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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여성’만을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누가 만들었나?
입력 2018.12.10 (19:41) 수정 2018.12.10 (19:42) 취재후
[취재후] ‘여성’만을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누가 만들었나?
12월 7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오늘(10일) 현재 3만여 명이 서명했습니다.

청원자는 이 법안이 "남성에 대한 폭력, 성희롱 등을 법안에서 아예 제외"하고 "'여성'만을 피해자로 규정"했다면서, 이 법을 폐기하고 "모든 국민을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차별없이 보호하는 성평등한 법으로 다시 제정되는 경우 그 때 공포하겠다고 약속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폐지 청원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폐지 청원

그런데 이 법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본회의 처리에 앞서 7일 오전 KBS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춘숙 의원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 중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원래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규정한 내용이었는데, 대상범위가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됐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기존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 방지 관련 법률은 그 적용대상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고 남성까지 포괄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다 이례적으로 '여성'만을 위한 법률이 통과되었는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된 과정을 짚어봅니다.

왜 '여성'폭력방지법이었을까?…젠더폭력(gender based violence)의 번역어로서 여성폭력

2월 발의된 원안에서 여성폭력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성폭력은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법안의 이름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지만, 법의 적용 대상인 '여성폭력'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 포괄하는 개념의 성폭력이었습니다.


8월 상임위 첫 회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담당 수석전문위원도 이 부분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여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과 성별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으로 구분되는데, 정춘숙 의원의 원안은 남성 피해자까지 포괄하는 젠더폭력의 개념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수석전문위원은 여성폭력이라는 용어 때문에 법안명과 정의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되는 만큼 원안의 제정 방식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젠더'라는 표현이 일반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만큼 보편화된 개념이 아니고,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어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상징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사회적 약자, 성차별, 젠더폭력…고민 끝에 '여성폭력' 원안 유지한 여가위


8월과 9월, 여성가족위원회 법안 심사에서는 법안명에 들어간 여성폭력이라는 표현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법안 취지와 보호 대상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폭력방지법',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성차별에 의한 폭력방지법'이라는 표현을 제안했습니다.

발의자인 정춘숙 의원은 피해자의 90%가 여성인 상황을 감안해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기본법'이란 수정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폭력이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도 발생한다는 점, '여성 대상'을 명시할 경우에 너무 대상을 구체화해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기에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논의 끝에 '젠더폭력'라는 학술용어를 그대로 법안명에 쓰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여성가족위원회는 대체 용어를 찾지 못하고 법안명을 그대로 둔 채 9월 중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습니다.

미투(Me too)법을 지연처리하는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는 가운데, 여가위가 1차로 심사해 넘긴 미투 법안이었습니다.

'남성 피해자 보호조항'을 삭제한 건 '남성'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

법안명에 대한 논란이 법안 내용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건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섭니다.

11월 말 법사위 심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완영 의원은 '양성폭력방지기본법' 또는 '남녀폭력방지 기본법', 주광덕 의원은 '여성 등 폭력방지 기본법'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불법촬영을 예로 들며, 성적 폭력이 남녀 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좀더 광범위한 성폭력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여성폭력 등 방지 기본법'으로 수정 의견을 냈습니다.

범죄학자인데다 여가위와 법사위에 모두 속해있는 표창원 의원도 여가위의 고민과 논의 과정을 전달하고, '양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법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별 기반 폭력 방지기본법'이라는 명칭을 다시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제2 법안심사 소위원장인 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법안명과 법안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아예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항을 법안에서 제외해버리자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도 법의 보호대상을 좁혀서라도 법안을 합의해 처리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남성 피해자를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논의의 흐름이 바뀌자, 이 법의 공동발의자이자 이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의원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지금은 소수지만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남성에 대한 폭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법안이 제안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가족부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개별법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성별로 특정한 것은 유례가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고, 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광덕 의원이 "남성 피해자를 여가부에서 다 보호하려고 욕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발언하고, 이어 김도읍 소위원장이 여가부가 법안을 재검토하면 "법 통과가 난망해진다"고 압박했습니다.

결국 법사위가 여성폭력을 "여성에 대하여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좁혀 의결하면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가까스로 통과했습니다.


남녀 갈등과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건 누구일까?

보호대상 축소에 이어 정춘숙 의원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 중 안타까워한 대목은 성평등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의무화한 조항이 임의 조항으로 완화된 부분입니다.

'젠더폭력'이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 보편적인 이해와 공감이 있었다면, 법안 처리 과정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런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과정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도 수십 건의 청와대 국민청원뿐만 아니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통과됐다는 기사에는 여성만을 위한 나라라는 분노에 찬 댓글들이 어김없이 따라붙었습니다.

