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매매 강요에 거액 뜯겼는데 공갈 아니다?’ 영장 기각한 검찰

입력 2018.11.27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잘못된 만남]

"콩팥 팔아서 1억 받고, 5천만 원 내놔"
"학창시절부터 동네에서 유명했던 '일진'을 군대에서 만날 줄 생각도 못했어요"

28살 손 모 씨는 2012년부터 올해 초까지 동갑내기 최 모 씨에게 8천만 원이 넘는 돈을 뺏겼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라 금품 갈취를 당한 거죠.
피해자 손 씨는 청주에서 유명한 소위 '일진'이었던 최 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해 복무 중이던 손 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습니다.
다른 부대에 있던 최 씨가 선임병을 폭행한 '하극상'으로 손 씨가 있는 부대로 전입하게 된 것이죠. 게다가 최 씨는 병장, 손 씨는 일병. '잘못된 만남'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최 씨는 손 씨가 동네 동갑내기인 것을 알고, 전역 후 손 씨의 서울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습니다.

손 씨는 월급의 90%를 떼이면서 최 씨의 내기 당구 빚, 갖은 용도의 잡비, 허위 채무를 갚았고 심지어 콩팥을 팔아 돈을 갚으라는 강요까지 당해 8천3백만 원이 넘는 돈을 빼앗겼습니다. 살던 집의 전세금까지 빼다가 최 씨에게 건네야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갖은 협박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최근 결혼을 앞두고도 협박이 계속되자 견디지 못한 손 씨는 최 씨를 고소했고 최 씨는 결국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구속이 쉽지 않았습니다.

[연관기사] ‘콩팥 팔아라’ 강요…동갑내기 협박해 거액 뜯은 20대 남성 구속기소

[장기매매까지 강요 당했는데…청주지검, ‘공갈 아냐’ 구속영장 2번 기각]

청주지검청주지검

지난 2월 손 씨는 최 씨를 고향에서 고소합니다. 손 씨는 최 씨의 협박이 계속되자 최 씨를 피해 서울에서 고향인 충북 청주로 도망갔고, 이후 청주 흥덕경찰서에 직접 고소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청주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수년 동안 고소인에게 저지른 죄질이 불량할 뿐만 아니라, 최 씨가 고소인에게 추가로 폭행과 협박을 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주지검에 신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청주지검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사유는 '공갈로 보기 힘들다'는 건데요. 손 씨가 돈을 상납했던 그 시점에 폭행과 협박이 없었기 때문에 공갈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번의 폭행과 협박, 장기매매 강요까지 있었는데 말이죠. 경찰은 보강수사 후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또 기각됐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조사 받으러 못 갑니다”]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넘겨받은 청주지검은 피의자 최 씨에게 출석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출석 요구에 2번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최 씨의 집인 서울 도봉구에서 청주까지 가기가 '너무 멀다'는 겁니다.

최 씨는 협박과 폭행에 못 견딘 손 씨가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고향인 청주로 도망가자 청주까지 쫓아가 3천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돈 뜯으러는 청주까지 가도, 조사받으러는 갈 수 없다고 버틴 겁니다.

그 사이 최 씨는 손 씨에게 '형사고소를 취하하면 나한테 줘야 할(실제로 줄 이유도 없는) 돈을 1,500만 원으로 낮춰주겠다'는 공갈도 일삼았습니다.

결국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다시 최 씨의 거주지 관할인 서울북부지검으로 왔고 최 씨는 지난 20일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서울북부지검은 청주지검과 다르게 구속기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죠.

일상적인 폭행과 협박으로 이미 피해자가 억압돼 있었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 상납으로 이어졌기에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본 겁니다.

[피해자는 왜 당하고만 있었나?]

