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아바타 ‘나비족’은 별을 지켰지만…지구의 원시족은 섬을 지킬 수 있을까?

입력 2018.11.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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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은 인류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별 '판도라'를 지켜냈다. 그러나, 기술은 최첨단이라 못할 게 없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지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몰라 끝없이 고갈돼가는 지구의 족속 인류는 아마도 판도라를 다시 침략할 모양이다. 2009년 개봉작 영화 <아바타>의 속편인 <아바타2>가 드디어 주요 배우들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2020년 겨울 개봉 예정이다.

영화 <아바타>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사를 떠올리게 했다. 역사는 영화와 정반대였다.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지 못했다. 처음 무역과 선교 등을 내세워 접근한 유럽인들은 결국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학살하고 쫓아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주민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생명의 위협에 처했기 때문이다. 원주민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전쟁도 학살도 아닌, 바로 '균'이었다. 수만년의 독립된 삶을 영위하는 동안 한번도 접하지 않아 그들이 전혀 면역력을 체득하지 못한 병원균들의 유입, 유럽인들이 원주민의 땅에 들여온 병원균들, 특히 홍역과 천연두 등 전염병의 치사율은 70%에서 많게는 90%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숨진 미국인 존 알렌 차우숨진 미국인 존 알렌 차우

죽음을 부른 한 선교사의 열정

지난 17일 인도령 안다만제도에 속한 작은 섬, 북센티넬섬을 찾은 한 미국인 선교사가 원주민 센티넬족의 화살에 맞아 숨졌다.

27살의 미국인 선교사 존 알렌 차우는, 인도 법에 의해 외부의 접근이 금지된 이 북센티넬섬에, 돈을 주고 고용한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접근했다. 해변 인근까지 어부들의 보트로 접근한 차우는 홀로 카누에 옮겨타고 찬송가를 부르며 북센티넬섬으로 노를 저어갔다. 그는 센티넬족에게, 선물로 준비한 물고기와 낚싯줄, 축구공 등을 보여주었지만, 센티넬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센티넬족은 차우에게 화살들을 날렸다. 어부들은 이후 멀리서, 센티넬족이 숨진 차우의 시신을 질질 끌고 가 해변에 묻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차우는 숨지기 전날에도 이미 한 차례 센티넬섬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실패했었다. 차우가 접근하자 센티넬족은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은 차우의 방수 성경을 관통해 차우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차우는 돌아갔지만,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후 공개된 일기장에 차우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 이 섬은 마지막까지 사탄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당신을 모릅니다. 심지어 당신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습니다." 차우는 다음날 다시 센티넬족에게 다가가려 시도하다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차우가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의 가족들은 "차우는 하나님과 생명,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저 센티넬족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차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인도 당국은, 불법적인 차우의 센티넬섬 접근을 도운 혐의로 어부들을 체포했다.

인도 정부는, 차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북센티넬섬에 접근하려고 며칠 동안 시도했지만, 현재는 포기한 상태다. 헬리콥터가 접근하려 할 때마다 센티넬족이 엄청난 양의 화살을 쏘며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접근할 수도 그들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그들에게 물리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데다 그들이 목숨을 건 저항을 할 가능성이 높고, 외부에서는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의 누구도 그들의 언어를 모른다. 센티넬족이란 이름도 외부인들이 편의상 붙인 것일 뿐,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구상 마지막 고립의 섬 '북센티넬'

인도 본토에서 동쪽으로 1300km, 미얀마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인도양의 북센티넬섬은, 인도령 안다만 제도에 속한 미국 뉴욕 맨해튼 크기, 즉 서울의 약 10분의 1 크기의 섬이다.

