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교수님 방 빼세요” 그 후…학생들이 말하는 ‘미투’ 뒷이야기

입력 2018.11.17 (08:13) 수정 2018.11.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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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연구실 문을 뒤덮은 색색의 메모지. "교수님 방 빼세요" "성범죄자 OUT"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와 같은 문구들이 손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미투' 고발이 터져나왔던 올봄, 여러 대학 캠퍼스의 공통된 풍경입니다.

학생들은 제자를 상대로 한 교수의 성폭력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고, 대학 측의 합당한 처분을 요구했습니다. 대책위를 꾸려 보도자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난생 처음 방송사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에도 응했습니다. 그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학생들이 변화시키고자 했던 대학,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서로 다른 캠퍼스에서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 세 명에게,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①청주대: 교수 사망 이후…뒤늦게 진상조사 나선 학교

유명 배우이기도 했던 한 연극영화과 교수의 성추행 문제가 제기된 청주대학교. 졸업생 강윤지 씨는 올해 2월 말, 학과 동료들과 함께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모임'(이하 '졸업생모임')을 꾸려 지금까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모임은 결성 직후,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학과 교수진과 학교 측에 사과를 요구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당 교수는 3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3월 말, 졸업생모임은 학과 교수진을 만나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전수조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 일이 흐지부지되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당시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이 일을 다시 공론화시키는 건 어렵다"라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기모임을 이어가면서 여성·인권단체들과 만나 공론화를 계속했고, 7월 초에는 청주대 부총장 등 고위임원들과의 면담도 성사됐습니다. 그리고 7월 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학교가 해당 사건을 들여다보겠다며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겁니다.

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정섭 청주대 학생종합상담센터장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 이런 문제가 벌어졌고, 학교와 학과에서 당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을 조사해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자 한다"면서 "이를 위해 3개월 동안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위에서 재학생과 교수, 졸업생은 물론, 학교 밖에 있는 여러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사위는 현재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달 안에 졸업생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고 설명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와 동시에 조사위는 졸업생모임이 요구해왔던 청주대 재학생·졸업생의 '성폭력 피해 실태 전수조사'도 벌이고 있습니다. 졸업생모임의 강윤지 씨는 "늦었지만 조사위가 꾸려진 건 다행"이라면서 "왜 학교는 매번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성폭력을 묵인한 동료 교수들은 없는지 제대로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졸업 이후 각자 바쁘게 살면서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임을 만든 이유를 묻자, 강 씨는 "책임감과 미안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는 위계질서와 뗄 수 없는데, 사실 저희 학과 문화 자체가 군대처럼 돼있어요. 선배가 '마셔!'하면 마셔야 하고, '머리 박아!'하면 머리 박아야 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위계 질서를 저희가 다같이 만들었거든요. 학교 들어가자마자 스무 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이렇게 살아남아야 되고, 이래야 연극 잘할 수 있고. 이런 식의 문화를 배운 대로 후배에게 물려주고 하다보니, 결국 이런 사건을 우리가 다같이 조장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죄책감, 책임감, 무력감, 미안함. 다양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요."


②동덕여대: 사표 낸 교수 "떳떳하다"…학교는 '동작 그만'

지난 봄, 문예창작과 교수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폭로가 나온 동덕여자대학교. 가해자로 지목된 하일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라는 이름으로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공격을 받게 됐다"면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규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하겠다"며 사표 수리를 보류했습니다. 이후 8개월이 되어 가는 지금, 그 진상조사위는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인권위 결정문을 기다려야 한다더니, 이제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대요."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동덕여대 비대위')의 공동의장인 문아영 씨는 인터뷰 중 여러 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올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덕여대에 하 교수를 징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3개월가량의 조사를 거쳐, 하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한 학생의 피해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하 교수는 "친밀한 사이에서 입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학생을 고소하기까지 했지만, 인권위 판단은 달랐습니다. 하 교수가 학생의 호의를 이성적 호감의 표시로 오해하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추행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없었습니다. 인권위는 징계 권고와 함께 하 교수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이에 학교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진상조사위를 열긴 했지만 당사자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피해 학생은 다양한 2차 피해는 물론, 교수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한 상태에요. 그러는 동안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만 반복했어요. 최소한의 지원이나 보호 조치도 없었습니다. 교수와 학생이 갖는 사회적 권력의 차이가 너무도 분명한데, 어떻게 중립을 말할 수 있나요? 검찰 수사 운운하는 것도 결국 징계를 미루려는 핑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아영 '동덕여대 비대위' 공동의장)

