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냉전’의 산물 INF조약, ‘신(新)냉전’으로 사라지나?

입력 2018.12.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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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말 폭탄을 주고받던 지난해 11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3척이 동해 상에 집결했다. 북핵 위기 이후 최대의 군사 압박이었다. '떠다니는 군사기지'인 항공모함이 다가올 때마다 북한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항공모함은 분위기가 바뀌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육군처럼 장기간 머물 수 없다. 일시적 배치만 가능한 전력이다. 그런데 미군이 북한과 중국을 사정거리에 둘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지상에 항시 배치할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INF 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중거리 핵전력 조약) 탈퇴 선언'이 그것이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등에서 미·중 간 군사적 대치가 심화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전략은 어떤 의도일까?

■ 폼페이오 "60일 내 조약 탈퇴" ... 러시아에 '최후통첩'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입장을 처음 밝혔다.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왔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이틀 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로 날아갔다. 볼턴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뒤 "INF 조약 탈퇴에 대한 미국의 공식 통보가 적절한 때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폼페이오 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

그리고 40여 일만인 지난 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가 INF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준수하지 않는 한, 미국은 60일 안에 조약 준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AFP는 "미국이 러시아에 60일 간의 시간을 줬다"고 해석했지만, 제시한 시일 내에 러시아가 INF에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을 파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인 것이다. 사실상 조약 파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러시아는 INF 조약 조항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미국도 이를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2013년부터 'SSC-8'(나토명, 러시아명: 노바토르 9M729)로 불리는 지상 발사 순항 미사일을 개발해 이듬해인 2014년과 2015년 시험발사했다. 'SSC-8'의 사거리는 500Km에서 최대 5,500Km로, 평균 사거리는 2,500Km로 알려졌다.

■ 'INF 조약'이 뭐길래? ... '냉전 종식' 기여한 '냉전의 산물'

1975년 소련이 'SS-20(사거리 5,000km)' 미사일 개발에 나서면서 당시 나토가 비상에 걸렸다. 소련 서쪽 지역에 배치할 경우 전 유럽이 사정권에 들기 때문에 핵미사일 전력 균형이 깨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유럽의 요청으로 미국이 소련과 협상에 나섰지만 결렬됐다. 그러면서 소련은 우크라이나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 'SS-20'을 배치했고 이에 맞서 나토는 이탈리아와 서독 등지에 미국의 '퍼싱-2'와 '그리폰' 중거리 순항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국의 '퍼싱-2'와 소련의 'SS-20'은 핵무기로 상대방을 선제타격하는 무기체계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하지만 핵 억지력 차원에서 배치한 미사일 전력 증강이 군사적 긴장을 높인다는 우려가 커지자 미국과 소련은 다시 협상에 나섰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1987년 12월 8일,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의 본래 이름은 '미국과 소련 간 중거리와 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두 강대국이 냉전체제를 끝내기 위한 첫 단계 조치로 합의한 핵 군축 협정이다.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단거리(500~1,000Km)와 중거리(1,000~5,500Km)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으로, 1988년 6월 발효됨에 따라 미국은 846기, 소련은 1,846기의 미사일을 1991년 5월까지 폐기했다.

INF 조약은 지상에 배치되는 미사일, 육군 전력에만 적용됐다. INF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공군과 해군 전력에 탑재되는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과 운용은 지속해왔다.

■ 미국 옭아맨 족쇄 푸는 진짜 목적은 '중국' 견제?

러시아의 'SSC-8' 미사일 개발로 미국에서는 INF 조약이 지상의 중·단거리 핵전력에서 미국만 옭아매는 족쇄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미국과 러시아에만 적용되는 약속인데, 두 나라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가 아무런 제약 없이 지상 배치용 중·단거리 미사일 전력을 강화해온 게 사실이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10월 조약 탈퇴 계획을 밝히면서 "INF 조약은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국가들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존 볼턴 보좌관의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캡처화면)존 볼턴 보좌관의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캡처화면)

볼턴 보좌관은 러시아가 'SSC-8' 개발에 나서기 전부터 INF 조약의 무용론을 주장해왔다. 그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었던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미국이 러시아와의 INF 조약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과 북한·이란 등의 미사일 전력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나라가 중·단거리 미사일을 못 갖게 하든지, 미국도 탈퇴하든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조약 위반'이 명분인 미국의 INF 탈퇴 진짜 목적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중국은 INF 조약국이 아니기 때문에 DF-21(둥펑,東風21) 같이 항행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과 태평양 연안의 연합 자산이 바다로 밀려났고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INF 조약에 저촉받기 때문에 중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에 맞설 수 있는 주 전력은 항공모함 등 해군 전력으로 제한된다. 유사시 중국을 제대로 공격하려면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에 의존해야 한다.