북센티넬섬에 사는 센티넬족은 약 5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인도양 일대로 이주한 조상들의 직계 후손이라고 인류학자들은 분석한다. 북센티넬섬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그들은 아직도 수렵채취의 원시적 생계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농업도 하지 않고 불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과거 그들의 화살촉에서 철의 흔적이 보였지만 철기시대에 진입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흥미로운 것은, 수천년 동안 고립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센티넬섬이 본 섬인 안다만에서 수십 km밖에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공항에 인도해군기지까지 있는, 10만명이 거주하는 안다만의 현대적 도시 포트블레어에서 50km 거리다.

이미 18세기부터 인도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영국은 북센티넬섬에도 접근을 시도했다. 1867년에는 인도 배, 1887년엔 영국 배가 차례로 접근했지만, 센티넬족이 화살을 쏘며 격렬히 저항해 들어가지 못했다. 안다만 제도의 다른 섬들이 차례로 제국주의의 손에 넘어가는 가운데도 이들은 독자적 삶을 유지했다.

1970년 인도 정부는 마지막 고립의 섬인 북센티넬에 인류학자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또 1974년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팀이 그 곳을 취재하려고 접근했으나, 날아오는 화살들 중 하나가 감독의 허벅지에 꽂히는 등 물리적 저항으로 결국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에 걸친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1991년 인도의 인류학자팀이 마침내 그들과의 접촉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를 주도했던 안다만제도 부족 연구가 TK 판디트는 인도 NDTV와의 인터뷰에서 "1991년 마침내 그들에게 코코넛 선물을 건네는데 성공했습니다. 보트는 여전히 해변의 얕은 물에 머문 채로 보트 곁에서 그들에게 코코넛을 건넸는데 내가 보트에서 조금 떨어지자 부족의 젊은 남자가 바로 칼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계를 설정하고 끝까지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8세기 후반 8천명 센티넬족 ... 현재는 40명?

하지만 연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단지 제한적인 접촉만으로도 그들이 멸족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단절돼 면역이 없던 그들에게 외부의 균이 전파됐고 그들이 죽어갔다. 델리대학 사회인류학 교수 PC 조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세계에서 전해지는 물건들은 물론 외부인이 그들과 악수만 해도 수십만개의 박테리아가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전혀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사소한 감기 균 같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죽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도 정부는 결국 1997년 6년만에 공식 조사 중단을 선언했다.

여전히 그들이 고립생활을 이어가던 2006년 어부 2명이 낚싯배에서 잠들어 배가 북센티넬섬 해변으로 어쩌다 흘러들러갔는데 그들 역시 화살에 숨졌다. 인도 정부는 그 사건 이후 이 섬에 대한 여행을 완전 금지하고, 섬 반경 4.83km(3마일)에 대한 접근을 금지했다. 그 뒤 인도 정부는 센티넬족에 대해 "지켜보되 건드리지 않는다(eyes-on and hands-off)"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센티넬족은 지난 2004년 인도양을 휩쓴 죽음의 쓰나미에도 멸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인구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의 인도 인구통계조사에서 센티넬족 인구는 40명으로 보고됐으나, 인류학자들은 50명에서 최대 400명 사이 어딘가일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18세기 후반 센티넬족의 인구는 8천명 정도였다. 5만년을 그 곳에서 살아온 센티넬족 인구가, 근대 제국주의 침탈이 시작된 뒤 200년도 안돼 1%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원시부족 연구가들은 역사의 모든 결과가 말해주듯, 문명의 접근이 센티넬족을 결국은 서서히 멸족시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원주민 권리 보호 국제단체 'Survival International'의 스테판 코리 국장은 "안다만 제도에 대한 대영제국의 점령은 부족들을 몰살시켰고 아주 일부만 살아남았다, 센티넬족의 외부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밝혔다. 과거 인도 정부의 센티넬족 연구를 주도했던 인류학자 판디트는 "안다만 4개 부족에 대한 연구에서, 외부세계와 많이 접촉할수록 그들이 인구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는 허가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그들과 접촉하지 않게 막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안다만 원주민 연구가 안비타 애비는 "단지 호기심으로 수만년을 자기들끼리 살아온 부족을 훼손하려는 겁니까? 사람들, 언어, 문화, 그들의 평화까지 너무 많은 걸 잃게 될 겁니다"라며 외부 세계의 무심한 접근을 질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과거 영국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연구를 하겠다며 안다만제도의 원주민에게 접근해 그들을 치명적 위혐에 빠뜨린 것은 "결코 인류애가 아니라 동물학적 '종' 연구 시도"였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인류가 <아바타>에 진심으로 열광했다면...

