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총여학생회의 퇴장…그 속에서 우리가 본 것들 ②

입력 2018.12.05 (09:21) 수정 2018.12.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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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3일) 'KBS 뉴스9'에서는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폐지되고 있는 최근 대학가의 흐름과 그 원인을 짚어봤습니다. ( [바로 가기] 줄줄이 문 닫는 대학 총여학생회…‘존폐 기로’ 이유는?)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총여' 폐지를 목격한 학생들과, 넓게는 대학 내 학생사회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는데요. 짧은 방송 보도로 다 전달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어제(4일)에 이어 '취재후 2편'으로 이어갑니다.

▲[연관기사] [취재후] 총여학생회의 퇴장…그 속에서 우리가 본 것들 ①

[총여 폐지의 이면③] 익명 공간과 다수결주의의 위력

여러 대학의 총여 폐지 논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 시간표 서비스와 학교별 게시판 등을 제공하는 대학생활 앱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입니다. 현재 대학생 인증을 받은 가입자 수가 280만 명이 넘습니다. 특히 에타의 익명게시판은, 많은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학교별 커뮤니티를 압도하며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KBS 기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이 익명게시판에서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의 성평등, 젠더 이슈가 논의되는 양상에 주목했습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의 대표 노서영 씨는 "미투 운동이 활발할 때 '꽃뱀이 문제다', '무고죄가 더 무겁다'는 말이 에타 익명게시판에서 유독 많이 나왔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미투 운동,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글을 올리면 여러 건의 신고를 당해 게시글이 차단되기 일쑤라, 토론을 진행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노 씨는 설명했습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A씨도 "학교 행사로 캠퍼스에 페미니즘 부스를 열었는데, 학교 어디어디서 저를 봤다며 욕하는 글이 익명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면서 "그런 글이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의 추천을 받고 '인기 글'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걸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에타의 익명 공간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성균관대)의 한 게시글.‘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성균관대)의 한 게시글.

고준우 대학연구네트워크 대표는 "학회 세미나 등으로 페미니즘을 접하고 재사회화를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대학이었는데, 이제 대학이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퇴색하게 되면서 학교 내의 토론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도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훨씬 친숙하게 됐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에서 부풀려진 정보, 혹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화되다 보니, 대학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더 심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에타' 익명게시판의 이같은 분위기는 총여의 존폐를 논하는 상황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총여 폐지 총투표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실명으로 선언문을 낸 적이 있었는데, 에타 익명게시판에서 개인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계속됐어요. '쟤 나랑 잤던 앤데, 페미였네'라는 식으로…. 정말 힘들어 했던 분들이 많았어요. 총여 폐지가 결정된 이후에는 소수자 인권 동아리들이 축제 때 부스를 설치했는데요. 그 게시판에 '총여 잔존세력'이 경영관 앞에 있다는 글이 올라왔었어요. 진압봉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이겨야 한다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이런 실태를 고발하려고 에타에 올라온 일부 익명 글을 캡처해 학내 게시판에 붙였는데, 그마저도 모두 찢기고 무단 철거됐습니다. 자보를 붙이고 있는 학생의 뒤통수를 찍어 익명게시판에 올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노서영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대표)

사회비평가 최태섭 씨는 "학생 자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반페미니즘 기조가 총여 폐지에 불씨를 제공했다"면서 "이런 흐름이 따지고 보면 개별 학교 단위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중전 차원에서 각 학교로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습니다.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 게시글. 총여 폐지를 축하하고(왼쪽) 총여의 활동을 혐오하는(오른쪽) 내용이 담겼다.‘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 게시글. 총여 폐지를 축하하고(왼쪽) 총여의 활동을 혐오하는(오른쪽) 내용이 담겼다.

