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부동산 공화국’의 이면…‘재건축 로비’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8.11.20 (14:17) 수정 2018.11.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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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사실’이 된 순간, ‘의혹’은 ‘확신’이 되었다.

재건축·재개발 수주 비리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거 맨날 나오는 이야기 아니야?" "시간 낭비는 뻔한데, 소득은 없을껄"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얽히고 섥힌 그 복잡하고 미묘한 이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지루하고 힘든 공방을 때로 수십 번 반복해야 했다. 99%는 들었던 말, 예상했던 반응이 이어졌다. 시간과의 싸움이자, 내 자신과의 싸움, 또 나와 함께 이 문제를 취재한 후배 기자와 고통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취재를 시작할 때, 스스로 결심한 것을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식상한 주제를 식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소문'이 아닌 '사실'에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흔히 말해 '카더라' 통신에서 벗어나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로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건설사 홍보업체가 조합원을 상대로 작성한 내무 문건, 이른바 '로비 파일'이 들어왔다. 그 문서는 '무식한 취재'의 시작이 되었다.



‘재건축 로비 파일 입수’…불법의 일상화

서울 강남 한복판, 한 소규모 재건축 아파트단지의 전 세대 접촉 기록이었다. 세대주와 그들의 가족 257명을 관리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수 년 간의 재건축 취재를 통해 '그 쪽 심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여겼던 나 조차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7~8월 단 두 달 사이, 한 사람 당 많게는 23차례. 처음엔 경계하던 조합원들도 어느 순간 선물을 대놓고 요구했다. 과일, 전복, 굴비 등 먹거리부터 고급 스파, 리조트 숙박권, 호텔 식사 등을 접대 받았다.

'몇 가지 선물을 못 받았다며 왜 조합원을 차별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작 '손톱깎기한 세트'를 더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돈이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 명부'도 있었다. 지위도 돈도, 명예도 다 가진, 소위 말해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일까? 향응을 받은 사람과 향응을 건넨 사람. 양쪽의 확인이 필요했다. 파일 속 전화번호는 모두 맞았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피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그들에겐 당황스럽고 곤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발품을 파는 우리도 역시 곤란한 순간이었다.

개인 정보는 모두 맞았다. 선물이나 식사 접대를 묻는 질문엔 답이 엇갈렸다. "결코 그런 일이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구체적인 정황을 기억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 자료 신뢰할 수 있겠구나" 확신한 순간이었다.


[링크 : http://dj.kbs.co.kr/resources/2018-11-20/ (재건축 건설 홍보업체 관리 명단)]

건설사가 아파트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홍보업체를 통해 일부 조합원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하는 것.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 숙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건설사는 기업이다. 기업은 이윤을 쫒는다. 결국 건설사는 절대로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 시공권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것인가? 그럼 그 돈은 어떻게 회수하는 것인가?

검은 돈의 악순환이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 자금. 건설사 홍보업체는 이 돈을 어떻게 조달할까? 약 10년 전, 이 현장에서 직접 뛴 홍보업체 핵심 인물을 만났다. 그는 매 달 실제보다 부풀린 가짜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건설사는 견적서대로 돈을 내어주고, 그 차액을 로비 자금으로 쓰게 했다고 설명했다.

입주자에게도 부담이다. 물론, 설계변경이나 물가인상률 같은 이유가 따라온다. 취재한 한 단지의 경우 입찰 제안 당시와 비교해 본 계약 떄 3.3제곱미터 당 공사비가 47만 원이 뛰었다. 26평이면 47만 원 곱하기 26, 34평이면 47만 원 곱하기 34...이게 1,500세대이다. 대지비와 건축자재, 설계변경에 따른 기타 부대 비용을 감안한다고 보아도, 건설사가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 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왜 ‘검은 고리’는 끊지 못하는가?

3일 연속 기획 보도가 나가고, 이메일을 통해 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검은 고리'의 연속이다.