차우의 죽음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차우의 죽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도 그들은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국적자의 해외에서의 죽음에 민감한 미국임에도 보도의 빈도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으며 애써 분석을 삼갔다. 죽음은 애도해야 했으나, 그의 죽음이 여러 근본 문제들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세운 나라 미국이라도, 종교의 상대성과 문화의 상대성 즉,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과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주류가 아직도 공식적으로 원죄를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미대륙 원주민에 대한 침략과 학살의 역사도 상기시킨다. 제국주의 침략의 첫 발은 많은 경우 안타깝게도 선교를 계기로 삼았었다.

그리고, 첨단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복제까지 계획하고, 생명의 연장을 넘어 유전자 조작에 의한 종의 진화까지 꿈꾸는 인류가, 사실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게 많다는 인식에도 이르게 한다. 농업도 불도 재해에 대한 현대적 방비도 없이, 지구 온난화 재앙의 시대를 견디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우리는 사실 아는 게 없다.

인류 역사상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준 통찰은, 단지 지구의 고갈이나 인류의 침략성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다. 최첨단 기술로도 해부할 수 없는, 한계의 동물 인류에게는 '불가지(不可知)한' 다른 능력이 존재할 수 있고, 인류는 단지 그걸 모를 뿐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통찰에도 이르게 한다. 첨단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돕기만 한 게 아니라 인류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을 지도 모른다. 현세의 인류는 단지 그걸 모를 뿐이다.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인류가 우주의 존재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의 <아바타>에 열광했다면, 하물며 지구 안에서야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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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아바타 ‘나비족’은 별을 지켰지만…지구의 원시족은 섬을 지킬 수 있을까?
    • 입력 2018-11-28 0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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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은 인류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별 '판도라'를 지켜냈다. 그러나, 기술은 최첨단이라 못할 게 없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지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몰라 끝없이 고갈돼가는 지구의 족속 인류는 아마도 판도라를 다시 침략할 모양이다. 2009년 개봉작 영화 <아바타>의 속편인 <아바타2>가 드디어 주요 배우들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2020년 겨울 개봉 예정이다.

영화 <아바타>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사를 떠올리게 했다. 역사는 영화와 정반대였다.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지 못했다. 처음 무역과 선교 등을 내세워 접근한 유럽인들은 결국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학살하고 쫓아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기 전부터 원주민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생명의 위협에 처했기 때문이다. 원주민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전쟁도 학살도 아닌, 바로 '균'이었다. 수만년의 독립된 삶을 영위하는 동안 한번도 접하지 않아 그들이 전혀 면역력을 체득하지 못한 병원균들의 유입, 유럽인들이 원주민의 땅에 들여온 병원균들, 특히 홍역과 천연두 등 전염병의 치사율은 70%에서 많게는 90%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숨진 미국인 존 알렌 차우
죽음을 부른 한 선교사의 열정

지난 17일 인도령 안다만제도에 속한 작은 섬, 북센티넬섬을 찾은 한 미국인 선교사가 원주민 센티넬족의 화살에 맞아 숨졌다.

