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가 ‘죽은’ 아버지 부시를 ‘살렸다’…대통령의 덕목은?

입력 2018.12.07 (20:05) 수정 2018.12.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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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에서 위인의 반열에 드는 사람으로는 보통 두 명이 맨 앞에 꼽힌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노예를 해방시킨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그들이다. 또 자유와 평등 사상을 담아낸 독립선언문 입안자 3대 토마스 제퍼슨과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이겨낸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대표적인’미국 대통령으로 거론된다. 최연소로 당선됐다가 암살된 존 F 케네디와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은 비운의 주인공이긴 하지만‘유명한’ 미국 대통령에 속한다.

미 의회로 운구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유해미 의회로 운구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유해

그렇다면 최근 별세한 41대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어떤가? 대과없이 대통령직을 마치기는 했지만, 국민들 머리 속에 그리 뚜렷이 각인돼 있진 않고 비교적 ‘평범하고 밋밋한’ 대통령에 속하는 편이다. 경기 침체로 연임도 못하고 단임에 그쳤다. 더구나 말년에 성추행 ‘미투’ 사례로 거론돼 체면도 구겼다. 그런‘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숨을 거두자마자, 시쳇말로‘벌떡’했다. 미 언론은 일제히 그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숨을 거두자 ‘벌떡’한 아버지 부시

1944년 태평양 전쟁 조종사 시절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1944년 태평양 전쟁 조종사 시절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워싱턴포스트는 1면의 커다란 부시 대통령 장례식 사진 위에 세 단어를 톱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President, Patriot, Gentleman. 미국 대통령이었고 애국자였고 신사였다는 것이다. 전투기가 추락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2차세계대전 참전 이력과 '사막의 폭풍' 작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결단력은 ‘애국심’의 범주에 든다. 하지만 그의 오랜 공직에서의 헌신 보다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 그의 품성, 인격이다. 진실함과 남 탓을 하지 않는 것, 겸손, 배려, 따뜻함, 유머 등은 ‘신사’의 영역일 것이다. 평소 유머를 좋아했고 낙천적이었던 고인의 품성을 반영하듯 장례식에서도 찬사와 유머가 교차했다. 아들 부시까지 유머 대열에 합류하면서 장례식은 애절함 속에서도 경쾌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부시의 인간적인 덕목들은 공교롭게도 미 언론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던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이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부시에 대한 언론의 극찬은 트럼프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추도 기간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장례식장에서도 외톨이 된 트럼프 대통령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 모인 전현직 대통령 부부…분위기는 냉랭했다.‘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 모인 전현직 대통령 부부…분위기는 냉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장에서 전직 대통령들과 조우하는 자리에서도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 바로 옆자리의 오바마 부부와만 겨우 '영혼 없는' 악수를 나눴을 뿐 대선 경쟁자였던 클린턴 부부와는 어색한 눈 맞춤이 전부였다. 장례식 주관자인 아들 부시가 인사 왔을 때 전직 대통령 부부들이 벌떡 일어나서 예를 갖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독설을 퍼부어왔다. 트럼프 부부를 바라보는 힐러리의 싸늘한 표정이 이와 무관치 않았으리라.

부시 가문에게는 최대한 성의 보인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H W 대통령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H W 대통령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달 전 미 정계 거물인 매케인 전 상원 군사위원장 장례식에는 초대도 못받고 그러자 곧바로 골프장으로 달려가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트럼프는 또 정치 명문가 부시 가문과도 지난 대선 때 설전을 벌이는 등 안좋은 관계였지만 부시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장례식에 초청했고, 트럼프도 이들에게 성의를 보였다. 자신의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유해를 운송하도록 했고 장례 기간 가족들을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 머물게 하면서 직접 방문해 예를 갖췄다. 부시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는가 하면 장례식이 열린 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마음에 있건 없건 화합의 장면을 연출한 것인데, 이 상황에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딱히 다른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과제... 겸손. 배려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 수호

