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조원 관리에 선거 개입까지”…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 정황 포착

입력 2018.11.1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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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측이 노조 운영이나 선거에 관여할 목적으로 조합원의 성향을 구분해 관리하고, 실제 선거 과정에도 개입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입증이 쉽지 않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소나 고발이 이뤄져도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국정감사 때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폭로도 마찬가지였다. 불법적인 노무관리를 해왔던 전직 간부는 결국 증거물을 내놓지 않았다. 노조도 고소를 취하했다. 그런데 2년 만에 새로운 증거가 KBS 취재팀의 손에 들어왔다. 현대중공업 내부 전산망에서 발견된 문건이다.

■ "믿을 곳이 없어서 연락했습니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대중공업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제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에 넘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노조 안에 있을지 모를 사측 인사들에게 문건이 먼저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상급단체에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문건을 확보한 뒤 몇 달을 고민했던 제보자가 KBS를 믿을 수 있는 언론사로 여기고 제보해줘서 감사했다.

넘겨받은 문건은 20여 건의 영상과 엑셀파일, 사진 등이었다.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현대중공업 내부 전산망 ECM에서 확보했다고 밝혔다. 문서를 만들면 바로 중앙서버에 저장되고 권한이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안 등급이 풀려서 우연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열어봤지만,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고, 결국 증거수집에 나선 셈이었다.

■ 신호등 불빛으로 구분한 노조원 성향

제보자는 신입사원 때 '신호등'이라는 걸 얼핏 들었다고 말했다. 신호등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직원들의 성향 분석에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강성 노조원은 적성, 빨간불을 뜻하는 'R'로 표기했다. 회사와 가까운 노조원은 초록불을 뜻하는 'G'였다. 노조파괴 문건에 흔히 나오는 '그린화', '녹지화'와 같은 뜻이다. 중간 성향의 노조원은 노란불을 뜻하는 'Y'였다. 20여 년 전에도 사용했던 '신호등'은 모양을 조금 바꿨을 뿐 지금도 사용되고 있었다.



노조원에 대한 성향 조사내용은 사측 간부가 만든 대의원 선거활동 계획에서 발견됐다. 우선 올해 30대 대·소의원에 성향을 보면 수십 년 전통의 '신호등'이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29대 대의원 선거활동을 보면, 일반 조합원을 상대로도 성향 분석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합원 성향을 5단계로 분류한 뒤 회사와 가까운 상위 3단계를 집중 관리한다고 적어놨다. 일반 조합원의 성향을 관리했던 이유는 문서를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 사측 대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 개입이 목적

2년 전 열린 29대(지난해) 대의원 선거계획부터 다음 달 열릴 31대(내년) 대의원 선거계획까지 3년 치 문서를 검토했다. 일관되게 사측 대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어느 강성 대의원을 사측을 뜻하는 '합리파'로 전향시켰고, 조합 선거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적어놨다. 특정 인물을 노조 대의원 선거에 나가지 못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사자들을 현대중공업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사측이 출마하지 못하도록 작업을 했던 노조원을 만났다. 자신에 대한 사측의 평가와 불출마 작전을 읽어주자, 그는 충격을 받은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자, "(조합원 중에)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자신의 성향상 조합원들하고 친하지 못하니까(않으니까) 지지율도 없을(낮을) 거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사측의 회유 대상이었던 대의원은 "전향하지 않았지만, 회유를 받은 적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테니까 (노조활동을) 그만하면 안 되겠느냐 자기 쪽으로 돌아서면 안 되겠느냐는 그런 유혹은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묻자, "회사에서 부서에서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 2년 전 국정감사 때 위증했나?

이번에 발견된 현대중공업의 3년 치 내부 문건을 보면, 사측의 선거 개입에 오피니언 리더(OL) 그룹이라고 불리는 비선 조직, 멘토-멘티 조직, 사랑방 간담회, 향우회, 동호회 등 다양한 사내 조직들이 동원된 정황이 있다. 특히 멘토-멘티 조직은 부서원 대비 조직률이 아니라 조합원 대비 조직률로 성과 관리를 했다.


그런데 2년 전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나왔던 당시 현대중공업 사장은 오피니언 리더그룹의 존재가 과거의 일이라고 밝혔고, 해당 조직이 노조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도 아니고, 노조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있다. 사장이 OL 그룹의 존재와 불법적인 노무관리 행태를 알았다면 위증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 일부 부서의 잘못? 꼬리 자르기?

현대중공업은 KBS 취재가 시작되자 신속하게 대응했다. 문건과 관련된 부서의 책임자들을 즉시 인사대기 시키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올해만 16차례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라고 교육까지 했지만, 일부 부서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내부 감사와 관리 감독 강화도 약속했다.

