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자수하면 정상참작” 부산 청년보안관 사업체 ‘뻔뻔한’ 제보자 색출

입력 2018.11.21 (10:00) 수정 2018.11.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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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확보가 시급했다. 지역의 청년 인재 유출은 더 심각했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고용정책 야심작이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된 정책인데, 지역에서 일자리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행정안전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인건비를 대는 방식이다. 전국 370여 개 사업에 천7백억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갔다.

행정안전부가 시행 중인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행정안전부가 시행 중인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부산시가 제안해 공식 채택된 청년 일자리 사업 중 주목받는 게 '우리마을 청년보안관'이다. 과연 실상이 어땠을까? KBS가 청년보안관들의 일일 업무 보고서를 확인해보니, 실상은 안타깝고도 충격적이었다. 트로트 가수를 섭외하거나 팝콘 혹은 아이스크림 기계 따위를 대여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본래 취지에 맞게, 우리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라, 소속 업체의 영리 목적 업무 또는 잡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중도에 포기하는 청년들이 속출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KBS가 지난 14일 뉴스9을 통해 이런 청년 일자리 사업의 실태를 꼬집어 보도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100일 가량 됐으니, 사업 시행 초기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방향을 제시한다는 목적이었다.

부산시가 제안해 모범 사례로 꼽힌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사업부산시가 제안해 모범 사례로 꼽힌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사업

그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뭔가 좀 개선됐을까?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다. 사업 운영자는 반성은 커녕, 언론에 제보한 청년을 찾겠다며 청년들을 또 울리고 있었다.

청년보안관 SNS 단체대화방에 내려진 행동강령청년보안관 SNS 단체대화방에 내려진 행동강령

보도 다음 날 아침, 사업 운영자는 SNS 단체대화방을 통해 청년보안관들에게 행동강령을 내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각자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절대 지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청년보안관들의 컴퓨터를 뒤져 언론 제보 흔적이 있는지 알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제보자가 자수하면 정상 참작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보안관에 법적 책임 묻겠다며 공포 분위기 조성한 업체 대표청년보안관에 법적 책임 묻겠다며 공포 분위기 조성한 업체 대표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법적 책임까지 언급했다. 청년보안관이나 그 지인들이 페이스북 등에 사업 비판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면 명예훼손 책임을 묻겠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KBS 보도 이후 작성된 청년 탄원서와 서명KBS 보도 이후 작성된 청년 탄원서와 서명

청년들을 압박해 강제로 탄원서에 서명하게 한 의혹도 사고 있다. KBS 보도 이후 작성된 탄원서는 뜻밖에도 사업이 잘되고 있다는 것. 즉, KBS가 억지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 탄원서에 청년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KBS 취재 결과, 일부는 업체의 강압에 못 이겨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일부가 여러 명을 대신해 서명한 사실도 확인됐다.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A 씨는 "업체에 불만을 표시했던 청년보안관 중에 서명한 사람도 있다"며 "업체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니까 서명에 동참 안 하면 아무래도 회사에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부산시, 해당 업체 방문해 실태조사 돌입부산시, 해당 업체 방문해 실태조사 돌입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시는 즉각 실태조사에 나섰다. 부산시 일자리경제정책과 관계자는 "청년들 위한다고 했던 사업이, 거꾸로 청년들을 괴롭히는 일처럼 되어버렸다"며 청년들과의 직접 면담을 통해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KBS 보도 이후 부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며칠 뒤 청년보안관 운영 업체는 이를 계기로 청년들의 처우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청년 제보자 색출에만 열을 올리며, 또 한 번 청년들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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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자수하면 정상참작” 부산 청년보안관 사업체 ‘뻔뻔한’ 제보자 색출
    • 입력 2018-11-21 10:00:12
    • 수정2018-11-21 10:41:32
    취재후·사건후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확보가 시급했다. 지역의 청년 인재 유출은 더 심각했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고용정책 야심작이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된 정책인데, 지역에서 일자리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행정안전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인건비를 대는 방식이다. 전국 370여 개 사업에 천7백억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갔다.

행정안전부가 시행 중인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부산시가 제안해 공식 채택된 청년 일자리 사업 중 주목받는 게 '우리마을 청년보안관'이다. 과연 실상이 어땠을까? KBS가 청년보안관들의 일일 업무 보고서를 확인해보니, 실상은 안타깝고도 충격적이었다. 트로트 가수를 섭외하거나 팝콘 혹은 아이스크림 기계 따위를 대여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본래 취지에 맞게, 우리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라, 소속 업체의 영리 목적 업무 또는 잡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중도에 포기하는 청년들이 속출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KBS가 지난 14일 뉴스9을 통해 이런 청년 일자리 사업의 실태를 꼬집어 보도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100일 가량 됐으니, 사업 시행 초기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방향을 제시한다는 목적이었다.

부산시가 제안해 모범 사례로 꼽힌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사업
그후 어떻게 바뀌었을까? 뭔가 좀 개선됐을까?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다. 사업 운영자는 반성은 커녕, 언론에 제보한 청년을 찾겠다며 청년들을 또 울리고 있었다.

청년보안관 SNS 단체대화방에 내려진 행동강령
보도 다음 날 아침, 사업 운영자는 SNS 단체대화방을 통해 청년보안관들에게 행동강령을 내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각자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절대 지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청년보안관들의 컴퓨터를 뒤져 언론 제보 흔적이 있는지 알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제보자가 자수하면 정상 참작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보안관에 법적 책임 묻겠다며 공포 분위기 조성한 업체 대표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법적 책임까지 언급했다. 청년보안관이나 그 지인들이 페이스북 등에 사업 비판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면 명예훼손 책임을 묻겠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KBS 보도 이후 작성된 청년 탄원서와 서명
청년들을 압박해 강제로 탄원서에 서명하게 한 의혹도 사고 있다. KBS 보도 이후 작성된 탄원서는 뜻밖에도 사업이 잘되고 있다는 것. 즉, KBS가 억지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 탄원서에 청년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KBS 취재 결과, 일부는 업체의 강압에 못 이겨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일부가 여러 명을 대신해 서명한 사실도 확인됐다.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A 씨는 "업체에 불만을 표시했던 청년보안관 중에 서명한 사람도 있다"며 "업체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니까 서명에 동참 안 하면 아무래도 회사에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부산시, 해당 업체 방문해 실태조사 돌입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시는 즉각 실태조사에 나섰다. 부산시 일자리경제정책과 관계자는 "청년들 위한다고 했던 사업이, 거꾸로 청년들을 괴롭히는 일처럼 되어버렸다"며 청년들과의 직접 면담을 통해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KBS 보도 이후 부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며칠 뒤 청년보안관 운영 업체는 이를 계기로 청년들의 처우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청년 제보자 색출에만 열을 올리며, 또 한 번 청년들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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