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中 공안에 떠는 평통 자문위원들…감시망 걸린 이유는?

입력 2018.11.2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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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약칭)는 평화통일 달성에 필요한 제반 정책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해 1981년 발족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본 기자가 상주하는 중국에도 5개 지역협의회에 340여 명의 자문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독 랴오닝성 선양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이른바 공안 당국의 감시망에 걸렸다. 중국 공안이 대한민국 헌법 기관 소속 자문위원들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참고할 게 있으니 만나자"…갑자기 찾아온 中 공안 요원들

지난 9일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인 A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냐는 물음에 상대방은 공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만나자고 했다. A 씨가 왜 만나야 하느냐고 묻자 공안 요원은 참고할 사항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선양 모처에서 공안의 면담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를 찾아온 공안 요원은 2명이었다. 선양시 공안국 신분증을 보여줬지만, 구체적인 소속 부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 명은 한국어에도 능통했다. 공안 요원들은 A 씨에 대해 기본적인 조사를 이미 다 마친 상태에서 찾아왔다. A 씨가 중국에 언제 왔고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수입원이 어떻게 되는지도 공안 요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A 씨는 공안 요원들의 질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 사적인 영역의 질문까지 이어지자 일부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공안 요원들은 민주평통 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A 씨는 본인이 핵심 역할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면서도 민주평통 활동이 불법적인 요소나 중국 정부에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답했다. 공안 요원들은 한국인 교민 사회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자리를 떴다. A 씨는 KBS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고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면서 당시 면담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평통 중국 선양협의회 사무실민주평통 중국 선양협의회 사무실

中 공안, 직장까지 찾아와 사실상 '조사' 강요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 B 씨는 지난 2일 직장에까지 공안 요원들이 찾아왔다. B 씨는 면담 분위기에 대해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조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 씨도 한국 고향은 어딘지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족들은 같이 살고 있는지 등 사적인 질문을 받았다.

공안 요원들의 관심은 민주평통 활동에 집중됐다. 공안 요원들은 B 씨에게 민주평통이 추진하는 행사나 활동에 대해 사전에 행사 성격과 개최 장소, 참가 인원 규모 등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공안 요원들은 지난 8월 22일 민주평통이 단둥에서 개최하려던 범민족평화포럼이 공안 당국의 불허로 무산된 사례를 언급하면서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중국 선양시 공안국중국 선양시 공안국

中 공안 당국 의도는?…민주평통 활동 위축될 듯

공안 당국이 찾아온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은 취재진이 확인한 사례만 모두 4명이다. 19명 가운데 20%를 넘는 숫자다. 사실상 조사 형태의 공안 당국 면담이 앞으로 업무 협조를 앞으로 잘하자는 건지, 민주평통이 활동에 조심하라는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원활한 업무 협조가 목적이었다면 정식 공문을 발송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

벌써 민주평통의 공식 활동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6일 선양 시내 모 호텔에서는 주 선양 한국총영사관이 개최하는 동북 3성 차세대 통일 아카데미 행사가 열렸다. '새로운 통일 이야기-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길'이라는 주제의 통일 관련 강연이었다. 이날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박영완 회장은 애초 예정에 있던 축사를 하지 않았다. 자문위원들이 공안 감시망(?)에 걸려든 상황에서 축사가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중국 공안 당국의 지나친 관심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활동이 위축된다면 한중 양국 간의 민감한 외교 사안이 될 수 있다. 주 선양 총영사관에서도 이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이번 사안이 공론화되거나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문위원들이 공안 당국으로부터 괘심쬐에 걸려 개인적인 피해를 보거나 정기총회 등 민주평통 선양협회의의 정상적인 활동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선교사 추방 사태를 지켜본 선양 교민사회는 이번 사안에 더욱 숨을 죽이고 있다. 일부에선 모르는 번호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중국 당국에 할 말은 하면서도 교민 권익과 안전을 지키는 성숙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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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中 공안에 떠는 평통 자문위원들…감시망 걸린 이유는?
    • 입력 2018-11-20 06:15:19
    특파원 리포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약칭)는 평화통일 달성에 필요한 제반 정책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해 1981년 발족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본 기자가 상주하는 중국에도 5개 지역협의회에 340여 명의 자문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독 랴오닝성 선양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이른바 공안 당국의 감시망에 걸렸다. 중국 공안이 대한민국 헌법 기관 소속 자문위원들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참고할 게 있으니 만나자"…갑자기 찾아온 中 공안 요원들