27살의 미국인 선교사 존 알렌 차우는, 인도 법에 의해 외부의 접근이 금지된 이 북센티넬섬에, 돈을 주고 고용한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접근했다. 해변 인근까지 어부들의 보트로 접근한 차우는 홀로 카누에 옮겨타고 찬송가를 부르며 북센티넬섬으로 노를 저어갔다. 그는 센티넬족에게, 선물로 준비한 물고기와 낚싯줄, 축구공 등을 보여주었지만, 센티넬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센티넬족은 차우에게 화살들을 날렸다. 어부들은 이후 멀리서, 센티넬족이 숨진 차우의 시신을 질질 끌고 가 해변에 묻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차우는 숨지기 전날에도 이미 한 차례 센티넬섬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실패했었다. 차우가 접근하자 센티넬족은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은 차우의 방수 성경을 관통해 차우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차우는 돌아갔지만,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후 공개된 일기장에 차우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 이 섬은 마지막까지 사탄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당신을 모릅니다. 심지어 당신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습니다." 차우는 다음날 다시 센티넬족에게 다가가려 시도하다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차우가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의 가족들은 "차우는 하나님과 생명,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저 센티넬족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차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인도 당국은, 불법적인 차우의 센티넬섬 접근을 도운 혐의로 어부들을 체포했다.

인도 정부는, 차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북센티넬섬에 접근하려고 며칠 동안 시도했지만, 현재는 포기한 상태다. 헬리콥터가 접근하려 할 때마다 센티넬족이 엄청난 양의 화살을 쏘며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접근할 수도 그들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그들에게 물리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데다 그들이 목숨을 건 저항을 할 가능성이 높고, 외부에서는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의 누구도 그들의 언어를 모른다. 센티넬족이란 이름도 외부인들이 편의상 붙인 것일 뿐,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구상 마지막 고립의 섬 '북센티넬'

인도 본토에서 동쪽으로 1300km, 미얀마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인도양의 북센티넬섬은, 인도령 안다만 제도에 속한 미국 뉴욕 맨해튼 크기, 즉 서울의 약 10분의 1 크기의 섬이다.

북센티넬섬에 사는 센티넬족은 약 5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인도양 일대로 이주한 조상들의 직계 후손이라고 인류학자들은 분석한다. 북센티넬섬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그들은 아직도 수렵채취의 원시적 생계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농업도 하지 않고 불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과거 그들의 화살촉에서 철의 흔적이 보였지만 철기시대에 진입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흥미로운 것은, 수천년 동안 고립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센티넬섬이 본 섬인 안다만에서 수십 km밖에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공항에 인도해군기지까지 있는, 10만명이 거주하는 안다만의 현대적 도시 포트블레어에서 50km 거리다.

이미 18세기부터 인도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영국은 북센티넬섬에도 접근을 시도했다. 1867년에는 인도 배, 1887년엔 영국 배가 차례로 접근했지만, 센티넬족이 화살을 쏘며 격렬히 저항해 들어가지 못했다. 안다만 제도의 다른 섬들이 차례로 제국주의의 손에 넘어가는 가운데도 이들은 독자적 삶을 유지했다.

1970년 인도 정부는 마지막 고립의 섬인 북센티넬에 인류학자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또 1974년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팀이 그 곳을 취재하려고 접근했으나, 날아오는 화살들 중 하나가 감독의 허벅지에 꽂히는 등 물리적 저항으로 결국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에 걸친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1991년 인도의 인류학자팀이 마침내 그들과의 접촉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를 주도했던 안다만제도 부족 연구가 TK 판디트는 인도 NDTV와의 인터뷰에서 "1991년 마침내 그들에게 코코넛 선물을 건네는데 성공했습니다. 보트는 여전히 해변의 얕은 물에 머문 채로 보트 곁에서 그들에게 코코넛을 건넸는데 내가 보트에서 조금 떨어지자 부족의 젊은 남자가 바로 칼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계를 설정하고 끝까지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8세기 후반 8천명 센티넬족 ... 현재는 40명?

하지만 연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단지 제한적인 접촉만으로도 그들이 멸족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단절돼 면역이 없던 그들에게 외부의 균이 전파됐고 그들이 죽어갔다. 델리대학 사회인류학 교수 PC 조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세계에서 전해지는 물건들은 물론 외부인이 그들과 악수만 해도 수십만개의 박테리아가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전혀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사소한 감기 균 같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죽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도 정부는 결국 1997년 6년만에 공식 조사 중단을 선언했다.