위 :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DF-21’ 미사일 / 아래 : 지난 2월 남중국해에 전개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위 :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DF-21’ 미사일 / 아래 : 지난 2월 남중국해에 전개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중국은 항공모함을 주 표적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했고 대표적인 것이 'DF-21'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도 인도·태평양 사령관 재직 당시 미 상원 군사분과에 출석해 "중국이 INF에 가입했다면 중국이 배치해온 미사일의 90%가 조약 위반이다. 중국은 미군의 군함을 위협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지상배치 전력이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태평양 지역 지상에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를 가능하게 해줄 INF 탈퇴 결정은 중국의 뒷마당에서 미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군사차관보도 "중거리 지상 발사 시스템을 이 지역(중국 인근)에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전력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 아시아·태평양 전력 보완용 ...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 분석도

미국이 현재 유일하게 패권을 다투는 나라는 2등 국가인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을 반드시 손보겠다며 '신(新) 냉전'을 여러 차례 선언했다. 중국이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미국의 군사 전력이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집중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중국의 핵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INF 조약에서 탈퇴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선언이 중국보다는 '북한'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마크 티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이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아무런 경고 없이 중·단거리 미사일로 북한을 둘러싸게 할 수 있다'는 틀림없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소련의 'SS-20' 배치에 '퍼싱-2' 배치로 대응해 소련에 엄청난 압력을 가함으로써 돌파구를 만든 사실을 상기시켜라.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에 거대한 새 협상 카드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티센은 또, 'INF 조약 탈퇴' 카드가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향해 비핵화 조치를 강요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적 이익을 갖고 있다"며 대중·대북 압박에 동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 미국의 지상 미사일 '중국 뒷마당 배치' 현실화되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 육군의 미사일이 배치되면 사시사철 항공모함을 배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INF 조약 탈퇴 의사를 밝혔을 때 반발했던 유럽에 대한 설득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나토 동맹국 외교장관들은 이번에 브뤼셀에서 낸 성명에서 "러시아가 1987년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실질적으로 위반한 상태에 있다는 미국의 결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INF 조약이 파기된다 해도 엄청난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나라 땅에 배치할지'의 문제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동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해 있는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 태국, 싱가포르 뿐이다.

중국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미국의 INF 조약 파기는 격렬한 군비 경쟁의 막을 올리게 할 것"이라며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차이를 감안하면, 미국이 중국 인근에 지상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것은 60년대 쿠바가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해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느낀 위기감을 압도할 것이다.

'방어' 목적의 사드 배치에도 한국에 보복을 가했던 중국이다. 핵이 탑재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이 동아시아 어딘가에 배치된다면 중국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고, 동아시아 정세가 엄청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로서는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카드가 중국과 북한, 러시아 3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INF 조약 탈퇴 뒤 실제 미국이 미사일 실전 배치를 실행에 옮기는 상황까지 치닫지 않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INF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중 한 나라가 상대국에 탈퇴를 공식 통보하면 6개월 뒤 파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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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14: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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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말 폭탄을 주고받던 지난해 11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3척이 동해 상에 집결했다. 북핵 위기 이후 최대의 군사 압박이었다. '떠다니는 군사기지'인 항공모함이 다가올 때마다 북한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항공모함은 분위기가 바뀌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육군처럼 장기간 머물 수 없다. 일시적 배치만 가능한 전력이다. 그런데 미군이 북한과 중국을 사정거리에 둘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지상에 항시 배치할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INF 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중거리 핵전력 조약) 탈퇴 선언'이 그것이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등에서 미·중 간 군사적 대치가 심화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전략은 어떤 의도일까?

■ 폼페이오 "60일 내 조약 탈퇴" ... 러시아에 '최후통첩'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입장을 처음 밝혔다.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왔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이틀 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로 날아갔다. 볼턴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뒤 "INF 조약 탈퇴에 대한 미국의 공식 통보가 적절한 때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
그리고 40여 일만인 지난 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가 INF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준수하지 않는 한, 미국은 60일 안에 조약 준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AFP는 "미국이 러시아에 60일 간의 시간을 줬다"고 해석했지만, 제시한 시일 내에 러시아가 INF에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을 파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인 것이다. 사실상 조약 파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러시아는 INF 조약 조항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미국도 이를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2013년부터 'SSC-8'(나토명, 러시아명: 노바토르 9M729)로 불리는 지상 발사 순항 미사일을 개발해 이듬해인 2014년과 2015년 시험발사했다. 'SSC-8'의 사거리는 500Km에서 최대 5,500Km로, 평균 사거리는 2,500Km로 알려졌다.

■ 'INF 조약'이 뭐길래? ... '냉전 종식' 기여한 '냉전의 산물'

1975년 소련이 'SS-20(사거리 5,000km)' 미사일 개발에 나서면서 당시 나토가 비상에 걸렸다. 소련 서쪽 지역에 배치할 경우 전 유럽이 사정권에 들기 때문에 핵미사일 전력 균형이 깨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유럽의 요청으로 미국이 소련과 협상에 나섰지만 결렬됐다. 그러면서 소련은 우크라이나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 'SS-20'을 배치했고 이에 맞서 나토는 이탈리아와 서독 등지에 미국의 '퍼싱-2'와 '그리폰' 중거리 순항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국의 '퍼싱-2'와 소련의 'SS-20'은 핵무기로 상대방을 선제타격하는 무기체계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하지만 핵 억지력 차원에서 배치한 미사일 전력 증강이 군사적 긴장을 높인다는 우려가 커지자 미국과 소련은 다시 협상에 나섰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1987년 12월 8일,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INF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의 본래 이름은 '미국과 소련 간 중거리와 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두 강대국이 냉전체제를 끝내기 위한 첫 단계 조치로 합의한 핵 군축 협정이다.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단거리(500~1,000Km)와 중거리(1,000~5,500Km)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으로, 1988년 6월 발효됨에 따라 미국은 846기, 소련은 1,846기의 미사일을 1991년 5월까지 폐기했다.