그렇지만, 일개 부서장들이 독단적으로 이런 형태의 노무관리를 할 수는 없다. 최소한 임원 수준의 관리자가 직접적인 지시를 했거나 관행적으로 이뤄진 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울산지청은 이미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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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노조원 관리에 선거 개입까지”…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 정황 포착
    • 입력 2018-11-16 21:04:26
    경제
회사 측이 노조 운영이나 선거에 관여할 목적으로 조합원의 성향을 구분해 관리하고, 실제 선거 과정에도 개입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입증이 쉽지 않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소나 고발이 이뤄져도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국정감사 때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폭로도 마찬가지였다. 불법적인 노무관리를 해왔던 전직 간부는 결국 증거물을 내놓지 않았다. 노조도 고소를 취하했다. 그런데 2년 만에 새로운 증거가 KBS 취재팀의 손에 들어왔다. 현대중공업 내부 전산망에서 발견된 문건이다.

■ "믿을 곳이 없어서 연락했습니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대중공업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제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에 넘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노조 안에 있을지 모를 사측 인사들에게 문건이 먼저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상급단체에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문건을 확보한 뒤 몇 달을 고민했던 제보자가 KBS를 믿을 수 있는 언론사로 여기고 제보해줘서 감사했다.

넘겨받은 문건은 20여 건의 영상과 엑셀파일, 사진 등이었다.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현대중공업 내부 전산망 ECM에서 확보했다고 밝혔다. 문서를 만들면 바로 중앙서버에 저장되고 권한이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안 등급이 풀려서 우연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열어봤지만,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고, 결국 증거수집에 나선 셈이었다.

■ 신호등 불빛으로 구분한 노조원 성향

제보자는 신입사원 때 '신호등'이라는 걸 얼핏 들었다고 말했다. 신호등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직원들의 성향 분석에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강성 노조원은 적성, 빨간불을 뜻하는 'R'로 표기했다. 회사와 가까운 노조원은 초록불을 뜻하는 'G'였다. 노조파괴 문건에 흔히 나오는 '그린화', '녹지화'와 같은 뜻이다. 중간 성향의 노조원은 노란불을 뜻하는 'Y'였다. 20여 년 전에도 사용했던 '신호등'은 모양을 조금 바꿨을 뿐 지금도 사용되고 있었다.



노조원에 대한 성향 조사내용은 사측 간부가 만든 대의원 선거활동 계획에서 발견됐다. 우선 올해 30대 대·소의원에 성향을 보면 수십 년 전통의 '신호등'이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29대 대의원 선거활동을 보면, 일반 조합원을 상대로도 성향 분석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합원 성향을 5단계로 분류한 뒤 회사와 가까운 상위 3단계를 집중 관리한다고 적어놨다. 일반 조합원의 성향을 관리했던 이유는 문서를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 사측 대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 개입이 목적

2년 전 열린 29대(지난해) 대의원 선거계획부터 다음 달 열릴 31대(내년) 대의원 선거계획까지 3년 치 문서를 검토했다. 일관되게 사측 대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어느 강성 대의원을 사측을 뜻하는 '합리파'로 전향시켰고, 조합 선거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적어놨다. 특정 인물을 노조 대의원 선거에 나가지 못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사자들을 현대중공업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사측이 출마하지 못하도록 작업을 했던 노조원을 만났다. 자신에 대한 사측의 평가와 불출마 작전을 읽어주자, 그는 충격을 받은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자, "(조합원 중에)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자신의 성향상 조합원들하고 친하지 못하니까(않으니까) 지지율도 없을(낮을) 거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사측의 회유 대상이었던 대의원은 "전향하지 않았지만, 회유를 받은 적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테니까 (노조활동을) 그만하면 안 되겠느냐 자기 쪽으로 돌아서면 안 되겠느냐는 그런 유혹은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묻자, "회사에서 부서에서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 2년 전 국정감사 때 위증했나?

이번에 발견된 현대중공업의 3년 치 내부 문건을 보면, 사측의 선거 개입에 오피니언 리더(OL) 그룹이라고 불리는 비선 조직, 멘토-멘티 조직, 사랑방 간담회, 향우회, 동호회 등 다양한 사내 조직들이 동원된 정황이 있다. 특히 멘토-멘티 조직은 부서원 대비 조직률이 아니라 조합원 대비 조직률로 성과 관리를 했다.


그런데 2년 전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나왔던 당시 현대중공업 사장은 오피니언 리더그룹의 존재가 과거의 일이라고 밝혔고, 해당 조직이 노조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도 아니고, 노조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있다. 사장이 OL 그룹의 존재와 불법적인 노무관리 행태를 알았다면 위증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 일부 부서의 잘못? 꼬리 자르기?

현대중공업은 KBS 취재가 시작되자 신속하게 대응했다. 문건과 관련된 부서의 책임자들을 즉시 인사대기 시키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올해만 16차례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라고 교육까지 했지만, 일부 부서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내부 감사와 관리 감독 강화도 약속했다.

그렇지만, 일개 부서장들이 독단적으로 이런 형태의 노무관리를 할 수는 없다. 최소한 임원 수준의 관리자가 직접적인 지시를 했거나 관행적으로 이뤄진 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울산지청은 이미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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