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시한 2주…소위조차 구성 못 하는 국회

입력 2018.11.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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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15일 열기로 했던 정기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불참 속에 열리지 못했습니다.

여야가 사전에 열기로 합의했던 본회의까지 불참하며 야당이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요, 470조 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그 핵심적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런 여야 간 힘겨루기는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소위(예산안 등 조정 소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한창 불꽃을 튀기고 있습니다.

14명 VS 15명 VS 16명…왜 이런 걸로 싸우지?

14명, 15명, 16명.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국회 예산소위 위원 정수의 숫자들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또 싸우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산안을 둘러싼 치열한 샅바싸움이 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4인이나 16인으로 예산소위를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의 비교섭단체 소속 위원이 한 명은 포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예결위 의석 비율에 따라 비교섭단체도 소위원회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예결위원이 정당 의석 비율에 맞춰 민주당 22명, 한국당 19명, 바른미래당 5명, 비교섭단체 4명이니, 예산소위도 이 비율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당은 15인 안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예산소위를 15명으로 구성하는 것은 19대 국회 때부터 관례인데, 늘리거나 줄이자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섭단체를 굳이 포함시켜야 한다면 민주당 몫을 한 명 줄이거나, 민주당이 바른미래당과 협상해 바른미래당 몫을 한 명 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각자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있지만, 속내는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기싸움이라는 해석이 우세합니다. 비교섭단체를 포함해 예산소위를 14명이나 16명으로 구성하면 이른바 '범진보'(민주당, 평화당, 정의당)와 '범보수'(한국당, 바른미래당)의 비율이 5:5로 같아집니다.

반면 15명일 때는 '범보수'가 한 명 더 많습니다. 정부가 내건 사상 최대 규모의 일자리 예산은 '세금 중독' 예산이라며 대폭적인 삭감을 벼르고 있는 '범보수' 정당들의 입장에선 소위 구성은 치열한 기싸움의 전초전인 셈인 겁니다.


한 방에 수십 억 '칼질'…예산소위가 막강한 이유

예산소위에서 여야 어느 쪽이 과반을 갖는가도 중요하지만, 각 당 입장에서는 예산소위원 한 명 한 명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470조 5천억 원의 예산을 국회가 심사하는 기간은 고작 30일입니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모여서 어떤 예산을 줄이고 또 늘릴지 논의하면 가장 좋겠지만, 이렇게 되면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심 시간에 5명만 모여도 뭘 먹을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은데, 수조 원의 예산을 300명이 모여 30일 안에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각 당이 대표 선수를 뽑아 논의하고 결정하기로 한 게 예산소위인 셈입니다.

예산소위 위원의 가장 막강한 힘은 이른바 '칼질'이라 불리는 감액 권한입니다. 15명 안팎에 불과한 예산소위 위원들의 말 한마디에 수억~수십억 원의 예산이 '칼질' 당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지난해(2017년) 예산소위 회의록의 한 대목입니다.


중간 중간 생략한 대목이 있긴 합니다만, 잠깐의 논의와 흥정(?) 끝에 청와대 비서실과 안보실 예산은 5억 원이 뚝딱 삭감됐습니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정부안에서 삭감된 예산은 6조 원이 넘습니다. 각 당이 한 명이라도 더 예산소위 위원을 확보하려 애쓰는 이유입니다.

쪽지예산에서 카톡예산으로…예산소위의 또 다른 힘 '증액'

예산소위가 '칼질'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산을 늘리는 것도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의 사업 가운데 책정한 예산만으로는 부족해보이는 게 있다면, 이를 증액해 사업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적지 않은 증액 사업이 각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용 예산이라는 데 있습니다.

통상 각 당은 예산소위 위원을 지역별로 분배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경기/인천 지역구 의원 1~2명, 충청권 의원 1명, 호남권 의원 1명, 영남권 의원 1명과 같은 식입니다. 예산소위 위원들은 처음부터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예산을 따내야 한다는 '임무'를 안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때 등장하는 게 이른바 '쪽지예산'입니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증액해달라고 예산소위 위원들에게 쪽지를 건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쪽지예산'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면서 대신 '카톡예산'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지역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 발전과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예산을 따내려 노력하는 것을 꼭 나쁘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사업이 정말 타당한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보다는 정부 부처와의(감액과 달리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흥정과 읍소, 때로는 협박을 통해 증액이 이뤄진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당시 국민의당 소속이던 L모 의원은 예산 심사 도중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립니다.


지역 숙원사업 예산을 요구하면서 담당 부처에 '안 들어주면 예산 합의 깨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비단 이의원만의 일은 아닙니다. 예산소위에서 수많은 증액이 저런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당이 왜 한 명이라도 더 예산소위 위원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쓰는지, 국회가 삐걱댈 정도로 신경전을 벌이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내년도 예산안 처리 기한 내 처리될까?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심사를 마치고 12월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가 이 법을 지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해를 넘겨서야 예산안이 처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시행된 국회 선진화법은 아예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예산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 예산안이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도록 법에 못밖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부터는 3년 연속 법정기한 내에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여야 합의를 거치기는 했지만 또 다시 법정기한을 넘겨 12월 6일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올해 예결위 예산안 처리 시한인 30일까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아직 지난한 감액과 증액 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소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이틀 늦어지면 결국 또 다시 정밀한 심사보다는 정치적인 논리 싸움과 흥정, 협박으로 감액과 증액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낸 470조 원의 혈세. 언제까지 이런 '졸속 심사'에 맡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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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산안 시한 2주…소위조차 구성 못 하는 국회
    • 입력 2018-11-17 09:05:37
    취재K
국회가 15일 열기로 했던 정기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불참 속에 열리지 못했습니다.

