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버스 ‘운전사 리스크’…도쿄, 뇌MRI 의무화

입력 2018.11.15 (10: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버스 운전사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승객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 운전사가 차량 운전 중 이런저런 이유로 의식을 잃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운전사의 졸도가 교통사고로 이어져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버스운전사 졸도 속출…인명 피해 잇따라

지난 10월 28일 요코하마 시에서 50대 운전사가 몰던 버스가 승용차와 기둥 등을 잇따라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운전사는 사고 직전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수면무호흡증(SAS)진단을 받았지만, 회사 측은 의사 소견에 따라 운전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면무호흡증은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낮 시간에 지나친 졸음과 업무 능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고, 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회사 측은 운전사 중 약 10%가량이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지만, 일반인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일본의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약 400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 증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실제 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나흘 뒤인 11월 1일 치바 현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다. 60대 중반의 운전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운전 중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토교통성 분석 결과, 버스 운전사가 운전 중 의식을 잃어 운전이 불가능해지는 사고는 최근 5년 동안 60건에 이른다. 특히 뇌와 심장 질환으로 의식을 잃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운전사 연령이 높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의 함정...운전사의 이중고

버스 운전사 직종은 젊은이들이 떠난 일터를 중장년층이 어렵게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젊은 구직자들에게는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 불만이다. 다른 일자리도 남아도는 상황에서 구태여 운전직을 택할 이유가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일본의 버스 운전사도 고강도의 심리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직종이다. 준법·안전운전은 기본이고, 승객의 승하차 시 안전 확인, 요금 지불 확인, 출입문 개폐시 안전 확인 등 부가적인 일이 많다. 운전사가 직접 정류장별 안내까지 맡고 있다. 교통상황 변화에 적응하면서 정류장별 도착 시각을 맞추는 것도 스트레스다.

버스회사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NHK 조사에 따르면, 버스 운전사들에게 휴일 출근은 당연한 일이 됐다. 하루 노동시간이 15시간에 이르기도 한다. 현역 운전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휴식 시간이 항상 빠듯하다고 호소한다. 몸 상태가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는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운전사 리스크' 해법에 고심

운전사의 건강·과로 문제는 당사자의 노동권익 뿐만 아니라 다중의 건강·생명과 직결돼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도 나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부 버스회사는 1인당 3만 엔(약 3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90여 명의 운전사 모두에 대해 '뇌독크'(brain dock)라 불리는 예방검진체계를 도입했다. 뇌독크는 뇌동맥류, 소혈관 폐쇄 발병 가능성을 가려내는 등 뇌 속의 변화를 검사해 뇌졸중 등의 위험성을 낮추는 예방 시스템이다.


안전확보를 위해 신형 버스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운전사 유고 시 승객이 차량의 비상정지 정지버튼을 누르면, 승객과 주위 차량에 이상을 알리면서 자동으로 속도를 떨어뜨리는 시스템이다.

국토교통성은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 운송 규칙 및 화물 자동차 운송사업 안전규정'을 개정했다. 지난 6월부터 버스 등 운전사의 수면 부족 여부를 확인해 수면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운전을 금지하도록 했다. 버스,택시, 트럭 운전사의 졸음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회사 측의 점검·기록 의무 사항에 수면부족 여부를 추가했다. 수면이 부족한 운전사에게는 운전을 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아베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 온 '일하는 방식의 개혁'과도 관련이 있다.

도쿄, 버스운전사 뇌MRI 검사 의무화...비용 전액 지원

버스 사업을 운영하는 일부 광역지자체는 운전사 전체를 대상으로 뇌 검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적인 의사 면담이 아니라 MRI(자기공명영상장치)촬영을 통한 전문적 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도쿄도 당국은 도영 버스에서 근무하는 운전사 2천 명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뇌MRI 검진'을 3년에 1회씩 받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뇌경색과 뇌출혈 위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이상이 발견된 운전자는 전문의 진단과 정밀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필요할 경우, 운전 업무를 중단시키고 사무직으로 옮겨 근무하도록 할 방침이다.

도영 버스 운전사 중 60% 가량은 뇌 지주막하 출혈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50세 이상 연령층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상대적으로 고위험군인 이들 연령층부터 우선적으로 검사가 이뤄진다. 1인당 2만 엔(약 20만 원)에 이르는 MRI진단비용은 모두 도쿄 도가 부담하기로 했다.


