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점프’의 추억…뜨거운 감자 ‘위수지역’

입력 2018.11.21 (14:55) 수정 2018.11.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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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지역에서 군 생활을 마친 분들은 '점프'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뛰다'라는 듯의 영어 단어 'jump'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정해진 외출외박 구역을 몰래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뜻하는 '은어'이자 '속어'입니다.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같은 곳에 서 있는 헌병의 눈을 피해 주로 대도시로 가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해진 구역이 이른바 '위수지역'입니다. '위수지역'의 정확한 의미는 부대별로 담당해야 하는 책임 지역을 뜻합니다. 하지만 군 장병들에게는 '외출외박 제한구역'이라는 의미로 더 쓰이고 있습니다.

6.25의 교훈…외출외박 제한 '위수지역'의 유래는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했던 1950년 6월 25일 당시는 농번기였습니다. 전방부대 장병 상당수가 고향으로 가 일손을 도왔습니다. 당시 장병 3분의 1 정도가 부대를 비운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교통도 안 좋았던 시절, 전쟁은 났는데 병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초기 전투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됐던 경험이 외출외박 지역을 제한하는 '위수지역'의 유래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60년이 더 지났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기본권 제한…폐지해야"

문제는 외출외박 제한구역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이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따라서 제한을 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야 합니다. 외출외박을 제한하는 법률적인 근거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입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외출외박 지역제한은 비상상황이 아닌 평상시에도 제한되고 있습니다. 위헌 소지가 있습니다. 유일한 근거 규정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따라 지역적 또는 시간적 제한을 고려하여 지휘관이 정한다'는 국방부 훈령입니다.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법적 근거 없이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한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올해 2월 국방부에 외출외박 제한구역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국방부도 이를 받아들여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3월 "전시나 이에 준하는 상태가 아닌 평상시에 군인의 외출 외박 등의 지역제한은 과도한 제한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발칵 뒤집힌 접경지역…한발 물러선 국방부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 방침이 발표되자 강원도 접경지역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주민들은 인근 군부대로 인한 군사 지역 개발제한 규정 때문에 지역 경제가 낙후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부대와 장병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외출외박 장병들이 다른 곳으로 지역 상권이 흔들린다는이유였습니다.

급기야 올해 3월 최문순 강원지사가 국방부를 찾아 송영무 장관을 면담했습니다.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를 재고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결국 국방부는 지역과의 상생 방안을 찾아보겠다며 올해 말까지 결정을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군 장병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지, 지역 경제를 살리러 갔느냐"는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이 문제는 군과 지역주민들 사이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 방침이 발표된 올해 초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대부분 제한구역 폐지를 찬성하는 군 장병들은 전국 곳곳 출신이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표는 무시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권에서도 "지역적인 이슈로 전국적인 선거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합니다.


고심 끝에 나온 절충안…서울 춘천까지 확대

이번에 국방부가 마련한 안은 앞서 올해 2월에 발표한 전면 폐지 방침에서는 후퇴했습니다. 다만 현재 각 부대별 책임구역을 기준으로 설정된 제한구역을 '대중교통으로 2시간 이내에 도달 가능한 거리'라는 시간적 개념을 추가해서 외출외박 가능지역을 확대했습니다.

국방부가 마련한 ‘군단별 외박구역 확대 방안’국방부가 마련한 ‘군단별 외박구역 확대 방안’

장병의 기본권, 지역 경제와 함께 또 다른 쟁점은 군사대비태세 유지입니다. 절충안을 마련하는 데 관여한 군 관계자는 "일선 지휘관들 상당수가 여전히 전면 폐지보다는 적어도 2시간 내 도달 가능한 거리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전면 폐지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요즘은 6.25때 처럼 병력의 수가 전투력에 절대 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 국방부 당국자는 "첨단 무기가 투입되는 현대전에서 외출외박 제한구역이라는 것 자체가 옛날 개념"이라고 말했습니다.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외출과 외박, 휴가 등 출타 인원을 전체 병력의 35% 이내로 제한하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앞서 올해 5월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 법대로 하면 근거 없이 개인의 이동권,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으니 법대로 폐지하는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최근들어 평시 외출외박 지역 제한의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논리 자체를 바꾸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현행법에 규정된 지역 제한 근거인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대해 "언제 비상사태가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평시에도 제한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국방부는 보도가 나간 뒤 공식적으로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권고와 법령 규정에 따라 외박지역 제한 폐지를 추진 중"이라면서도 "합리적 안을 마련하여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도된 '절충안'이 대안 중 하나라고 인정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절충안'을 들고 지역 주민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면 폐지'와 '절충안' 어떤 결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27개월'과 '36개월' 사이에서 고민 중인 양심적 대체복무제 정부안과 함께 국방부에 던져진,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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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1 14:55:18
    • 수정2018-11-21 14:59:07
    취재후·사건후
전방 지역에서 군 생활을 마친 분들은 '점프'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뛰다'라는 듯의 영어 단어 'jump'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정해진 외출외박 구역을 몰래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뜻하는 '은어'이자 '속어'입니다.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같은 곳에 서 있는 헌병의 눈을 피해 주로 대도시로 가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해진 구역이 이른바 '위수지역'입니다. '위수지역'의 정확한 의미는 부대별로 담당해야 하는 책임 지역을 뜻합니다. 하지만 군 장병들에게는 '외출외박 제한구역'이라는 의미로 더 쓰이고 있습니다.

