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트럼프에 ‘NO’ 외친 ‘메리 배라’…GM에 재앙일까?

입력 2018.1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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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 '빅픽처'에 찬물 끼얹는 GM 회장 '메리 배라'
GM, 미국 러스트밸트 내 자동차 공장 폐쇄 방침 발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경제와 외교 등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트럼프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땅에 있는 미국 공장에서 미국 노동자들에 의해 'Made in U.S.A' 제품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비를 창출하고 이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재정을 확충해 다시 인프라 구축과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미국 상품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무역장벽을 높여 중국과 일본, 독일, 한국 등 주요 수출국 상품의 시장 진입을 막고 다자간 무역협정이 아닌 양자 간 호혜관세를 통해 미국 상품의 수출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비전으로 쇠락한 산업단지, 이른바 '러스트밸트'로 불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지역 백인노동자들의 몰표를 받아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2년 후인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지역을 민주당에 빼앗긴다면 승리는 물 건너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빅픽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열의를 갖고 추진 중인 철강과 자동차 산업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반기를 들면서 트럼프의 전략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GM, 북미 5곳·해외 2곳 가동 중단(북미 1만4,800명 감원)
약 7조 원 절감...자율주행차·전기차 투자 강화

GM은 현지시간 26일 북미 사업장에서 인력 감축과 공장 폐쇄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전격 발표했다. GM은 앞으로 북미 5곳과 해외 2곳 등 공장 7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북미에서 최대 1만4,800명의 인력을 줄일 예정이다. 이번 발표로 폐쇄되는 공장은 전 세계 5개 대륙 70개 공장 가운데 10%에 달하고 감원되는 직원도 전체 18만 명의 8% 수준이다. 이를 통해 내년 말까지 60억 달러, 약 6조 7800억 원을 절감하고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전략이다. 특히 이번 구조조정 지역에는 트럼프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러스트벨트’에 있는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공장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이 포함됐다.


트럼프 "배라에게 매우 실망..보조금 삭감 고려" 엄포
래리 커드로 "GM에 배신감, 실망감 분노로 번질 수 있다" 위협

GM의 구조조정 발표에 백악관은 화들짝 놀랐다. 래리 커드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이날 바로 메리 배라 GM 회장을 만나 "트럼프 행정부는 많은 도움을 준 GM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실망감이 분노로 번질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오하이오·미시간·메릴랜드 공장 가동 중단 결정을 내린 배라 GM 최고경영자에게 매우 실망했다"며 "전기차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GM 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 2006년 미 연방 차원에서 GM에 구제금융을 투입한 사실을 들어 "미국은 GM을 구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받는 '감사 인사"라고 비난을 이어갔다. 29일에는 "GM은 다른 자동차 회사와 다른 기업들이 하는 것과 매우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BMW를 포함해 자동차 공장들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GM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GM의 구조조정 발표는 트럼프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전격 결정한 당사자인 메리 배라 GM CEO(최고경영자)가 계획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재선에 정치 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의 협박과 엄포에 꿈쩍하지 않는 메리 배라는 누구일까?


자동차 업계 첫 여성 CEO '메리 배라'는 누구?
흑수저 출신, 18세 인턴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에 올라

메리 배라(Mary Teresa Barra)는 18살 때 인턴사원으로 GM에 입사해 39년째 근무해 온 말 그대로 뼛속까지 GM 사람이다. 올해 57살인 배라는 미시간에 있던 GM 폰티악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거푸집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39년간 근무한 아버지를 보고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도 지금은 케터링 대학교로 바뀐 GM 부설 자동차대학인 '제너럴 모터스 인스티튜트'을 다녔고 전기 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8세에 산학 프로그램인 'co-op student'(인턴사원격) 자격으로 GM에 입사해 줄곳 생산라인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번에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이 그가 일했던 곳이다.

평범한 공장 노동자였던 그가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이다. GM은 그녀가 MBA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거액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배라는 잭 스미스 전 GM CEO의 비서로 발탁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경영 전반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고 이후 2009년에 글로벌 인재관리(HR) 부문을 맡으면서 구조조정을 이끌어 개발비용을 줄이는 등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리고 2011년 글로벌 제품개발 부사장으로 발탁된 배라는 임원 수를 대폭 줄이고 자동차 플랫폼 종류를 단순화시키는 등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4년 1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동차 업계 최초의 여성 CEO 자리에 올랐다.


