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에 소변기가 줄어든 이유…누리꾼들 “탁상행정 끝판왕”

입력 2018.1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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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받고 있다. 좌측은 남자화장실, 우측은 여자화장실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남자화장실의 공간이 휑뎅그렁한 게 소변기를 설치하다 만 느낌이다. 공간이 남는다면 변기를 더 설치해서 사용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을텐데 어찌된 일일까?

자신을 현직 교사라고 밝힌 해당 게시물의 작성자는 "학교가 최근 리모델링을 했는데 새로 만들어진 화장실이 저렇다. 왜 그러냐고 따지니 '법이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작성자는 이어 법령을 찾아본 결과, 실제로 '공중화장실법'에 "여자화장실 대변기 수는 남자화장실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만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 학교 여자화장실에 변기가 5개 있으니 남자화장실 대·소변기는 모두 합쳐 5개 넘게 설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당 사진과 게시글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로 급속히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입을 모아 공무원들의 '탁상행정 수준'을 성토했다.


해당 법률은 사실이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는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ㆍ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이 시행된 날짜는 2004년이다. 취재진은 2004년 이후 건물 리모델링이나 신축 등으로 새로 설치된 공중화장실들을 확인해봤다.

여의도의 한 공중화장실 사진.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화장실이다.여의도의 한 공중화장실 사진.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화장실이다.

확인 결과, 법 제정 이후 설치된 남자 화장실의 변기 개수(대변기+소변기)는 여자 화장실의 변기 개수를 합친 것과 같았다.

문제는 개수가 아니라 공간이었다. 법 제정 전에 지어진 화장실과 비교할 때 남자화장실은 소변기 개수가 확 줄어 널찍해진 반면, 여자화장실은 상대적으로 협소해졌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의 공간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변기 개수를 법에 따라 맞추다보니 남자화장실은 상대적으로 넓어지고, 여자 화장실은 좁아진 것이다.

취지는 좋으나 적용이 문제..."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당초 이 법은 심재철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2001년에 대표발의해 2004년에 제정됐다. 심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이 법을 제안한 이유가 상세히 나와 있다. 심 의원은 "여자들의 화장실 평균 이용시간은 남자들의 약 3배라고 하므로 여자 화장실의 대변기 수가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와 대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심 의원은 "총 면적의 반은 남자 화장실, 반은 여자 화장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여자 화장실의 변기 수가 남자 화장실보다 오히려 적었던" 현실을 이 법을 통해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법의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각각의 면적은 동일하게 하고 변기 수만 맞추려다보니, 남자 화장실 변기는 줄었지만, 여자화장실 변기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변기 수로 맞추지 말고, 공간, 면적을 재배분해야

이런 비효율을 없애려면 시공 단계에서부터 변기 수를 고려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면적을 반으로 가른 뒤 숫자만 맞춰 변기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설치할 변기 수를 고려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현재 공중화장실법에는 남자, 여자 화장실의 면적을 각각 정해놓고 있지 않다. 전체 화장실 면적만 정해두고 있을 뿐이다.


행정안전부 생활공간정책과 관계자는 "(관련 법규는) 공중화장실의 면적이 33제곱미터 이상이기만 하면 면적 활용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 설치기준'은 일반적인 공중화장실의 경우 전체 연면적이 33 제곱미터 이상이 되기만 하면 별도로 설계상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공원 처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 또는 시설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은 전체 연면적이 46제곱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

탁상행정의 극치...입법 취지 무색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복순 박사도 "해당 법규엔 여러 예외조항과 단서조항이 존재한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게시된) 해당 사례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법 적용과정에서의 기계적인 해석과 사용자의 편의를 살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실은 "변기를 늘리려면 당연히 면적도 따라 늘어야한다"며 "법을 지킨다며 면적을 그대로 두고 남자화장실 변기만 줄이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당국이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인턴기자 안명진 passion96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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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화장실에 소변기가 줄어든 이유…누리꾼들 “탁상행정 끝판왕”
    • 입력 2018-11-25 08:00:07
    취재K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받고 있다. 좌측은 남자화장실, 우측은 여자화장실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남자화장실의 공간이 휑뎅그렁한 게 소변기를 설치하다 만 느낌이다. 공간이 남는다면 변기를 더 설치해서 사용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을텐데 어찌된 일일까?

자신을 현직 교사라고 밝힌 해당 게시물의 작성자는 "학교가 최근 리모델링을 했는데 새로 만들어진 화장실이 저렇다. 왜 그러냐고 따지니 '법이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작성자는 이어 법령을 찾아본 결과, 실제로 '공중화장실법'에 "여자화장실 대변기 수는 남자화장실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만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 학교 여자화장실에 변기가 5개 있으니 남자화장실 대·소변기는 모두 합쳐 5개 넘게 설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당 사진과 게시글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로 급속히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입을 모아 공무원들의 '탁상행정 수준'을 성토했다.


해당 법률은 사실이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는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ㆍ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이 시행된 날짜는 2004년이다. 취재진은 2004년 이후 건물 리모델링이나 신축 등으로 새로 설치된 공중화장실들을 확인해봤다.

여의도의 한 공중화장실 사진.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화장실이다.
확인 결과, 법 제정 이후 설치된 남자 화장실의 변기 개수(대변기+소변기)는 여자 화장실의 변기 개수를 합친 것과 같았다.

문제는 개수가 아니라 공간이었다. 법 제정 전에 지어진 화장실과 비교할 때 남자화장실은 소변기 개수가 확 줄어 널찍해진 반면, 여자화장실은 상대적으로 협소해졌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의 공간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변기 개수를 법에 따라 맞추다보니 남자화장실은 상대적으로 넓어지고, 여자 화장실은 좁아진 것이다.

취지는 좋으나 적용이 문제..."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당초 이 법은 심재철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2001년에 대표발의해 2004년에 제정됐다. 심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이 법을 제안한 이유가 상세히 나와 있다. 심 의원은 "여자들의 화장실 평균 이용시간은 남자들의 약 3배라고 하므로 여자 화장실의 대변기 수가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와 대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심 의원은 "총 면적의 반은 남자 화장실, 반은 여자 화장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여자 화장실의 변기 수가 남자 화장실보다 오히려 적었던" 현실을 이 법을 통해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법의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각각의 면적은 동일하게 하고 변기 수만 맞추려다보니, 남자 화장실 변기는 줄었지만, 여자화장실 변기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변기 수로 맞추지 말고, 공간, 면적을 재배분해야

이런 비효율을 없애려면 시공 단계에서부터 변기 수를 고려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면적을 반으로 가른 뒤 숫자만 맞춰 변기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설치할 변기 수를 고려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현재 공중화장실법에는 남자, 여자 화장실의 면적을 각각 정해놓고 있지 않다. 전체 화장실 면적만 정해두고 있을 뿐이다.


행정안전부 생활공간정책과 관계자는 "(관련 법규는) 공중화장실의 면적이 33제곱미터 이상이기만 하면 면적 활용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 설치기준'은 일반적인 공중화장실의 경우 전체 연면적이 33 제곱미터 이상이 되기만 하면 별도로 설계상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공원 처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 또는 시설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은 전체 연면적이 46제곱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

탁상행정의 극치...입법 취지 무색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복순 박사도 "해당 법규엔 여러 예외조항과 단서조항이 존재한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게시된) 해당 사례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법 적용과정에서의 기계적인 해석과 사용자의 편의를 살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실은 "변기를 늘리려면 당연히 면적도 따라 늘어야한다"며 "법을 지킨다며 면적을 그대로 두고 남자화장실 변기만 줄이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당국이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인턴기자 안명진 passion96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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