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미국인들은 왜 ‘85세 할머니’ 낙상에 초조해졌나

입력 2018.11.13 (07:05) 수정 2018.11.13 (16: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올해 85세다. [사진출처 : 로이터]


한 눈에 봐도 꼬장꼬장해보이는 이 여성, 올해 85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다.
미국의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고, 현직 최고령 대법관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가운데 4명인 진보 성향 판사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지난 8일 병원에 입원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넘어져 왼쪽 갈비뼈 3개가 부러졌다.
대통령도 아닌, 대법관의 낙상 소식이 많은 미국인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미디어와 SNS에는 며칠간이나 긴즈버그의 이름이 뜨겁게 오르내렸고, 초조하게 그의 회복 상태를 지켜봤다.

"그녀가 원한다면 내 갈비뼈를 기증하겠어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면 내 콩팥 하나를 줄 수 있어요. 전 하나만 있어도 돼요."
"말 그대로 내 인생 몇 년을 긴즈버그에게 주고 싶다" 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수십 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

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

왜 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고령의 할머니 판사의 '크지 않은 부상' 소식에 깜짝 놀라 다급한 응원과 격려에 나선 걸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한마디로 진보 진영 법관의 대표주자이자 진보계의 대모로 통한다.
우선 판결 성향이 그렇다.
대법관으로 26년간 재직하면서 소수자와 여성의 인권 신장, 권익 옹호를 위한 판결로 소신을 밝혀왔다.
여성낙태권, 동성결혼 등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맞서 약자에 힘을 보태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2013년엔 동성결혼식의 주례를 맡았고, 2015년 방한했을 땐 당시 국내 1호 동성 부부와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등 성소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덕분에 유명 래퍼 '노터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에서 이름을 딴 '노터리어스 알비쥐(Notorious R.B.G-Ruth Bader Ginburg)라는 애칭도 얻었다.

긴즈버그의 확고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발언 하나.

“사람들은 종종 제게 묻습니다.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이렇게 답합니다. 9명 모두요. 미국 역사에서 대부분 대법관 9명이 모두 남자였어요.
그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201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아이콘 부문에 선정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201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아이콘 부문에 선정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하지만, 긴즈버그의 낙상 소식에 미국 사회가 바짝 긴장한 건 비단 그녀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언론매체인 VOX는 "긴즈버그의 부상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시대에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불안감, 극단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가운데 보수 5대 진보 4 의 이념 지형을 보여준다.
긴즈버그는 이 4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 중 한 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즈버그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은퇴할 경우, 보수 일색의 구도로 바뀔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닐 고서치, 브렛 캐버너 대법관을 줄줄이 임명해온 만큼, 대법관 빈 자리에 보수 성향의 인사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공화당 우위인 상원에서 트럼프가 지명한 대법관 후보는 무난히 인준을 통과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언론들은 이렇게 되면 낙태, 사형, 투표권, 동성애자 권리, 종교의 자유 등 주요 이슈에 관한 법원 판결의 방향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시 말해, 긴즈버그가 오래 버틸수록 미국 연방대법원이 보수 일색으로 기우는 걸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긴즈버그 대법관, 고령의 나이에도 아령 들고 운동하는 모습긴즈버그 대법관, 고령의 나이에도 아령 들고 운동하는 모습

긴즈버그 역시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지난주 입원 하룻 만에 퇴원했다. 현재 업무에 복귀한 상태다. 대법원에서 최고령인 그녀의 건재함이 확인되자 일단은 진보 진영도 한숨 돌리는 모습이다. 입원 소식에 들썩였던 SNS는 퇴원 소식에 또다시 떠들석하다. "긴즈버그는 갈비뼈 3개 부러지고 하룻만에 퇴원했는데, 트럼프는 비온다고 미군묘지 참배를 취소했단다!" 라며 그녀를 칭찬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꼬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녀는 최근 뉴욕의 한 모임에서 90세 이후로 은퇴를 미룰 것이라며, "앞으로 최소 5년 더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이를 위해 고령의 나이에도 팔굽혀펴기와 아령 들기를 미루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성공까지 감안하면 최소 91세까지는 건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미국인들은 왜 ‘85세 할머니’ 낙상에 초조해졌나
    • 입력 2018-11-13 07:05:13
    • 수정2018-11-13 16:03:30
    글로벌 돋보기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올해 85세다. [사진출처 : 로이터]


