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한국 해군이 영국 초등학교에 간 까닭은?

입력 2018.11.23 (13:57) 수정 2018.11.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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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래치미어(Latchmere) 초등학교에 방문한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전단의 태권도 시범 공연 모습

며칠 전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신보 소식이 전해졌다. 박주원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집시 기타리스트'로 아이유와 성시경, 김범수, 신승훈, 이소라, 최백호 등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이 협연 러브콜을 보내는 실력파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낸 정규 앨범에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는 곡을 담아 화제가 됐다. 제목은 '송 포 더 웨스트 시맨 (Song for the west seaman)'. 글자 그대로 '서해 해군 병사들을 위한 노래'라는 의미다. 박 씨는 "해군 입대 이틀 전 연평해전이 터졌고, 데뷔 콘서트 날 천안함 사건이 났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그냥 잊혀지는 게 안타까웠다"고 작곡 의도를 밝혔다. 두 비극적 사건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된 해군 장병들을 '서해 바다 위에 피어난 꽃'으로 예우하면서 "어두운 장송곡이 아닌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물해주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5년만에 정규 4집 앨범 발매한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5년만에 정규 4집 앨범 발매한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Coco'에도 '잊혀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망자(亡者)가 되어 저세상에 가더라도 이승에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저승에서도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것'은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비롯한 대한민국 순항훈련전단 소속 해군들이 영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2005년과 2013년, 2015년에 이은 네 번째 방문이었다. 이들은 영국을 찾을 때마다 런던 템스 강 서안 킹스턴 자치구의 래치미어(Latchmere)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태권도 시범과 의장대 시범은 물론, 비보이와 사물놀이 공연까지 선보이며 학부모들과 교직원들로부터 올해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18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해군사관학교 73기 사관생도 149명을 비롯해 모두 600여 명으로 이뤄졌다.

1954년부터 임관을 앞둔 4학년 사관생도의 실무 적응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원양 항해 훈련 프로그램으로 순항훈련을 실시하는 해군이 2005년 이래 영국에 입항할 때마다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래치미어 초등학교는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순직한 故윤영하 소령(해사 50기)의 모교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윤 소령을 비롯한 참수리-357호정 대원들은 연평도 근해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았고, 이어진 교전에서 윤 소령을 비롯한 6명이 전사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윤영하 소령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윤영하 소령

윤 소령은 어린 시절 해군 출신으로 해운업계에 종사했던 부친(윤두호)을 따라 영국에 가서 살면서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던 당시에도 자기소개서에 "래치미어 초등학교 시절 비록 처음 하는 외국생활이었지만 급우들로부터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적었다.

영국 런던 체류 시절 초등학생이던 고 윤영하 소령의 모습. [사진 제공: 아버지 윤두호 씨]영국 런던 체류 시절 초등학생이던 고 윤영하 소령의 모습. [사진 제공: 아버지 윤두호 씨]

해군은 제2연평해전 이후 윤 소령의 희생정신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차기 고속함 사업(PKX-A)의 1번함 이름을 윤영하함(PKG-711)로 명명했다. 또 순항훈련전단이 영국을 방문할 때마다 따로 시간을 내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아 충무공 이순신 액자와 거북선 모형과 같은 기념품을 기증하고 음악회 등 문화 공연을 펼치며 윤 소령을 추모해오고 있다.

'죽은 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영감을 주는 존재로 기려진다는 것'은, 돌아간 이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또 그를 이어 삶을 이어나가는 '생의 후배들'에게도 '결코 누군가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감사한 징표다. '수사불패(雖死不敗), 비록 죽을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윤영하 소령의 의지를 새삼 기려본다.

[연관기사] 연평해전 故 윤영하 소령의 추억, 생전 인터뷰 독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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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래치미어(Latchmere) 초등학교에 방문한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전단의 태권도 시범 공연 모습

며칠 전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신보 소식이 전해졌다. 박주원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집시 기타리스트'로 아이유와 성시경, 김범수, 신승훈, 이소라, 최백호 등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이 협연 러브콜을 보내는 실력파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낸 정규 앨범에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는 곡을 담아 화제가 됐다. 제목은 '송 포 더 웨스트 시맨 (Song for the west seaman)'. 글자 그대로 '서해 해군 병사들을 위한 노래'라는 의미다. 박 씨는 "해군 입대 이틀 전 연평해전이 터졌고, 데뷔 콘서트 날 천안함 사건이 났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그냥 잊혀지는 게 안타까웠다"고 작곡 의도를 밝혔다. 두 비극적 사건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된 해군 장병들을 '서해 바다 위에 피어난 꽃'으로 예우하면서 "어두운 장송곡이 아닌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물해주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5년만에 정규 4집 앨범 발매한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Coco'에도 '잊혀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망자(亡者)가 되어 저세상에 가더라도 이승에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저승에서도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것'은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비롯한 대한민국 순항훈련전단 소속 해군들이 영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2005년과 2013년, 2015년에 이은 네 번째 방문이었다. 이들은 영국을 찾을 때마다 런던 템스 강 서안 킹스턴 자치구의 래치미어(Latchmere)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태권도 시범과 의장대 시범은 물론, 비보이와 사물놀이 공연까지 선보이며 학부모들과 교직원들로부터 올해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2018 해군 순항훈련전단은 해군사관학교 73기 사관생도 149명을 비롯해 모두 600여 명으로 이뤄졌다.

1954년부터 임관을 앞둔 4학년 사관생도의 실무 적응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원양 항해 훈련 프로그램으로 순항훈련을 실시하는 해군이 2005년 이래 영국에 입항할 때마다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래치미어 초등학교는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순직한 故윤영하 소령(해사 50기)의 모교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윤 소령을 비롯한 참수리-357호정 대원들은 연평도 근해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았고, 이어진 교전에서 윤 소령을 비롯한 6명이 전사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윤영하 소령
윤 소령은 어린 시절 해군 출신으로 해운업계에 종사했던 부친(윤두호)을 따라 영국에 가서 살면서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던 당시에도 자기소개서에 "래치미어 초등학교 시절 비록 처음 하는 외국생활이었지만 급우들로부터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적었다.

영국 런던 체류 시절 초등학생이던 고 윤영하 소령의 모습. [사진 제공: 아버지 윤두호 씨]
해군은 제2연평해전 이후 윤 소령의 희생정신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차기 고속함 사업(PKX-A)의 1번함 이름을 윤영하함(PKG-711)로 명명했다. 또 순항훈련전단이 영국을 방문할 때마다 따로 시간을 내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아 충무공 이순신 액자와 거북선 모형과 같은 기념품을 기증하고 음악회 등 문화 공연을 펼치며 윤 소령을 추모해오고 있다.

'죽은 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영감을 주는 존재로 기려진다는 것'은, 돌아간 이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또 그를 이어 삶을 이어나가는 '생의 후배들'에게도 '결코 누군가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감사한 징표다. '수사불패(雖死不敗), 비록 죽을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윤영하 소령의 의지를 새삼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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