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노란 조끼’ 대체 누구?…가짜 뉴스도 ‘한 몫’

입력 2018.12.04 (10:21) 수정 2018.12.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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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주변에 최루탄·물 폭탄…"전쟁터 된 파리"

벌써 3주째, 프랑스에선 '노란 조끼'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이어진 시위로 파리시는 물론 프랑스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시위 현장 주변에 있던 80대 할머니가 최루탄 탄통을 얼굴에 맞아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집회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폭력적인 시위로 번질 줄은 프랑스 정부는 물론, 집단행동을 처음 시작했던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폭등한 기름값에 '이젠 행동에 나서자'며 청원 운동이 불붙은 건 SNS에서였습니다. 경윳값 인상에 타격을 입은 트럭 운전사들이 앞장섰고 구급차 기사들, 택시 운전사들이 가세하면서 지엽적인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던 지난달 17일만 해도 폭력 수위가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습니다. 1차 집회에 30만 명 가까이 참여했고 부상자가 4백 명 넘게 발생했지만, 애초 집회 구호였던 '통행 봉쇄'에 집단행동이 집중됐고, 그래서 갈등도 도로를 점거한 시위 참가자들과 갈 길이 막힌 운전자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물론 공권력과의 대치도 벌어졌지만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충돌 장면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분노의 '노란 조끼'…격렬 시위 불 당긴 배경은?

집회 성격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주차인 지난달 24일부터입니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불만이 상대적으로 고조된 곳은 파리 등 대도시보다 지방 도시들이었습니다. 대중교통 체계가 갖춰진 대도시에 비해 자가용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선 일반 운전자들이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노란 조끼 시위로 인한 충격파 역시 지방에서 더욱 심화했습니다. 주요 통행로와 로터리를 막아선 시위대들로 물류가 봉쇄되고 지역의 대형 창고들을 오가는 길목도 차단됐습니다.

2차 집회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는 '파리로 집결하자'는 구호를 내걸었고, 실제로 상경한 시위 참여자들도 많았지만, '파리로 갈 기름값이 없다'며 지방 시위대들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2차 집회 규모가 10만 6천여 명으로 줄어든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걸로 보입니다.

규모는 줄었지만 2차 집회부터 일부 시위대의 마구잡이식 폭력과 방화가 시작됐고,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격화했습니다. 당일 오전 9시쯤만 해도, 에펠탑 부근에서 모인 집회 행렬이 차분하게 개선문을 지나 대통령궁인 엘리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막아선 경찰과 다소 승강이를 벌이는 수준이었는데, 한 시간 반 뒤인 10시 반부터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시위대 일부가 연막탄을 쏘기 시작했고 공사장 자재와 인근 상점 물품을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치는가 하면, 자전거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보도블록을 들어내 투석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도 최루탄과 물대포로 응수하면서 샹젤리제 대로에서는 시가전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차 집회 직후, 프랑스 정부는 극우 세력이 개입해 폭력 사태로 격화됐다며 집단행동을 독려한 마린 르펜 등 극우 정치인들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폭력 앞장선 '노란 조끼' 시위대, 대체 누구?

지난 주말의 3차 집회에선 시위대 규모가 7만 5천여 명으로 더욱 줄었습니다. 반면 극단적인 폭력 사태는 훨씬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파리의 상징, 개선문 일대에 시위가 집중되면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개선문 자체도 곳곳이 훼손됐습니다. 난장판이 된 무명용사의 묘를 비롯해 개선문 외벽에 '마크롱 퇴진' 낙서가 뒤덮였습니다. 내부에 진입한 일부 시위대는 문화재급 조각들을 내던졌고, 이 와중에 프랑스 대혁명 정신의 상징인 '마리안' 상도 얼굴 반쪽이 날아갔습니다. 개선문 피해만 수백만 유로에 이르고, 파리 시내 곳곳 차량 방화에 상점 습격으로 인한 피해도 백만 유로를 넘어선 걸로 집계됩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반달리즘' 즉, 마구잡이식 문화재 파괴 행위가 파리를 점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파리 경시청 등은 극우뿐 아니라 극좌 세력까지 시위에 가세했고, 이들이 폭력을 주도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참가자 중 천 명에서 천오백 명이 '노란 조끼' 시위와는 상관없이 경찰과 대치하고 약탈하기 위해 시위에 나선 걸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일부를 제외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이지만 이 때문에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프랑스 정부입니다. 2차 집회 이후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노란 조끼' 시위 대표단과 대화에 나섰지만, 과연 대표성을 지닌 주체가 있는지를 놓고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물음표가 제기됩니다.