그렇지만 트럼프는 트럼프다. 애도 기간이 끝나고 나면 트럼프는 이전의 좌충우돌식 스타일로 되돌아갈 것 같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는 없으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세상을 대하는 트럼프의 전혀 새로운 접근법들을 일방적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이 예상 못했던 영역에서 일부 성과나 변화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 사람들이 정작 걱정하는 건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면 어쩌나 하는 점이다. 이건 트럼프의 인격 문제 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부분이다. ‘인격’의 상징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마당에 트럼프에게서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정책.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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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20:05:16
    • 수정2018-12-07 20:06:04
    특파원 리포트
미국 대통령 중에서 위인의 반열에 드는 사람으로는 보통 두 명이 맨 앞에 꼽힌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노예를 해방시킨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그들이다. 또 자유와 평등 사상을 담아낸 독립선언문 입안자 3대 토마스 제퍼슨과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이겨낸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대표적인’미국 대통령으로 거론된다. 최연소로 당선됐다가 암살된 존 F 케네디와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은 비운의 주인공이긴 하지만‘유명한’ 미국 대통령에 속한다.

미 의회로 운구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유해
그렇다면 최근 별세한 41대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어떤가? 대과없이 대통령직을 마치기는 했지만, 국민들 머리 속에 그리 뚜렷이 각인돼 있진 않고 비교적 ‘평범하고 밋밋한’ 대통령에 속하는 편이다. 경기 침체로 연임도 못하고 단임에 그쳤다. 더구나 말년에 성추행 ‘미투’ 사례로 거론돼 체면도 구겼다. 그런‘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숨을 거두자마자, 시쳇말로‘벌떡’했다. 미 언론은 일제히 그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숨을 거두자 ‘벌떡’한 아버지 부시

1944년 태평양 전쟁 조종사 시절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워싱턴포스트는 1면의 커다란 부시 대통령 장례식 사진 위에 세 단어를 톱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President, Patriot, Gentleman. 미국 대통령이었고 애국자였고 신사였다는 것이다. 전투기가 추락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2차세계대전 참전 이력과 '사막의 폭풍' 작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결단력은 ‘애국심’의 범주에 든다. 하지만 그의 오랜 공직에서의 헌신 보다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 그의 품성, 인격이다. 진실함과 남 탓을 하지 않는 것, 겸손, 배려, 따뜻함, 유머 등은 ‘신사’의 영역일 것이다. 평소 유머를 좋아했고 낙천적이었던 고인의 품성을 반영하듯 장례식에서도 찬사와 유머가 교차했다. 아들 부시까지 유머 대열에 합류하면서 장례식은 애절함 속에서도 경쾌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부시의 인간적인 덕목들은 공교롭게도 미 언론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던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이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부시에 대한 언론의 극찬은 트럼프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추도 기간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장례식장에서도 외톨이 된 트럼프 대통령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 모인 전현직 대통령 부부…분위기는 냉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장에서 전직 대통령들과 조우하는 자리에서도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 바로 옆자리의 오바마 부부와만 겨우 '영혼 없는' 악수를 나눴을 뿐 대선 경쟁자였던 클린턴 부부와는 어색한 눈 맞춤이 전부였다. 장례식 주관자인 아들 부시가 인사 왔을 때 전직 대통령 부부들이 벌떡 일어나서 예를 갖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독설을 퍼부어왔다. 트럼프 부부를 바라보는 힐러리의 싸늘한 표정이 이와 무관치 않았으리라.

부시 가문에게는 최대한 성의 보인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H W 대통령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달 전 미 정계 거물인 매케인 전 상원 군사위원장 장례식에는 초대도 못받고 그러자 곧바로 골프장으로 달려가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트럼프는 또 정치 명문가 부시 가문과도 지난 대선 때 설전을 벌이는 등 안좋은 관계였지만 부시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장례식에 초청했고, 트럼프도 이들에게 성의를 보였다. 자신의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유해를 운송하도록 했고 장례 기간 가족들을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 머물게 하면서 직접 방문해 예를 갖췄다. 부시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는가 하면 장례식이 열린 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마음에 있건 없건 화합의 장면을 연출한 것인데, 이 상황에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딱히 다른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과제... 겸손. 배려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 수호

그렇지만 트럼프는 트럼프다. 애도 기간이 끝나고 나면 트럼프는 이전의 좌충우돌식 스타일로 되돌아갈 것 같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는 없으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세상을 대하는 트럼프의 전혀 새로운 접근법들을 일방적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이 예상 못했던 영역에서 일부 성과나 변화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 사람들이 정작 걱정하는 건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면 어쩌나 하는 점이다. 이건 트럼프의 인격 문제 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부분이다. ‘인격’의 상징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마당에 트럼프에게서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정책.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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