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프랑스 회장 잡아 넣은 日 닛산차…쿠데타인가 혁명인가”

입력 2018.11.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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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세계 2위의 자동차 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의 최고 경영자를 태운 전용 비행기가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다. 오후 4시 반, 계류장에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렸다.

탑승 계단이 내려오자 쏜살같이 비행기 옆에 정차하는 흰색 승합차, 검은색 양복을 입은 도쿄 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이 비행기에 들이닥쳤다.

회장의 신병 확보에 성공하자 검찰은 곧바로 회사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

회장의 체포, 그리고 자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긴박한 상황, 보통이라면 회사는 상황 파악에 허둥지둥할터이지만, 닛산은 오후 6시 압수수색을 당하는 와중에 "곤 회장에 대한 복수의 중대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밤 10시, 닛산의 일본인 사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권좌에 오래 앉아 있어 폐해가 나타났다"며 회장을 직접 겨냥해 15분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마치 영화와 같은, 잘 짜인 시나리오를 보는 '곤 회장 체포 작전'.

지난해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자동차 제국으로 올라선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의 추락. 급여 축소 신고가 직접적인 방아쇠가 됐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프랑스인 대표와 일본 자동차 회사 임원 간의 갈등, 그리고 르노의 틀에서 벗어나 일본의 닛산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부패한 회장을 낙마시킨 '혁명'인가 권좌를 탈취하려는 '쿠데타'인가? 오너형 기업 체계가 대세인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회장 잡아들이기' 그 속을 들여다본다.

닛산 수 개월간 '톱(회장)'을 조사

산케이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곤 회장의 비리는 내부자 고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닛산의 사기가와 사장은 "내부 고발을 기반으로 닛산 감사역이 문제를 제기하고, 사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검찰 당국에도 통보했다"고 그 과정을 밝혔다.

르노와 닛산, 그리고 지난해부터 미쓰비시 자동차까지 통합해 사실상 3개 회사의 대표 역할을 해온 곤 회장. 해외 체류가 많은 만큼 조사 사실을 알 경우 일본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어 '회장'에 대한 조사는 수개월 간 철저히 물밑에서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됐다.

닛산의 내부 조사에 발맞춰 곤 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일본 검찰도 은밀히 움직였다. 영어가 가능한 검사를 확충하고 일본에 오는 시간, 그리고 현장 확보를 위한 모든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실행에 옮겼다.

체포 후 바로 기자회견, "권좌에 너무 오래 있었다."

곤 회장의 혐의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보수를 50억 엔(우리 돈 500억 원) 가량 축소 신고한 점, 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레바논 베이루트,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회사 자금이 들어간 자택을 받은 점, 그리고 회사 투자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점 등이다.


급여 축소 신고로 체포까지 됐다는 점에는 일본 언론도 이례적이라고 볼 정도.

흥미로운 점은 자사 회장의 체포에 대해 기자회견을 자청해 목소리를 높인 일본인 사장이다.

"결코 용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우려를 훨씬 넘어 강한 분노를 느낀다.","한사람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됐다.", "장기간에 걸친 곤 통치의 업보"라는 말 등을 쏟아냈다. 15분여 간 사실상 곤 회장 개인에 대한 비판의 장이었다고 전하는 일본 언론.

그리고 회사의 장래에 대해 "특정 개인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경영을 탈피해 지속 가능한 체제를 목표로 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인 사장은 22일 중역회의를 소집해 곤 회장과 공범격인 또 한 사람의 외국인 사장을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부에 존재했던 알력, 그리고 프랑스의 '닛산'이 아닌 일본의 '닛산'으로 되돌리고픈 흐름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사건에 대해 흥미로운 배경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불협화음이 있어왔다. 닛산이 세계에서 판매를 늘려가고 있는 반면, 르노의 판매는 늘지 않는 상황이었다. 르노-닛산-미쓰비시의 3사 연합은 닛산이 주도하고 있음에도 곤 회장은 해외 경영진을 매년 초빙해 집행 임원을 늘려갔다. (곤 회장과 함께 체포된) 게리 용의자는 변호사로서 1988년 북미 닛산 법무 부문에 입사, 2008년에 닛산 본사 집행 임원으로 취임했다. (22일 회장의 해임을 결정할) 집행임원회는 일본인 임원 5명에 곤 본인을 포함한 외부 인사 4명으로 미묘한 균형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일본인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게리 사장은 곤 회장의 측근으로 곤 씨의 권력을 배경으로 사내를 컨트롤해왔다"고 비판했다.