6.25의 교훈…외출외박 제한 '위수지역'의 유래는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했던 1950년 6월 25일 당시는 농번기였습니다. 전방부대 장병 상당수가 고향으로 가 일손을 도왔습니다. 당시 장병 3분의 1 정도가 부대를 비운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교통도 안 좋았던 시절, 전쟁은 났는데 병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초기 전투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됐던 경험이 외출외박 지역을 제한하는 '위수지역'의 유래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60년이 더 지났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기본권 제한…폐지해야"

문제는 외출외박 제한구역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이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따라서 제한을 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야 합니다. 외출외박을 제한하는 법률적인 근거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입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외출외박 지역제한은 비상상황이 아닌 평상시에도 제한되고 있습니다. 위헌 소지가 있습니다. 유일한 근거 규정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따라 지역적 또는 시간적 제한을 고려하여 지휘관이 정한다'는 국방부 훈령입니다.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법적 근거 없이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한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올해 2월 국방부에 외출외박 제한구역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국방부도 이를 받아들여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3월 "전시나 이에 준하는 상태가 아닌 평상시에 군인의 외출 외박 등의 지역제한은 과도한 제한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발칵 뒤집힌 접경지역…한발 물러선 국방부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 방침이 발표되자 강원도 접경지역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주민들은 인근 군부대로 인한 군사 지역 개발제한 규정 때문에 지역 경제가 낙후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부대와 장병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외출외박 장병들이 다른 곳으로 지역 상권이 흔들린다는이유였습니다.

급기야 올해 3월 최문순 강원지사가 국방부를 찾아 송영무 장관을 면담했습니다.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를 재고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결국 국방부는 지역과의 상생 방안을 찾아보겠다며 올해 말까지 결정을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군 장병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지, 지역 경제를 살리러 갔느냐"는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이 문제는 군과 지역주민들 사이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외출외박 제한구역 폐지 방침이 발표된 올해 초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대부분 제한구역 폐지를 찬성하는 군 장병들은 전국 곳곳 출신이지만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표는 무시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권에서도 "지역적인 이슈로 전국적인 선거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합니다.


고심 끝에 나온 절충안…서울 춘천까지 확대

이번에 국방부가 마련한 안은 앞서 올해 2월에 발표한 전면 폐지 방침에서는 후퇴했습니다. 다만 현재 각 부대별 책임구역을 기준으로 설정된 제한구역을 '대중교통으로 2시간 이내에 도달 가능한 거리'라는 시간적 개념을 추가해서 외출외박 가능지역을 확대했습니다.

국방부가 마련한 ‘군단별 외박구역 확대 방안’
장병의 기본권, 지역 경제와 함께 또 다른 쟁점은 군사대비태세 유지입니다. 절충안을 마련하는 데 관여한 군 관계자는 "일선 지휘관들 상당수가 여전히 전면 폐지보다는 적어도 2시간 내 도달 가능한 거리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전면 폐지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요즘은 6.25때 처럼 병력의 수가 전투력에 절대 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 국방부 당국자는 "첨단 무기가 투입되는 현대전에서 외출외박 제한구역이라는 것 자체가 옛날 개념"이라고 말했습니다.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외출과 외박, 휴가 등 출타 인원을 전체 병력의 35% 이내로 제한하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앞서 올해 5월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 법대로 하면 근거 없이 개인의 이동권,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으니 법대로 폐지하는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최근들어 평시 외출외박 지역 제한의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논리 자체를 바꾸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현행법에 규정된 지역 제한 근거인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대해 "언제 비상사태가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평시에도 제한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국방부는 보도가 나간 뒤 공식적으로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권고와 법령 규정에 따라 외박지역 제한 폐지를 추진 중"이라면서도 "합리적 안을 마련하여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도된 '절충안'이 대안 중 하나라고 인정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절충안'을 들고 지역 주민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면 폐지'와 '절충안' 어떤 결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27개월'과 '36개월' 사이에서 고민 중인 양심적 대체복무제 정부안과 함께 국방부에 던져진,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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