총여 폐지가 정당하다는 측의 가장 큰 근거는 '투표'입니다. '민주적인 정식 절차'인 투표로 총여 폐지가 가결됐으니 그 결과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투표 추진 절차에 결함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투표에 이르기 전 선행돼야 할 토론, 논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연세대 29대 총여회장을 지낸 이수빈 씨는 "총여를 폐지하는 여러 움직임들은 대부분 학생 총투표라는 다수주의에 기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열린 토론의 기회는 확보되지 않았다"면서 "총여가 한 번의 투표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 현실이 역설적으로 총여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성어디가'의 노서영 씨도 "우리 학교(성균관대)는 동국대, 연세대와 달리 일반 학우가 아닌 대의원 60명만의 서명만으로 총투표가 발의됐다"며 "그 60명의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아 부당한 측면이 있다."라고 짚었습니다. 특히 투표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 '총여 폐지 찬성' 측이 아무도 나오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총여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자가 1명도 없는데, 왜 총여가 폐지돼야 하나라는 물음을 저희는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앞에 나온 사람들은 다 총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익명게시판에 '총여는 필요 없다'라는 의견들이 많다고 해서 60명의 대의원이 자신이 서명한 사실을 밝히지도 않은 채 총투표가 발의되고 바로 시행된 거죠."

연세대 안에 걸린 ‘총여학생회 폐지위원회’의 온라인 서명 안내문연세대 안에 걸린 ‘총여학생회 폐지위원회’의 온라인 서명 안내문

투표 절차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모 대학 성평등위원회 활동가 A씨는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결로 모든 걸 결정하는 그런 정치체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걸 표결에 부쳐야 하고, 학내 구성원모두가 참여하는 투표에서 51% 찬성이면 하는 거고, 49% 찬성이라면 안하는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수결 원칙만을 앞세우면서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실종돼 버렸다는 비판입니다.

광운대에 재학중인 한 남학생도 캠퍼스를 찾은 KBS 기자에게 "우리 학교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여는 여전히 유의미한 제도라고 본다"면서 "보장돼야 할 권리보다 그저 비용적인 문제만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씁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가며] 총여의 퇴장은 새로운 시작?

최근 대학가의 총여 폐지 기사가 쏟아지자,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총여는 나름 학내에서 입지가 있던 예전에도, 선배가 찍어 일주일 이상 꼬시고 설득해서 겨우 출마를 결심하게 할 만큼 힘든 자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설득작업 없이도, 나가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나는 이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중략) … 페미니즘이 언제 주류인 적 있었나. 학내에서 이 정도로 공격 받는데도 (동국대에서는) 22%나 지지를 얻었다. 이제야말로 다시 시작하기에 최적인 환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총여학생회를 없앤 논리를 보면 이제 더이상 유니온샵 형식의 학생회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든 듯하다. 보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생대표체제에 대한 고민,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386체제를 진짜 넘으려면. 그러니, 총여는 없어진 게 아니라, 다시 세워지는 중이다.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지 아닐지 그 부분만 불확실할 뿐."

1988년 성균관대 4대 총여회장이었던 이주환 씨도 KBS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총여가 폐지된 건, 만들었던 선배 입장에서는 분명 가슴이 쓰린 일"이라면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학 내 여학생 비율도 높아졌고 달라진 조건도 있으니 오히려 새로운 창구를 만들 수도 있다. 계속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반영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균관대 4대 총여회장을 지낸 이주환 씨.성균관대 4대 총여회장을 지낸 이주환 씨.

