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1년 만의 ‘백혈병 협약’…이재용 구하기?

입력 2018.11.23 (12:05) 수정 2018.11.2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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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소속 노동자들의 '백혈병 분쟁'이 일어난 지 11년 만에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피해자 측과 협약했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삼성에 강하게 요구했던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에 답을 내놓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러한 변화를 이재용 부회장과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지난해 2월 구속돼 8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올해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뒤 삼성의 변화가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정규직화에 백혈병 사과까지

삼성이 변화를 보인 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 직접 채용이 시작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4월 17일 전국금속노조와 협력업체 직원 직접 채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2달여 만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합의에 따라 내년 1월 1일 자로 협력사의 수리기사 7천800명은 직접 고용, 상담 콜센터 직원은 자회사 설립 후 직접 고용하기로 지난 2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최종 합의했다. 2013년 노조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된 문제를 5년 만에 해결한 것이었다.

삼성은 '노조 파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정도로 삼성전자서비스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고, 노조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 1심에서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수사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법적으로 더 다퉈보지 않고 직접 채용을 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삼성은 이어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중재안을 백지위임 하는 방안을 피해자 측과 합의했고, 이달 초 마련된 중재안에 최종 합의했다.

2007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사망한 뒤 시작된 백혈병 분쟁은 2014년 5월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식 사과 이후 조정위가 2015년 1차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합의에 실패해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였다. 피해자 측의 양보가 있었지만, 삼성이 분쟁 발생 11년 만에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8월에는 3년간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 9월에는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지난달에는 계열사들이 인력공급업체에서 파견받고 있는 운전기사 4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직접 채용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활동도 쉬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인도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8월에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난 데 이어 9월에는 평양정상회담에 동행하기도 했다. 중국, 캐나다, 베트남 등 해외 출장도 활발하다.


◆"사회적 책임·경영활동 관련 의견 안 내"

삼성의 변화는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이재용 부회장 뇌물 사건에서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제스처 아니냐는 해석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심이 내린 집행유예를 상고심에서 확정받으려는 조치들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그러나 이와 관련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지는 않았다.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관계자는 백혈병 분쟁 해결 등 삼성이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는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의견서를 이 부회장 측이 제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에 대한 의견서도 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 측은 지난 8월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2심 판결에 대한 의견서를 판결 이후 20건 정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이 사회적 책임이나 경영활동과 관련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지 않은 것은 대법원 재판의 특성 때문이다. 대법원에서는 2심 판결이 맞게 됐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뿐, 형량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2심 판결이 제대로 됐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확정하고,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낸다.

이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나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은 형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이러한 활동이 선처를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대법원 판단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박영수 특검팀 관계자는 "내가 이 부회장 측이라도 사회적 책임 활동이나 경영 활동에 대한 의견서는 내지 않을 것 같다"며 "파기환송이 돼서 2심이 다시 진행된다면 그때는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심이 다시 진행될 경우 형량도 다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 '삼바 분식회계' 의견서 준비 중

대법원 재판에서는 삼성의 사회적 책임 활동보다는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린 게 작게나마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증선위 결론에 대한 의견서를 준비 중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은 주가에 따라 정해진 것이지만, 이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합병 이후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한 것이라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써서 곧 대법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재판에서는 새로운 증거를 제출할 수는 없지만, 검찰과 피고인 측의 의견을 담은 의견서는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다. 특검팀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면, 이 부회장 측도 특검팀 논리를 반박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는 징역 5년,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상고심은 현재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이 심리 중이다. 박 전 대통령 상고심은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이 맡았다. 이 두 사건이 병합될지,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지가 관심사다.

[연관 기사] “고통받은 직원·가족에 진심으로 사과”…‘삼성전자 백혈병’ 11년 만에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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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1년 만의 ‘백혈병 협약’…이재용 구하기?
    • 입력 2018-11-23 12:05:59
    • 수정2018-11-23 12:55:12
    취재후·사건후
삼성전자가 소속 노동자들의 '백혈병 분쟁'이 일어난 지 11년 만에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피해자 측과 협약했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삼성에 강하게 요구했던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에 답을 내놓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러한 변화를 이재용 부회장과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지난해 2월 구속돼 8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올해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뒤 삼성의 변화가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정규직화에 백혈병 사과까지

삼성이 변화를 보인 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 직접 채용이 시작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4월 17일 전국금속노조와 협력업체 직원 직접 채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2달여 만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합의에 따라 내년 1월 1일 자로 협력사의 수리기사 7천800명은 직접 고용, 상담 콜센터 직원은 자회사 설립 후 직접 고용하기로 지난 2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최종 합의했다. 2013년 노조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된 문제를 5년 만에 해결한 것이었다.

삼성은 '노조 파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정도로 삼성전자서비스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고, 노조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 1심에서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수사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법적으로 더 다퉈보지 않고 직접 채용을 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삼성은 이어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중재안을 백지위임 하는 방안을 피해자 측과 합의했고, 이달 초 마련된 중재안에 최종 합의했다.

2007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사망한 뒤 시작된 백혈병 분쟁은 2014년 5월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식 사과 이후 조정위가 2015년 1차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합의에 실패해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였다. 피해자 측의 양보가 있었지만, 삼성이 분쟁 발생 11년 만에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8월에는 3년간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 9월에는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지난달에는 계열사들이 인력공급업체에서 파견받고 있는 운전기사 4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직접 채용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활동도 쉬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인도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8월에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난 데 이어 9월에는 평양정상회담에 동행하기도 했다. 중국, 캐나다, 베트남 등 해외 출장도 활발하다.


◆"사회적 책임·경영활동 관련 의견 안 내"

삼성의 변화는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이재용 부회장 뇌물 사건에서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제스처 아니냐는 해석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심이 내린 집행유예를 상고심에서 확정받으려는 조치들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그러나 이와 관련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지는 않았다.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관계자는 백혈병 분쟁 해결 등 삼성이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는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의견서를 이 부회장 측이 제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에 대한 의견서도 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 측은 지난 8월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2심 판결에 대한 의견서를 판결 이후 20건 정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이 사회적 책임이나 경영활동과 관련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지 않은 것은 대법원 재판의 특성 때문이다. 대법원에서는 2심 판결이 맞게 됐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뿐, 형량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2심 판결이 제대로 됐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확정하고,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낸다.

이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나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은 형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이러한 활동이 선처를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대법원 판단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박영수 특검팀 관계자는 "내가 이 부회장 측이라도 사회적 책임 활동이나 경영 활동에 대한 의견서는 내지 않을 것 같다"며 "파기환송이 돼서 2심이 다시 진행된다면 그때는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심이 다시 진행될 경우 형량도 다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 '삼바 분식회계' 의견서 준비 중

대법원 재판에서는 삼성의 사회적 책임 활동보다는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린 게 작게나마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증선위 결론에 대한 의견서를 준비 중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은 주가에 따라 정해진 것이지만, 이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합병 이후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한 것이라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써서 곧 대법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재판에서는 새로운 증거를 제출할 수는 없지만, 검찰과 피고인 측의 의견을 담은 의견서는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다. 특검팀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면, 이 부회장 측도 특검팀 논리를 반박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는 징역 5년,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상고심은 현재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이 심리 중이다. 박 전 대통령 상고심은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이 맡았다. 이 두 사건이 병합될지,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지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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