2018년 3월 19일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하일지 동덕여대 교수가,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2018년 3월 19일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하일지 동덕여대 교수가,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위민의 안지희 변호사는 최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형사 절차와 징계 절차의 분리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형사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교내 징계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안 변호사는 토론 발제문에서 "대학들이 성폭력 신고를 받고도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임의로 중단시키는 경향이 있다"면서, 교내 징계는 법률 위반이 아닌 교원의 '품위 유지의무 위반'을 근거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형사 절차와는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형사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거나 설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학교는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인사혁신처에서 발간한 공무원 징계 사례집에도 같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인사혁신처, ‘공무원 징계사례집-공무원 징계제도 안내’ 9쪽.(안지희 변호사 발제문에서 재인용)인사혁신처, ‘공무원 징계사례집-공무원 징계제도 안내’ 9쪽.(안지희 변호사 발제문에서 재인용)

학교가 징계 절차와 관련된 주요 상황을 당사자인 피해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도 학생들이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동덕여대 비대위 문아영 씨는 "학교가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도, 진상조사위를 중단시킨 사실도 기자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면서 "학교에 관련 내용을 취재한 기자가 입장을 물으려고 비대위에 연락을 하고, 피해자는 다시 비대위의 연락을 받고 상황을 알게되는 식"이라면서 피해자가 매번 징계 절차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동덕여대 측이 입장을 바꾸지 않은 이상, 하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가 언제쯤 나오게 될지 현재로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동덕여대 측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 교수가 기소되면 징계를 결정할지, 아니면 재판 결과까지 나와야 할지, 그때 가서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습니다.


③목포대: 가해 교수는 감옥으로…학교는 '뒷북' 징계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수가 감옥에 가고, '파면'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은 곳도 있습니다. 올여름 목포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피해 학생들이 이런 결과를 받아내기까지는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있는 학과 교수님들한테 성추행 사실을 얘기했어요. 이후 교수님들끼리 학과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피해 사실이 언급되다보니 자연스레 피해 학생들 신원이 특정됐습니다. 가해자인 B교수는 피해 학생들이 있는 수업에서 폭언과 협박을 하기도 했어요. 일부 동료 교수도 학생들을 연구실로 불러서 '과민반응 아니냐, 마녀 사냥이다'라면서 피해 학생들을 죄인 취급하고 2차 가해성 발언을 하셨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그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시는 교수님들까지 비난했다는 거예요. 계속 도움을 받아도 되나, 죄송한 생각도 들었고." (피해 학생 A씨)

세 차례의 학과 회의 이후, 사건은 대학의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결정된 징계는 '정직 3개월'. B교수가 한 학기 정도만 쉬고 학교로 돌아오면, 피해 학생들은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일부 피해 학생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후 일상적인 위협과 협박이 시작됐습니다. B교수 측은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흘렸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도, 피고인의 가족이 피해 학생들의 집과 강의실까지 수차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A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해바라기센터' 같은 기관이 있다는 것도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B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탄원과 서명운동에도, 학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다시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올해 8월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고 나서야, 학교 측은 B교수를 파면했습니다. 온전히 학생들의 노력으로 이끌어 낸 결과였습니다.

B교수 사건 판결문의 일부분B교수 사건 판결문의 일부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생각했던 게, 교수니까 그런 일을 해도 되고 학생들이 너무 예민했다는 반응이 (교내에) 대다수였거든요. 교수님들도 무엇이 성희롱이고, 성추행이고, 성폭행인지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계시다고 느꼈어요. 교수님들한테 여쭤봐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더라도 그냥 영상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성폭력 예방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학생들도 사실 무엇이 성희롱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겪은 피해를 잘 인지하고, 피해가 있다면 당연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피해 학생 A씨)

"잘못된 사회에서 살 수 없어…계속 목소리 낼 것"

'미투' 운동 이후에도, 대학은 여전히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공간입니다. 학생들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앞서 살펴봤듯 기본 채널조차 막혀 있는 게 현실입니다. 대다수 학교가 학생들을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직원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슨 '자격'으로 이러냐며 비아냥과 함께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높아만 보이는 벽 앞에서 위축되고 지치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합니다.

