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반(反)유대주의’, 전 세계에 드리워진 암울한 그림자

입력 2018.11.30 (14:54) 수정 2018.11.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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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했던 주말, 미국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에 난입한 로버트 바우어스가 총기를 난사해 11명을 살해한 지 5주가 지났다. '우익 극단주의'를 부추겼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놓고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 사건의 여파가 중간선거 이후 잠잠해지던 중에 '유럽 주요국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CNN의 특집 보도가 충격을 던졌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 차별, 증오 등을 의미하는 '반유대주의'는 구약성서에도 기술된 오랜 현상이지만 19세기 들어 'anti-Semitism'이라는 말이 생겼다. 'Semite'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셈족의 자손, 유대인을 뜻한다. 외신들은 CNN의 보도를 조명하며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가 자행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나 '반유대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주목할 점은, 이런 현상이 '반이민' 성향으로 대표되는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세계 정치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유대인, 과도한 영향력 행사" ... 뿌리 깊은 '반(反) 유대주의'

CNN이 최근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헝가리,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 7개국 7,000여 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분의 1 이상(28%)이 "유대인들은 세계 경제·금융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답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 정치와 미디어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한 응답자도 20%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의 44%가 "자국에서 반유대주의가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고, 홀로코스트 가해국인 독일에서는 같은 답을 한 응답자 비율이 55%로 훨씬 더 높았다. 놀라운 점은 전체 응답자의 40%가 "유대인들이 자국에서 인종차별적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답한 부분이다. 그만큼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에 대한 견제심리나 적개심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많은 유럽인이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나 조금 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4%에 달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데버러 립스탯은 "CNN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유대주의가 유럽에서 얼마나 뿌리 깊게 지속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선생님 향해 "이봐! 유대인!" ... 세계로 퍼지는 '증오심'

독일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유대인 요라이 페인버그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손님들의 인신공격과 물리적 위협에 시달린다. 가스 실험실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밝혔다.

독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대인 교사들의 심적 부담도 엄청나다. 베를린 내 고등학교 교사인 레이첼 씨는 "몇 년 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한 학생에게 말하면서부터 삶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봐! 유대인!"이라고 놀리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사로 일하는 미첼 슈워츠 씨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독일 내 유대인 교사들은 베를린에서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열어 '반유대주의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 운동가 마리나 체르니브스키 씨는 "독일 학생들 사이에 '이스라엘은 위협적인 존재, 팔레스타인 사람은 억압받는 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고 말했다.

독일 반유대주의 시위자들이 '히틀러' 경례를 하고 있다 (CNN 캡처)독일 반유대주의 시위자들이 '히틀러' 경례를 하고 있다 (CNN 캡처)

CNN은 독일에서 '신나치주의자'들을 포함한 극우주의자 수백 명이 반유대주의 시위를 벌이는 현장을 보여주며 "이것이 2018년 독일의 광경"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독일은 법적으로 '반유대주의' 발언조차 금지하고 있지만, CNN 카메라 앞에서 버젓이 '히틀러(나치) 경례'를 하는 시위자들도 포착됐다.

독일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지난 4월에는 한 유대인 청년이 같은 또래의 행인에게 허리띠로 묻지 마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1,453건이나 발생했다.

문제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다른 나라에서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도 올해 반유대주의 행위가 지난해보다 69%나 증가했다. 피츠버그 총격 사건이 발생한 미국에서도 누군가 유대교 무덤의 비석을 쓰러뜨리고 달아난 사건이 잇따랐으며, 대학가에는 나치즘을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 '반(反)이민자' 정서 확산과 메르켈의 은퇴 선언

외신들은 반유대주의에 기반을 둔 사건이 날 때마다 유럽 내 무슬림(muslim: 이슬람교 신도) 인구가 증가해온 것을 이유로 들었다. 유대인과 무슬림 간 중동 내 갈등이 유럽으로 옮겨왔다는 논리다. 독일의 유대인 교사들도 "독일 내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에 화가 난 무슬림 이민자들의 위협 사이에 자신들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을 들어보면 다른 시각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반유대주의와 최근 새로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 성향의 반유대주의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입된 결과로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달 말 독일에서는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건이 벌어졌다. 13년째 독일 총리를 맡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계 은퇴 선언이다. 최근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이었지만, 2013년 선거 때보다 8.6% 포인트 하락한 집권당 득표율이 그만큼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으로 넘어간 결과를 놓고 외신들은 "전 세계 자유주의 진영을 이끌어온 메르켈의 몰락은 세계 정치 지형의 변화 기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난민의 어머니'로 불려 온 메르켈 총리가 난민 포용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은퇴 선언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 내 국수주의 목소리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고, CNN은 "메르켈리즘(Merkelism)이 지고 반이민·자국 중심주의가 강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이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테러에 대한 공포와 일자리 잠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반난민·반이민자 정서가 확산해왔다. 또, 이와 맞물려 독일뿐 아니라 그리스와 헝가리,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전역에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눈에 띄게 부상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4월 유대인 폭행 사건 직후 "반유대주의에 맞서 기꺼이 싸우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을 땐 방명록에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증, 증오와 폭력에 맞서는 데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썼다. 이런 메르켈의 퇴장은 반유대주의와 같은 이민자 배척 움직임을 더욱 강화할 거라는 우려를 증폭시킨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과거 잘못 되풀이할까 두려워"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확산하는 데 대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길로 갈 것 같아 두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리다 와인먼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극단주의 세력들이 증오심을 키우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만프레드 골드버그 씨는 "소셜 미디어가 증오심을 퍼뜨리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수십 년 전 나치가 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증오심을 퍼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한 시대상까지 염두에 둔 '산 증인'들의 외침이다.