2014년 최악의 리콜 사태 극복 후 능력 인정받아

메리 배라는 그러나 GM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GM 차량에서 안전장치 결함이 발견되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은 것이다. 2014년 2월 점화장치와 에어백 결함으로 쉐보레 코발트 등 260만 대를 리콜한 데 이어 전조등 결함, 앞좌석 안전밸트 분리, 기어와 변속기 접합 문제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불과 5개월 사이에 무려 20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한 것은 자동차 업계에서 최악의 역사로 기록됐다.

이 같은 대규모 리콜로 29억 달러, 약 3조 4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GM의 무책임한 관료 문화가 리콜 사태를 불렀다는 비난까지 쏟아지면서 GM의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메리 배라가 주목받은 것은 이때부터이다. 배라는 강하고 빠르게, 정면승부를 택했다. 먼저 내부적으로 사태의 정확한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를 조사한 것으로 유명한 안톤 발루카스 변호사를 고용했다. 발루카스 변호사는 GM의 내외부 관계자 230명을 인터뷰하고 수백만 페이지의 자료를 검토해 충실한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이후 배라는 "조사 보고서를 통해 GM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과 이를 방치하는 패턴이 현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바로 늑장 리콜의 책임을 물어 부회장과 이사 등을 포함해 15명의 관련자를 해고했다.

그리고 GM의 문제점을 언론에 정확하게 알렸고 동시에 점화장치 결함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프로그램을 발표하고 보상에도 적극 나섰다. 보상 처리를 위해 9·11 테러 피해자와 영국 석유회사 BP의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 피해 보상 업무를 맡았던 케네스 파인버그 변호사를 고용해 적극적인 피해 보상을 추진했다. 고질적인 사내 정치 투쟁도 승리로 이끌었다. 정적들을 견제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불러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게 했다. 이런 정치적인 결단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기준에 따라 GM의 원칙에 반한 책임 있는 인사들을 정리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이뤄냈다.

40조 원대 영업이익..사상 최대 실적..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

그리고 과거와는 달라진 성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GM은 파산보호에서 졸업한 지 7년 만인 2016년 2분기,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이다. GM은 2년(2016~2017년) 연속으로 연간 약 40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쉐보레와 뷰익, GMC, 캐딜락 등 4개 브랜드를 통해 지난해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17.6%)를 고수했다. 최근에는 트럭과 크로스오버 차량, 스포츠유틸리티차량 등에서 고효율 자동차 개발에 나섰고 차세대 전기차에도 투자해왔다.

40조 원의 좋은 실적을 내고도 메리 배라는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든 것이다. 배라는 "이번 조치는 고도로 민첩하고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미래에 대한 투자 유연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산업은 급변하고 있다"며 "GM과 미국 경제가 강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나서야 장기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기술·전기자동차 등에 과감한 투자
자율 주행 기술 스타트업 '크루즈' 10억 달러에 인수
차량 공유 업체 '리프트(Lyft)' 5억 달러에 인수

GM은 이미 2016년 자율 주행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크루즈'를 10억 달러, 1조 1400억 원에 인수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 스타트업은 GM 자율주행차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데 2019년에 첫 자율주행 차량 시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인 라이다(Lidar) 개발 스타트업인 스트로브도 인수했다. GM은 구글의 웨이모(Waymo)를 뒤쫓으면서 자율주행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미주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Uber)의 경쟁사 리프트(Lyft) 5억 달러에 인수해 디트로이트와 실리콘밸리가 동시에 들썩였다. 차량이 공유 대상이 됐을 때도 살아남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이런 GM의 앞선 기술 개발에 다른 자율주행차 업체들의 투자도 잇따랐다. 지난달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는 메리 배라의 동의 아래 '크루즈'에 27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거대 기술 펀드인 소프트뱅크(Softbank)도 2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GM과 혼다는 또한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수소 연료 전지(Hydrogen fuel cells)를 개발하고 제조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북미·유럽·인도·남아공·호주 등에서 사업 철수, 공장 폐쇄 논란