법은 있다. 오히려 강화되었다. 건설사가 아닌 홍보업체가 건설사의 한 표를 부탁해도, 건설사에게도 똑같은 처벌이 적용된다. 시공권까지 박탈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실제로 시공권이 박탈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 여전히 재건축·재개발 현장엔 '불법'이 '일상'이다.

전국 1,731곳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이다. 적게는 수백 억 원에서 많게는 수 조 원 대까지, 거액이 오고 간다. 이른바 '로비 전쟁'을 치른 뒤, 아파트값 상승의 결정적 요인이 '검은 로비'때문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추정은 합리적으로 가능하다.

새로 지은 아파트 분양가는 해가 갈수록 계속 오르고, 그 주변 기존 아파트 값은 새 아파트가격 상승에 발맞춰 또다시 오른다. 부동산 가격 고공행진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운다. 때로는 내 집 값이 올라 좋아서, 때로는 가지고 싶은데 너무 비싸 가질 수 없어서. 대부분 서민들은 '우는' 쪽이다. 전세 만기때 쫒겨날 고민 없이 '내 집' 마련하는 게 꿈인데, 열심히 벌어서는 도저히 집값을 따라갈 수 없다. 돈의 노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질 수 없는 그 돈이 원망스럽기는 하다.

건설사에겐 그 '돈'이 상대적으로 쉽다. 시공권이 곧 '돈'이다. 시공권을 따는 그 순간, '을'이었던 그들은 '슈퍼 갑'이 된다. 어쩌면 당연하다. 아파트의 주인이 될 사람들은 건축에 별 지식이 없고, 그 아파트를 지어주는 건설사는 건축 전문가이다. 알 수 없는 용어와 설계도면 안에서 얼마든지 '운용의 묘'를 부릴 수도 있다.

부동산의 주인은 '나'인가 '건설사'인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불공평한 질주를 끝낼 사람은 분명 있다.

법이 있고, 그 법을 관리할 관계부처가 있고, 그 법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릴 수사 기관도 있다. 그런데, 지금 작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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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부동산 공화국’의 이면…‘재건축 로비’는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18-11-20 14:17:43
    • 수정2018-11-20 14:24:13
    취재후·사건후
‘소문’이 ‘사실’이 된 순간, ‘의혹’은 ‘확신’이 되었다.

재건축·재개발 수주 비리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거 맨날 나오는 이야기 아니야?" "시간 낭비는 뻔한데, 소득은 없을껄"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얽히고 섥힌 그 복잡하고 미묘한 이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지루하고 힘든 공방을 때로 수십 번 반복해야 했다. 99%는 들었던 말, 예상했던 반응이 이어졌다. 시간과의 싸움이자, 내 자신과의 싸움, 또 나와 함께 이 문제를 취재한 후배 기자와 고통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취재를 시작할 때, 스스로 결심한 것을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식상한 주제를 식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소문'이 아닌 '사실'에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흔히 말해 '카더라' 통신에서 벗어나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로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건설사 홍보업체가 조합원을 상대로 작성한 내무 문건, 이른바 '로비 파일'이 들어왔다. 그 문서는 '무식한 취재'의 시작이 되었다.



‘재건축 로비 파일 입수’…불법의 일상화

서울 강남 한복판, 한 소규모 재건축 아파트단지의 전 세대 접촉 기록이었다. 세대주와 그들의 가족 257명을 관리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수 년 간의 재건축 취재를 통해 '그 쪽 심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여겼던 나 조차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7~8월 단 두 달 사이, 한 사람 당 많게는 23차례. 처음엔 경계하던 조합원들도 어느 순간 선물을 대놓고 요구했다. 과일, 전복, 굴비 등 먹거리부터 고급 스파, 리조트 숙박권, 호텔 식사 등을 접대 받았다.

'몇 가지 선물을 못 받았다며 왜 조합원을 차별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작 '손톱깎기한 세트'를 더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돈이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 명부'도 있었다. 지위도 돈도, 명예도 다 가진, 소위 말해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일까? 향응을 받은 사람과 향응을 건넨 사람. 양쪽의 확인이 필요했다. 파일 속 전화번호는 모두 맞았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피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그들에겐 당황스럽고 곤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발품을 파는 우리도 역시 곤란한 순간이었다.

