합에 따르면 최근 1년동안 프랑스에서 경유 가격은 35%, 휘발유 가격은 2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원유값 상승과 더불어 운송비 증가 등으로 인한 정유사와 유통업자 배분 마진이 40% 증가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반면 유류세는 경유와 휘발유에 각각 14%, 7.5% 인상 부과된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만 보자면 마크롱 대통령의 항변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다. 은퇴자가 쏟아낸 분노는 단지 유류세 인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높은 실업률과 치솟는 물가, 소득세 원천징수 등 세제 개편에 대한 불만, 연금개혁 이후 은퇴자들의 실질 수령액 축소, 이로 인한 구매력 약화 등 축적된 불만이 연쇄적으로 얽혀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 이튿날 마크롱 대통령은 또다른 은퇴자와 연금수령액을 놓고 다시금 방송 카메라 앞에서 입씨름을 벌였다.) 민심의 이탈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역대 최저 지지율로도 드러난다.

<"정부는 우리를 학살할 셈인가!"…구급차 기사들도 '분노'>

치솟은 연료비 문제는 프랑스 서민들의 삶을 각박하게 몰아가고 있다. 단지 분노를 대통령 앞에서 성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는 정부에 우리의 뜻을 알리자' 며 연료비 항의 집회를 열자는 자발적인 주장이 몇주 전부터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전국적 집회에는 자영업자들을 비롯해 트럭과 택시 운전사를 포함해 사설 구급차 기사들까지 가세했고 벌써 50만 명이 온라인 청원에 동참했다. 이들은 항의의 표시로 '노란 조끼'를 입고 집회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은 내리고, 프랑스는 올리고"…유류세 대응 '제각각'>

불만이 커지자 마크롱 정부는 사흘 전(현지시각 6일) 다급하게 '일을 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에너지 수표를 개선하고 프랑스 전역에 대한 교통비 지원책을 수주 내로 마련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마뜩치 않은 분위기다. 의회에선 지원 방식과 실효성을 놓고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고 언론에선 유류세 인상과 연료비 증가에 따른 구매력 약화 논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가파르게 솟구치는 국제유가와 물가 상승, 소비 위축은 현 글로벌 경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지만, 대응책은 제각각이다. 세제 개편을 통한 재정 전건화와 친환경 차량 보급 확대를 기치로 유류세 점진 인상을 택한 프랑스,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 서민·자영업자 지원 강화를 내걸고 유류세 일시 인하를 택한 한국, 어느 정부의 해법이 '솔로몬의 선택' 이 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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