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사흘에 한번 철도사고”에 사람 자른 코레일…번지 수 잘못 찾아

입력 2018.11.30 (17:34) 수정 2018.11.30 (18:1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30일)부터 18일간 남북철도 북한 현지 공동조사가 시작됩니다. 통일부와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실무를 담당합니다. 우리 열차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것은 2008년 도라산역과 판문역을 오가던 화물열차의 운행이 중단된 이후 10년 만입니다. 코레일 입장에서는 자랑하고 싶은 경사일 텐데,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못 뿌리고 있습니다. 최근 잇따른 열차고장과 사고로 비판이 이어지자 대놓고 자랑할 수 없는 속내가 읽힙니다.

'안전성'과 '정시성' 철도의 생명인데…승객 수만 명 피해


지난 19일, 서울역으로 진입하던 KTX와 굴착기가 충돌하며 작업자 3명이 다쳤습니다. 잔인한 11월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오송역 KTX 단전 사고로 열차 129대의 운행이 차질을 빚었고 승객 5만여 명이 피해를 봤습니다. 사고 열차에 갇힌 일부 승객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창문을 깼고, 선로로 대피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속열차로 하루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울-부산을 8시간 걸려서 갔다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2일에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지하철 분당선에서 1시간 동안 열차가 멈추면서 퇴근길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열차는 '안전성'과 '정시성'이 생명인데,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져버린 겁니다.


비판 여론이 크게 일자, 코레일은 오영식 사장 주재로 23일 '전국 소속장 긴급 안전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열흘 간을 비상 안전경영 기간으로 선포하고 간부급 전원의 휴일 반납, 특별 점검과 안전교육 등을 진행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이 선포는 바로 다음날 무색해졌습니다. 24일 광명역과 오송역에서 각각 열차 고장으로 또다시 운행이 수십 분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새 6차례나 열차 사고와 고장이 반복됐습니다.

국무총리국토부 장관코레일 사장총괄 책임자그 다음은 ?

이낙연 총리는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 총리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27일 이 총리는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조금 더 불편한 말씀을 드리겠다"며 운을 뗐습니다. 이 총리는 KTX 사고와 KT통신망 화재를 같이 언급하며 "기술의 외형은 발전시켰으나 운영의 내면은 갖추지 못한 우리의 실상을 노출한 것"이라면서 "고장이 났는데도 그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가 놀랍게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도 확실히 이행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총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장관에게 꽂혔습니다.

김현미 장관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김 장관은 어제(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부 산하 기관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을 비롯해 13개 기관장이 모였습니다. 일종의 '군기'를 잡는 자리였는데, 가장 먼저 코레일을 질책했습니다. 김 장관은 "일주일 동안 여섯 차례나 고장과 사고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사고 이후 조치가 매우 미흡했다"면서 "사고 예방과 사고 이후 신속한 복구와 안내로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레일의 안전관리 체계와 차량 정비시스템, 고객 대응체계 등에 대해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다른 기관장들도 모인 자리에서 오 사장은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의 감사 청구를 당한 셈입니다.

반복적 철도사고에 책임자 해임이 끝?


그러면 코레일 사장은 어떻게 했을까요? 코레일은 오늘(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 불편에 대한 책임을 물어 차량분야 총괄책임자 및 주요 소속장 4명을 보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안전관리와 사고예방 중심의 업무혁신을 추진할 적임자를 발탁하는 등 조직과 인적 쇄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실무 책임자, 실무 직원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직의 수장들이 질책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다그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기강해이가 문제였을까요? 다른 원인이 분명히 있어보입니다. KBS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열차와 선로 등 철도 시설물을 정비해야 할 현장정비 인력과 예산을 줄인 곳은 바로 국토부와 코레일이기 때문입니다.