총여의 필요성을 외쳤지만 결국엔 총여의 폐지를 목도한 학생들. 그들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대학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A씨는 "무엇보다 많이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주류가 아닌 생각이 일상의 영역에 조금씩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며 "처음에는 1명만 이야기하던 것이 곧 2명이 되고, 3명이 되고하는 식으로 확산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성어디가'의 노서영 씨는, 이번 주말 A씨가 말한 '보여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도를 넘은 상황들이 문제적이라는 걸 인지한 개인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동국대, 연세대와 함께 12월 8~9일에 집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세 학교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총여 폐지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그 흐름을 같이 분석하고 각자가 경험한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작용)를 폭로하려 합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여러 대학이 연대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총여는 이제 정말 수많은 언론이 보도했던 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변화한 시대에 맞게 다시 세워지고 있는 걸까요. 이 물음에 답하는 작업은, 아직 진행형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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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총여학생회의 퇴장…그 속에서 우리가 본 것들 ②
    • 입력 2018-12-05 09:21:22
    • 수정2018-12-05 13: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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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3일) 'KBS 뉴스9'에서는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폐지되고 있는 최근 대학가의 흐름과 그 원인을 짚어봤습니다. ( [바로 가기] 줄줄이 문 닫는 대학 총여학생회…‘존폐 기로’ 이유는?)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총여' 폐지를 목격한 학생들과, 넓게는 대학 내 학생사회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는데요. 짧은 방송 보도로 다 전달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어제(4일)에 이어 '취재후 2편'으로 이어갑니다.

▲[연관기사] [취재후] 총여학생회의 퇴장…그 속에서 우리가 본 것들 ①

[총여 폐지의 이면③] 익명 공간과 다수결주의의 위력

여러 대학의 총여 폐지 논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 시간표 서비스와 학교별 게시판 등을 제공하는 대학생활 앱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입니다. 현재 대학생 인증을 받은 가입자 수가 280만 명이 넘습니다. 특히 에타의 익명게시판은, 많은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학교별 커뮤니티를 압도하며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KBS 기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이 익명게시판에서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의 성평등, 젠더 이슈가 논의되는 양상에 주목했습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의 대표 노서영 씨는 "미투 운동이 활발할 때 '꽃뱀이 문제다', '무고죄가 더 무겁다'는 말이 에타 익명게시판에서 유독 많이 나왔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미투 운동,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글을 올리면 여러 건의 신고를 당해 게시글이 차단되기 일쑤라, 토론을 진행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노 씨는 설명했습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A씨도 "학교 행사로 캠퍼스에 페미니즘 부스를 열었는데, 학교 어디어디서 저를 봤다며 욕하는 글이 익명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면서 "그런 글이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의 추천을 받고 '인기 글'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걸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에타의 익명 공간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성균관대)의 한 게시글.
고준우 대학연구네트워크 대표는 "학회 세미나 등으로 페미니즘을 접하고 재사회화를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대학이었는데, 이제 대학이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퇴색하게 되면서 학교 내의 토론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도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훨씬 친숙하게 됐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에서 부풀려진 정보, 혹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화되다 보니, 대학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더 심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에타' 익명게시판의 이같은 분위기는 총여의 존폐를 논하는 상황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총여 폐지 총투표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실명으로 선언문을 낸 적이 있었는데, 에타 익명게시판에서 개인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계속됐어요. '쟤 나랑 잤던 앤데, 페미였네'라는 식으로…. 정말 힘들어 했던 분들이 많았어요. 총여 폐지가 결정된 이후에는 소수자 인권 동아리들이 축제 때 부스를 설치했는데요. 그 게시판에 '총여 잔존세력'이 경영관 앞에 있다는 글이 올라왔었어요. 진압봉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이겨야 한다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이런 실태를 고발하려고 에타에 올라온 일부 익명 글을 캡처해 학내 게시판에 붙였는데, 그마저도 모두 찢기고 무단 철거됐습니다. 자보를 붙이고 있는 학생의 뒤통수를 찍어 익명게시판에 올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노서영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대표)

