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혜경궁 김씨’ 사건 지켜봅시다”…민주당은 왜 침묵할까?

입력 2018.11.2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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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향후 검찰의 추가 조사 및 기소 여부, 재판 진행 과정 등을 예의주시하며, 필요하다면 당의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주요 당직자들마다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친문(親文)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당이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이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경찰이 부인 김혜경 씨를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을 두고 이재명 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정치 수사'로 규정한 것입니다. '권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 지사 측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만, 이른바 '친문' 정치세력을 뜻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이 지사의 이런 발언의 이유, 그리고 민주당의 원론적인 언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이재명 지사는 문재인 당시 후보와 유독 각을 세웠습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취를 놓고 수차례 입장을 바꿨다'던가 '예측 불가능해 지도자로서는 불안정하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되돌아 보니 정말 싸가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더라"고 후회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지만, 한 번 어긋난 '친문'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균열은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더 커졌습니다. 이 지사는 6.13 지방선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서 '핵심 친문'으로 분류되는 전해철 의원과 맞붙었습니다. 당시 이른바 '친문'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전해철 의원에 대한 비방을 이어가는 트위터 계정(@08__hkkim)의 주인이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 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있었습니다.

물밑의 의혹에 머무르던 이 문제는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전 의원 등의 언급으로 공론화됐고, 이후 전 의원 측의 고발로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경기지사 경선에서 이 지사가 승리했고 전 의원은 고발을 취하했지만, '친문' 지지층은 의혹 제기를 이어갔고 경찰 수사도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 상황입니다.

'경찰이 권력을 선택했다'는 이 지사의 언급이 '친문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전해철 "당황스러운 마음뿐"…'친문' 대 '비문' 비화 우려

경찰이 문제의 트위터 계정 주인을 이재명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로 결론 낸 뒤 KBS는 전해철 의원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전 의원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지사 후보 경선 당시 당 안팎에서 '혜경궁 김씨' 문제가 엄청난 논란이 돼, 이것을 털고 가는 게 맞다고 보고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도 함께 고발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이 후보 측에서 거절했다"면서 "당시에는 '혜경궁 김 씨'가 이 지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당내 분란 등으로 고발을 취하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당황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친문'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습니다. 자칫 이 문제가 당내 '친문' 대 '비문(非文)'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19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나 민주당 내 인사 누구도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전화하거나 사전에 처리 방침을 전해들은 바도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의 결정에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인 외풍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드루킹 사건' 때 보지 않았느냐. 경찰이 여당이라고 눈치 보고 수사 하느냐"면서 "이번 사건은 이재명이라고 해서 달라지고, 이재명이 아니라고 해서 달라질 사건이 아니"라고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일부 지지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칫 사법적인 판단 전 정치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당 내의 해묵은 '친문' 대 '비문'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일단은 지켜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입니다.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 지사는 어찌됐건 경기도라는 거대한 지자체를 이끌어 가는 민주당 소속 단체장입니다. 적지 않은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차기 대선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내치기 힘든 민주당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뜻입니다.

물밑에서는 부글부글…민주당의 선택은?

공식적으로는 원론적인 입장인 민주당 내의 물밑 반응들은 어떨까요? KBS가 민주당 내 여러 관계자들을 접촉해보니 이 지사의 발언과 행동에 불만을 표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경찰이 권력을 선택했다'는 발언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마치 '친문'을 겨냥한 듯한 저 발언 때문에 당의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지사와 부인이 관련된 개인적인 사건인데, 당이 이후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친문' 대 '비문'의 구도 속에서 정치적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이도록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불만입니다.