반대로,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는 오늘(10일) 유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즘' 관점으로 재해석한 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이 누더기가 돼 법사위를 통과했다"고 비판했습니다.
  • [취재후] ‘여성’만을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누가 만들었나?
    • 입력 2018.12.10 (19:41)
    • 수정 2018.12.10 (19:42)
    취재후
[취재후] ‘여성’만을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누가 만들었나?
12월 7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오늘(10일) 현재 3만여 명이 서명했습니다.

청원자는 이 법안이 "남성에 대한 폭력, 성희롱 등을 법안에서 아예 제외"하고 "'여성'만을 피해자로 규정"했다면서, 이 법을 폐기하고 "모든 국민을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차별없이 보호하는 성평등한 법으로 다시 제정되는 경우 그 때 공포하겠다고 약속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폐지 청원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폐지 청원

그런데 이 법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본회의 처리에 앞서 7일 오전 KBS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춘숙 의원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 중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원래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규정한 내용이었는데, 대상범위가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됐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기존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 방지 관련 법률은 그 적용대상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고 남성까지 포괄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다 이례적으로 '여성'만을 위한 법률이 통과되었는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된 과정을 짚어봅니다.

왜 '여성'폭력방지법이었을까?…젠더폭력(gender based violence)의 번역어로서 여성폭력

2월 발의된 원안에서 여성폭력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성폭력은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법안의 이름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지만, 법의 적용 대상인 '여성폭력'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 포괄하는 개념의 성폭력이었습니다.


8월 상임위 첫 회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담당 수석전문위원도 이 부분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여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과 성별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으로 구분되는데, 정춘숙 의원의 원안은 남성 피해자까지 포괄하는 젠더폭력의 개념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수석전문위원은 여성폭력이라는 용어 때문에 법안명과 정의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되는 만큼 원안의 제정 방식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젠더'라는 표현이 일반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만큼 보편화된 개념이 아니고,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어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상징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사회적 약자, 성차별, 젠더폭력…고민 끝에 '여성폭력' 원안 유지한 여가위


8월과 9월, 여성가족위원회 법안 심사에서는 법안명에 들어간 여성폭력이라는 표현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법안 취지와 보호 대상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폭력방지법',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성차별에 의한 폭력방지법'이라는 표현을 제안했습니다.

발의자인 정춘숙 의원은 피해자의 90%가 여성인 상황을 감안해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기본법'이란 수정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폭력이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도 발생한다는 점, '여성 대상'을 명시할 경우에 너무 대상을 구체화해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기에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논의 끝에 '젠더폭력'라는 학술용어를 그대로 법안명에 쓰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여성가족위원회는 대체 용어를 찾지 못하고 법안명을 그대로 둔 채 9월 중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습니다.

미투(Me too)법을 지연처리하는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는 가운데, 여가위가 1차로 심사해 넘긴 미투 법안이었습니다.

'남성 피해자 보호조항'을 삭제한 건 '남성'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

법안명에 대한 논란이 법안 내용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건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섭니다.

11월 말 법사위 심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완영 의원은 '양성폭력방지기본법' 또는 '남녀폭력방지 기본법', 주광덕 의원은 '여성 등 폭력방지 기본법'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불법촬영을 예로 들며, 성적 폭력이 남녀 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좀더 광범위한 성폭력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여성폭력 등 방지 기본법'으로 수정 의견을 냈습니다.

범죄학자인데다 여가위와 법사위에 모두 속해있는 표창원 의원도 여가위의 고민과 논의 과정을 전달하고, '양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법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별 기반 폭력 방지기본법'이라는 명칭을 다시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제2 법안심사 소위원장인 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법안명과 법안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아예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항을 법안에서 제외해버리자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도 법의 보호대상을 좁혀서라도 법안을 합의해 처리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남성 피해자를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논의의 흐름이 바뀌자, 이 법의 공동발의자이자 이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의원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지금은 소수지만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남성에 대한 폭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법안이 제안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가족부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개별법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성별로 특정한 것은 유례가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고, 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광덕 의원이 "남성 피해자를 여가부에서 다 보호하려고 욕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발언하고, 이어 김도읍 소위원장이 여가부가 법안을 재검토하면 "법 통과가 난망해진다"고 압박했습니다.

결국 법사위가 여성폭력을 "여성에 대하여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좁혀 의결하면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가까스로 통과했습니다.


남녀 갈등과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건 누구일까?

보호대상 축소에 이어 정춘숙 의원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 중 안타까워한 대목은 성평등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의무화한 조항이 임의 조항으로 완화된 부분입니다.

'젠더폭력'이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 보편적인 이해와 공감이 있었다면, 법안 처리 과정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런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과정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도 수십 건의 청와대 국민청원뿐만 아니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통과됐다는 기사에는 여성만을 위한 나라라는 분노에 찬 댓글들이 어김없이 따라붙었습니다.

반대로,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는 오늘(10일) 유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즘' 관점으로 재해석한 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이 누더기가 돼 법사위를 통과했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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