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쿠자’가 소환한 동춘 서커스의 추억

입력 2018.11.18 (21:21) 수정 2018.11.1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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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양의 서커스 '쿠자' 한국 공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소재로 여겨지던 서커스를 살려내 세계적인 대형 공연으로 만든 게 바로 이 태양의 서커스인데요.

소멸할 것만 같던 서커스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힘은 어디서 온 걸까요?

태양의 서커스 내한을 보며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으로 시작해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동춘 서커스의 소식도 궁금해졌는데요.

태양의 서커스와 함께 돌아보는 우리나라 동춘 서커스의 추억까지 기현정 기자와 함께 돌아보시죠.

[리포트]

8m 높이의 밧줄 위에 자전거, 그 위의 의자.

제발 떨어지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건 관객들입니다.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를 따라 여행을 하며 겪는 신비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거대한 규모의 뮤지컬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11년 전 초연한 뒤 전 세계에서 8백만 명이 관람했습니다.

관람권은 7만 원에서 최고 26만 원에 이르지만, 선 예매로 100억 원 이상이 팔렸습니다.

[김새롬/ 서울시 관악구 : "단순하게 기술적인 것 말고도 예술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까지 다 결합돼서 보여줘서 이게 종합예술 같은 느낌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세계 무대에 태양의 서커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동춘서커스가 있습니다.

["저희 동춘서커스에 찾아오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간 힘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적인 힘을 바탕으로 예술을 접목한 아트 서커스입니다."]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커스단입니다.

[김동숙/서울시 목동 : "옛날에는 좀 뭐라 그럴까 안쓰럽다 이렇게 봤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없어요.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며칠 전에 태양의 서커스 봤거든요. 근데 그거 못지 않아요."]

일제강점기던 1925년, 동춘 박동수 씨가 단원 30여 명을 모아 시작한 동춘서커스.

전국을 돌며 아찔한 묘기를 선보이는 서커스는 가난했던 시절 거의 유일한 볼거리였습니다.

60∼70년대에는 단원이 300명 정도에 이르고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박세환/동춘서커스 3대 단장 : "옛날에 우리가 지방 축제에 지방 공연을 가잖아요. 시골 가면은 우리 장터에 공연을 많이 하지. 그러면 그 도시가 축제 분위기예요. '먼 친척들 우리 동네 서커스 와라' 같이 모여서 만남의 장도 되고..."]

하지만 TV와 영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독보적이던 '즐길 거리'의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코푸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동춘서커스단에서 활약하던 남철 남성남, 서영춘 씨와 같은 스타들도 방송으로, 영화로 떠났습니다.

서커스는 급격히 쇠락했습니다.

[박세환/동춘서커스 3대 단장 : "(드라마)여로가 KBS 방송했어요. 여덟시에 골드타임이잖아요. 그때는 TV도 없었어요. 그때 이장들 마당에, 부잣집 마당에 평상에 얹어 놓으면 영화 보듯이 이거 보고 있는 거예요."]

경영이 어려워진 서커스단들을 덮친 건 동물학대 논란.

여기에 어린이 감금 사건까지 터지면서 서커스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94년 역사의 동춘서커스 단원은 현재 40여 명.

대부분 중국인입니다.

아직도 지방축제를 찾으면 호응이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라는 자부심 속에, 대부도에 상설 공연장도 냈습니다.

만 오천 원에 느끼는 향수와 나들이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객이 12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모연순/경기도 성남시 : "옛날에 동생들하고...동생하고 같이 나와가지고 천막 치고 거기 같이 보던 생각이 났죠."]

태양의 서커스도 시작은 캐나다의 거리의 예술가 20명으로 1984년 출발했습니다.

동물 없는 서커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쇼를 내세워 지금은 직원 4천 명을 거느린 대형 공연기업이 됐습니다.

묘기를 이야기로 엮어내는 방식, 다양한 레퍼토리 개발, 여기에 자본이 결합해 화려한 경험을 선사하는 세계적인 공연이 된 겁니다.

[프레데릭 라피에르/태양의 서커스 홍보 담당자 :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단원을 뽑기 위해 서커스 학교 등을 찾아다닙니다. 우리 서커스단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모습을 찍어 회사에 보내오기도 합니다."]

태양의 서커스와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대중문화의 모태로,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헤아리는 한국 서커스.

우리 문화산업 한켠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합니다.