다시 요미우리의 분석. "갈등이 깊어진 것은 지난 2015년 닛산과 르노의 자본 관계를 재편하려는 계획이 무산되면서다. 프랑스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르노와 닛산이 완전히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현 사이가와 사장(기자회견에서 곤 사장을 강력히 비판) 등 일본 경영진이 강하게 견제했고, 이후 곤 회장의 움직임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며 닛산 내부의 기류를 설명했다.

결국, 닛산이라는 회사 내에서 곤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등 외국 경영진과 사이가와 사장을 필두로 한 일본인 임원 간의 알력관계가 지속돼 왔다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 사회는 닛산이 르노에 편입돼 자회사가 됐지만 '르노-닛산'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을 정도로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닛산임을 강조하는 기류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999년 위기의 닛산에 대표로 취임해 2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해고하고 주력 공장을 매각하는 등 철저한 비용삭감으로 회사를 되살린 곤 회장이지만 그 무자비한 경영 방법 자체가 일본에서는 받아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즉 회사가 살아난 만큼 이제는 원래 일본 회사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흐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곤 회장의 체포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세계 2위의 자동차 그룹 '톱'의 추락. 일본 검찰의 프랑스인 CEO 체포. 그리고 회사 내 두 세력의 갈등. 프랑스와 일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은 이제 출발점에 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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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프랑스 회장 잡아 넣은 日 닛산차…쿠데타인가 혁명인가”
    • 입력 2018-11-20 16:06:48
    특파원 리포트
19일 오후 세계 2위의 자동차 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의 최고 경영자를 태운 전용 비행기가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다. 오후 4시 반, 계류장에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렸다.

탑승 계단이 내려오자 쏜살같이 비행기 옆에 정차하는 흰색 승합차, 검은색 양복을 입은 도쿄 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이 비행기에 들이닥쳤다.

회장의 신병 확보에 성공하자 검찰은 곧바로 회사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

회장의 체포, 그리고 자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긴박한 상황, 보통이라면 회사는 상황 파악에 허둥지둥할터이지만, 닛산은 오후 6시 압수수색을 당하는 와중에 "곤 회장에 대한 복수의 중대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밤 10시, 닛산의 일본인 사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권좌에 오래 앉아 있어 폐해가 나타났다"며 회장을 직접 겨냥해 15분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마치 영화와 같은, 잘 짜인 시나리오를 보는 '곤 회장 체포 작전'.

지난해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자동차 제국으로 올라선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의 추락. 급여 축소 신고가 직접적인 방아쇠가 됐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프랑스인 대표와 일본 자동차 회사 임원 간의 갈등, 그리고 르노의 틀에서 벗어나 일본의 닛산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부패한 회장을 낙마시킨 '혁명'인가 권좌를 탈취하려는 '쿠데타'인가? 오너형 기업 체계가 대세인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회장 잡아들이기' 그 속을 들여다본다.

닛산 수 개월간 '톱(회장)'을 조사

산케이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곤 회장의 비리는 내부자 고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닛산의 사기가와 사장은 "내부 고발을 기반으로 닛산 감사역이 문제를 제기하고, 사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검찰 당국에도 통보했다"고 그 과정을 밝혔다.