개인 정보는 모두 맞았다. 선물이나 식사 접대를 묻는 질문엔 답이 엇갈렸다. "결코 그런 일이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구체적인 정황을 기억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 자료 신뢰할 수 있겠구나" 확신한 순간이었다.


[링크 : http://dj.kbs.co.kr/resources/2018-11-20/ (재건축 건설 홍보업체 관리 명단)]

건설사가 아파트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홍보업체를 통해 일부 조합원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하는 것.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 숙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건설사는 기업이다. 기업은 이윤을 쫒는다. 결국 건설사는 절대로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 시공권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것인가? 그럼 그 돈은 어떻게 회수하는 것인가?

검은 돈의 악순환이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 자금. 건설사 홍보업체는 이 돈을 어떻게 조달할까? 약 10년 전, 이 현장에서 직접 뛴 홍보업체 핵심 인물을 만났다. 그는 매 달 실제보다 부풀린 가짜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건설사는 견적서대로 돈을 내어주고, 그 차액을 로비 자금으로 쓰게 했다고 설명했다.

입주자에게도 부담이다. 물론, 설계변경이나 물가인상률 같은 이유가 따라온다. 취재한 한 단지의 경우 입찰 제안 당시와 비교해 본 계약 떄 3.3제곱미터 당 공사비가 47만 원이 뛰었다. 26평이면 47만 원 곱하기 26, 34평이면 47만 원 곱하기 34...이게 1,500세대이다. 대지비와 건축자재, 설계변경에 따른 기타 부대 비용을 감안한다고 보아도, 건설사가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 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왜 ‘검은 고리’는 끊지 못하는가?

3일 연속 기획 보도가 나가고, 이메일을 통해 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검은 고리'의 연속이다.

법은 있다. 오히려 강화되었다. 건설사가 아닌 홍보업체가 건설사의 한 표를 부탁해도, 건설사에게도 똑같은 처벌이 적용된다. 시공권까지 박탈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실제로 시공권이 박탈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 여전히 재건축·재개발 현장엔 '불법'이 '일상'이다.

전국 1,731곳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이다. 적게는 수백 억 원에서 많게는 수 조 원 대까지, 거액이 오고 간다. 이른바 '로비 전쟁'을 치른 뒤, 아파트값 상승의 결정적 요인이 '검은 로비'때문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추정은 합리적으로 가능하다.

새로 지은 아파트 분양가는 해가 갈수록 계속 오르고, 그 주변 기존 아파트 값은 새 아파트가격 상승에 발맞춰 또다시 오른다. 부동산 가격 고공행진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운다. 때로는 내 집 값이 올라 좋아서, 때로는 가지고 싶은데 너무 비싸 가질 수 없어서. 대부분 서민들은 '우는' 쪽이다. 전세 만기때 쫒겨날 고민 없이 '내 집' 마련하는 게 꿈인데, 열심히 벌어서는 도저히 집값을 따라갈 수 없다. 돈의 노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질 수 없는 그 돈이 원망스럽기는 하다.

건설사에겐 그 '돈'이 상대적으로 쉽다. 시공권이 곧 '돈'이다. 시공권을 따는 그 순간, '을'이었던 그들은 '슈퍼 갑'이 된다. 어쩌면 당연하다. 아파트의 주인이 될 사람들은 건축에 별 지식이 없고, 그 아파트를 지어주는 건설사는 건축 전문가이다. 알 수 없는 용어와 설계도면 안에서 얼마든지 '운용의 묘'를 부릴 수도 있다.

부동산의 주인은 '나'인가 '건설사'인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불공평한 질주를 끝낼 사람은 분명 있다.

법이 있고, 그 법을 관리할 관계부처가 있고, 그 법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릴 수사 기관도 있다. 그런데, 지금 작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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