"분명 피로감, 무력감이 있지만 저희는 계속 활동하고 싸우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사회에서 살 수 없다는 거예요. 단순히 이 사건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한 학내 분위기를 만들자. 그렇지 않으면 꼭 성폭행, 성추행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다른 누군가가 폭력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아영 '동덕여대 비대위'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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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교수님 방 빼세요” 그 후…학생들이 말하는 ‘미투’ 뒷이야기
    • 입력 2018-11-17 08:13:47
    • 수정2018-11-17 09:35:50
    취재후·사건후
대학 교수 연구실 문을 뒤덮은 색색의 메모지. "교수님 방 빼세요" "성범죄자 OUT"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와 같은 문구들이 손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미투' 고발이 터져나왔던 올봄, 여러 대학 캠퍼스의 공통된 풍경입니다.

학생들은 제자를 상대로 한 교수의 성폭력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고, 대학 측의 합당한 처분을 요구했습니다. 대책위를 꾸려 보도자료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난생 처음 방송사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에도 응했습니다. 그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학생들이 변화시키고자 했던 대학,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서로 다른 캠퍼스에서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 세 명에게,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①청주대: 교수 사망 이후…뒤늦게 진상조사 나선 학교

유명 배우이기도 했던 한 연극영화과 교수의 성추행 문제가 제기된 청주대학교. 졸업생 강윤지 씨는 올해 2월 말, 학과 동료들과 함께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모임'(이하 '졸업생모임')을 꾸려 지금까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모임은 결성 직후,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학과 교수진과 학교 측에 사과를 요구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당 교수는 3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3월 말, 졸업생모임은 학과 교수진을 만나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전수조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 일이 흐지부지되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당시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이 일을 다시 공론화시키는 건 어렵다"라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기모임을 이어가면서 여성·인권단체들과 만나 공론화를 계속했고, 7월 초에는 청주대 부총장 등 고위임원들과의 면담도 성사됐습니다. 그리고 7월 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학교가 해당 사건을 들여다보겠다며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겁니다.

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정섭 청주대 학생종합상담센터장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 이런 문제가 벌어졌고, 학교와 학과에서 당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을 조사해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자 한다"면서 "이를 위해 3개월 동안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위에서 재학생과 교수, 졸업생은 물론, 학교 밖에 있는 여러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사위는 현재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달 안에 졸업생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고 설명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와 동시에 조사위는 졸업생모임이 요구해왔던 청주대 재학생·졸업생의 '성폭력 피해 실태 전수조사'도 벌이고 있습니다. 졸업생모임의 강윤지 씨는 "늦었지만 조사위가 꾸려진 건 다행"이라면서 "왜 학교는 매번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성폭력을 묵인한 동료 교수들은 없는지 제대로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졸업 이후 각자 바쁘게 살면서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임을 만든 이유를 묻자, 강 씨는 "책임감과 미안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는 위계질서와 뗄 수 없는데, 사실 저희 학과 문화 자체가 군대처럼 돼있어요. 선배가 '마셔!'하면 마셔야 하고, '머리 박아!'하면 머리 박아야 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위계 질서를 저희가 다같이 만들었거든요. 학교 들어가자마자 스무 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이렇게 살아남아야 되고, 이래야 연극 잘할 수 있고. 이런 식의 문화를 배운 대로 후배에게 물려주고 하다보니, 결국 이런 사건을 우리가 다같이 조장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죄책감, 책임감, 무력감, 미안함. 다양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요."


②동덕여대: 사표 낸 교수 "떳떳하다"…학교는 '동작 그만'

지난 봄, 문예창작과 교수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폭로가 나온 동덕여자대학교. 가해자로 지목된 하일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라는 이름으로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공격을 받게 됐다"면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규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하겠다"며 사표 수리를 보류했습니다. 이후 8개월이 되어 가는 지금, 그 진상조사위는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인권위 결정문을 기다려야 한다더니, 이제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대요."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동덕여대 비대위')의 공동의장인 문아영 씨는 인터뷰 중 여러 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올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덕여대에 하 교수를 징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3개월가량의 조사를 거쳐, 하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한 학생의 피해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하 교수는 "친밀한 사이에서 입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학생을 고소하기까지 했지만, 인권위 판단은 달랐습니다. 하 교수가 학생의 호의를 이성적 호감의 표시로 오해하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추행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없었습니다. 인권위는 징계 권고와 함께 하 교수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이에 학교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진상조사위를 열긴 했지만 당사자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피해 학생은 다양한 2차 피해는 물론, 교수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한 상태에요. 그러는 동안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만 반복했어요. 최소한의 지원이나 보호 조치도 없었습니다. 교수와 학생이 갖는 사회적 권력의 차이가 너무도 분명한데, 어떻게 중립을 말할 수 있나요? 검찰 수사 운운하는 것도 결국 징계를 미루려는 핑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아영 '동덕여대 비대위' 공동의장)