INF 조약은 지상에 배치되는 미사일, 육군 전력에만 적용됐다. INF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공군과 해군 전력에 탑재되는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과 운용은 지속해왔다.

■ 미국 옭아맨 족쇄 푸는 진짜 목적은 '중국' 견제?

러시아의 'SSC-8' 미사일 개발로 미국에서는 INF 조약이 지상의 중·단거리 핵전력에서 미국만 옭아매는 족쇄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미국과 러시아에만 적용되는 약속인데, 두 나라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가 아무런 제약 없이 지상 배치용 중·단거리 미사일 전력을 강화해온 게 사실이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10월 조약 탈퇴 계획을 밝히면서 "INF 조약은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국가들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존 볼턴 보좌관의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캡처화면)
볼턴 보좌관은 러시아가 'SSC-8' 개발에 나서기 전부터 INF 조약의 무용론을 주장해왔다. 그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었던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미국이 러시아와의 INF 조약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과 북한·이란 등의 미사일 전력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나라가 중·단거리 미사일을 못 갖게 하든지, 미국도 탈퇴하든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조약 위반'이 명분인 미국의 INF 탈퇴 진짜 목적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중국은 INF 조약국이 아니기 때문에 DF-21(둥펑,東風21) 같이 항행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과 태평양 연안의 연합 자산이 바다로 밀려났고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INF 조약에 저촉받기 때문에 중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에 맞설 수 있는 주 전력은 항공모함 등 해군 전력으로 제한된다. 유사시 중국을 제대로 공격하려면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에 의존해야 한다.

위 :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DF-21’ 미사일 / 아래 : 지난 2월 남중국해에 전개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중국은 항공모함을 주 표적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했고 대표적인 것이 'DF-21'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도 인도·태평양 사령관 재직 당시 미 상원 군사분과에 출석해 "중국이 INF에 가입했다면 중국이 배치해온 미사일의 90%가 조약 위반이다. 중국은 미군의 군함을 위협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지상배치 전력이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태평양 지역 지상에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를 가능하게 해줄 INF 탈퇴 결정은 중국의 뒷마당에서 미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군사차관보도 "중거리 지상 발사 시스템을 이 지역(중국 인근)에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전력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 아시아·태평양 전력 보완용 ...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 분석도

미국이 현재 유일하게 패권을 다투는 나라는 2등 국가인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을 반드시 손보겠다며 '신(新) 냉전'을 여러 차례 선언했다. 중국이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미국의 군사 전력이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집중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중국의 핵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INF 조약에서 탈퇴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선언이 중국보다는 '북한'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마크 티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이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아무런 경고 없이 중·단거리 미사일로 북한을 둘러싸게 할 수 있다'는 틀림없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소련의 'SS-20' 배치에 '퍼싱-2' 배치로 대응해 소련에 엄청난 압력을 가함으로써 돌파구를 만든 사실을 상기시켜라.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에 거대한 새 협상 카드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티센은 또, 'INF 조약 탈퇴' 카드가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향해 비핵화 조치를 강요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적 이익을 갖고 있다"며 대중·대북 압박에 동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 미국의 지상 미사일 '중국 뒷마당 배치' 현실화되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 육군의 미사일이 배치되면 사시사철 항공모함을 배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INF 조약 탈퇴 의사를 밝혔을 때 반발했던 유럽에 대한 설득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나토 동맹국 외교장관들은 이번에 브뤼셀에서 낸 성명에서 "러시아가 1987년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실질적으로 위반한 상태에 있다는 미국의 결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INF 조약이 파기된다 해도 엄청난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나라 땅에 배치할지'의 문제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동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해 있는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 태국, 싱가포르 뿐이다.

중국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미국의 INF 조약 파기는 격렬한 군비 경쟁의 막을 올리게 할 것"이라며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차이를 감안하면, 미국이 중국 인근에 지상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것은 60년대 쿠바가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해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느낀 위기감을 압도할 것이다.

'방어' 목적의 사드 배치에도 한국에 보복을 가했던 중국이다. 핵이 탑재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이 동아시아 어딘가에 배치된다면 중국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고, 동아시아 정세가 엄청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로서는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카드가 중국과 북한, 러시아 3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INF 조약 탈퇴 뒤 실제 미국이 미사일 실전 배치를 실행에 옮기는 상황까지 치닫지 않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INF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중 한 나라가 상대국에 탈퇴를 공식 통보하면 6개월 뒤 파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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