이 지사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향후 검찰 수사나, 검찰이 기소할 경우 이어질 재판 과정 내내 잡음이 불거질 테니, 일단 탈당한 뒤 이 지사가 주장하는 대로 억울함이 풀리면 복당하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당의 공식 입장처럼 '일단 지켜보는 게 순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주당 중진인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당헌 당규에 따라 처리하는 게 맞다"면서 "당헌 당규를 볼 때 현재로서는 당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법기관의 조사 전이었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당사자의 폭로가 나왔고 본인도 이를 인정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과는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사건은 일단은 사법기관의 처리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정치생명은 물론 차기 총선, 대선을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도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친문' 지지자들의 목소리도 사건의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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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혜경궁 김씨’ 사건 지켜봅시다”…민주당은 왜 침묵할까?
    • 입력 2018-11-20 07:02:07
    취재K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향후 검찰의 추가 조사 및 기소 여부, 재판 진행 과정 등을 예의주시하며, 필요하다면 당의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주요 당직자들마다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친문(親文)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당이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이 진실보다는 권력을 선택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경찰이 부인 김혜경 씨를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을 두고 이재명 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정치 수사'로 규정한 것입니다. '권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 지사 측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만, 이른바 '친문' 정치세력을 뜻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이 지사의 이런 발언의 이유, 그리고 민주당의 원론적인 언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이재명 지사는 문재인 당시 후보와 유독 각을 세웠습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취를 놓고 수차례 입장을 바꿨다'던가 '예측 불가능해 지도자로서는 불안정하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되돌아 보니 정말 싸가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더라"고 후회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지만, 한 번 어긋난 '친문'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균열은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더 커졌습니다. 이 지사는 6.13 지방선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서 '핵심 친문'으로 분류되는 전해철 의원과 맞붙었습니다. 당시 이른바 '친문'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전해철 의원에 대한 비방을 이어가는 트위터 계정(@08__hkkim)의 주인이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 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있었습니다.

물밑의 의혹에 머무르던 이 문제는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전 의원 등의 언급으로 공론화됐고, 이후 전 의원 측의 고발로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경기지사 경선에서 이 지사가 승리했고 전 의원은 고발을 취하했지만, '친문' 지지층은 의혹 제기를 이어갔고 경찰 수사도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 상황입니다.

'경찰이 권력을 선택했다'는 이 지사의 언급이 '친문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전해철 "당황스러운 마음뿐"…'친문' 대 '비문' 비화 우려

경찰이 문제의 트위터 계정 주인을 이재명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로 결론 낸 뒤 KBS는 전해철 의원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전 의원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지사 후보 경선 당시 당 안팎에서 '혜경궁 김씨' 문제가 엄청난 논란이 돼, 이것을 털고 가는 게 맞다고 보고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도 함께 고발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이 후보 측에서 거절했다"면서 "당시에는 '혜경궁 김 씨'가 이 지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당내 분란 등으로 고발을 취하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당황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친문'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습니다. 자칫 이 문제가 당내 '친문' 대 '비문(非文)'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19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나 민주당 내 인사 누구도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전화하거나 사전에 처리 방침을 전해들은 바도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의 결정에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인 외풍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드루킹 사건' 때 보지 않았느냐. 경찰이 여당이라고 눈치 보고 수사 하느냐"면서 "이번 사건은 이재명이라고 해서 달라지고, 이재명이 아니라고 해서 달라질 사건이 아니"라고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일부 지지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칫 사법적인 판단 전 정치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당 내의 해묵은 '친문' 대 '비문'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일단은 지켜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입니다.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 지사는 어찌됐건 경기도라는 거대한 지자체를 이끌어 가는 민주당 소속 단체장입니다. 적지 않은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차기 대선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내치기 힘든 민주당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뜻입니다.

물밑에서는 부글부글…민주당의 선택은?

공식적으로는 원론적인 입장인 민주당 내의 물밑 반응들은 어떨까요? KBS가 민주당 내 여러 관계자들을 접촉해보니 이 지사의 발언과 행동에 불만을 표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경찰이 권력을 선택했다'는 발언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마치 '친문'을 겨냥한 듯한 저 발언 때문에 당의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지사와 부인이 관련된 개인적인 사건인데, 당이 이후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친문' 대 '비문'의 구도 속에서 정치적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이도록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불만입니다.

이 지사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향후 검찰 수사나, 검찰이 기소할 경우 이어질 재판 과정 내내 잡음이 불거질 테니, 일단 탈당한 뒤 이 지사가 주장하는 대로 억울함이 풀리면 복당하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당의 공식 입장처럼 '일단 지켜보는 게 순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주당 중진인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당헌 당규에 따라 처리하는 게 맞다"면서 "당헌 당규를 볼 때 현재로서는 당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법기관의 조사 전이었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당사자의 폭로가 나왔고 본인도 이를 인정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과는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사건은 일단은 사법기관의 처리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정치생명은 물론 차기 총선, 대선을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도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친문' 지지자들의 목소리도 사건의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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