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해외 문화재 복원 1호, 홍낭시다 사원에 가다

입력 2018.12.10 (17:00) 수정 2018.12.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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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남부의 작은 도시 팍세. 우리로 치면 공주나 부여 정도에 해당하는 도시다.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경과 고대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라오스의 정신 수도로 불리는 이곳에 한국이 최초로 복원하고 있는 해외 문화재, 홍낭시다 사원이 있다. 문화재를 보존해나갈 능력이 부족한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는 문화유산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이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복원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지난달 중순, KBS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다.


한국의 해외 문화재 복원 1호, 홍낭시다 사원

홍낭시다 사원은 '시다 공주의 방' 이란 뜻을 지닌 힌두교 사원이다. 유네스코가 2001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왓푸 유적군에 속해 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동남아 지역을 지배했던 크메르인들이 11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사원은 지진과 태풍 등의 영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앞쪽 일부 기단과 기둥만이 원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의 전통과 첨단 기법으로 살아나는 천 년 유적

사원 복원에는 한국의 첨단 기술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문화재를 정밀 촬영해 기록하는 '3차원(3D) 스캔' 이다. 이 기술로 사원을 받치고 있는 석재들을 스캔하면 처음 지어졌을 때 모습을 역추적할 수 있다. 부품을 분해해 거꾸로 전체 설계도를 그려내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다.

부서지거나 깨진 석재를 접합할 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쓰였던 기술이 이용된다. 레이저로 측정한 위치에 티타늄 봉을 삽입해 두 개의 돌을 이어 붙인다. 이외에도 한국 복원팀은 GPR(지표투과레이더) 장비를 활용해 사원 주변 지반을 조사하고, 석재 훼손 상태를 적외선 카메라과 초음파탐상기를 통해 살핀다.

 홍낭시다 사원 근처에 지어진 한국의 현장사무소 홍낭시다 사원 근처에 지어진 한국의 현장사무소

복원 각축장이 된 '왓푸 유적군'…문화적 자부심·경제 협력 높인다

한국만 라오스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홍낭시다 사원에서 1㎞가량 떨어진 왓푸 사원은 선진국들의 복원 각축장이라고 할 정도다. 마주 보는 형태의 북궁전과 남궁전은 각각 인도와 프랑스가 복원했다. 이곳에서 언덕 위 주(主)신전으로 이어지는 통로 복원은 이탈리아가 담당했다. 산 중턱 주신전 뒤쪽을 둘러 물을 빼내는 배수로는 일본이 공사를 맡았다.

왓푸 사원 남궁전(오른쪽)은 프랑스가, 북궁전(왼쪽)은 인도가 복원을 맡았다.왓푸 사원 남궁전(오른쪽)은 프랑스가, 북궁전(왼쪽)은 인도가 복원을 맡았다.

프랑스가 복원한 남궁전은 인도 복원팀이 맡은 북궁전에 비해 허술한 모습이다. 현관에 해당하는 포치(Porch)부분을 화려한 장식으로 채워 넣었지만 프랑스는 군데군데 나무로 땜질했다. 이러한 방식은 '과도한 추정 복원을 지양하고, 고증이 되지 않은 곳은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문화재 보존에서 최소한의 개입을 강조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베니스 헌장(The Venice Charter)과 맥이 닿는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문화재 복원으로 문화 강국의 철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프랑스가 복원한 남궁전 포치(왼쪽)와 인도가 복원한 북궁전 포치(오른쪽) 프랑스가 복원한 남궁전 포치(왼쪽)와 인도가 복원한 북궁전 포치(오른쪽)

일본은 경제적 성과에 주목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입혔던 피해를 보상한다는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동남아시아 지역 문화유산 복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복원에 쓰일 중장비가 지나다길 길이 필요하다며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다리도 건설했다. 팍세에서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1.5㎞ 길이의 현수교도 일본이 지어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지에서 호감을 산 일본은 자연스럽게 대형 사업을 수주하고 자동차와 전자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었다.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라오스-일본 다리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라오스-일본 다리

문화재 복원도 '한류'…마을에 활기 불어넣은 한국 복원팀

한국 복원팀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단순히 기술만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일종의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한다. 그 중심에 홍낭시다 사원 복원을 지휘하고 있는 백경환 현장소장이 있다. 라오스인들은 그를 ‘촌장(이장)’으로 부른다. 복원 공사가 시작되고 인부들이 사원 근처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현장에 작은 마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주변에 조그마한 상점들도 생기며 사원 일대에선 작은 '지역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백 소장을 매일 밤 집에 초대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백경환 소장(왼쪽)과 전유근 박사가 기자(오른쪽) 에게 석재 접합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백경환 소장(왼쪽)과 전유근 박사가 기자(오른쪽) 에게 석재 접합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 소장 말고도 현장에는 6명의 한국 연구진이 더 있다. '돌 박사' 전유근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은 석재에 대한 연구와 보존 처리를 맡는다. 4살 된 딸이 있는데 긴 해외 체류로 1년에 2~3번밖에 만나지 못한다. 가끔 가족과 나누는 영상통화가 고된 타지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넉 달 전 보조 연구원으로 복원팀에 합류한 막내 김고운, 정지완 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한국이 처음 도전하는 해외 세계 유산 복원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라고 이 둘은 입을 모았다.