정부와 운수업체들이 나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상대적 저임금과 인력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외국인 방문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운전인력 수요까지 급증하고 있다. 노동강도에 버금가도록 충분한 수준의 임금·복지 향상은 버스 운영자 측이 감당할 여건이나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인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日버스 ‘운전사 리스크’…도쿄, 뇌MRI 의무화
    • 입력 2018-11-15 10:01:43
    특파원 리포트
일본에서 버스 운전사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승객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 운전사가 차량 운전 중 이런저런 이유로 의식을 잃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운전사의 졸도가 교통사고로 이어져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버스운전사 졸도 속출…인명 피해 잇따라

지난 10월 28일 요코하마 시에서 50대 운전사가 몰던 버스가 승용차와 기둥 등을 잇따라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운전사는 사고 직전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수면무호흡증(SAS)진단을 받았지만, 회사 측은 의사 소견에 따라 운전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면무호흡증은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낮 시간에 지나친 졸음과 업무 능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고, 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회사 측은 운전사 중 약 10%가량이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지만, 일반인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일본의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약 400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 증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실제 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나흘 뒤인 11월 1일 치바 현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다. 60대 중반의 운전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운전 중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토교통성 분석 결과, 버스 운전사가 운전 중 의식을 잃어 운전이 불가능해지는 사고는 최근 5년 동안 60건에 이른다. 특히 뇌와 심장 질환으로 의식을 잃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운전사 연령이 높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의 함정...운전사의 이중고

버스 운전사 직종은 젊은이들이 떠난 일터를 중장년층이 어렵게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젊은 구직자들에게는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 불만이다. 다른 일자리도 남아도는 상황에서 구태여 운전직을 택할 이유가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일본의 버스 운전사도 고강도의 심리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직종이다. 준법·안전운전은 기본이고, 승객의 승하차 시 안전 확인, 요금 지불 확인, 출입문 개폐시 안전 확인 등 부가적인 일이 많다. 운전사가 직접 정류장별 안내까지 맡고 있다. 교통상황 변화에 적응하면서 정류장별 도착 시각을 맞추는 것도 스트레스다.

버스회사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NHK 조사에 따르면, 버스 운전사들에게 휴일 출근은 당연한 일이 됐다. 하루 노동시간이 15시간에 이르기도 한다. 현역 운전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휴식 시간이 항상 빠듯하다고 호소한다. 몸 상태가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는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운전사 리스크' 해법에 고심

운전사의 건강·과로 문제는 당사자의 노동권익 뿐만 아니라 다중의 건강·생명과 직결돼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도 나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부 버스회사는 1인당 3만 엔(약 3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90여 명의 운전사 모두에 대해 '뇌독크'(brain dock)라 불리는 예방검진체계를 도입했다. 뇌독크는 뇌동맥류, 소혈관 폐쇄 발병 가능성을 가려내는 등 뇌 속의 변화를 검사해 뇌졸중 등의 위험성을 낮추는 예방 시스템이다.


안전확보를 위해 신형 버스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운전사 유고 시 승객이 차량의 비상정지 정지버튼을 누르면, 승객과 주위 차량에 이상을 알리면서 자동으로 속도를 떨어뜨리는 시스템이다.

국토교통성은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 운송 규칙 및 화물 자동차 운송사업 안전규정'을 개정했다. 지난 6월부터 버스 등 운전사의 수면 부족 여부를 확인해 수면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운전을 금지하도록 했다. 버스,택시, 트럭 운전사의 졸음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회사 측의 점검·기록 의무 사항에 수면부족 여부를 추가했다. 수면이 부족한 운전사에게는 운전을 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아베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 온 '일하는 방식의 개혁'과도 관련이 있다.

도쿄, 버스운전사 뇌MRI 검사 의무화...비용 전액 지원

버스 사업을 운영하는 일부 광역지자체는 운전사 전체를 대상으로 뇌 검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적인 의사 면담이 아니라 MRI(자기공명영상장치)촬영을 통한 전문적 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도쿄도 당국은 도영 버스에서 근무하는 운전사 2천 명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뇌MRI 검진'을 3년에 1회씩 받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뇌경색과 뇌출혈 위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이상이 발견된 운전자는 전문의 진단과 정밀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필요할 경우, 운전 업무를 중단시키고 사무직으로 옮겨 근무하도록 할 방침이다.

도영 버스 운전사 중 60% 가량은 뇌 지주막하 출혈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50세 이상 연령층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상대적으로 고위험군인 이들 연령층부터 우선적으로 검사가 이뤄진다. 1인당 2만 엔(약 20만 원)에 이르는 MRI진단비용은 모두 도쿄 도가 부담하기로 했다.


정부와 운수업체들이 나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상대적 저임금과 인력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외국인 방문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운전인력 수요까지 급증하고 있다. 노동강도에 버금가도록 충분한 수준의 임금·복지 향상은 버스 운영자 측이 감당할 여건이나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인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