그러나 이번 메리 배라의 정책은 많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당장 이번 구조조정으로 북미 지역 5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미국지역 외 지역에서 두 곳의 공장 가동이 추가로 멈추게 된다. 캐나다 자동차노조가 투쟁을 선언하는 등 각 지역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폐쇄 가능성이 거론된 오하이오 GM 공장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회사 측은 내년 3월 1일자로 크루즈 생산을 중단한다고 전달했고 그럴 경우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GM 수뇌부에 문을 닫는 대신 새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1,500명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것인데 도시 전체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배라는 취임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 왔다. 러시아 생산기지를 잇달아 폐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5년 '쉐보레 스핀' 생산에서 2억 달러의 손실을 본 후 5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했다. 10억 달러가 투자된 인도에서는 2017년 시장 점유율이 1%에 불과하자 투자를 중단하고 내수용 쉐보레 판매도 중단시켰다. 1926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017년 상용차 생산공장과 기타 공장을 Isuzu Motors에 매각한 뒤 철수했다. 호주에서는 1세기 이상 지속해 온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2017년 10월 호주 남부 홀덴(Holden) 공장을 폐쇄했다. 유럽에서는 GM의 핵심 브랜드였던 오펠·복스홀 사업을 2017년 22억 달러, 2조 7천억 원에 프랑스 PSA(푸조/시트로앵)에 매각했다. 이로써 GM은 88년 만에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배라는 최근 한국GM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근속 12년이 넘는 사무직 직원과 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4년간 3조 원의 누적 적자를 내고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GM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 5월 군산 공장이 폐쇄됐고 2,700여 명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CNN "GM, 자동차 제조업체 아닌 첨단 기술 기업으로 전환 중"
블룸버그 "GM 미래성장동력은 자율주행 전기차"
CNBC "배라는 전통 깨고 검증되지 않은 길 가고 있다"

미국 내 현지언론들은 이런 메리 배라를 우려가 섞였지만 호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배라는 구조조정을 발표한 26일 기자들과 컨퍼런스콜을 진행했다. 언론과 소통하며 자신의 계획을 명확하게 알린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메리 배라의 GM은 미래 성장 동력을 신흥 시장을 위한 자동차나 트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 전기차 판매를 통해 찾으려고 하고 있다" 분석했다. CNN은 "GM의 경쟁사는 이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닌 구글이나 애플, 우버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됐다"며 "자동차 산업의 대변혁기에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CNBC는 "GM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의 전통적인 슬로건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을 둔 'Bigger is Better'(클수록 좋다)였다면 메리 베라는 '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이라는 명언을 채택하며 전통을 깨고 검증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며 "배라는 내일의 운송 산업을 장악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믿고 있는 자율주행 차량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여전히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에 용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에 'NO'를 외치며 혁신과 구조조정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GM의 냉혈녀 '메리 배라'에 대해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 그리고 미국 정치계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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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 '빅픽처'에 찬물 끼얹는 GM 회장 '메리 배라'
GM, 미국 러스트밸트 내 자동차 공장 폐쇄 방침 발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경제와 외교 등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트럼프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땅에 있는 미국 공장에서 미국 노동자들에 의해 'Made in U.S.A' 제품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비를 창출하고 이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재정을 확충해 다시 인프라 구축과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미국 상품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무역장벽을 높여 중국과 일본, 독일, 한국 등 주요 수출국 상품의 시장 진입을 막고 다자간 무역협정이 아닌 양자 간 호혜관세를 통해 미국 상품의 수출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비전으로 쇠락한 산업단지, 이른바 '러스트밸트'로 불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지역 백인노동자들의 몰표를 받아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2년 후인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지역을 민주당에 빼앗긴다면 승리는 물 건너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빅픽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열의를 갖고 추진 중인 철강과 자동차 산업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반기를 들면서 트럼프의 전략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GM, 북미 5곳·해외 2곳 가동 중단(북미 1만4,800명 감원)
약 7조 원 절감...자율주행차·전기차 투자 강화

GM은 현지시간 26일 북미 사업장에서 인력 감축과 공장 폐쇄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전격 발표했다. GM은 앞으로 북미 5곳과 해외 2곳 등 공장 7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북미에서 최대 1만4,800명의 인력을 줄일 예정이다. 이번 발표로 폐쇄되는 공장은 전 세계 5개 대륙 70개 공장 가운데 10%에 달하고 감원되는 직원도 전체 18만 명의 8% 수준이다. 이를 통해 내년 말까지 60억 달러, 약 6조 7800억 원을 절감하고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전략이다. 특히 이번 구조조정 지역에는 트럼프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러스트벨트’에 있는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공장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이 포함됐다.