한 눈에 봐도 꼬장꼬장해보이는 이 여성, 올해 85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다.
미국의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고, 현직 최고령 대법관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가운데 4명인 진보 성향 판사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지난 8일 병원에 입원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넘어져 왼쪽 갈비뼈 3개가 부러졌다.
대통령도 아닌, 대법관의 낙상 소식이 많은 미국인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미디어와 SNS에는 며칠간이나 긴즈버그의 이름이 뜨겁게 오르내렸고, 초조하게 그의 회복 상태를 지켜봤다.

"그녀가 원한다면 내 갈비뼈를 기증하겠어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면 내 콩팥 하나를 줄 수 있어요. 전 하나만 있어도 돼요."
"말 그대로 내 인생 몇 년을 긴즈버그에게 주고 싶다" 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수십 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
트위터에 올라온 긴즈버그 응원 글들.
왜 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고령의 할머니 판사의 '크지 않은 부상' 소식에 깜짝 놀라 다급한 응원과 격려에 나선 걸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한마디로 진보 진영 법관의 대표주자이자 진보계의 대모로 통한다.
우선 판결 성향이 그렇다.
대법관으로 26년간 재직하면서 소수자와 여성의 인권 신장, 권익 옹호를 위한 판결로 소신을 밝혀왔다.
여성낙태권, 동성결혼 등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맞서 약자에 힘을 보태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2013년엔 동성결혼식의 주례를 맡았고, 2015년 방한했을 땐 당시 국내 1호 동성 부부와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등 성소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덕분에 유명 래퍼 '노터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에서 이름을 딴 '노터리어스 알비쥐(Notorious R.B.G-Ruth Bader Ginburg)라는 애칭도 얻었다.

긴즈버그의 확고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발언 하나.

“사람들은 종종 제게 묻습니다.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이렇게 답합니다. 9명 모두요. 미국 역사에서 대부분 대법관 9명이 모두 남자였어요.
그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201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아이콘 부문에 선정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하지만, 긴즈버그의 낙상 소식에 미국 사회가 바짝 긴장한 건 비단 그녀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언론매체인 VOX는 "긴즈버그의 부상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시대에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불안감, 극단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가운데 보수 5대 진보 4 의 이념 지형을 보여준다.
긴즈버그는 이 4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 중 한 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즈버그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은퇴할 경우, 보수 일색의 구도로 바뀔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닐 고서치, 브렛 캐버너 대법관을 줄줄이 임명해온 만큼, 대법관 빈 자리에 보수 성향의 인사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공화당 우위인 상원에서 트럼프가 지명한 대법관 후보는 무난히 인준을 통과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언론들은 이렇게 되면 낙태, 사형, 투표권, 동성애자 권리, 종교의 자유 등 주요 이슈에 관한 법원 판결의 방향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시 말해, 긴즈버그가 오래 버틸수록 미국 연방대법원이 보수 일색으로 기우는 걸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긴즈버그 대법관, 고령의 나이에도 아령 들고 운동하는 모습
긴즈버그 역시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지난주 입원 하룻 만에 퇴원했다. 현재 업무에 복귀한 상태다. 대법원에서 최고령인 그녀의 건재함이 확인되자 일단은 진보 진영도 한숨 돌리는 모습이다. 입원 소식에 들썩였던 SNS는 퇴원 소식에 또다시 떠들석하다. "긴즈버그는 갈비뼈 3개 부러지고 하룻만에 퇴원했는데, 트럼프는 비온다고 미군묘지 참배를 취소했단다!" 라며 그녀를 칭찬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꼬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녀는 최근 뉴욕의 한 모임에서 90세 이후로 은퇴를 미룰 것이라며, "앞으로 최소 5년 더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이를 위해 고령의 나이에도 팔굽혀펴기와 아령 들기를 미루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성공까지 감안하면 최소 91세까지는 건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