여야가 사전에 열기로 합의했던 본회의까지 불참하며 야당이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요, 470조 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그 핵심적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런 여야 간 힘겨루기는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소위(예산안 등 조정 소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한창 불꽃을 튀기고 있습니다.

14명 VS 15명 VS 16명…왜 이런 걸로 싸우지?

14명, 15명, 16명.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국회 예산소위 위원 정수의 숫자들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또 싸우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산안을 둘러싼 치열한 샅바싸움이 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4인이나 16인으로 예산소위를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의 비교섭단체 소속 위원이 한 명은 포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예결위 의석 비율에 따라 비교섭단체도 소위원회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예결위원이 정당 의석 비율에 맞춰 민주당 22명, 한국당 19명, 바른미래당 5명, 비교섭단체 4명이니, 예산소위도 이 비율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당은 15인 안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예산소위를 15명으로 구성하는 것은 19대 국회 때부터 관례인데, 늘리거나 줄이자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섭단체를 굳이 포함시켜야 한다면 민주당 몫을 한 명 줄이거나, 민주당이 바른미래당과 협상해 바른미래당 몫을 한 명 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각자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있지만, 속내는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기싸움이라는 해석이 우세합니다. 비교섭단체를 포함해 예산소위를 14명이나 16명으로 구성하면 이른바 '범진보'(민주당, 평화당, 정의당)와 '범보수'(한국당, 바른미래당)의 비율이 5:5로 같아집니다.

반면 15명일 때는 '범보수'가 한 명 더 많습니다. 정부가 내건 사상 최대 규모의 일자리 예산은 '세금 중독' 예산이라며 대폭적인 삭감을 벼르고 있는 '범보수' 정당들의 입장에선 소위 구성은 치열한 기싸움의 전초전인 셈인 겁니다.


한 방에 수십 억 '칼질'…예산소위가 막강한 이유

예산소위에서 여야 어느 쪽이 과반을 갖는가도 중요하지만, 각 당 입장에서는 예산소위원 한 명 한 명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470조 5천억 원의 예산을 국회가 심사하는 기간은 고작 30일입니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모여서 어떤 예산을 줄이고 또 늘릴지 논의하면 가장 좋겠지만, 이렇게 되면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심 시간에 5명만 모여도 뭘 먹을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은데, 수조 원의 예산을 300명이 모여 30일 안에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각 당이 대표 선수를 뽑아 논의하고 결정하기로 한 게 예산소위인 셈입니다.

예산소위 위원의 가장 막강한 힘은 이른바 '칼질'이라 불리는 감액 권한입니다. 15명 안팎에 불과한 예산소위 위원들의 말 한마디에 수억~수십억 원의 예산이 '칼질' 당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지난해(2017년) 예산소위 회의록의 한 대목입니다.


중간 중간 생략한 대목이 있긴 합니다만, 잠깐의 논의와 흥정(?) 끝에 청와대 비서실과 안보실 예산은 5억 원이 뚝딱 삭감됐습니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정부안에서 삭감된 예산은 6조 원이 넘습니다. 각 당이 한 명이라도 더 예산소위 위원을 확보하려 애쓰는 이유입니다.

쪽지예산에서 카톡예산으로…예산소위의 또 다른 힘 '증액'

예산소위가 '칼질'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산을 늘리는 것도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의 사업 가운데 책정한 예산만으로는 부족해보이는 게 있다면, 이를 증액해 사업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적지 않은 증액 사업이 각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용 예산이라는 데 있습니다.

통상 각 당은 예산소위 위원을 지역별로 분배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경기/인천 지역구 의원 1~2명, 충청권 의원 1명, 호남권 의원 1명, 영남권 의원 1명과 같은 식입니다. 예산소위 위원들은 처음부터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예산을 따내야 한다는 '임무'를 안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때 등장하는 게 이른바 '쪽지예산'입니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증액해달라고 예산소위 위원들에게 쪽지를 건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쪽지예산'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면서 대신 '카톡예산'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지역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 발전과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예산을 따내려 노력하는 것을 꼭 나쁘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사업이 정말 타당한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보다는 정부 부처와의(감액과 달리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흥정과 읍소, 때로는 협박을 통해 증액이 이뤄진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당시 국민의당 소속이던 L모 의원은 예산 심사 도중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립니다.


지역 숙원사업 예산을 요구하면서 담당 부처에 '안 들어주면 예산 합의 깨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비단 이의원만의 일은 아닙니다. 예산소위에서 수많은 증액이 저런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당이 왜 한 명이라도 더 예산소위 위원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쓰는지, 국회가 삐걱댈 정도로 신경전을 벌이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내년도 예산안 처리 기한 내 처리될까?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심사를 마치고 12월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가 이 법을 지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해를 넘겨서야 예산안이 처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시행된 국회 선진화법은 아예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예산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 예산안이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도록 법에 못밖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부터는 3년 연속 법정기한 내에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여야 합의를 거치기는 했지만 또 다시 법정기한을 넘겨 12월 6일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올해 예결위 예산안 처리 시한인 30일까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아직 지난한 감액과 증액 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소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이틀 늦어지면 결국 또 다시 정밀한 심사보다는 정치적인 논리 싸움과 흥정, 협박으로 감액과 증액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낸 470조 원의 혈세. 언제까지 이런 '졸속 심사'에 맡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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