20대 후반 성인 남성이 왜 당하고만 있었을까? 취재하면서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말을 하면 내가 두렵잖아..."
KBS가 취재해보니 손 씨가 최 씨에게 한 가장 적극적인 항의는 이 말이었습니다.
최 씨가 벌인 수십 차례의 협박, 수십 차례의 욕설과 폭행 앞에서도 손 씨는 욕 한 번 하지 못해다고 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병리적인 관계에서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가족도 있고 사회생활도 해 온 피해자가 단순한 폭행과 협박 때문에 가해자로부터 완전한 정신적 지배를 받는 것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또 다른 '협박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배상훈 전 경찰청 심리분석관은 손 씨가 학창시절에 가진 '일진', 최 씨의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군대에서 반복해서 들은 그의 폭력성이 사회로 나간 뒤에도 이어졌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최 씨를 보는 손 씨의 심리적인 상태는 계속 '일진'과 '군대 선임'을 대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최 씨에게 정서적으로 완전히 지배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 전 분석관은 "세뇌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해서, 말을 못 하고, 몸을 못 움직이고, 심지어 스스로 자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물론 손 씨에게는 그를 도울 가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 씨를 피해 도망간 고향에서조차 손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최 씨가 "돈을 안 갚으면 가족도 찾아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은 오히려 가장 큰 약점이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상납 시점에는 폭행과 협박 없었다’…2차 가해 가능성 무시]


때문에 검찰의 초기 대응이 더 아쉽습니다. 최 씨가 구속이 안 되는 상황 자체가 손 씨에게는 더 무서운 공포이자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피의자가 수사 기간 중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안 피해자는 계속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소를 취하하면 1,500만 원으로 탕감해주겠다'는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습니다.

손 씨는 최 씨가 구속된 지금도 최 씨에게 줘야 할 이유가 없지만, 돈을 줘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 손 씨가 마지막에 기대고 싶었던 곳은 검찰과 경찰이었을 겁니다. 지긋지긋한 협박에서 벗어나 맘 편히 살고 싶어서 용기를 내 고소도 했습니다. 사법 기관에 호소를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손 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손 씨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장기매매 강요에 거액 뜯겼는데 공갈 아니다?’ 영장 기각한 검찰
    • 입력 2018-11-27 07:01:42
    취재K
[잘못된 만남]

"콩팥 팔아서 1억 받고, 5천만 원 내놔"
"학창시절부터 동네에서 유명했던 '일진'을 군대에서 만날 줄 생각도 못했어요"

28살 손 모 씨는 2012년부터 올해 초까지 동갑내기 최 모 씨에게 8천만 원이 넘는 돈을 뺏겼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라 금품 갈취를 당한 거죠.
피해자 손 씨는 청주에서 유명한 소위 '일진'이었던 최 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해 복무 중이던 손 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습니다.
다른 부대에 있던 최 씨가 선임병을 폭행한 '하극상'으로 손 씨가 있는 부대로 전입하게 된 것이죠. 게다가 최 씨는 병장, 손 씨는 일병. '잘못된 만남'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최 씨는 손 씨가 동네 동갑내기인 것을 알고, 전역 후 손 씨의 서울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습니다.

손 씨는 월급의 90%를 떼이면서 최 씨의 내기 당구 빚, 갖은 용도의 잡비, 허위 채무를 갚았고 심지어 콩팥을 팔아 돈을 갚으라는 강요까지 당해 8천3백만 원이 넘는 돈을 빼앗겼습니다. 살던 집의 전세금까지 빼다가 최 씨에게 건네야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갖은 협박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최근 결혼을 앞두고도 협박이 계속되자 견디지 못한 손 씨는 최 씨를 고소했고 최 씨는 결국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구속이 쉽지 않았습니다.

