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독일 기민당, 메르켈의 퇴장…‘미니 메르켈’의 등장

입력 2018.12.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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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의 전당대회가 현지시각 7일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결선투표 끝에 당 사무총장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56세)가 대표로 뽑혔다. 2000년 이후 18년 동안 대표로서 기민당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의 집권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당의 얼굴이 등장했다. 독일 언론은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메르켈의 측근인 점을 감안해 전당대회 이전부터 그녀를 ‘미니 메르켈’이라고 불러왔다.


이 날 전당대회의 주목적은 새로운 당대표 선출이었지만, 전반부는 사실상 메르켈 당대표에 대한 고별 무대였다. 참석자들은 메르켈이 연설 무대로 나오는 순간부터 열렬한 박수로 맞이했다.

메르켈은 30분간 진행된 퇴임사에서 자신의 정치 스타일을 설명했다. “세계를 흑백으로 보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다양한 명암이 있다고 보았다” “항상 타협을 믿었고, 기민당은 누구에게도 선을 긋지 않았으며 누구도 선동·비방하지 않았다” “정치적 적수를 심하게 공격한 적이 없고 항상 천을 감싸서 펜싱을 했다”고 메르켈은 설명했다. 자기반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메르켈은 “당 내부에서 흥분된 논쟁이 벌어져 그것을 뛰어넘으려 할 때 항상 주춤거렸다. 그래서 당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도록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언론은 메르켈의 고별 연설을 ‘메르켈답다’고 평가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디 차이트’는 “그녀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하거나 열정적인 연설을 한 적이 없다. 이 연설도 그랬다. 학술적이거나 목사님 연설 같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연설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기립 박수는 10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참석자들의 손에는 ‘고마워요 대표님’이라 적힌 팻말이 들려있었다.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던 메르켈은 청중의 박수가 계속되자 다시 단상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그럼에도 청중의 ‘커튼콜’은 계속됐고, 메르켈은 여러 차례 단상에 나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눈은 촉촉이 젖어갔다.

갑작스러운 퇴진…왜?


전당대회장에서의 환호는 메르켈에 대한 당원들의 신뢰와 당대표로서 메르켈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메르켈의 지도력은 크게 흔들렸다. 가장 큰 타격은 지방의회 선거에서의 잇따른 패배였다.

10월 28일 헤센주 선거에서 기민당은 2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직전 선거보다 11% 포인트 하락했다. 1970년 이후 최저 득표율이었다. 그보다 2주 전 치러진 바이에른주 선거에서는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이 이전 선거보다 10% 포인트 떨어진 37.2% 득표에 그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서 1962년 이후 2008~2013년을 제외하고 줄곧 단독 집권해 왔다. 그러자 대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이 “정치 쇄신책을 제시하라”며 메르켈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독일 집권당의 지지율 하락은 난민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적극적인 난민포용 정책을 폈던 메르켈 총리에 대해 기사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지난 7월 ‘난민환승센터’를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세우는 방안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갈등은 격화됐다. “난민 정책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두 정당의 70년간 동맹관계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언론 분석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집권당이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삐걱거리는 사이 민심은 떠나갔고, 극우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이 반사이익을 챙겨갔다. 메르켈은 당 대표직 사퇴로 책임을 졌다. 헤센주 선거 다음날인 10월 29일 메르켈은 2000년 4월부터 맡아온 당 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민당 새 대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누구?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이름이 길어서인지 독일 언론은 그녀의 이니셜을 따 종종 ‘AKK’로 표기한다. 크람프-카렌바우어 새 대표는 1981년 기민당에 들어갔다. 독일 남서부의 작은 주인 자를란트주에서 입지를 다져왔고, 2011년에는 자를란트주 총리에 올랐다. 올해 2월엔 메르켈 총리에 의해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되며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올해 전당대회 표어였던 ‘함께 이끌어갑시다(Zusammen führen)’처럼 단합을 강조했다. “대연정을 중심으로 모든 좌우 세력이, 모든 당원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거대한 민족의 당을 유지하고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도 그럴 듯이 이번 전당대회는 보수세력과 중도세력의 대결로 치러졌다. 결선투표에서 경쟁했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당내 보수세력을 대표한다. 난민 정책에 있어서도 포용적인 메르켈 총리와 각을 세워왔다.

크람프-카렌바우어의 당대표 당선으로 기민당의 중도·실용주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관건은 새 대표가 당내 이견을 추스르고 기민당의 지지율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리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난민 정책은 당은 물론 대연정의 토대를 흔든 사안이었던 만큼 기존 메르켈의 적극적 포용정책과는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크람프-카렌바우어의 당선으로 메르켈 총리도 한 시름 놓게 됐다. 메르츠 전 원대대표가 당선될 경우 메르켈의 총리직 유지가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2021년까지인 이번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바람대로 된다면 2005년부터 16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게 돼 헬무트 콜 전 총리(1982~1998년)와 함께 독일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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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독일 기민당, 메르켈의 퇴장…‘미니 메르켈’의 등장
    • 입력 2018-12-08 12:03:11
    특파원 리포트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의 전당대회가 현지시각 7일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결선투표 끝에 당 사무총장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56세)가 대표로 뽑혔다. 2000년 이후 18년 동안 대표로서 기민당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의 집권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당의 얼굴이 등장했다. 독일 언론은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메르켈의 측근인 점을 감안해 전당대회 이전부터 그녀를 ‘미니 메르켈’이라고 불러왔다.