르노와 닛산, 그리고 지난해부터 미쓰비시 자동차까지 통합해 사실상 3개 회사의 대표 역할을 해온 곤 회장. 해외 체류가 많은 만큼 조사 사실을 알 경우 일본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어 '회장'에 대한 조사는 수개월 간 철저히 물밑에서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됐다.

닛산의 내부 조사에 발맞춰 곤 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일본 검찰도 은밀히 움직였다. 영어가 가능한 검사를 확충하고 일본에 오는 시간, 그리고 현장 확보를 위한 모든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실행에 옮겼다.

체포 후 바로 기자회견, "권좌에 너무 오래 있었다."

곤 회장의 혐의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보수를 50억 엔(우리 돈 500억 원) 가량 축소 신고한 점, 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레바논 베이루트,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회사 자금이 들어간 자택을 받은 점, 그리고 회사 투자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점 등이다.


급여 축소 신고로 체포까지 됐다는 점에는 일본 언론도 이례적이라고 볼 정도.

흥미로운 점은 자사 회장의 체포에 대해 기자회견을 자청해 목소리를 높인 일본인 사장이다.

"결코 용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우려를 훨씬 넘어 강한 분노를 느낀다.","한사람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됐다.", "장기간에 걸친 곤 통치의 업보"라는 말 등을 쏟아냈다. 15분여 간 사실상 곤 회장 개인에 대한 비판의 장이었다고 전하는 일본 언론.

그리고 회사의 장래에 대해 "특정 개인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경영을 탈피해 지속 가능한 체제를 목표로 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인 사장은 22일 중역회의를 소집해 곤 회장과 공범격인 또 한 사람의 외국인 사장을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부에 존재했던 알력, 그리고 프랑스의 '닛산'이 아닌 일본의 '닛산'으로 되돌리고픈 흐름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사건에 대해 흥미로운 배경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불협화음이 있어왔다. 닛산이 세계에서 판매를 늘려가고 있는 반면, 르노의 판매는 늘지 않는 상황이었다. 르노-닛산-미쓰비시의 3사 연합은 닛산이 주도하고 있음에도 곤 회장은 해외 경영진을 매년 초빙해 집행 임원을 늘려갔다. (곤 회장과 함께 체포된) 게리 용의자는 변호사로서 1988년 북미 닛산 법무 부문에 입사, 2008년에 닛산 본사 집행 임원으로 취임했다. (22일 회장의 해임을 결정할) 집행임원회는 일본인 임원 5명에 곤 본인을 포함한 외부 인사 4명으로 미묘한 균형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일본인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게리 사장은 곤 회장의 측근으로 곤 씨의 권력을 배경으로 사내를 컨트롤해왔다"고 비판했다.

다시 요미우리의 분석. "갈등이 깊어진 것은 지난 2015년 닛산과 르노의 자본 관계를 재편하려는 계획이 무산되면서다. 프랑스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르노와 닛산이 완전히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현 사이가와 사장(기자회견에서 곤 사장을 강력히 비판) 등 일본 경영진이 강하게 견제했고, 이후 곤 회장의 움직임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며 닛산 내부의 기류를 설명했다.

결국, 닛산이라는 회사 내에서 곤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등 외국 경영진과 사이가와 사장을 필두로 한 일본인 임원 간의 알력관계가 지속돼 왔다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 사회는 닛산이 르노에 편입돼 자회사가 됐지만 '르노-닛산'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을 정도로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닛산임을 강조하는 기류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999년 위기의 닛산에 대표로 취임해 2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해고하고 주력 공장을 매각하는 등 철저한 비용삭감으로 회사를 되살린 곤 회장이지만 그 무자비한 경영 방법 자체가 일본에서는 받아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즉 회사가 살아난 만큼 이제는 원래 일본 회사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흐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곤 회장의 체포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세계 2위의 자동차 그룹 '톱'의 추락. 일본 검찰의 프랑스인 CEO 체포. 그리고 회사 내 두 세력의 갈등. 프랑스와 일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은 이제 출발점에 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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