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국립대 갑질…시스템 개발시키고 대금 ‘포기각서’ 써라

입력 2018.11.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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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의뢰를 받아 몇 달씩 일했는데 갑자기 인건비를 한 푼도 못 받게 됐다면, 그것도 돈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포기각서'까지 쓰게 됐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한 중소기업이 과학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국립대학교로부터 당한 '갑질'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한 IT 업체는 2009년 3월 개교를 앞둔 국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개교 준비위원회로부터 경영을 비롯해 조직의 각종 활동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ERP) 제작을 의뢰받고 2008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시스템 제작이 마무리될 무렵, UNIST 측은 추가 요청을 했습니다. 시스템 가운데 일부인 '연구관리 프로그램'에 보완할 부분들이 많다면서, 인력을 모두 철수시키지 말고 일부를 남겨 더 작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업체는 인건비에 대해 문의했고, 대학 측은 "일단 작업부터 하고 나중에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계약서 없이 추가 작업부터 시작됐습니다.

10개월가량 걸려 일이 끝난 뒤, 업체 측은 8천만 원의 인건비 견적서를 대학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유지·보수만 한 것이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업체 측은 당황했습니다. "인건비를 준다는 확답을 받고 일을 진행했다"며 거듭 지급을 요청했습니다. 대학 측은 "비용은 나중에 협의하자고 했지, 확답한 적은 없다"면서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업체 담당자는 "이 일을 추진하고 진행한 당사자로서 상당히 곤혹스럽다. 저희 사장님도 중소기업 인건비인 만큼 줘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거듭 읍소했습니다. 인건비를 8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또다시 3천만 원으로 깎아 청구해보기도 했습니다.

업체의 요청이 계속되자, 대학도 내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해법이 찾아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부서 간 '핑퐁'만 벌어졌습니다.

추가 작업을 맡긴 연구 담당 부서는 ERP 전체를 담당하는 전산 담당 부서가 업체에 인건비를 지급해 달라고 했습니다. 전산 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부 기안도 안 거치고 계약서도 안 써서 관련 예산 자체가 확보 안 돼 있다. 우리와 협의도 없이 해놓고선 이제 와서 떠넘기느냐"며 반대했습니다.

이제라도 내부 결재를 거쳐 돈을 주면 될 일인데, 두 부서는 수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가 해 주면 될 일이다" "일을 추진한 쪽에서 해결하라"며 기 싸움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답 없는 3년의 허송세월만 흘렀습니다.

그러다 2013년 봄, 누군가의 제보로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대학 측은 업체에 갑자기 '용역대금 포기각서', 다시 말해 인건비를 더 이상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감사를 중지시키려면 대학과 업체가 원만하게 합의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업체는 고심 끝에 결국 포기각서를 써 줬습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업체 담당자는 "억울하고, 부당했다. 일하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하지만 앞으로 계속 대학을 상대로 사업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국립대의 좌충우돌 막무가내 행정에 속앓이만 하다 희생을 떠안은 중소기업의 이야기, KBS <못 참겠다>가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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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참겠다] 국립대 갑질…시스템 개발시키고 대금 ‘포기각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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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의뢰를 받아 몇 달씩 일했는데 갑자기 인건비를 한 푼도 못 받게 됐다면, 그것도 돈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포기각서'까지 쓰게 됐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한 중소기업이 과학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국립대학교로부터 당한 '갑질'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한 IT 업체는 2009년 3월 개교를 앞둔 국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개교 준비위원회로부터 경영을 비롯해 조직의 각종 활동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ERP) 제작을 의뢰받고 2008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시스템 제작이 마무리될 무렵, UNIST 측은 추가 요청을 했습니다. 시스템 가운데 일부인 '연구관리 프로그램'에 보완할 부분들이 많다면서, 인력을 모두 철수시키지 말고 일부를 남겨 더 작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업체는 인건비에 대해 문의했고, 대학 측은 "일단 작업부터 하고 나중에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계약서 없이 추가 작업부터 시작됐습니다.

10개월가량 걸려 일이 끝난 뒤, 업체 측은 8천만 원의 인건비 견적서를 대학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유지·보수만 한 것이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업체 측은 당황했습니다. "인건비를 준다는 확답을 받고 일을 진행했다"며 거듭 지급을 요청했습니다. 대학 측은 "비용은 나중에 협의하자고 했지, 확답한 적은 없다"면서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업체 담당자는 "이 일을 추진하고 진행한 당사자로서 상당히 곤혹스럽다. 저희 사장님도 중소기업 인건비인 만큼 줘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거듭 읍소했습니다. 인건비를 8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또다시 3천만 원으로 깎아 청구해보기도 했습니다.

업체의 요청이 계속되자, 대학도 내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해법이 찾아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부서 간 '핑퐁'만 벌어졌습니다.

추가 작업을 맡긴 연구 담당 부서는 ERP 전체를 담당하는 전산 담당 부서가 업체에 인건비를 지급해 달라고 했습니다. 전산 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부 기안도 안 거치고 계약서도 안 써서 관련 예산 자체가 확보 안 돼 있다. 우리와 협의도 없이 해놓고선 이제 와서 떠넘기느냐"며 반대했습니다.

이제라도 내부 결재를 거쳐 돈을 주면 될 일인데, 두 부서는 수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가 해 주면 될 일이다" "일을 추진한 쪽에서 해결하라"며 기 싸움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답 없는 3년의 허송세월만 흘렀습니다.

그러다 2013년 봄, 누군가의 제보로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대학 측은 업체에 갑자기 '용역대금 포기각서', 다시 말해 인건비를 더 이상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감사를 중지시키려면 대학과 업체가 원만하게 합의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업체는 고심 끝에 결국 포기각서를 써 줬습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업체 담당자는 "억울하고, 부당했다. 일하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하지만 앞으로 계속 대학을 상대로 사업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국립대의 좌충우돌 막무가내 행정에 속앓이만 하다 희생을 떠안은 중소기업의 이야기, KBS <못 참겠다>가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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