피츠버그 총격범의 SNS 글피츠버그 총격범의 SNS 글

실제로 피츠버그 총격범인 로버트 바우어스는 소셜미디어인 '갭(Gap)'을 통해 유대인과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 왔다. 뉴욕타임스는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주의자는 인종차별·혐오 발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피해 '갭'으로 몰려갔다. 로버트가 평소 생각을 펼친 '갭'이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의 근거지로 재조명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신을 터키 출신 무슬림 이민자라고 소개한 투란 카야오글루 워싱턴대 교수는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에 기고문을 통해 "피츠버그 총기 난사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미국 내 유대계의 친 이민단체인 HIAS(Hebrew Immigrant Aid Society·히브리인 이민 지원 협회)가 이슬람 난민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는 범행 전 트위터에 "HIAS는 우리 국민을 살해하는 침략자들을 데려오는 걸 좋아한다"는 글을 썼다. 카야오글루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피츠버그 총격 사건이) 전에 없이 미국 내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다. 이슬람교도들이 반유대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 폭행 영상

하지만 '분노'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이상,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교훈을 충실히 받들기란 앞으로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서 자국 중심주의의 확산을 마냥 안타깝게 볼 수만도 없다. 다만, 이민자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그들을 증오하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흐르는 것만큼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시리아 난민 출신 10대 소년이 또래 학우로부터 맞아 넘어진 뒤 얼굴에 물세례를 받는 영상이 어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을 통해 공개됐다. 당연한 일인 듯 아무런 반항 없이 자리를 뜨는 난민 출신 소년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 증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적 메시지를 온몸으로 던져주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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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30 14:54:06
    • 수정2018-11-30 14: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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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했던 주말, 미국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에 난입한 로버트 바우어스가 총기를 난사해 11명을 살해한 지 5주가 지났다. '우익 극단주의'를 부추겼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놓고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 사건의 여파가 중간선거 이후 잠잠해지던 중에 '유럽 주요국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CNN의 특집 보도가 충격을 던졌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 차별, 증오 등을 의미하는 '반유대주의'는 구약성서에도 기술된 오랜 현상이지만 19세기 들어 'anti-Semitism'이라는 말이 생겼다. 'Semite'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셈족의 자손, 유대인을 뜻한다. 외신들은 CNN의 보도를 조명하며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가 자행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나 '반유대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주목할 점은, 이런 현상이 '반이민' 성향으로 대표되는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세계 정치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유대인, 과도한 영향력 행사" ... 뿌리 깊은 '반(反) 유대주의'

CNN이 최근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헝가리,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 7개국 7,000여 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분의 1 이상(28%)이 "유대인들은 세계 경제·금융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답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 정치와 미디어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한 응답자도 20%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의 44%가 "자국에서 반유대주의가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고, 홀로코스트 가해국인 독일에서는 같은 답을 한 응답자 비율이 55%로 훨씬 더 높았다. 놀라운 점은 전체 응답자의 40%가 "유대인들이 자국에서 인종차별적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답한 부분이다. 그만큼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에 대한 견제심리나 적개심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많은 유럽인이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나 조금 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4%에 달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데버러 립스탯은 "CNN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유대주의가 유럽에서 얼마나 뿌리 깊게 지속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선생님 향해 "이봐! 유대인!" ... 세계로 퍼지는 '증오심'

독일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유대인 요라이 페인버그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손님들의 인신공격과 물리적 위협에 시달린다. 가스 실험실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밝혔다.

독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대인 교사들의 심적 부담도 엄청나다. 베를린 내 고등학교 교사인 레이첼 씨는 "몇 년 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한 학생에게 말하면서부터 삶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봐! 유대인!"이라고 놀리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사로 일하는 미첼 슈워츠 씨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독일 내 유대인 교사들은 베를린에서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열어 '반유대주의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 운동가 마리나 체르니브스키 씨는 "독일 학생들 사이에 '이스라엘은 위협적인 존재, 팔레스타인 사람은 억압받는 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고 말했다.