지난 9일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인 A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냐는 물음에 상대방은 공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만나자고 했다. A 씨가 왜 만나야 하느냐고 묻자 공안 요원은 참고할 사항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선양 모처에서 공안의 면담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를 찾아온 공안 요원은 2명이었다. 선양시 공안국 신분증을 보여줬지만, 구체적인 소속 부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 명은 한국어에도 능통했다. 공안 요원들은 A 씨에 대해 기본적인 조사를 이미 다 마친 상태에서 찾아왔다. A 씨가 중국에 언제 왔고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수입원이 어떻게 되는지도 공안 요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A 씨는 공안 요원들의 질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 사적인 영역의 질문까지 이어지자 일부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공안 요원들은 민주평통 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A 씨는 본인이 핵심 역할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면서도 민주평통 활동이 불법적인 요소나 중국 정부에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답했다. 공안 요원들은 한국인 교민 사회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자리를 떴다. A 씨는 KBS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고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면서 당시 면담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평통 중국 선양협의회 사무실
中 공안, 직장까지 찾아와 사실상 '조사' 강요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 B 씨는 지난 2일 직장에까지 공안 요원들이 찾아왔다. B 씨는 면담 분위기에 대해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조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 씨도 한국 고향은 어딘지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족들은 같이 살고 있는지 등 사적인 질문을 받았다.

공안 요원들의 관심은 민주평통 활동에 집중됐다. 공안 요원들은 B 씨에게 민주평통이 추진하는 행사나 활동에 대해 사전에 행사 성격과 개최 장소, 참가 인원 규모 등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공안 요원들은 지난 8월 22일 민주평통이 단둥에서 개최하려던 범민족평화포럼이 공안 당국의 불허로 무산된 사례를 언급하면서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중국 선양시 공안국
中 공안 당국 의도는?…민주평통 활동 위축될 듯

공안 당국이 찾아온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은 취재진이 확인한 사례만 모두 4명이다. 19명 가운데 20%를 넘는 숫자다. 사실상 조사 형태의 공안 당국 면담이 앞으로 업무 협조를 앞으로 잘하자는 건지, 민주평통이 활동에 조심하라는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원활한 업무 협조가 목적이었다면 정식 공문을 발송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

벌써 민주평통의 공식 활동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6일 선양 시내 모 호텔에서는 주 선양 한국총영사관이 개최하는 동북 3성 차세대 통일 아카데미 행사가 열렸다. '새로운 통일 이야기-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길'이라는 주제의 통일 관련 강연이었다. 이날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박영완 회장은 애초 예정에 있던 축사를 하지 않았다. 자문위원들이 공안 감시망(?)에 걸려든 상황에서 축사가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중국 공안 당국의 지나친 관심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활동이 위축된다면 한중 양국 간의 민감한 외교 사안이 될 수 있다. 주 선양 총영사관에서도 이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이번 사안이 공론화되거나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문위원들이 공안 당국으로부터 괘심쬐에 걸려 개인적인 피해를 보거나 정기총회 등 민주평통 선양협회의의 정상적인 활동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선교사 추방 사태를 지켜본 선양 교민사회는 이번 사안에 더욱 숨을 죽이고 있다. 일부에선 모르는 번호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중국 당국에 할 말은 하면서도 교민 권익과 안전을 지키는 성숙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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