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졸업 안 시켜준다” 성추행 교수…징계는 정직 1개월

입력 2018.11.13 (17:39) 수정 2018.11.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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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습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대학가까지 "나도 피해자"라는 고백은 '미투'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는데요. 지금은 잠잠해진 듯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제가 취재했던 경희대 성추행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졸업시켜줄 수 없다는 지도교수…유흥주점으로 제자 데려가

지난 3월 경희대 이공계 대학에서 지도교수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는 1주일에 많으면 서너 차례까지 피해 학생을 술자리에 불렀고 단둘이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통보 형식의 술자리를 거부하면 크고 작은 차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학생이 교수를 찾아가자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고 했고 결국 밤늦게 유흥주점의 룸까지 가게 됐습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교수는 제자를 성추행했고, 결국 이런 내용이 방송된 뒤에야 학교는 조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연관기사] “졸업 못 시킨다” 제자 성추행…영상에 잡힌 과학계 ‘미투’

'여름방학'인 8월 한 달간 정직…이후 다시 강단으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뒤 가장 먼저 열린 것은 조사위원회였습니다. 가해자인 교수와 피해 학생, 연구실 학생들을 불러 면담이 진행됐고, 이후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취재기자로서 징계 절차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며 학교 측과 지속적인 연락을 했지만, 여름이 지나도록 추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가을이 되서야 가해 교수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하필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7월 말에 나와 교수는 여름방학인 8월 한 달간 정직 처분을 받게 됐고, 9월부터 다시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가해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지도교수를 바꾸겠다며 연구실을 나간 학생도 있다고 학교 측은 전했습니다.

학교 측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사건에 1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내리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학교 내부에서 가해 교수가 이미 불명예를 입게 됐고 정직이라는 징계 기록이 인사 카드에 평생 남기 때문에 앞으로 누리게 될 모든 혜택을 박탈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피해 학생도 학교 측의 설명에 동의할까요?

캠퍼스 휩쓴 '미투'…대답 없는 대학들

그렇다면 다른 대학들은 어떨까요? 교수를 징계하는 절차에는 정직 1개월과 3개월, 해임, 파면의 단계가 있습니다. 올해 '미투' 운동이 있었던 대학들을 살펴보면 파면 처분이 내려진 곳은 4곳에 불과합니다. 시효가 지나거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등의 이유로 아직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더구나 해임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3년 뒤면 복직할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정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학은 상아탑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상아탑에서 교수라는 절대 권력 아래 자행되는 성폭력에 아직도 숨죽이고 지내는 피해자들이 존재합니다. 제보자 대부분은 교수가 학계 권위자이기 때문에 절대 이름을 밝히거나 인터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사과일 수도 있고 정당한 처벌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치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서와 망각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 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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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졸업 안 시켜준다” 성추행 교수…징계는 정직 1개월
    • 입력 2018-11-13 17:39:12
    • 수정2018-11-13 17:41:13
    취재후·사건후
올해 초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습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대학가까지 "나도 피해자"라는 고백은 '미투'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는데요. 지금은 잠잠해진 듯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제가 취재했던 경희대 성추행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졸업시켜줄 수 없다는 지도교수…유흥주점으로 제자 데려가

지난 3월 경희대 이공계 대학에서 지도교수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는 1주일에 많으면 서너 차례까지 피해 학생을 술자리에 불렀고 단둘이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통보 형식의 술자리를 거부하면 크고 작은 차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학생이 교수를 찾아가자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고 했고 결국 밤늦게 유흥주점의 룸까지 가게 됐습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교수는 제자를 성추행했고, 결국 이런 내용이 방송된 뒤에야 학교는 조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연관기사] “졸업 못 시킨다” 제자 성추행…영상에 잡힌 과학계 ‘미투’

'여름방학'인 8월 한 달간 정직…이후 다시 강단으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뒤 가장 먼저 열린 것은 조사위원회였습니다. 가해자인 교수와 피해 학생, 연구실 학생들을 불러 면담이 진행됐고, 이후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취재기자로서 징계 절차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며 학교 측과 지속적인 연락을 했지만, 여름이 지나도록 추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가을이 되서야 가해 교수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하필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7월 말에 나와 교수는 여름방학인 8월 한 달간 정직 처분을 받게 됐고, 9월부터 다시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가해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지도교수를 바꾸겠다며 연구실을 나간 학생도 있다고 학교 측은 전했습니다.

학교 측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사건에 1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내리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학교 내부에서 가해 교수가 이미 불명예를 입게 됐고 정직이라는 징계 기록이 인사 카드에 평생 남기 때문에 앞으로 누리게 될 모든 혜택을 박탈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피해 학생도 학교 측의 설명에 동의할까요?

캠퍼스 휩쓴 '미투'…대답 없는 대학들

그렇다면 다른 대학들은 어떨까요? 교수를 징계하는 절차에는 정직 1개월과 3개월, 해임, 파면의 단계가 있습니다. 올해 '미투' 운동이 있었던 대학들을 살펴보면 파면 처분이 내려진 곳은 4곳에 불과합니다. 시효가 지나거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등의 이유로 아직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더구나 해임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3년 뒤면 복직할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정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학은 상아탑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상아탑에서 교수라는 절대 권력 아래 자행되는 성폭력에 아직도 숨죽이고 지내는 피해자들이 존재합니다. 제보자 대부분은 교수가 학계 권위자이기 때문에 절대 이름을 밝히거나 인터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사과일 수도 있고 정당한 처벌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치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서와 망각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 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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