독일 반유대주의 시위자들이 '히틀러' 경례를 하고 있다 (CNN 캡처)
CNN은 독일에서 '신나치주의자'들을 포함한 극우주의자 수백 명이 반유대주의 시위를 벌이는 현장을 보여주며 "이것이 2018년 독일의 광경"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독일은 법적으로 '반유대주의' 발언조차 금지하고 있지만, CNN 카메라 앞에서 버젓이 '히틀러(나치) 경례'를 하는 시위자들도 포착됐다.

독일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지난 4월에는 한 유대인 청년이 같은 또래의 행인에게 허리띠로 묻지 마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1,453건이나 발생했다.

문제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다른 나라에서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도 올해 반유대주의 행위가 지난해보다 69%나 증가했다. 피츠버그 총격 사건이 발생한 미국에서도 누군가 유대교 무덤의 비석을 쓰러뜨리고 달아난 사건이 잇따랐으며, 대학가에는 나치즘을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 '반(反)이민자' 정서 확산과 메르켈의 은퇴 선언

외신들은 반유대주의에 기반을 둔 사건이 날 때마다 유럽 내 무슬림(muslim: 이슬람교 신도) 인구가 증가해온 것을 이유로 들었다. 유대인과 무슬림 간 중동 내 갈등이 유럽으로 옮겨왔다는 논리다. 독일의 유대인 교사들도 "독일 내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에 화가 난 무슬림 이민자들의 위협 사이에 자신들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을 들어보면 다른 시각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반유대주의와 최근 새로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 성향의 반유대주의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입된 결과로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달 말 독일에서는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건이 벌어졌다. 13년째 독일 총리를 맡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계 은퇴 선언이다. 최근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이었지만, 2013년 선거 때보다 8.6% 포인트 하락한 집권당 득표율이 그만큼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으로 넘어간 결과를 놓고 외신들은 "전 세계 자유주의 진영을 이끌어온 메르켈의 몰락은 세계 정치 지형의 변화 기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난민의 어머니'로 불려 온 메르켈 총리가 난민 포용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은퇴 선언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 내 국수주의 목소리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고, CNN은 "메르켈리즘(Merkelism)이 지고 반이민·자국 중심주의가 강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이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테러에 대한 공포와 일자리 잠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반난민·반이민자 정서가 확산해왔다. 또, 이와 맞물려 독일뿐 아니라 그리스와 헝가리,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전역에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눈에 띄게 부상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4월 유대인 폭행 사건 직후 "반유대주의에 맞서 기꺼이 싸우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을 땐 방명록에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증, 증오와 폭력에 맞서는 데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썼다. 이런 메르켈의 퇴장은 반유대주의와 같은 이민자 배척 움직임을 더욱 강화할 거라는 우려를 증폭시킨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과거 잘못 되풀이할까 두려워"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확산하는 데 대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길로 갈 것 같아 두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리다 와인먼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극단주의 세력들이 증오심을 키우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만프레드 골드버그 씨는 "소셜 미디어가 증오심을 퍼뜨리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수십 년 전 나치가 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증오심을 퍼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한 시대상까지 염두에 둔 '산 증인'들의 외침이다.


피츠버그 총격범의 SNS 글
실제로 피츠버그 총격범인 로버트 바우어스는 소셜미디어인 '갭(Gap)'을 통해 유대인과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 왔다. 뉴욕타임스는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주의자는 인종차별·혐오 발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피해 '갭'으로 몰려갔다. 로버트가 평소 생각을 펼친 '갭'이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의 근거지로 재조명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신을 터키 출신 무슬림 이민자라고 소개한 투란 카야오글루 워싱턴대 교수는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에 기고문을 통해 "피츠버그 총기 난사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미국 내 유대계의 친 이민단체인 HIAS(Hebrew Immigrant Aid Society·히브리인 이민 지원 협회)가 이슬람 난민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는 범행 전 트위터에 "HIAS는 우리 국민을 살해하는 침략자들을 데려오는 걸 좋아한다"는 글을 썼다. 카야오글루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피츠버그 총격 사건이) 전에 없이 미국 내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다. 이슬람교도들이 반유대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 폭행 영상

하지만 '분노'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이상,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교훈을 충실히 받들기란 앞으로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서 자국 중심주의의 확산을 마냥 안타깝게 볼 수만도 없다. 다만, 이민자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그들을 증오하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흐르는 것만큼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시리아 난민 출신 10대 소년이 또래 학우로부터 맞아 넘어진 뒤 얼굴에 물세례를 받는 영상이 어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을 통해 공개됐다. 당연한 일인 듯 아무런 반항 없이 자리를 뜨는 난민 출신 소년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 증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적 메시지를 온몸으로 던져주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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