애초 시위 자체가 자발적으로 시작됐고 유류세 인상 반대가 도화선이 됐지만, 여기에 연금이 축소된 은퇴자, 부유세 폐지와 구매력 축소에 불만이 축적된 이들이 대거 거리로 나서면서 '주최 측'이 특정되지 않아 프랑스 정부는 협상 상대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노란 조끼' 시위대 자체적으로 지역별 대변인들을 선정하긴 했지만, 정부와의 면담에 참가 의향을 밝힌 이들에 대해 협박 메시지가 쏟아지면서 대변인들이 위축되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에 목소리를 내는 대변인들 중엔 266개 세금 항목을 없애고, 최저 임금을 1,500유로로 정해달라거나 현 총리 대신 특정 장군을 그 자리에 앉혀달라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시위대의 대표적 요구사항 역시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마크롱 집권은 무효"…시위 격화에 가짜 뉴스도 '한 몫'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가짜 뉴스도 시위 격화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마뉴엘 발스 당시 총리가 주도한 법령에 따라 현 헌법은 개정돼야 하고, 마크롱 대통령 집권 역시 무효라는 주장이 유투브 등 SNS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는 겁니다. 문제의 법령은 법원의 재정 활동을 보장하는 감사 기관 설립에 관한 것으로 헌법 개정과는 관련이 없는데도 왜곡된 내용의 영상이 52만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선 군인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선동적 동영상도 백만 명이 본 걸로 집계됐습니다. 실제로 노란 조끼 시위대 중 일부는 헌법이 없는 상태고,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돼서는 안됐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노란 조끼 시위대와 현지 시각으로 오늘 면담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단 협상 거부 목소리가 높은 데다, 노란 조끼 대변인들도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난항이 예상됩니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시위는 예고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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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노란 조끼’ 대체 누구?…가짜 뉴스도 ‘한 몫’
    • 입력 2018-12-04 10:21:46
    • 수정2018-12-04 10:22:34
    특파원 리포트
개선문 주변에 최루탄·물 폭탄…"전쟁터 된 파리"

벌써 3주째, 프랑스에선 '노란 조끼'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이어진 시위로 파리시는 물론 프랑스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시위 현장 주변에 있던 80대 할머니가 최루탄 탄통을 얼굴에 맞아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집회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폭력적인 시위로 번질 줄은 프랑스 정부는 물론, 집단행동을 처음 시작했던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폭등한 기름값에 '이젠 행동에 나서자'며 청원 운동이 불붙은 건 SNS에서였습니다. 경윳값 인상에 타격을 입은 트럭 운전사들이 앞장섰고 구급차 기사들, 택시 운전사들이 가세하면서 지엽적인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던 지난달 17일만 해도 폭력 수위가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습니다. 1차 집회에 30만 명 가까이 참여했고 부상자가 4백 명 넘게 발생했지만, 애초 집회 구호였던 '통행 봉쇄'에 집단행동이 집중됐고, 그래서 갈등도 도로를 점거한 시위 참가자들과 갈 길이 막힌 운전자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물론 공권력과의 대치도 벌어졌지만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충돌 장면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분노의 '노란 조끼'…격렬 시위 불 당긴 배경은?

집회 성격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2주차인 지난달 24일부터입니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불만이 상대적으로 고조된 곳은 파리 등 대도시보다 지방 도시들이었습니다. 대중교통 체계가 갖춰진 대도시에 비해 자가용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선 일반 운전자들이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노란 조끼 시위로 인한 충격파 역시 지방에서 더욱 심화했습니다. 주요 통행로와 로터리를 막아선 시위대들로 물류가 봉쇄되고 지역의 대형 창고들을 오가는 길목도 차단됐습니다.

2차 집회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는 '파리로 집결하자'는 구호를 내걸었고, 실제로 상경한 시위 참여자들도 많았지만, '파리로 갈 기름값이 없다'며 지방 시위대들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2차 집회 규모가 10만 6천여 명으로 줄어든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걸로 보입니다.