KBS 뉴스 기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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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의 서커스 ‘쿠자’가 소환한 동춘 서커스의 추억
    • 입력 2018-11-18 21:26:45
    • 수정2018-11-18 21:33:17
    뉴스 9
[앵커]

태양의 서커스 '쿠자' 한국 공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소재로 여겨지던 서커스를 살려내 세계적인 대형 공연으로 만든 게 바로 이 태양의 서커스인데요.

소멸할 것만 같던 서커스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힘은 어디서 온 걸까요?

태양의 서커스 내한을 보며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으로 시작해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동춘 서커스의 소식도 궁금해졌는데요.

태양의 서커스와 함께 돌아보는 우리나라 동춘 서커스의 추억까지 기현정 기자와 함께 돌아보시죠.

[리포트]

8m 높이의 밧줄 위에 자전거, 그 위의 의자.

제발 떨어지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건 관객들입니다.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를 따라 여행을 하며 겪는 신비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거대한 규모의 뮤지컬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11년 전 초연한 뒤 전 세계에서 8백만 명이 관람했습니다.

관람권은 7만 원에서 최고 26만 원에 이르지만, 선 예매로 100억 원 이상이 팔렸습니다.

[김새롬/ 서울시 관악구 : "단순하게 기술적인 것 말고도 예술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까지 다 결합돼서 보여줘서 이게 종합예술 같은 느낌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세계 무대에 태양의 서커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동춘서커스가 있습니다.

["저희 동춘서커스에 찾아오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간 힘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적인 힘을 바탕으로 예술을 접목한 아트 서커스입니다."]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커스단입니다.

[김동숙/서울시 목동 : "옛날에는 좀 뭐라 그럴까 안쓰럽다 이렇게 봤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없어요.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며칠 전에 태양의 서커스 봤거든요. 근데 그거 못지 않아요."]

일제강점기던 1925년, 동춘 박동수 씨가 단원 30여 명을 모아 시작한 동춘서커스.

전국을 돌며 아찔한 묘기를 선보이는 서커스는 가난했던 시절 거의 유일한 볼거리였습니다.

60∼70년대에는 단원이 300명 정도에 이르고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박세환/동춘서커스 3대 단장 : "옛날에 우리가 지방 축제에 지방 공연을 가잖아요. 시골 가면은 우리 장터에 공연을 많이 하지. 그러면 그 도시가 축제 분위기예요. '먼 친척들 우리 동네 서커스 와라' 같이 모여서 만남의 장도 되고..."]

하지만 TV와 영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독보적이던 '즐길 거리'의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코푸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동춘서커스단에서 활약하던 남철 남성남, 서영춘 씨와 같은 스타들도 방송으로, 영화로 떠났습니다.

서커스는 급격히 쇠락했습니다.

[박세환/동춘서커스 3대 단장 : "(드라마)여로가 KBS 방송했어요. 여덟시에 골드타임이잖아요. 그때는 TV도 없었어요. 그때 이장들 마당에, 부잣집 마당에 평상에 얹어 놓으면 영화 보듯이 이거 보고 있는 거예요."]

경영이 어려워진 서커스단들을 덮친 건 동물학대 논란.

여기에 어린이 감금 사건까지 터지면서 서커스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94년 역사의 동춘서커스 단원은 현재 40여 명.

대부분 중국인입니다.

아직도 지방축제를 찾으면 호응이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라는 자부심 속에, 대부도에 상설 공연장도 냈습니다.

만 오천 원에 느끼는 향수와 나들이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객이 12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모연순/경기도 성남시 : "옛날에 동생들하고...동생하고 같이 나와가지고 천막 치고 거기 같이 보던 생각이 났죠."]

태양의 서커스도 시작은 캐나다의 거리의 예술가 20명으로 1984년 출발했습니다.

동물 없는 서커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쇼를 내세워 지금은 직원 4천 명을 거느린 대형 공연기업이 됐습니다.

묘기를 이야기로 엮어내는 방식, 다양한 레퍼토리 개발, 여기에 자본이 결합해 화려한 경험을 선사하는 세계적인 공연이 된 겁니다.

[프레데릭 라피에르/태양의 서커스 홍보 담당자 :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단원을 뽑기 위해 서커스 학교 등을 찾아다닙니다. 우리 서커스단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모습을 찍어 회사에 보내오기도 합니다."]

태양의 서커스와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대중문화의 모태로,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헤아리는 한국 서커스.

우리 문화산업 한켠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합니다.

KBS 뉴스 기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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