사회비평가 최태섭 씨는 "학생 자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반페미니즘 기조가 총여 폐지에 불씨를 제공했다"면서 "이런 흐름이 따지고 보면 개별 학교 단위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중전 차원에서 각 학교로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습니다.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 게시글. 총여 폐지를 축하하고(왼쪽) 총여의 활동을 혐오하는(오른쪽) 내용이 담겼다.
총여 폐지가 정당하다는 측의 가장 큰 근거는 '투표'입니다. '민주적인 정식 절차'인 투표로 총여 폐지가 가결됐으니 그 결과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투표 추진 절차에 결함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투표에 이르기 전 선행돼야 할 토론, 논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연세대 29대 총여회장을 지낸 이수빈 씨는 "총여를 폐지하는 여러 움직임들은 대부분 학생 총투표라는 다수주의에 기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열린 토론의 기회는 확보되지 않았다"면서 "총여가 한 번의 투표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 현실이 역설적으로 총여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성어디가'의 노서영 씨도 "우리 학교(성균관대)는 동국대, 연세대와 달리 일반 학우가 아닌 대의원 60명만의 서명만으로 총투표가 발의됐다"며 "그 60명의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아 부당한 측면이 있다."라고 짚었습니다. 특히 투표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 '총여 폐지 찬성' 측이 아무도 나오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총여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자가 1명도 없는데, 왜 총여가 폐지돼야 하나라는 물음을 저희는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앞에 나온 사람들은 다 총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익명게시판에 '총여는 필요 없다'라는 의견들이 많다고 해서 60명의 대의원이 자신이 서명한 사실을 밝히지도 않은 채 총투표가 발의되고 바로 시행된 거죠."

연세대 안에 걸린 ‘총여학생회 폐지위원회’의 온라인 서명 안내문
투표 절차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모 대학 성평등위원회 활동가 A씨는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결로 모든 걸 결정하는 그런 정치체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걸 표결에 부쳐야 하고, 학내 구성원모두가 참여하는 투표에서 51% 찬성이면 하는 거고, 49% 찬성이라면 안하는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수결 원칙만을 앞세우면서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실종돼 버렸다는 비판입니다.

광운대에 재학중인 한 남학생도 캠퍼스를 찾은 KBS 기자에게 "우리 학교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여는 여전히 유의미한 제도라고 본다"면서 "보장돼야 할 권리보다 그저 비용적인 문제만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씁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가며] 총여의 퇴장은 새로운 시작?

최근 대학가의 총여 폐지 기사가 쏟아지자,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총여는 나름 학내에서 입지가 있던 예전에도, 선배가 찍어 일주일 이상 꼬시고 설득해서 겨우 출마를 결심하게 할 만큼 힘든 자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설득작업 없이도, 나가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나는 이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중략) … 페미니즘이 언제 주류인 적 있었나. 학내에서 이 정도로 공격 받는데도 (동국대에서는) 22%나 지지를 얻었다. 이제야말로 다시 시작하기에 최적인 환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총여학생회를 없앤 논리를 보면 이제 더이상 유니온샵 형식의 학생회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든 듯하다. 보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생대표체제에 대한 고민,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386체제를 진짜 넘으려면. 그러니, 총여는 없어진 게 아니라, 다시 세워지는 중이다.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지 아닐지 그 부분만 불확실할 뿐."

1988년 성균관대 4대 총여회장이었던 이주환 씨도 KBS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총여가 폐지된 건, 만들었던 선배 입장에서는 분명 가슴이 쓰린 일"이라면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학 내 여학생 비율도 높아졌고 달라진 조건도 있으니 오히려 새로운 창구를 만들 수도 있다. 계속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반영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균관대 4대 총여회장을 지낸 이주환 씨.
총여의 필요성을 외쳤지만 결국엔 총여의 폐지를 목도한 학생들. 그들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대학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하는 A씨는 "무엇보다 많이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주류가 아닌 생각이 일상의 영역에 조금씩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며 "처음에는 1명만 이야기하던 것이 곧 2명이 되고, 3명이 되고하는 식으로 확산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성어디가'의 노서영 씨는, 이번 주말 A씨가 말한 '보여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도를 넘은 상황들이 문제적이라는 걸 인지한 개인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동국대, 연세대와 함께 12월 8~9일에 집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세 학교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총여 폐지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그 흐름을 같이 분석하고 각자가 경험한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작용)를 폭로하려 합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여러 대학이 연대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총여는 이제 정말 수많은 언론이 보도했던 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변화한 시대에 맞게 다시 세워지고 있는 걸까요. 이 물음에 답하는 작업은, 아직 진행형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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