여전히 그들이 고립생활을 이어가던 2006년 어부 2명이 낚싯배에서 잠들어 배가 북센티넬섬 해변으로 어쩌다 흘러들러갔는데 그들 역시 화살에 숨졌다. 인도 정부는 그 사건 이후 이 섬에 대한 여행을 완전 금지하고, 섬 반경 4.83km(3마일)에 대한 접근을 금지했다. 그 뒤 인도 정부는 센티넬족에 대해 "지켜보되 건드리지 않는다(eyes-on and hands-off)"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센티넬족은 지난 2004년 인도양을 휩쓴 죽음의 쓰나미에도 멸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인구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의 인도 인구통계조사에서 센티넬족 인구는 40명으로 보고됐으나, 인류학자들은 50명에서 최대 400명 사이 어딘가일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18세기 후반 센티넬족의 인구는 8천명 정도였다. 5만년을 그 곳에서 살아온 센티넬족 인구가, 근대 제국주의 침탈이 시작된 뒤 200년도 안돼 1%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원시부족 연구가들은 역사의 모든 결과가 말해주듯, 문명의 접근이 센티넬족을 결국은 서서히 멸족시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원주민 권리 보호 국제단체 'Survival International'의 스테판 코리 국장은 "안다만 제도에 대한 대영제국의 점령은 부족들을 몰살시켰고 아주 일부만 살아남았다, 센티넬족의 외부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밝혔다. 과거 인도 정부의 센티넬족 연구를 주도했던 인류학자 판디트는 "안다만 4개 부족에 대한 연구에서, 외부세계와 많이 접촉할수록 그들이 인구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는 허가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그들과 접촉하지 않게 막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안다만 원주민 연구가 안비타 애비는 "단지 호기심으로 수만년을 자기들끼리 살아온 부족을 훼손하려는 겁니까? 사람들, 언어, 문화, 그들의 평화까지 너무 많은 걸 잃게 될 겁니다"라며 외부 세계의 무심한 접근을 질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과거 영국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연구를 하겠다며 안다만제도의 원주민에게 접근해 그들을 치명적 위혐에 빠뜨린 것은 "결코 인류애가 아니라 동물학적 '종' 연구 시도"였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인류가 <아바타>에 진심으로 열광했다면...

차우의 죽음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차우의 죽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도 그들은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국적자의 해외에서의 죽음에 민감한 미국임에도 보도의 빈도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으며 애써 분석을 삼갔다. 죽음은 애도해야 했으나, 그의 죽음이 여러 근본 문제들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세운 나라 미국이라도, 종교의 상대성과 문화의 상대성 즉,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과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주류가 아직도 공식적으로 원죄를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미대륙 원주민에 대한 침략과 학살의 역사도 상기시킨다. 제국주의 침략의 첫 발은 많은 경우 안타깝게도 선교를 계기로 삼았었다.

그리고, 첨단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복제까지 계획하고, 생명의 연장을 넘어 유전자 조작에 의한 종의 진화까지 꿈꾸는 인류가, 사실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게 많다는 인식에도 이르게 한다. 농업도 불도 재해에 대한 현대적 방비도 없이, 지구 온난화 재앙의 시대를 견디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우리는 사실 아는 게 없다.

인류 역사상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준 통찰은, 단지 지구의 고갈이나 인류의 침략성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다. 최첨단 기술로도 해부할 수 없는, 한계의 동물 인류에게는 '불가지(不可知)한' 다른 능력이 존재할 수 있고, 인류는 단지 그걸 모를 뿐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통찰에도 이르게 한다. 첨단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돕기만 한 게 아니라 인류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을 지도 모른다. 현세의 인류는 단지 그걸 모를 뿐이다.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인류가 우주의 존재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의 <아바타>에 열광했다면, 하물며 지구 안에서야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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