라오스인들이 한국 복원팀에게 라오스 전통 의식 '바씨'를 치러주고 있다.라오스인들이 한국 복원팀에게 라오스 전통 의식 '바씨'를 치러주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 복원팀은 라오스 현장 인력들과 올해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라오스인들은 한국 복원팀 모두에게 팔에 실을 감아주는 전통 의식으로 행복을 빌어줬다. 우돔시 께오삭싯 왓푸세계유산관리사무소장은 "한국 복원팀은 다른 나라 복원팀과는 달리 정이 많다."라면서 "라오스의 언어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라오스인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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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12-10 17:03:19
    취재K
라오스 남부의 작은 도시 팍세. 우리로 치면 공주나 부여 정도에 해당하는 도시다.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경과 고대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라오스의 정신 수도로 불리는 이곳에 한국이 최초로 복원하고 있는 해외 문화재, 홍낭시다 사원이 있다. 문화재를 보존해나갈 능력이 부족한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는 문화유산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이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복원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지난달 중순, KBS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다.


한국의 해외 문화재 복원 1호, 홍낭시다 사원

홍낭시다 사원은 '시다 공주의 방' 이란 뜻을 지닌 힌두교 사원이다. 유네스코가 2001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왓푸 유적군에 속해 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동남아 지역을 지배했던 크메르인들이 11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사원은 지진과 태풍 등의 영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앞쪽 일부 기단과 기둥만이 원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의 전통과 첨단 기법으로 살아나는 천 년 유적

사원 복원에는 한국의 첨단 기술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문화재를 정밀 촬영해 기록하는 '3차원(3D) 스캔' 이다. 이 기술로 사원을 받치고 있는 석재들을 스캔하면 처음 지어졌을 때 모습을 역추적할 수 있다. 부품을 분해해 거꾸로 전체 설계도를 그려내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다.

부서지거나 깨진 석재를 접합할 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쓰였던 기술이 이용된다. 레이저로 측정한 위치에 티타늄 봉을 삽입해 두 개의 돌을 이어 붙인다. 이외에도 한국 복원팀은 GPR(지표투과레이더) 장비를 활용해 사원 주변 지반을 조사하고, 석재 훼손 상태를 적외선 카메라과 초음파탐상기를 통해 살핀다.

 홍낭시다 사원 근처에 지어진 한국의 현장사무소
복원 각축장이 된 '왓푸 유적군'…문화적 자부심·경제 협력 높인다

한국만 라오스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홍낭시다 사원에서 1㎞가량 떨어진 왓푸 사원은 선진국들의 복원 각축장이라고 할 정도다. 마주 보는 형태의 북궁전과 남궁전은 각각 인도와 프랑스가 복원했다. 이곳에서 언덕 위 주(主)신전으로 이어지는 통로 복원은 이탈리아가 담당했다. 산 중턱 주신전 뒤쪽을 둘러 물을 빼내는 배수로는 일본이 공사를 맡았다.

왓푸 사원 남궁전(오른쪽)은 프랑스가, 북궁전(왼쪽)은 인도가 복원을 맡았다.
프랑스가 복원한 남궁전은 인도 복원팀이 맡은 북궁전에 비해 허술한 모습이다. 현관에 해당하는 포치(Porch)부분을 화려한 장식으로 채워 넣었지만 프랑스는 군데군데 나무로 땜질했다. 이러한 방식은 '과도한 추정 복원을 지양하고, 고증이 되지 않은 곳은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문화재 보존에서 최소한의 개입을 강조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베니스 헌장(The Venice Charter)과 맥이 닿는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문화재 복원으로 문화 강국의 철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프랑스가 복원한 남궁전 포치(왼쪽)와 인도가 복원한 북궁전 포치(오른쪽)
일본은 경제적 성과에 주목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입혔던 피해를 보상한다는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동남아시아 지역 문화유산 복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복원에 쓰일 중장비가 지나다길 길이 필요하다며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다리도 건설했다. 팍세에서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1.5㎞ 길이의 현수교도 일본이 지어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지에서 호감을 산 일본은 자연스럽게 대형 사업을 수주하고 자동차와 전자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었다.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라오스-일본 다리
문화재 복원도 '한류'…마을에 활기 불어넣은 한국 복원팀

한국 복원팀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단순히 기술만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일종의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한다. 그 중심에 홍낭시다 사원 복원을 지휘하고 있는 백경환 현장소장이 있다. 라오스인들은 그를 ‘촌장(이장)’으로 부른다. 복원 공사가 시작되고 인부들이 사원 근처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현장에 작은 마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주변에 조그마한 상점들도 생기며 사원 일대에선 작은 '지역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백 소장을 매일 밤 집에 초대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백경환 소장(왼쪽)과 전유근 박사가 기자(오른쪽) 에게 석재 접합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 소장 말고도 현장에는 6명의 한국 연구진이 더 있다. '돌 박사' 전유근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은 석재에 대한 연구와 보존 처리를 맡는다. 4살 된 딸이 있는데 긴 해외 체류로 1년에 2~3번밖에 만나지 못한다. 가끔 가족과 나누는 영상통화가 고된 타지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넉 달 전 보조 연구원으로 복원팀에 합류한 막내 김고운, 정지완 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한국이 처음 도전하는 해외 세계 유산 복원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라고 이 둘은 입을 모았다.

라오스인들이 한국 복원팀에게 라오스 전통 의식 '바씨'를 치러주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 복원팀은 라오스 현장 인력들과 올해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라오스인들은 한국 복원팀 모두에게 팔에 실을 감아주는 전통 의식으로 행복을 빌어줬다. 우돔시 께오삭싯 왓푸세계유산관리사무소장은 "한국 복원팀은 다른 나라 복원팀과는 달리 정이 많다."라면서 "라오스의 언어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라오스인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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