열차 시설물 해마다 늘지만…정비 인력·예산은 줄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소속 이헌승 의원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KBS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코레일의 선로시설물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로시설물은 열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기찻길'로 2015년 8,465km에서 2016년 9,000km, 2017년 9,364km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경강선 고속철도 개통, 기존 단선의 복선화 등으로 선로시설물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터널과 교량과 같은 토목구조물도 2015년 9,333개소에서 지난해 9,714개소로 381개소 늘었고, 역사와 같은 건축물도 2015년 4,974동에서 지난해 5,089동으로 115동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정비가 필요한 선로시설물과 토목구조물 등 각종 철도 관련 시설물은 늘어났지만, 이를 정비해야 할 관련 인력과 예산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차량유지보수분야 정비인력 현황은 2015년 정원 대비 현원이 38명 부족했는데 이듬해 190명 부족으로 늘었고, 2017년에는 정원 대비 현원이 205명 부족했습니다. 정비인력 관련 예산(시설 분야)도 감소추세를 보였습니다. 2015년 4,337억 원에서 2016년 4,333억 원으로 2017년 4,243억으로 2년사이 94억 원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열차 고장 건수는 2015년 99건에서 2016년 106건, 지난해 118건으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코레일은 "퇴직을 앞둔 인원은 현원에서 제외했고, 관련 예산은 증액을 요청했지만 국토부와 국회 예결위에서 삭감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열차 사고=대형피해' 가능성…안전 그리고 또 안전

지난해 코레일은 5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인력과 예산 절감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열차 사고는 한번 나면 대형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정비분야 투자를 감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민규 동양대 철도경영학과 교수는 "새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따지다 보면 안전과 관련한 부분을 간과하기 쉽다"면서 "국토부는 물론이고 코레일도 수익이 발생하는 부분들을 안전 예산으로 일정 비율 확보해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레일은 '규모의 경제'를 주장하며 SR(수서고속철도 운영사)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열차 운영 주체를 단일화하면 요금이 더 저렴해지고, 좌석도 훨씬 늘어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흘에 한번 꼴"로 열차 고장을 일으키는 어설픈 운영으로 어떻게 철도를 독점하겠다고 나서는 건지 의문입니다. 방만하고 느슨한 경영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코레일은 체질을 확 바꾸는 노력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차의 즐거움도, 편리함도 이 모든 것의 바탕은 안전입니다. 국토부와 코레일 모두 뼈저리게 반성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K] “사흘에 한번 철도사고”에 사람 자른 코레일…번지 수 잘못 찾아
    • 입력 2018-11-30 17:34:07
    • 수정2018-11-30 18:18:31
    취재K
오늘(30일)부터 18일간 남북철도 북한 현지 공동조사가 시작됩니다. 통일부와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실무를 담당합니다. 우리 열차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것은 2008년 도라산역과 판문역을 오가던 화물열차의 운행이 중단된 이후 10년 만입니다. 코레일 입장에서는 자랑하고 싶은 경사일 텐데,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못 뿌리고 있습니다. 최근 잇따른 열차고장과 사고로 비판이 이어지자 대놓고 자랑할 수 없는 속내가 읽힙니다.

'안전성'과 '정시성' 철도의 생명인데…승객 수만 명 피해


지난 19일, 서울역으로 진입하던 KTX와 굴착기가 충돌하며 작업자 3명이 다쳤습니다. 잔인한 11월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오송역 KTX 단전 사고로 열차 129대의 운행이 차질을 빚었고 승객 5만여 명이 피해를 봤습니다. 사고 열차에 갇힌 일부 승객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창문을 깼고, 선로로 대피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속열차로 하루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울-부산을 8시간 걸려서 갔다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2일에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지하철 분당선에서 1시간 동안 열차가 멈추면서 퇴근길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열차는 '안전성'과 '정시성'이 생명인데,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져버린 겁니다.


비판 여론이 크게 일자, 코레일은 오영식 사장 주재로 23일 '전국 소속장 긴급 안전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열흘 간을 비상 안전경영 기간으로 선포하고 간부급 전원의 휴일 반납, 특별 점검과 안전교육 등을 진행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이 선포는 바로 다음날 무색해졌습니다. 24일 광명역과 오송역에서 각각 열차 고장으로 또다시 운행이 수십 분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새 6차례나 열차 사고와 고장이 반복됐습니다.

국무총리국토부 장관코레일 사장총괄 책임자그 다음은 ?