트럼프 "배라에게 매우 실망..보조금 삭감 고려" 엄포
래리 커드로 "GM에 배신감, 실망감 분노로 번질 수 있다" 위협

GM의 구조조정 발표에 백악관은 화들짝 놀랐다. 래리 커드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이날 바로 메리 배라 GM 회장을 만나 "트럼프 행정부는 많은 도움을 준 GM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실망감이 분노로 번질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오하이오·미시간·메릴랜드 공장 가동 중단 결정을 내린 배라 GM 최고경영자에게 매우 실망했다"며 "전기차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GM 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 2006년 미 연방 차원에서 GM에 구제금융을 투입한 사실을 들어 "미국은 GM을 구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받는 '감사 인사"라고 비난을 이어갔다. 29일에는 "GM은 다른 자동차 회사와 다른 기업들이 하는 것과 매우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BMW를 포함해 자동차 공장들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GM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GM의 구조조정 발표는 트럼프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전격 결정한 당사자인 메리 배라 GM CEO(최고경영자)가 계획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재선에 정치 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의 협박과 엄포에 꿈쩍하지 않는 메리 배라는 누구일까?


자동차 업계 첫 여성 CEO '메리 배라'는 누구?
흑수저 출신, 18세 인턴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에 올라

메리 배라(Mary Teresa Barra)는 18살 때 인턴사원으로 GM에 입사해 39년째 근무해 온 말 그대로 뼛속까지 GM 사람이다. 올해 57살인 배라는 미시간에 있던 GM 폰티악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거푸집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39년간 근무한 아버지를 보고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도 지금은 케터링 대학교로 바뀐 GM 부설 자동차대학인 '제너럴 모터스 인스티튜트'을 다녔고 전기 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8세에 산학 프로그램인 'co-op student'(인턴사원격) 자격으로 GM에 입사해 줄곳 생산라인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번에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이 그가 일했던 곳이다.

평범한 공장 노동자였던 그가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이다. GM은 그녀가 MBA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거액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배라는 잭 스미스 전 GM CEO의 비서로 발탁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경영 전반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고 이후 2009년에 글로벌 인재관리(HR) 부문을 맡으면서 구조조정을 이끌어 개발비용을 줄이는 등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리고 2011년 글로벌 제품개발 부사장으로 발탁된 배라는 임원 수를 대폭 줄이고 자동차 플랫폼 종류를 단순화시키는 등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4년 1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동차 업계 최초의 여성 CEO 자리에 올랐다.


2014년 최악의 리콜 사태 극복 후 능력 인정받아

메리 배라는 그러나 GM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GM 차량에서 안전장치 결함이 발견되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은 것이다. 2014년 2월 점화장치와 에어백 결함으로 쉐보레 코발트 등 260만 대를 리콜한 데 이어 전조등 결함, 앞좌석 안전밸트 분리, 기어와 변속기 접합 문제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불과 5개월 사이에 무려 20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한 것은 자동차 업계에서 최악의 역사로 기록됐다.

이 같은 대규모 리콜로 29억 달러, 약 3조 4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GM의 무책임한 관료 문화가 리콜 사태를 불렀다는 비난까지 쏟아지면서 GM의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메리 배라가 주목받은 것은 이때부터이다. 배라는 강하고 빠르게, 정면승부를 택했다. 먼저 내부적으로 사태의 정확한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를 조사한 것으로 유명한 안톤 발루카스 변호사를 고용했다. 발루카스 변호사는 GM의 내외부 관계자 230명을 인터뷰하고 수백만 페이지의 자료를 검토해 충실한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이후 배라는 "조사 보고서를 통해 GM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과 이를 방치하는 패턴이 현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바로 늑장 리콜의 책임을 물어 부회장과 이사 등을 포함해 15명의 관련자를 해고했다.

그리고 GM의 문제점을 언론에 정확하게 알렸고 동시에 점화장치 결함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프로그램을 발표하고 보상에도 적극 나섰다. 보상 처리를 위해 9·11 테러 피해자와 영국 석유회사 BP의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 피해 보상 업무를 맡았던 케네스 파인버그 변호사를 고용해 적극적인 피해 보상을 추진했다. 고질적인 사내 정치 투쟁도 승리로 이끌었다. 정적들을 견제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불러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게 했다. 이런 정치적인 결단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기준에 따라 GM의 원칙에 반한 책임 있는 인사들을 정리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이뤄냈다.

40조 원대 영업이익..사상 최대 실적..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

그리고 과거와는 달라진 성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GM은 파산보호에서 졸업한 지 7년 만인 2016년 2분기,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이다. GM은 2년(2016~2017년) 연속으로 연간 약 40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쉐보레와 뷰익, GMC, 캐딜락 등 4개 브랜드를 통해 지난해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17.6%)를 고수했다. 최근에는 트럭과 크로스오버 차량, 스포츠유틸리티차량 등에서 고효율 자동차 개발에 나섰고 차세대 전기차에도 투자해왔다.