2018년 3월 19일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하일지 동덕여대 교수가,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위민의 안지희 변호사는 최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형사 절차와 징계 절차의 분리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형사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교내 징계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안 변호사는 토론 발제문에서 "대학들이 성폭력 신고를 받고도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임의로 중단시키는 경향이 있다"면서, 교내 징계는 법률 위반이 아닌 교원의 '품위 유지의무 위반'을 근거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형사 절차와는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형사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거나 설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학교는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인사혁신처에서 발간한 공무원 징계 사례집에도 같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인사혁신처, ‘공무원 징계사례집-공무원 징계제도 안내’ 9쪽.(안지희 변호사 발제문에서 재인용)
학교가 징계 절차와 관련된 주요 상황을 당사자인 피해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도 학생들이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동덕여대 비대위 문아영 씨는 "학교가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도, 진상조사위를 중단시킨 사실도 기자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면서 "학교에 관련 내용을 취재한 기자가 입장을 물으려고 비대위에 연락을 하고, 피해자는 다시 비대위의 연락을 받고 상황을 알게되는 식"이라면서 피해자가 매번 징계 절차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동덕여대 측이 입장을 바꾸지 않은 이상, 하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가 언제쯤 나오게 될지 현재로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동덕여대 측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 교수가 기소되면 징계를 결정할지, 아니면 재판 결과까지 나와야 할지, 그때 가서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습니다.


③목포대: 가해 교수는 감옥으로…학교는 '뒷북' 징계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수가 감옥에 가고, '파면'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은 곳도 있습니다. 올여름 목포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피해 학생들이 이런 결과를 받아내기까지는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있는 학과 교수님들한테 성추행 사실을 얘기했어요. 이후 교수님들끼리 학과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피해 사실이 언급되다보니 자연스레 피해 학생들 신원이 특정됐습니다. 가해자인 B교수는 피해 학생들이 있는 수업에서 폭언과 협박을 하기도 했어요. 일부 동료 교수도 학생들을 연구실로 불러서 '과민반응 아니냐, 마녀 사냥이다'라면서 피해 학생들을 죄인 취급하고 2차 가해성 발언을 하셨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그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시는 교수님들까지 비난했다는 거예요. 계속 도움을 받아도 되나, 죄송한 생각도 들었고." (피해 학생 A씨)

세 차례의 학과 회의 이후, 사건은 대학의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결정된 징계는 '정직 3개월'. B교수가 한 학기 정도만 쉬고 학교로 돌아오면, 피해 학생들은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일부 피해 학생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후 일상적인 위협과 협박이 시작됐습니다. B교수 측은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흘렸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도, 피고인의 가족이 피해 학생들의 집과 강의실까지 수차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A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해바라기센터' 같은 기관이 있다는 것도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B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탄원과 서명운동에도, 학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다시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올해 8월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고 나서야, 학교 측은 B교수를 파면했습니다. 온전히 학생들의 노력으로 이끌어 낸 결과였습니다.

B교수 사건 판결문의 일부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생각했던 게, 교수니까 그런 일을 해도 되고 학생들이 너무 예민했다는 반응이 (교내에) 대다수였거든요. 교수님들도 무엇이 성희롱이고, 성추행이고, 성폭행인지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계시다고 느꼈어요. 교수님들한테 여쭤봐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더라도 그냥 영상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성폭력 예방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학생들도 사실 무엇이 성희롱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겪은 피해를 잘 인지하고, 피해가 있다면 당연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피해 학생 A씨)

"잘못된 사회에서 살 수 없어…계속 목소리 낼 것"

'미투' 운동 이후에도, 대학은 여전히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공간입니다. 학생들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앞서 살펴봤듯 기본 채널조차 막혀 있는 게 현실입니다. 대다수 학교가 학생들을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직원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슨 '자격'으로 이러냐며 비아냥과 함께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높아만 보이는 벽 앞에서 위축되고 지치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합니다.

"분명 피로감, 무력감이 있지만 저희는 계속 활동하고 싸우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사회에서 살 수 없다는 거예요. 단순히 이 사건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한 학내 분위기를 만들자. 그렇지 않으면 꼭 성폭행, 성추행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다른 누군가가 폭력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아영 '동덕여대 비대위'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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