이낙연 총리는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 총리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27일 이 총리는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조금 더 불편한 말씀을 드리겠다"며 운을 뗐습니다. 이 총리는 KTX 사고와 KT통신망 화재를 같이 언급하며 "기술의 외형은 발전시켰으나 운영의 내면은 갖추지 못한 우리의 실상을 노출한 것"이라면서 "고장이 났는데도 그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가 놀랍게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도 확실히 이행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총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장관에게 꽂혔습니다.

김현미 장관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김 장관은 어제(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부 산하 기관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을 비롯해 13개 기관장이 모였습니다. 일종의 '군기'를 잡는 자리였는데, 가장 먼저 코레일을 질책했습니다. 김 장관은 "일주일 동안 여섯 차례나 고장과 사고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사고 이후 조치가 매우 미흡했다"면서 "사고 예방과 사고 이후 신속한 복구와 안내로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레일의 안전관리 체계와 차량 정비시스템, 고객 대응체계 등에 대해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다른 기관장들도 모인 자리에서 오 사장은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의 감사 청구를 당한 셈입니다.

반복적 철도사고에 책임자 해임이 끝?


그러면 코레일 사장은 어떻게 했을까요? 코레일은 오늘(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 불편에 대한 책임을 물어 차량분야 총괄책임자 및 주요 소속장 4명을 보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안전관리와 사고예방 중심의 업무혁신을 추진할 적임자를 발탁하는 등 조직과 인적 쇄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실무 책임자, 실무 직원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직의 수장들이 질책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다그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기강해이가 문제였을까요? 다른 원인이 분명히 있어보입니다. KBS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열차와 선로 등 철도 시설물을 정비해야 할 현장정비 인력과 예산을 줄인 곳은 바로 국토부와 코레일이기 때문입니다.

열차 시설물 해마다 늘지만…정비 인력·예산은 줄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소속 이헌승 의원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KBS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코레일의 선로시설물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로시설물은 열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기찻길'로 2015년 8,465km에서 2016년 9,000km, 2017년 9,364km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경강선 고속철도 개통, 기존 단선의 복선화 등으로 선로시설물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터널과 교량과 같은 토목구조물도 2015년 9,333개소에서 지난해 9,714개소로 381개소 늘었고, 역사와 같은 건축물도 2015년 4,974동에서 지난해 5,089동으로 115동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정비가 필요한 선로시설물과 토목구조물 등 각종 철도 관련 시설물은 늘어났지만, 이를 정비해야 할 관련 인력과 예산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차량유지보수분야 정비인력 현황은 2015년 정원 대비 현원이 38명 부족했는데 이듬해 190명 부족으로 늘었고, 2017년에는 정원 대비 현원이 205명 부족했습니다. 정비인력 관련 예산(시설 분야)도 감소추세를 보였습니다. 2015년 4,337억 원에서 2016년 4,333억 원으로 2017년 4,243억으로 2년사이 94억 원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열차 고장 건수는 2015년 99건에서 2016년 106건, 지난해 118건으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코레일은 "퇴직을 앞둔 인원은 현원에서 제외했고, 관련 예산은 증액을 요청했지만 국토부와 국회 예결위에서 삭감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열차 사고=대형피해' 가능성…안전 그리고 또 안전

지난해 코레일은 5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인력과 예산 절감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열차 사고는 한번 나면 대형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정비분야 투자를 감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민규 동양대 철도경영학과 교수는 "새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따지다 보면 안전과 관련한 부분을 간과하기 쉽다"면서 "국토부는 물론이고 코레일도 수익이 발생하는 부분들을 안전 예산으로 일정 비율 확보해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레일은 '규모의 경제'를 주장하며 SR(수서고속철도 운영사)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열차 운영 주체를 단일화하면 요금이 더 저렴해지고, 좌석도 훨씬 늘어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흘에 한번 꼴"로 열차 고장을 일으키는 어설픈 운영으로 어떻게 철도를 독점하겠다고 나서는 건지 의문입니다. 방만하고 느슨한 경영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코레일은 체질을 확 바꾸는 노력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차의 즐거움도, 편리함도 이 모든 것의 바탕은 안전입니다. 국토부와 코레일 모두 뼈저리게 반성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