이 날 전당대회의 주목적은 새로운 당대표 선출이었지만, 전반부는 사실상 메르켈 당대표에 대한 고별 무대였다. 참석자들은 메르켈이 연설 무대로 나오는 순간부터 열렬한 박수로 맞이했다.

메르켈은 30분간 진행된 퇴임사에서 자신의 정치 스타일을 설명했다. “세계를 흑백으로 보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다양한 명암이 있다고 보았다” “항상 타협을 믿었고, 기민당은 누구에게도 선을 긋지 않았으며 누구도 선동·비방하지 않았다” “정치적 적수를 심하게 공격한 적이 없고 항상 천을 감싸서 펜싱을 했다”고 메르켈은 설명했다. 자기반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메르켈은 “당 내부에서 흥분된 논쟁이 벌어져 그것을 뛰어넘으려 할 때 항상 주춤거렸다. 그래서 당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도록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언론은 메르켈의 고별 연설을 ‘메르켈답다’고 평가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디 차이트’는 “그녀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하거나 열정적인 연설을 한 적이 없다. 이 연설도 그랬다. 학술적이거나 목사님 연설 같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연설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기립 박수는 10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참석자들의 손에는 ‘고마워요 대표님’이라 적힌 팻말이 들려있었다.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던 메르켈은 청중의 박수가 계속되자 다시 단상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그럼에도 청중의 ‘커튼콜’은 계속됐고, 메르켈은 여러 차례 단상에 나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눈은 촉촉이 젖어갔다.

갑작스러운 퇴진…왜?


전당대회장에서의 환호는 메르켈에 대한 당원들의 신뢰와 당대표로서 메르켈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메르켈의 지도력은 크게 흔들렸다. 가장 큰 타격은 지방의회 선거에서의 잇따른 패배였다.

10월 28일 헤센주 선거에서 기민당은 2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직전 선거보다 11% 포인트 하락했다. 1970년 이후 최저 득표율이었다. 그보다 2주 전 치러진 바이에른주 선거에서는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이 이전 선거보다 10% 포인트 떨어진 37.2% 득표에 그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서 1962년 이후 2008~2013년을 제외하고 줄곧 단독 집권해 왔다. 그러자 대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이 “정치 쇄신책을 제시하라”며 메르켈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독일 집권당의 지지율 하락은 난민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적극적인 난민포용 정책을 폈던 메르켈 총리에 대해 기사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지난 7월 ‘난민환승센터’를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세우는 방안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갈등은 격화됐다. “난민 정책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두 정당의 70년간 동맹관계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언론 분석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집권당이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삐걱거리는 사이 민심은 떠나갔고, 극우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이 반사이익을 챙겨갔다. 메르켈은 당 대표직 사퇴로 책임을 졌다. 헤센주 선거 다음날인 10월 29일 메르켈은 2000년 4월부터 맡아온 당 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민당 새 대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누구?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이름이 길어서인지 독일 언론은 그녀의 이니셜을 따 종종 ‘AKK’로 표기한다. 크람프-카렌바우어 새 대표는 1981년 기민당에 들어갔다. 독일 남서부의 작은 주인 자를란트주에서 입지를 다져왔고, 2011년에는 자를란트주 총리에 올랐다. 올해 2월엔 메르켈 총리에 의해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되며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올해 전당대회 표어였던 ‘함께 이끌어갑시다(Zusammen führen)’처럼 단합을 강조했다. “대연정을 중심으로 모든 좌우 세력이, 모든 당원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거대한 민족의 당을 유지하고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도 그럴 듯이 이번 전당대회는 보수세력과 중도세력의 대결로 치러졌다. 결선투표에서 경쟁했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당내 보수세력을 대표한다. 난민 정책에 있어서도 포용적인 메르켈 총리와 각을 세워왔다.

크람프-카렌바우어의 당대표 당선으로 기민당의 중도·실용주의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관건은 새 대표가 당내 이견을 추스르고 기민당의 지지율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리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난민 정책은 당은 물론 대연정의 토대를 흔든 사안이었던 만큼 기존 메르켈의 적극적 포용정책과는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크람프-카렌바우어의 당선으로 메르켈 총리도 한 시름 놓게 됐다. 메르츠 전 원대대표가 당선될 경우 메르켈의 총리직 유지가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2021년까지인 이번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바람대로 된다면 2005년부터 16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게 돼 헬무트 콜 전 총리(1982~1998년)와 함께 독일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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