규모는 줄었지만 2차 집회부터 일부 시위대의 마구잡이식 폭력과 방화가 시작됐고,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격화했습니다. 당일 오전 9시쯤만 해도, 에펠탑 부근에서 모인 집회 행렬이 차분하게 개선문을 지나 대통령궁인 엘리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막아선 경찰과 다소 승강이를 벌이는 수준이었는데, 한 시간 반 뒤인 10시 반부터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시위대 일부가 연막탄을 쏘기 시작했고 공사장 자재와 인근 상점 물품을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치는가 하면, 자전거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보도블록을 들어내 투석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도 최루탄과 물대포로 응수하면서 샹젤리제 대로에서는 시가전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차 집회 직후, 프랑스 정부는 극우 세력이 개입해 폭력 사태로 격화됐다며 집단행동을 독려한 마린 르펜 등 극우 정치인들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폭력 앞장선 '노란 조끼' 시위대, 대체 누구?

지난 주말의 3차 집회에선 시위대 규모가 7만 5천여 명으로 더욱 줄었습니다. 반면 극단적인 폭력 사태는 훨씬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파리의 상징, 개선문 일대에 시위가 집중되면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개선문 자체도 곳곳이 훼손됐습니다. 난장판이 된 무명용사의 묘를 비롯해 개선문 외벽에 '마크롱 퇴진' 낙서가 뒤덮였습니다. 내부에 진입한 일부 시위대는 문화재급 조각들을 내던졌고, 이 와중에 프랑스 대혁명 정신의 상징인 '마리안' 상도 얼굴 반쪽이 날아갔습니다. 개선문 피해만 수백만 유로에 이르고, 파리 시내 곳곳 차량 방화에 상점 습격으로 인한 피해도 백만 유로를 넘어선 걸로 집계됩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반달리즘' 즉, 마구잡이식 문화재 파괴 행위가 파리를 점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파리 경시청 등은 극우뿐 아니라 극좌 세력까지 시위에 가세했고, 이들이 폭력을 주도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참가자 중 천 명에서 천오백 명이 '노란 조끼' 시위와는 상관없이 경찰과 대치하고 약탈하기 위해 시위에 나선 걸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일부를 제외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이지만 이 때문에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프랑스 정부입니다. 2차 집회 이후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노란 조끼' 시위 대표단과 대화에 나섰지만, 과연 대표성을 지닌 주체가 있는지를 놓고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물음표가 제기됩니다.

애초 시위 자체가 자발적으로 시작됐고 유류세 인상 반대가 도화선이 됐지만, 여기에 연금이 축소된 은퇴자, 부유세 폐지와 구매력 축소에 불만이 축적된 이들이 대거 거리로 나서면서 '주최 측'이 특정되지 않아 프랑스 정부는 협상 상대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노란 조끼' 시위대 자체적으로 지역별 대변인들을 선정하긴 했지만, 정부와의 면담에 참가 의향을 밝힌 이들에 대해 협박 메시지가 쏟아지면서 대변인들이 위축되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에 목소리를 내는 대변인들 중엔 266개 세금 항목을 없애고, 최저 임금을 1,500유로로 정해달라거나 현 총리 대신 특정 장군을 그 자리에 앉혀달라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시위대의 대표적 요구사항 역시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마크롱 집권은 무효"…시위 격화에 가짜 뉴스도 '한 몫'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가짜 뉴스도 시위 격화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마뉴엘 발스 당시 총리가 주도한 법령에 따라 현 헌법은 개정돼야 하고, 마크롱 대통령 집권 역시 무효라는 주장이 유투브 등 SNS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는 겁니다. 문제의 법령은 법원의 재정 활동을 보장하는 감사 기관 설립에 관한 것으로 헌법 개정과는 관련이 없는데도 왜곡된 내용의 영상이 52만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선 군인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선동적 동영상도 백만 명이 본 걸로 집계됐습니다. 실제로 노란 조끼 시위대 중 일부는 헌법이 없는 상태고,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돼서는 안됐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노란 조끼 시위대와 현지 시각으로 오늘 면담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단 협상 거부 목소리가 높은 데다, 노란 조끼 대변인들도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난항이 예상됩니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시위는 예고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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