[연관기사] ‘콩팥 팔아라’ 강요…동갑내기 협박해 거액 뜯은 20대 남성 구속기소

[장기매매까지 강요 당했는데…청주지검, ‘공갈 아냐’ 구속영장 2번 기각]

청주지검
지난 2월 손 씨는 최 씨를 고향에서 고소합니다. 손 씨는 최 씨의 협박이 계속되자 최 씨를 피해 서울에서 고향인 충북 청주로 도망갔고, 이후 청주 흥덕경찰서에 직접 고소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청주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수년 동안 고소인에게 저지른 죄질이 불량할 뿐만 아니라, 최 씨가 고소인에게 추가로 폭행과 협박을 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주지검에 신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청주지검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사유는 '공갈로 보기 힘들다'는 건데요. 손 씨가 돈을 상납했던 그 시점에 폭행과 협박이 없었기 때문에 공갈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번의 폭행과 협박, 장기매매 강요까지 있었는데 말이죠. 경찰은 보강수사 후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또 기각됐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조사 받으러 못 갑니다”]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넘겨받은 청주지검은 피의자 최 씨에게 출석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출석 요구에 2번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최 씨의 집인 서울 도봉구에서 청주까지 가기가 '너무 멀다'는 겁니다.

최 씨는 협박과 폭행에 못 견딘 손 씨가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고향인 청주로 도망가자 청주까지 쫓아가 3천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돈 뜯으러는 청주까지 가도, 조사받으러는 갈 수 없다고 버틴 겁니다.

그 사이 최 씨는 손 씨에게 '형사고소를 취하하면 나한테 줘야 할(실제로 줄 이유도 없는) 돈을 1,500만 원으로 낮춰주겠다'는 공갈도 일삼았습니다.

결국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다시 최 씨의 거주지 관할인 서울북부지검으로 왔고 최 씨는 지난 20일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서울북부지검은 청주지검과 다르게 구속기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죠.

일상적인 폭행과 협박으로 이미 피해자가 억압돼 있었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 상납으로 이어졌기에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본 겁니다.

[피해자는 왜 당하고만 있었나?]

20대 후반 성인 남성이 왜 당하고만 있었을까? 취재하면서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말을 하면 내가 두렵잖아..."
KBS가 취재해보니 손 씨가 최 씨에게 한 가장 적극적인 항의는 이 말이었습니다.
최 씨가 벌인 수십 차례의 협박, 수십 차례의 욕설과 폭행 앞에서도 손 씨는 욕 한 번 하지 못해다고 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병리적인 관계에서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가족도 있고 사회생활도 해 온 피해자가 단순한 폭행과 협박 때문에 가해자로부터 완전한 정신적 지배를 받는 것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또 다른 '협박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배상훈 전 경찰청 심리분석관은 손 씨가 학창시절에 가진 '일진', 최 씨의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군대에서 반복해서 들은 그의 폭력성이 사회로 나간 뒤에도 이어졌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최 씨를 보는 손 씨의 심리적인 상태는 계속 '일진'과 '군대 선임'을 대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최 씨에게 정서적으로 완전히 지배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 전 분석관은 "세뇌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해서, 말을 못 하고, 몸을 못 움직이고, 심지어 스스로 자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물론 손 씨에게는 그를 도울 가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 씨를 피해 도망간 고향에서조차 손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최 씨가 "돈을 안 갚으면 가족도 찾아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은 오히려 가장 큰 약점이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상납 시점에는 폭행과 협박 없었다’…2차 가해 가능성 무시]


때문에 검찰의 초기 대응이 더 아쉽습니다. 최 씨가 구속이 안 되는 상황 자체가 손 씨에게는 더 무서운 공포이자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피의자가 수사 기간 중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안 피해자는 계속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소를 취하하면 1,500만 원으로 탕감해주겠다'는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습니다.

손 씨는 최 씨가 구속된 지금도 최 씨에게 줘야 할 이유가 없지만, 돈을 줘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 손 씨가 마지막에 기대고 싶었던 곳은 검찰과 경찰이었을 겁니다. 지긋지긋한 협박에서 벗어나 맘 편히 살고 싶어서 용기를 내 고소도 했습니다. 사법 기관에 호소를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손 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손 씨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