40조 원의 좋은 실적을 내고도 메리 배라는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든 것이다. 배라는 "이번 조치는 고도로 민첩하고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미래에 대한 투자 유연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산업은 급변하고 있다"며 "GM과 미국 경제가 강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나서야 장기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기술·전기자동차 등에 과감한 투자
자율 주행 기술 스타트업 '크루즈' 10억 달러에 인수
차량 공유 업체 '리프트(Lyft)' 5억 달러에 인수

GM은 이미 2016년 자율 주행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크루즈'를 10억 달러, 1조 1400억 원에 인수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 스타트업은 GM 자율주행차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데 2019년에 첫 자율주행 차량 시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인 라이다(Lidar) 개발 스타트업인 스트로브도 인수했다. GM은 구글의 웨이모(Waymo)를 뒤쫓으면서 자율주행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미주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Uber)의 경쟁사 리프트(Lyft) 5억 달러에 인수해 디트로이트와 실리콘밸리가 동시에 들썩였다. 차량이 공유 대상이 됐을 때도 살아남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이런 GM의 앞선 기술 개발에 다른 자율주행차 업체들의 투자도 잇따랐다. 지난달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는 메리 배라의 동의 아래 '크루즈'에 27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거대 기술 펀드인 소프트뱅크(Softbank)도 2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GM과 혼다는 또한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수소 연료 전지(Hydrogen fuel cells)를 개발하고 제조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북미·유럽·인도·남아공·호주 등에서 사업 철수, 공장 폐쇄 논란

그러나 이번 메리 배라의 정책은 많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당장 이번 구조조정으로 북미 지역 5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미국지역 외 지역에서 두 곳의 공장 가동이 추가로 멈추게 된다. 캐나다 자동차노조가 투쟁을 선언하는 등 각 지역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폐쇄 가능성이 거론된 오하이오 GM 공장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회사 측은 내년 3월 1일자로 크루즈 생산을 중단한다고 전달했고 그럴 경우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GM 수뇌부에 문을 닫는 대신 새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1,500명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것인데 도시 전체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배라는 취임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 왔다. 러시아 생산기지를 잇달아 폐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5년 '쉐보레 스핀' 생산에서 2억 달러의 손실을 본 후 5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했다. 10억 달러가 투자된 인도에서는 2017년 시장 점유율이 1%에 불과하자 투자를 중단하고 내수용 쉐보레 판매도 중단시켰다. 1926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017년 상용차 생산공장과 기타 공장을 Isuzu Motors에 매각한 뒤 철수했다. 호주에서는 1세기 이상 지속해 온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2017년 10월 호주 남부 홀덴(Holden) 공장을 폐쇄했다. 유럽에서는 GM의 핵심 브랜드였던 오펠·복스홀 사업을 2017년 22억 달러, 2조 7천억 원에 프랑스 PSA(푸조/시트로앵)에 매각했다. 이로써 GM은 88년 만에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배라는 최근 한국GM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근속 12년이 넘는 사무직 직원과 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4년간 3조 원의 누적 적자를 내고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GM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 5월 군산 공장이 폐쇄됐고 2,700여 명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CNN "GM, 자동차 제조업체 아닌 첨단 기술 기업으로 전환 중"
블룸버그 "GM 미래성장동력은 자율주행 전기차"
CNBC "배라는 전통 깨고 검증되지 않은 길 가고 있다"

미국 내 현지언론들은 이런 메리 배라를 우려가 섞였지만 호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배라는 구조조정을 발표한 26일 기자들과 컨퍼런스콜을 진행했다. 언론과 소통하며 자신의 계획을 명확하게 알린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메리 배라의 GM은 미래 성장 동력을 신흥 시장을 위한 자동차나 트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 전기차 판매를 통해 찾으려고 하고 있다" 분석했다. CNN은 "GM의 경쟁사는 이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닌 구글이나 애플, 우버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됐다"며 "자동차 산업의 대변혁기에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CNBC는 "GM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의 전통적인 슬로건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을 둔 'Bigger is Better'(클수록 좋다)였다면 메리 베라는 '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이라는 명언을 채택하며 전통을 깨고 검증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며 "배라는 내일의 운송 산업을 장악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믿고 있는 자율주행 차량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여전히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에 용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에 'NO'를 외치며 혁신과 구조조정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GM의 냉혈녀 '메리 배라'에 대해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 그리고 미국 정치계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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